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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미제라블 세트 - 전5권 ㅣ 펭귄클래식
빅토르 위고 지음, 이형식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프랑스 혁명은 1789년 7월 14일에 시작되어 1794년 7월 28일까지 100년을 넘게 이어온 사상혁명이다. 그 100여년에 걸친 역사 속에는 수많은 사건들로 채워져 있다. 2권의 초반부에는 1815년 6월에 시작된 워털루 전투에 관해 생생한 기록이 전해진다. 아마 여느 역사책에서 보다도 당시의 상황을 실감 나게 느낄 수는 없을 것 같다. 혼전과 반전을 반복했던 역사에 대해 내 짧은 식견이 속속들이 알 리는 만무하지만 부패한 프랑스 왕정에 맞선 유럽 연합국의 민족주의, 자유주의의 발로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전쟁은 황폐와 가난을 낳고 약탈과 도둑질을 서슴지 않게 만든다. 힘없는 자를 학대하고 매춘을 양산한다. 전쟁이라는 어둠이 잉태시킨 온갖 종류의 낙오자들을 위고는 '베스페라틸리오'(밤의 새, 박쥐) 라 표현했다. 낮 동안의 영웅들이 밤이면 흡혈귀로 변해 전사자들의 소지품까지 털어 전투 다음 날의 새벽은 항상 벌거벗은 시신들 위로 밝아오기 때문이다. 또한 그러한 자들에 대해서는 어떤 군대도 어떤 국가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 베스탈리오들 속에서 떼나르디에가 있다.
세월은 흘러 1823년 겨울 작은 시골 몽훼르메이유, 전쟁의 낙오자 떼나르디에가 운영하는 싸구려 음식점이 있다. 팡띤느의 어린 딸,맨발의 꼬제뜨가 모진 학대를 이유도 모른 체 감내하며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다.
그동안 쟝 발쟝은 다시 체포되어 이름없는 도형수가 되었다. 하지만 같은 해 전함 '오리온' 선상에서 쟝 발쟝에게 다시 기회가 온다. 사역 현장에서의 사고로 목숨이 위태로운 선원 한 사람을 구하고 바다로 몸을 던져 탈출을 한다. 그 후 쟝 발쟝은 사망이라는 자유를 얻고 팡띤느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어린 소녀 꼬제뜨를 찾아 몽훼르메이유로 향한다.
어두운 숲 속에서 마주친 어린 소녀가 꼬제뜨임을 알게 되었을 때의 쟝 발쟝의 심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나이 겨우 여덟살인 아이의 표정에서 늙은 여인의 침통하고 구슬픈 모습을 본 쟝 발쟝의 침통함은 무엇에 비유해야 할까? 일찍이 그 무엇을 사랑한 적이 없는 쟝 발장에게 꼬제뜨와의 만남은 어떤 의미일까?
"그가 꼬제뜨를 보았을 때, 그녀를 넘겨받아 데리고 나와 해방시켰을 때, 그는 자기의 창자들이 꿈틀거림을 느꼈다. 그의 내면에 있던 열정적이고 다정한 것이 몽땅 깨어나 그 아이에게로 와락 달려들었다... 사랑하기 시작하는 심장의 위대하고 기이한 꿈틀거림 만큼이나 모호하고 달콤한 그 무엇이었기 때문이다. 갓 태어난 가엾은 늙은 심장이었다!
p.198
어린 꼬제뜨를 절망의 늪에서 구출하고 새로운 보금자리에 머물기도 잠시, 끈질긴 쟈베르에게 다시 쫓기게 되고 숨막히는 추격전 끝에 쁘띠-삑쀠스 수녀원으로 피신한다. 예전 목숨을 구해 주었던 수녀원의 정원사 포슐르방의 도움으로 또다시 숨어서 지내게 된다.
<그가 전에는 도형자의 일원이었으되, 이제는 이를테면 수녀원의 구경꾼이 된 지라, 그는 그 둘을 뇌리에 떠올려 불안한 마음을 대조하게 되었다. 속박의 두 장소, 하지만 첫 번째 것에는 언제나 가능한 해방, 언제나 엿보이는 합법적 한계, 게다가 탈출도 있다. 두 번째 속박의 장소에는 종신형밖에 없다. 첫 번째 속박의 장소에서는 누구나 오직 쇠사슬로만 묶여 있는데, 두 번째 속박의 장소에서는 각자 자신의 믿음에 묶여 있다....
그의 의식 속에서 음성 하나가 대꾸하였다. "인간의 너그러움 중 가장 신성한 것, 즉 다른 이를 위한 속죄라네.">
p.386
그렇게 형벌의 장소가 아닌 속죄의 뜰 안에서 꼬제뜨는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끝나지 않는 쟝 발쟝의 고된 삶 속에도 희망의 싹은 피어 나고 있었다. 그것은 꼬제뜨를 향한 사랑이다.
미리엘 주교로 부터는 용서와 구원을 배웠다면 꼬제뜨로 부터 쟝 발쟝은 소중한 사랑을 배우고 있었던 것이다. 절망 앞에서 만난 첫 번째 구원에 이어 두 번째 구원을 꼬제뜨를 통해 느끼고 있다.
읽는 내내 등장 인물의 심리적 갈등을 묘사하는 위고의 탁월한 문장력에 감탄사는 저절로 따라 오게 된다. 슬플 땐 가슴이 아려 오고 화가 날 땐 통쾌함을 주는 빅토르 위고의 위대한 표현력에 나도 모르는 사이 책 속으로 빠져들어 함께 번뇌하고 있음을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