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투기의 소용돌이
프롤로그 S# p1. 서울 마장동 화물 터미날 (오후 5시 30분)
5톤 화물차에 짐 싣는 인부들. 그 옆에서 손에 든 배차전표를 보고 있는 후줄근한 작업복의 나, 하 정수.
클로즈 업 되는 전표, 『도착지 : 수원 아주대 터미널, 예정시간 : 19시』
나 : (찡그린 표정) 여기서 1시간 안에 수원 가래. 보통 때처럼 안양 컨트리 길로 가자니 한창 밀리는 퇴근시간대고, 광주 쪽으로 돌면 시간이야 되지만 배차계가 기름값 시비할 테고, 이런 니기미--.
이씨 : (심드렁 하다) 이 사람이 장사 첨하나, 새삼스럽게 왜 이래? 과속하라 이거잖아? 배차계 하는 짓이 늘 그렇지.
나 : (어두운 표정) 잘하면 또 한 따까리 하겠군. 나도 웬만하면 안전운행 좀 하고 싶지만 배차계가 하도 빠꼼이라 옴치고 뛸 재주가 없어.
이씨 : 안전 운행? 딱지 안 떼게 교통이나 잘 보고 다녀.
나 : (짐 싣는 인부들에게) 거기 비뚤잖소, 험하게 달리는 사람 짐까지 신경 안 쓰게 잘 좀 합시다.
S# p-2. 경수 산업도로 (오후 6시 40분)
배경 음악) Bill Whelan --- the countess cathleen the Women of Sidah 후반부의 빠른 탭 박자 River Dance 리듬의 강렬한 탭 박자(하 정수의 주제), 빠른 음악 속에서 차선을 연거푸 바꾸며 경수 산업도로를 질주하는 5톤 트럭. 시속 100km 가까운 속도계. 비상등을 켠 과적 트럭이 켜고 차선을 밀고 들어가면 옆 차선의 차들은 알아서 비킨다. 긴장해 핸들을 잡은 내 표정, 살벌하다.
전방에 보이는 교통경찰. 속도를 확 줄이며 온화한 미소를 짓는 나. 신호대기 중인 내 트럭 옆 승용차 뒷좌석에 앉은 초로의 신사가 힐끗 올려다본다. 남 승우 사장. 1년 뒤 증권시장에서 나와 악연을 맺게 되는 자다.
이윽고 나타나는 수원 표지판. 아주대 사거리를 지나자 화물 터미널 간판이보인다. 계기판의 시계는 7시 1분 전. 운전대 옆 인형에『오늘도 무사히---.』 라고 쓰여 있다.
S# p-3. 숙직실/ 수원 화물 터미널
배달용 알미늄 쟁반의 백반을 바닥에 놓고 먹는 세 남자. 하나같이 복장이 추레하고 얼굴은 부스스하다.
나 : 난 오늘 여기서 잘 거야. 새벽에 서울 갈 짐이 있대.
기사 1 : 난 이거 먹는 대로 목포행이여.
기사 2 : 거--, 밤 운전 조심하쇼.
기사 1 : (창밖을 내다보며) 날씨가 그나마 다행이지. 야밤중에 비까지 쫙쫙 쏟아져 봐. 완전히 살려 구다사이 지.
나 : 한 달이면 절반이 외박이니-, 독수공방 우리 마누라 생각나네.
기사 1 : (한숨을 쉬며) 우린 언제나 정착해서 살아보지?
나 : 정착 좋아하네. 가게라도 하려면 우선 터가 있어야지. 그게 한두 푼도 아니고--! 게다가 어리숙한 나하고 순둥이 마누라가 무슨 장사를 하겠어?
기사 1 : 맞아, 하씨는 그 쪽 체질은 아닌 거 같아.
나 : 장인 영감님, 나만 보면 노상 그래. 약삭빠른 구석이라고는 약에 쓸래도 없대. 딸 고생시킬 인간이라나
기사 2 : 말씀은 그래도 하씨가 정말로 약아 빠졌어 봐. 사위씩이나 삼았겠어. 당신도 그런 인간은 싫지만 답답하니까 해본 말씀이겠지.
S# p-4. 수원의 터미널 근처 대로변 인도
숙직실을 나와 골목을 천천히 벗어나는 나. 밤중의 대로변 인도에 서서 담배를 피운다. 피곤한 표정. 가로등 기둥의 표지판에 포르르 내려앉는 참새 두 마리.
내 목소리) 니들은 좋겠다. 돈 없이도 아무 데나 둥지 틀 수 있으니-,
S# p-5. 삼선교의 산동네
버스를 내리는 나. 내리자마자 오라이-- 하며 문을 닫는 차장 아가씨
하류 쪽 산동네로 걸으며 상의에서 봉투를 꺼내보는 나.
“주급” 이라고 인쇄된 봉투에 “4천환” 이라고 적혀 있다.
골목 어귀로 들어서자 저만치서 걸어가는 아내의 뒷모습. 잰 걸음으로 다가가는 나.
나 : (반가운 얼굴로 어깨를 건드린다.) 여보
화들짝 놀라며 돌아본 아내, 활짝 웃는다. 왼팔에 종이 봉지를 안은 아내, 오른 손에는 새끼에 꿰인 19공탄 두 개가 힘겹게 들려있다. 표정이 굳어지며 새끼줄을 빼앗아드는 나. 함께 비탈길을 올라간다. 봉지쌀을 안은 아내도 말이 없다.
S# p-6. 삼선교 개천 길
이른 아침에 개천을 따라 걷는 나. 힘찬 걸음. 깍깍대는 소리에 올려다보니 전봇대에 앉아 짖는 까치 두 마리.
겹치는 장면) 수원 도로 표지판의 참새 두 마리
내 목소리) 니들은 좋겠다. 돈 없이도 아무 데나 둥지 틀 수 있으니-,
문득 걸음을 멈추며 팔짱을 끼는 나. 개천을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기는 표정. 가운데만 물이 흐를 뿐 갓 쪽 바닥은 대부분 말라 있는 개천 바닥. 전봇대의 까치와 개천 바닥을 번갈아 쳐다보던 나. 이윽고 눈이 반짝이며 미소를 짓는다.
목소리) 바로 이거다. 나도 허공에 둥지를 틀 수 있었어.
S# p-7 개천 바닥의 공사장
개천 바닥에 세운 헌 전봇대들. 그 위에 얹은 통나무 판을 못과 와이어로 고정시키고 있는 나, 그리고 인부 두 명.
옆에서 지켜보는 장년의 사내 구씨와 장인.
장인 : 아범이 궁리 잘했어. 물이 개천으로 바로 빠지니 하수도 공사도 필요없구, 길가라서 선전도 잘 될테구.
나 : 생각은 좋았는데---, 수월찮습니다. (헌 전봇대를 가리키며) 저거 구하러 헤맨 거 생각하면---,어디서 구할지 몰라 한전을 찾아갔죠. 이 친구들이 그거 파는 물건 아니라며 딱 잡아떼요. 좌우지간에 어딘가 모아두는 곳은 있을 거 아니냐고 사정사정해서 가보니 이야아--, 엄청 많이도 쌓였더라구요. 뭐할 거냐니까 그냥 폐기한대요. 어차피 버릴 거면 나 한테 팔라니까 쓸 만큼 그냥 가져가래요.
장인 : (흡족한 표정) 어리숙한 아범한테 기런 수완이 있을 줄이야--.
나 : (멋쩍은 표정) 수완은 무슨---, 목마른 놈이 우물 파는 거지요.
장인 : 기게 바로 수완이디. 목말라도 우물 못 파는 답답한 사람들이 태반이야.
나 : (뒤통수를 긁으며 게면쩍게) 그럼 제게도 제법 소질이 있는 건가요?
구씨 : (다독거리는 말투) 그러엄, 있구 말구. 이게 작아도 만만찮은 공사야. 헌 전봇대 구하는 거부터 구청 허가 받아야지, 공사인부 달래야지, 세차 펌프에다 공구--, 뭐 그딴 거야 내가 있지만, 여하간 잘 해내고 있잖아.
나 : 까치하고 참새 덕분에 (으시대는 표정) 세차장 만들게 될 줄이야---, . 무슨 옛날 얘기 같지요?
장인 : (온 얼굴에 주름살을 지으며 활짝 웃는다.) 까치하고 참새 덕분이 아니라 우리 공상가 덕분이디. (대견하다는 듯 내 어깨를 툭툭 두들겨준다.)
공사 현장을 배경으로 제목이 뜬다. 『베링 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