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눈의 소녀와 분리수거 기록부
손지상 지음 / 네오픽션 / 2019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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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내가 이 소설을 읽고 싶었던 이유 두 가지.

첫 번째는 출판사 임프린트가 바로 '네오픽션'이란 점이 시선을 끌었다.

네오픽션을 통해 얼마 전 다카하시 가쓰히코의 <붉은 기억>과 <전생의 기억>을 재미있게 읽은지라 그 출판사에서 한국 작가의 소설이 나온다는데 일단 반가웠다. 주로 장르문학에 관한 책을 내는 걸로 보였고, 그렇다면 일단 믿을만하다 기대감을 느꼈다.

두 번째는 마케팅 부서의 누가 작명을 했는지 이 책의 선전 문구가 혹 했다.

"꿀잼 보장 미스터리 하드보일드 버디물"

이런 문구라면 누가 넘어가지 않을까?


'죽은 눈의 소녀'라... 도대체 어떤 눈을 죽은 눈이라 표현할까.

대강 그려지는 이미지대로 공포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초점이 없거나, 흰자위가 없는 검은 눈 그런 거라면 아무리 예쁜 소녀라도 이런 눈을 가졌다면 피하고 싶을 듯하다.

그런데 이 소설의 주인공 중 한 명인 '죽은 눈의 소녀' 성지은은 족보가 있다.

몇 년 전 성남시의 올바른 쓰레기 분리배출 캠페인의 마스코트로 쓰인 캐릭터가 바로 '성지영'이었다.

애니 캐릭터로 탄생되었지만, '죽은 눈'이라고 하는 초점 없는 눈동자 때문에 크게 화제가 되었고, 분리배출 캠페인도 큰 반응을 얻어 이후 인디게임이 출시되기도 하고, 게임 콜라보가 이루어지는 등 성공적인 공공기관 캐릭터 마케팅의 사례로 남았다.

성남시 분리수거 소녀 '성지영'이 죽은 눈의 소녀 '성지은'으로 끝자리 한글자만 바뀌었다.

이런 탄생의 배경을 알고 나니 이제 소설의 제목과 설정이 이해되기 시작한다!


◈ 꿀잼 보장


이 소설은 라이트 노벨, 주로 청소년 독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가벼운 대중소설이다.

소설의 주인공도 대입을 준비하는 마동군과 그 또래인 '죽은 눈의 소녀' 성지은이다.

마치 만화를 풀어서 글로 옮긴 듯한 분위기가 소설 전반에 흐른다.

하늘을 본다. 새카만 하늘에 뜬 달.

"아모르파티이이이!"

마동군이 달렸다. 가속도가 붙어 몸이 중심을 잃고 앞으로 고꾸라질 정도다. 다리가 못 따라가면 이대로 넘어진다. 무릎이 비명을 지른다. 버텨줘. 제발. 마지막 힘을 짜내어 뛰어올랐다.

도약.

마동군의 그랑 쥬떼가 달빛을 뚫는다.

마동군이 가로등 불빛을 뚫는다.

가로등 불빛 스포트라이트 한가운데에 마동군이 있다.

시간이 멈춘다.』 - P 270~271


지은이는 일본 문화에 깊은 지식이 오타쿠 수준으로 있고, 이게 소설의 곳곳에 등장하는데 그 부분이 내겐 꿀잼이었다. 마동군 역시 일본에서 살다 7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는 설정이다.

"그동안 성지은은 흑역사가 <기동전사 건담>이라는 유명한 애니메이션을 만든 일본 감독 도미노 요시유키가 작품 <∀(턴에이) 건담>에서 처음 등장하는 개념이라는 설명을 무애 스님에게 이야기했고, 무애 스님은 "이뭣고" 하며 흘려 넘겼다." - P 254


◈ 미스터리 + 하드보일드


라이트 노벨에 맞게 19금은 없다.

하지만 두 건의 사건을 해결하며, 위조지폐범을 다루는 나중 사건은 제법 규모가 있어 전체 6장 중 5, 6장이 할애되어 있고 영상으로 만들어도 심심하지 않을 정도의 액션이 가미된다.


◈ 버디물


주인공 마동군은 근육질의 덩치지만 실제로는 발레를 하다 부상으로 하차한 이력을 지녔고, '죽은 눈의 소녀' 성지은은 사람 마음을 읽는 데는 둔감하지만 머리만은 비상한 열일곱 살 소녀로 플라스틱 합성수지 가방부터 감정 분석 어플까지 뭐든 잘 고안해내는 천재다. "~~하는 거."라는 특이한 말투를 쓰며, 놀랄 만큼 독특한 관점으로 사람과 세상을 본다.

이 둘은 사건 해결을 위해 뭉친다. 남녀 짝패가 만약 '셜록 홈스와 왓슨 박사', '에르퀼 푸아로랑 헤이스팅스 대위'라면 당연 브레인은 성지은이다.

소설 속 '매립지'가 실제 존재하면 좋겠다.

매립지는 편히 놀면서 마음의 쓰레기를 처리하고 괴로움을 묻어버릴 수 있는 아지트다. 그리고 거기 있는 '정신과 분노의 방'은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온갖 물품들을 때려 부수는 공간이다.

"마동군은 어제 다녀왔던 정신과 분노의 방이 생각났다.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해 혼자서 마음을 정리할 수 있는 곳. 꼭 장소가 아니라도 누구에게나 그런 곳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랑하는 사람이든 취미든, 의지할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그게 잘못되면 도박이나 술이나 약에 빠지게 되는 것이겠지." - P 116


소설 전체 구성으로 보자면 초반 3장을 통해 등장인물들 소개가 이루어지고, 4장 이후 본격적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모양새다. 이제 막 등장인물들과 익숙해져서 본격적으로 '탐정 놀이'를 해야 하는데 이게 약간 아쉽다. 그래서인지 저자도 마지막에 '셰리 던'이란 인물의 사건 의뢰로 다음 편을 기약하며 소설을 마무리한다.

아무래도 '셰리 던'을 기다려야 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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