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버리다 -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가오 옌 그림, 김난주 옮김 / 비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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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같이 애묘인들이 많은 세상에서는, 기겁할 제목의 <고양이를 버리다>는

하루키가 그다지 추억거리가 많지 않은 아버지를 회상하는 99쪽의

짧은 에세이다.

다양한 산문을 출간한 하루키지만 가족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었던 걸로 아는데, 이번에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글을 모아 가오 옌의 추억 돋는 일러스트와 함께

포켓 사이즈의 소책자로 출간되었다.

아무래도 글의 성격이나 문장의 결이 다른 책과 함께

엮이기는 어려워 독립된 책으로 나왔다는 게 출판의 변이다.

'하루키'가 도서명에 포함된 모든 책을 그냥 넘어가지 못하는

하늘의 별처럼 많은 그의 팬들에게는

하루키의 가장 내밀한 속내음을 맡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흥분된다.



사람의 행위에는 대부분 계기가 있고, 목적이 있다.

하루키의 부모님은 모두 교사였고, 특히 아버지는 꽤 훌륭한 교사였다고 한다.

하지만 외아들인 하루키와 아버지와의 관계는 그다지 살갑지 않아

하루키가 전업작가가 된 이후에는 거의 절연에 가까운 상태가 되어,

이십 년 이상 전혀 얼굴을 마주치지 않았고, 어지간한 일이 없는 한

대화도 연락도 하지 않는 상태를 지속하다

아버지가 죽기 얼마 전에야 겨우 얼굴을 마주했다고 한다.

그랬던 하루키가 왜 아버지 이야기를 들고 나왔을까?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 암고양이 한 마리를 버리러 해변으로 간

에피소드로 아버지 '무라카미 지아키'와의 추억 여행은 시작된다.

다행히 버려진 그 고양이는 어찌 된 일인지 무라카미 부자보다 빨리

집에 도착해서 부자의 안도감(!)을 이끌어냈다.

무라카미 지아키는 2차 대전 무렵 무려 3번이나 징집되었으나

용케 살아남았고 당시 보고 겪은 일들을 뜨문뜨문

아들 하루키에게 전했다.

그중 중국 병사가 처형된 모습을 목격한

기억은 가장 강렬하게 저장되어 있다.


하루키는 부친의 사망 이후 아버지에 관련된 자료를

찾아보기도 하고, 관계있는 사람들을 만나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조금씩 듣기도 하는 식으로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우고, 자신의 핏줄을 더듬는다.

만약 아버지가 병역에서 해제되지 않아 치열한 전장으로 보내졌다면,

아니면 어머니의 약혼자가 전사하지 않았다면...

하루키는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으니까.

지아키는 영화를 좋아해서 아들과도 극장 나들이를 자주 했고,

타이거스 팀이 지면 몹시 언짢아할 정도로 열렬한 한신 타이거스 팬이었다.

무엇보다 그는 하이쿠를 좋아해서 직접 자작도 많이 한 문학도였다.

어느덧 슬슬 부친이 사망한 나이에 점차 다가가는 하루키는

특유의 무덤덤한 쿨한 어조로 아버지를 추억한다.

어쨌거나 육신의 반은 지아키에게서 왔고,

이 책에서 그다지 큰 비중은 아니지만 어머니에 대한 언급도 살짝 보인다.

하루키의 문재(文才)와 야구 사랑은 그냥 뚝 떨어진 건 아닐 거다.

이유 있고 의미 있는 내적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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