남극에서 대한민국까지 - 코로나19로 남극해 고립된 알바트로스 호 탈출기
김태훈 지음 / 푸른향기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들은 여행기를 왜 읽을까?

가본 곳은 '나도 여기 가 봤거든. 맞아, 그랬었지' 맞장구를 치면서 추억을 되살리기도 하고, 안 가본 곳은 언젠가는 반드시 가 보리라 전의를 불태우면서 호기심으로 대리만족을 얻는다. 중독성이 강한 게 여행인지라 안 가본 곳은 말할 것도 없고 가본 곳도 세월이 흐른 뒤 또 가고 싶은 게 여행족의 마음이다. 가고 또 가고!

제아무리 여행의 고수라 하더라도 남극까지 가본 사람은 많지 않다. '5대양 6대주'라지만 남극은 선뜻 접근하기가 쉽지 않은 지역이고, 약간은 여행이 아닌 탐사 내지 탐험의 분위기를 풍긴다.

 

<남극에서 대한민국까지>를 쓴 김태훈의 이력이 책에 자세히 나와 있지는 않다. 그는 한국을 떠나 동남아시아로 추측되는 지역에서 생활한 지 10년이 흘렀고, 마지막 정착지는 싱가포르이었으며 40이 되자 더 늦기 전에 평소 꿈꿔왔던 세계 일주를 부인과 감행한다. 8개월간 남미 여행을 거쳐 늘 호기심과 관심이 충만했던 남극 크루즈에 도전하기 위해, 우리에겐 아웃도어 브랜드명으로 잘 알려진 파타고니아 지역의 가장 남쪽 지구 최남단 도시 우수아이아에 도착한다.

지구 최남단의 도시, 아르헨티나의 우수아이아. 'Fin del Mundo(세상의 끝)'

남극 크루즈를 타는 건 기정사실이지만 어떤 경로를 택하느냐에 따라 경비는 큰 차이가 난다. 저자는 평소 가고 싶었던 남극반도와 주변 섬인 사우스조지아 섬과 포클랜드 섬까지 일주하며, 유람선에서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직접 랜딩을 해서 야생동물을 직접 관찰하는 체험형 관광을 선택한다. 이 코스가 제일 비싼 코스지만, 크루즈가 출발하는 도시에서 출발 직전에 나오는 'Last Minute Ticket(땡처리 티켓)'을 운 좋게 구해 버킷 리스트를 완성한다.

Dream come true!

저자는 아직까지 사람의 손길이 많이 닿지 않은 지구 최대의 사막 남극에서 대자연의 신비를 만끽하며, 펭귄으로 대표되는 야생동물들과 평생 지워지지 않을 체험을 한다. 크루즈에서의 생활도 만족스러워 배에서 남극 바다에 몸을 던지는 폴라플런지(Polar Plunge)도 도전하고, 선상에서 주최된 사진 콘테스트 '풍경' 부문에서 1위를 수상하는 기쁨도 누린다. 애당초 이번 크루즈에 탑승한 많은 관광객들은 위대한 탐험가 섀클턴의 경로를 밟아보는 것에 큰 의의를 두었기에 섀클턴에 관한 이야기와 포클랜드를 두고 벌어진 영국과 아르헨티나의 전쟁, 축구의 신 마라도나의 월드컵 후일담까지 책을 읽어가는 또 다른 흥미거리였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거의 매 페이지 등장하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만남직한 크고 작은 사진까지 충분한 만족감을 주는 여행기다.

 "사람을 찾습니다.

위험한 여정. 쥐꼬리 같은 월급.
살을 에는 추위에, 몇 개월간 어둠 속에서 지속되는 위험에 견뎌야 함.
생사 귀환 보장 못함. 그러나 성공할 경우 명예와 영광이 있음.
- 빌링턴가 4번지, 어니스트 섀클턴", P 101

 

 

아문센의 남극점 도달 2년 후, 섀클턴이 남극 탐험에 동참할 인원을 구하기 위해 신문사에 낸 구인 광고다. 이 말도 안 되는 광고는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고, 무려 5천 명의 지원자 중 27명이 합격해서 '섀클턴 탐험대'가 되었다. 이 광고를 현대에 낸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궁금해진다.

사람들은 흔히 어느 분야든 1위는 기억하지만 2위는 기억하지 않는다. 2위는커녕 실패자는 거론할 가치조차 없다고들 생각한다. 하지만 남극 탐험에 2번이나 성공하지 못한 섀클턴의 '위대한 실패'의 여정은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이 놀라운 실패담을 <남극에서 대한민국까지>로 처음 접했는데 이 책이 내게 준 또 다른 선물이다.

 

"남극에서 대한민국까지"

처음 책 제목을 보고 다소 의아했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 가기 힘든 오지 남극을 제목에 넣은 세계 일주인가. 어디서 출발하든 어디를 거치든 한국으로 돌아오는 건 당연한 일일 텐데 왜 굳이 '대한민국까지'라는 표현을 넣었을까? 왜 이런 제목을 넣었는가는 책의 후반부에 밝혀진다.

꿈같은 남극 크루즈가 끝나갈 무렵, 저자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듣는다. 세상과 단절된 지구의 끝에서 다양한 종류의 펭귄들과 씨름하는 사이, 코로나는 팬데믹이 되어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었고, 급기야 저자가 탑승한 알바트로스 호는 계획된 입항이 거듭 거절당한다. 아르헨티나에서도, 우루과이에서도.

'코로나 초기 유람선에서 감염이 생겨 피해자가 생기고, 어디서도 받아주질 않아 입항에 어려움을 겪어 크루즈에 고립되어 있다' 이런 뉴스를 접하곤 했는데, 바로 그 상황이 김태훈 부부에게 벌어진 거다. 크루즈에서 내릴 유일한 방안은 귀국 항공편이 확인이 되는 것뿐. 이마저도 해외 항공편의 연계가 확실해야만 가능한 시나리오인데, 평소라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항공 사정이지만 코로나 비상시국 하에서는 있던 항공편도 대부분 취소되는 한시 앞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게다가 저자는 지구의 끝에서 몇 번의 환승을 거쳐 한국으로 향해야 한다. 예매를 했다가 운항이 취소되고... 취소된 티켓값은 현금으로 돌려받는 게 아니라 항공사 포인트로 받아야 하는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계속 티켓팅을 시도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배에서 마냥 머무를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우여곡절 끝에 몬테비데오(우루과이)-상파울루(브라질)-마드리드(스페인)-런던(영국)-인천(한국) 환승 노선 예매에 성공한다. 브라질도 입국 금지가 예고되어 무조건 이 날짜에는 떠나야 하는, 크루즈에서 내리던 날. 어이없는 우루과이 출입국관리소 직원의 실수로 마지막 기회는 날아간다. 결국 저자 부부는 자국민의 안전을 위해 전세기를 띄우기로 한 호주 국민 외에 마지막까지 크루즈에 남은 외국인이 되었다.

남미 영사관 직원들이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해서 정말 다행이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감사하고 자부심이 생긴다.

그래도 국적기라고 대한항공이 힘써줘서 역시 다행이다.

저자 부부를 위해 밤낮으로 서포트한 한국의 지인들 덕분에 결국 이들은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책의 전반부가 남극의 찬탄에 바쳐졌다면, 후반부는 오도 가도 못하고 꼼짝없이 크루즈에 갇힌 18일간의 선상 고립생활이 그려진다.

저자의 사연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다'라는 상투적인 표현을 빌릴 수밖에 없을 거 같다. 현실은 여전히 영화보다 더한 일들이 많다. 가슴 졸이며 저자의 노심초사와 함께 한 후반부 18일, 웬만한 스릴러보다 더한 긴장감으로 페이지 넘기는 속도가 빨라진다. 마지막 귀환길에 나도 모르게 '만세'를 불렀고, 감동으로 눈가가 촉촉해졌다.

"남극에서 대한민국까지" 맞네!

수많은 여행기를 읽었지만 <남극에서 대한민국까지>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거 같다. 우선 남극이란 미지의 세계를 대리 체험하게 해준 드문 여행기이기도 하고, 불운하게도 코로나와 맞닥뜨린 선상 크루즈의 경험 역시 특별함으로 가득하다.

남극이 천국이었다면, 선상에 고립된 크루즈 생활은 생지옥이었다. 천당에서 지옥을 오간 이 특별한 여행기가 비단 여행을 사랑하는 독자 외에도 많은 독자들을 만나기를 희망한다. 초강력 추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