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 1-2-8. 명동 입구 대로변

등교 길의 학생들로 만원이 된 버스를 내리는 나와 장인. 명동을 따라 시공관까지 똑바로 가서 왼쪽으로 접어든다.  다시 왼쪽 골목으로 꺾자 5층 건물에 세화다방 간판이 보인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나와 장인.

S# 1-2-9 세화 다방 안

아직 손님이 없는 다방,  커피를 뽑고 있다.
레지 : 어머, 일찍 오셨네요.

카운터 뒤에서 두툼한 서류봉투를 꺼내 준다. 안쪽 자리로 들어가 앉는 장인

장인 : 다네도 앉으라우, 어--, 냄새 좋군.  (익숙한 가락으로) 모닝커피

     검지와 중지로 처억 하니 V자를 만든다. 신기한 기색으로 쳐다보는 나. 음흉한 메기입을 지어 보이더니 이내 씩 웃는 장인.

장인 : 다네, 나허구 일 두일만 덩권 공부를 해 보디.

봉투를 내 앞으로 쓰윽 밀어준다.

장인 : 한 가디 당부할 일은---,

계란 노른자를 동동 띄운 모닝커피를 들고 온 레지 아가씨가 잔을 내려놓고 간다.

징인 : 궁금한 거이 있더라도 둘이 있을 때만 묻도록, 알가서?
나   : 예 알겠습니다.
장인 : 우선 오늘은 덩권 회사가 문 열 때까지 여기  개마니 앉아 다른 사람들 얘기나 듣기로 허디. 그담에 덩권사 객장에 가 보구, 덤심은 될 수 있는  대로 고급 음식덤으로 가자구. 에에 또 --   오후에는 메트로 호텔 커피 숍에서 디내다가 다른  회사 객장도 멧군데 들러보자구, 알가서?

전투 명령을 하달하는 작전 참모의 기세다.

나    : 예
장인  : 사람들 올 때까지 기거나 읽고 있게.봉투에서 팜플렛, 증권 카다로그, 증권거래소 제도안내, 그리고 증권회사 영업 안내서 따위가 잔뜩 나온다.
군소리 없이 차근차근 자료를 읽어가는 나

장인 : (잠시 쳐다보다가) 계란 너무 익기 전에 마셔야  맛이서 야.

뜨거운 커피에 계란이 살짝 익어 있다.  자료를 들여다보는 내 모습위로 청약, 결제기간, 청산거래, 상한가, 하한가, 등 용어가 적힌 카다로그.
객장 벽 칠판에 백묵으로 숫자를 적는 직원의 날렵한 손 

S# 1-2-10. 살림집 안방

저녁상에 마주앉은 장인과 나.

장인 : 전에 상원이가 메트로 호텔까지 태워주었다는 신사  두 사람 얘기레 기억나디?
사복 군인, 덩권, 노신사,-- 이 말을 듣는 순간 대번에 피잉 오는 게 있었디. 미두나 덩권이나 투기성이 쎄다는 점은 비슷허구, 여기에 덩부가 끼어들기만 하면 꼭 큰 일이 벌어디곤 했디, 
이제 군인들이 새로 정권도 잡았겠다 ---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디. 일데 시대에도  미두시장에서 그런 일, 많아서야. 
 (숭늉을 벌컥벌컥 들이킨다.)
하루는 상원이 데리고 메트로 호텔 앞에 종일 보초  섰대서. 그날 태웠댔다는 사람을 찾아보려는 막연한 기대더랬는대 의외로 쉽게 찾아서.

스틸 사진) 증권 골목을 걷는 장인, 다방 마담과 얘기하는 장면, 메트로 호텔 로비를 서성대는 장면
장인 목소리)
그 양반네 사무실이 바로 호텔 안에 있었거든. 남 사장이 라면 증권가 다방 마담들까지도 다 아는 그 바닥 고참이두만.  군인 같더라는 젊은 사람은 못 찾았디만 남 사장이 군인들 과 왕래하는 건 확실한 거 같아서.  척 보기에도 군인으로 뵈는 사람들이 여럿 드나들더구

백양을 한 개비 뽑아 방바닥에 톡톡 친 후 불을 붙인다. 그리곤 물끄러미 쳐다보는 나와 힐끗 눈을 맞추더니 잠시 침묵한다.

장인  : 흠, 기리니 끼니 어더렇다는 얘기냐 이거디? 아니기 너언--, 얼굴에 다 쒸어이서 야.
길게 연기를 내뿜은 장인

장인 : (느린 어조로) 평생 가야 한번 볼 수 있을까 말까 한 큰 투기가 둔비되는 냄새가 나. 그런데 바로 남 사장 패거리가 그 투기 닥던의 작전팀 같단 말이디.

S# 1-2-11. 증권사 객장

장인 :  이제 내일이면 일주일이디..
나   :  예,  벼락치기로 웬만큼은 배웠습니다.
장인 :  증권이라는 거이 맘 맞는 사람 몇이서 손만 맞추면 쉽게 일을 낼만큼 엉성하디?
나   :  예, 저도 그렇게 느꼈습니다. 
청약 증거금 10%만 내고 결제 전에 반대 매매를 하면 차익을 챙길 수 있게 돼 있던데요.
장인 :  기래. 일데시대 미두시장이나 거의 비슷해. 그거에 혹해 섯불리 달려들다 신세조진 만석꾼들이 많아대서.  잘못되면 순식간에 홀랑 날리는 무서운 바닥이지.

S# 1-2-12 살림집 안방

순례 일정이 끝나는 일주일째 날  

나와 마주 앉은 장인,. 잠바 안주머니에서 꺼낸 통장을 말없이 내 앞으로 밀어 놓는다.
통장을 펴보는 나. 클로즈 업 되는 통장. 12만환.

나  :  꽤 오래 모으신 돈이네요.
장인 : 애초는 그 돈만으로 혼자 시작해보려 했디. 허디만 투기란 상식적 판단으로 덤비면 안되게 되어 이서.  남 사장 정보를 알아내려면 내부 사정에 밝은 덩권사 딕원의 협조가 이서야 되는데, 푼돈으로는 협력을 얻어내기가 어렵디. 
 (잠시 뜸 들이다가)
다네가 채워서 한 장을 만들 수 있가서? 

 비장한 표정의 장인.

나  : ------
갈등하는 표정으로 침묵을 지키는 나. 살벌한 표정으로 운전하던 트럭 운전수 시절의 장면.
(음악 : River Dance 리듬의 숨 가쁜 탭 박자)
봉지쌀과 연탄을 들고 비탈길을 걷는 아내의 뒷모습  세차장의 단란하던 새참 시간--

S# 1-3-1.대륙증권 창구

시큰둥한 표정으로 전표를 결재하고 있는 마흔 살의 고 흥수 과장
도장을 찍으려던 손이 멈칫 한다. 100만 환짜리 청약 전표. 클로즈 업 되는 전표의 예금주 이름,  하 정수, 고개를 갸우뚱 하는 고 과장,  표정이 긴장한다. 

고 과장 : (앞 자리의 여직원에게) 김 양,   이 손님 (전표를 들어보인다) 호출 좀.
사원  : (고개를 끄덕이고) 23번 손니-임, 하 정수 손님

창구로 다가오는 나의 볕에 그을은 검은 얼굴.

S# 1-3-2 대륙증권 창구

응접 소파로 나를 안내하는 고 과장. 명함을 건네고 악수하는 모습.

고 과장 : (여직원에게) 김양, 여기 시원한 거 좀,  (나를 향해) 이렇게 저희 점포를 찾아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더구나 요즘 같은 불경기에 거금을 첫 거래로 입금해주셔서---.

관록 붙은 세련된 중년 직장인의 연기. 침침한 사무실 조명과 직원들의 시들한 분위기를 배경으로  돋보인다.

나 : 저는 사무실에서는 별로 지내보지 않아서---,

두 손을 어디 둘지 몰라 양쪽으로 처억 늘어뜨린 나. 판단이 헷갈리는 고 과장의 표정.
음료수를 쟁반에 받쳐 들고 다가오는 여사원. 찬 음료수를 죽 들이키는 나.

나 : 운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내 목소리)
장인 통장과 내 비상금을 털었지만 100만환에는 어림도 없었다.  은행융자란 나 같은 잔챙이 따위는 엄두도 낼 수 없는 먼 세상 얘기다. 거래처에서 빌리고 전세 보증금까지 빼내 겨우 마련한 백만환이다.

고 과장 : (건성으로) 네에-- 그러시군요

시원찮은 반응을 보이는 고 과장

나  : (목에 힘을 주며) 군납도 조금 하구요.
고 과장 : (다시 보는 눈치로) 아, 그러십니까. 대단하십니다. 아직 젊으신 연세에---.

눈에 띄게 정중해지는 고 과장..

고 과장 : 모처럼 우리 회사를 찾아주셨는데 점심이라도 모시겠습니다.
나      : 조옷치요.

큰 목소리에 여직원이 훔칫하다 웃음을 깨물며 고개숙인다.

S# 1-3-3. 시공관 골목의 일식집

물수건으로 손을 닦는 고 과장. 뭔가 망설이는 표정.

나  : 이렇게 과장님께서 손수 자리를 마련해주시니 뭐라고 감사를 드려야 할지---,

아양 떠는 표정의 나   

고 과장  : 천만의 말씀을, 감사는 제가 드려야지요.

맥주 컵을 쳐드는 고 과장.

나   : 자, 반갑습니다.
맥주를 단숨에 반 컵 이상 비운 나.

나  :  전문가를 뵌 김에 요즘 증권가의 움직임이나 소문을 듣고 싶습니다. 

 안도하는 표정의 고 과장

고 과장 :  최근의 증권가 동향을 얘기하려면 2년 전,  그러니까 4.19전 인 1959년도에 발행된 증권 거래소의 출자 증권에서부터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는 큰 사건들과 모두 엮어져 있으니까요.

화면) 증권사 창구,
대증권 신규청약 창구 라는 붓글씨의 안내 종이 앞에 길게 늘어선 수십명의 인파.  웅성대는 사람들
목소리)  대한 증권거래소가 주식회사 형태의 공영제로 가려고 발행한 출자증권이 있었습니다. 그걸 대증권이라고들 불렀는데 이게 투기 대상이 되었지요. 그해 3월에 공개된 대증권은 상장되자마자 단 하루만에 액면가를 웃도는 시세로 일차분 일억좌가 팔렸습니다. 이어서 실물 품귀사태가 벌어졌구요. 
매매를 위탁받은 증권사들은 차익에 욕심을 내서 가진 실물보다 많이 팔아버렸습니다. 소위 공매지요. 물건도 없으면서 파는 게 바로 공매란 건데 사실 사기나 다름없는 짓이지요.

여 종업원이 김이 무럭무럭 오르는 대구 냄비를 들고온다. 식사하는 두 사람.

고 과장 : 이때 팔자 측에 대항군으로 나선 것이 경희 증권이었습니다. 경희를 중심으로 사자 세력이 뭉쳤지 요. 이들이 단결해서 대증권이 나오는 족족 사들이니까 공매로 물량이 늘어났는데도 시세는 떨어 지지 않았습니다. 
당시 팔자 측이 공급해야하는 실물 규모는 시중에 나돈 실물의 3배에 가까워서 순리대로라면 팔자 측이 당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고 과장, 얘기에 도취해 있다.

고 과장 : 사태가 이 지경이 되자 거래소장은 목 내놓을 각오로 재무부에 읍소했습니다. 그랬더니 아 -- 이 재무부 양반들이 금융단 보유량 70%를 몽땅 방출시키는 긴급 조치를 덜컥 내려버렸지요. 일거에 3배 이상 실물이 늘어났으니 시세는 액면가 아래로 폭락해버렸지요.
시세보다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으로 막대한 물량을 떠맡은 경희를 비릇한 사자 측 증권사 상당수가 증권업계에서 사라져야 했습니다.

남은 맥주를 마시는 고 과장.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나.

고 과장 : 정상적인 거래, 정상적인 거래 하지만     (보리차를 마시며) 
   지금 같은 인프레 시대에 10% 도 안되는 배당만 보고 투자하라면 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결국 증권업계는 노름판 비슷한 곳이 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쓰게 웃는 고 과장    

S# 1-3-4 증권 골목

스틸 사진) 아침 시간, 증권 골목으로 들어서는 나. 세화 다방에서 모닝커피를 마시는 나,
객장에서 시세판을 주시하는 나. 고 과장을 만나 담소하는 나

S# 1-3-5 세차장

한산한 11월의 늦은 오후. 자료를 보며 장인과 마주 앉은 나. 

나 : 고 과장 말로는 지난 5월에 대증주 책동전이 있었답니다.  거의 성공할 뻔했는데 5.16 때문에 졸지에 찬물을 뒤집어써서 작전을 주도한 측이 오히려 당했대요.
장인 : 역시 대증주가 호재는 호재로구먼.
나  : 그런데 그때 작전을 주도한 인물이 남 사장이래요.   그때 손해가 커서 집까지 차압당하고 전세방에 나앉아 있다던데요?
장인 : 그럴 리가 있나? 메트로 호텔에 번듯한 사무실 까지 차리고 외제차 모는 사람이 전세방이라니---? 
나  :  저도 혹시 해서 인상까지 물어봤는데 동일 인물이 맞던데요?
장인 : (반색하며 놀라는 표정)  기래에---? 그렇다면 남 사장 사무실은 군인들이 벌리는 책동전 본부야. 틀림 없어!
나  : (고개를 끄덕이며) 글쎄 제가 보기에도----.

S# 1-3-6  메트로 호텔 로비
`일송증권 창립발기인 회의`라는 안내판의 붓글씨
무심히 쳐다보던 나  

`어--?` 하면서 다시 들여다보는 나,  안내판의 회의 장소가 301호로 적혀 있다.
301호는 남 사장의 사무실이다.

S# 1-3-7  호텔 커피숍

손님 1 : 신설한 일송 증권에 젊은 대주주 있잖아?  못 들어본 이름이던데 누구지?
손님 2 : 해외 교포라던가?
손님 3 : 무역으로 돈 번 사람이라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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