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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실조
유형길 지음 / 채륜서 / 2023년 6월
평점 :
<낭만실조>
_유형길 지음
p.5
방황, 계절, 상실 그리고 긴 고독이 가까이 있습니다. 앞으로 허무와 외로움 무의미함을 내가 가는 정처 없는 곳에서 또 만나지 않을 것이라고는 장담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압니다. 여지껏 들이켰던 수많은 고뇌의 한 잔이 다시금 나를 있게 해 주려는, 이곳에 머무르라는 명확한 이유였음을. 삶의 불안한 확신이 더 우리의 아름다움이었음을 시인합니다.
확장과 환기의 경게에서 생각합니다. 어쩌면 내 안에 있는 말들은 완성도 있는 책을 쓰려는 욕망보단 완성도 있는 삶을 살고 싶은, 그대로의 빼곡한 근거는 아니었을까요. 전과 같이 상처와 결핍 속에서 고개를 숙이고 내밀며 나는, 오늘만을 살아갈 뿐입니다.
p. 22
도리어 낭만이란 자유자재의 정적이고 인간에 이는 어김없는 찬미일 테니까.
p. 68-69
살아가는데 지속적인 해방이 있으려면 질서가 필요하다. 인생의 소용돌이, 눈의 유효는 어느 정도의 관여와 두려움 그리고 불안감을 합의한다. 다함없이 가치와 신념을 지켜 나가려면 안정적인 그릇 내에서 뛰쳐나가 독립하는, 허다한 질서 안으로 들어가 안주하는 등의 균형 잡힌 모순이 동시다발적으로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하여 영원은 강화될 수 없기에 시작과 끝의 근원인 아름다움을 모르고 지나친다. 결코, 시간은 아름답지만 아름다움은 시간이 아닌 것을.
p. 105
보고 싶고 뵙고 싶던 그리움을 풍기는 사람을 마주한다면 못마땅함과 투덜거림을 남기기보단 사랑이란 단어를 문장으로 바꿔 능동적인 표현을 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사랑한다면, 사랑할수록, 사랑합니다. 어쩜 사랑할 수 있어서 나는 당신이 감사합니다.
p. 118
나에게 부끄럽지 않은 마지막 최선의 최선을 다해야 한다면 자그마치 그 모습을 나에게 가장 먼저 보여 주고 싶은 사람이기를. 나는 지금 누군가의 정점으로 있는 사람이고. 지금 이 젊음이 정점인 것을 생각하며 오늘의 고통을 오늘의 고통으로 남기며 사랑한 당신과 나에게 축배를.
p. 119
우리는 아름답게 태어나려는 이유보다 귀중하게 태어나려는 이유가 더 많은 존재니까.
p. 128
계절 끝에서야 말합니다 사랑하게 해줘서 고맙습니다 당신이 꼭 나인 것 같아 그랬습니다.
p. 143
아무것도 아니라는 내가 나를 구별할 줄 알게 되면, 그 자체로 순간을 얻고 살아난다는 것. 작고 작은 깜박임의 티끌이 사랑만큼의 우아함이다.
p. 234-235
사랑을 대표해 몫이 있다면 소중한 이에게 전해지기 전, 종이에 수북이 적혀있는 사랑 받을 이와 사랑할 이. 그 누구도 언제인지 모르는 이면이 필요한가 봅니다. 고맙습니다 여전히 언제나.
책을 한 권들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읽는게 요즘 내가 가장 쉽게 느낄 수 있는 행복이다. 거기에 커피도 맛있고, 책까지 재미있다면 더 할 나위 없다. 눈길이 가는 문장에 칠을 덧대고, 그렇게 한 번 더 기억하면서 책에 온전히 집중한다. 그렇게 좋은 글을 발견하면 그 어느 때보다 풍족한 기분이 든다. 그러면서 함께 드는 생각은 이토록 글을 멋있게 쓰는 사람은 대체 어떻게 살아왔는지 궁금하다. 또 그러면서 섬세하게 표현이 가능한 한국어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든다. 알지 못했던 단어를 찾아보기도 한다. 생각보다 한국어에 내가 알지 못하는 예쁜 단어들이 많았다. 그런 어휘를 자유자재로 쓸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한 기쁨이 있을까.
책의 모든 문장을 다 기억하고 싶다는 말은 무리지겠지만, 이토록 정신없이 문장에 색을 덧입혀 본 적은 오랜만이다. 그런 책을 만났다는 것에 감사함마저 든다. 연속되는 일상에서 무념무상의 시간으로 보낼 수도 있겠지만, 좋은 글과 함께 한다는 것은 내가 누릴 수 있는 행복이라 생각된다. 책 한 권을 들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 자체가 어려운 시간이 적지 않아 행복과 기쁨이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는게 아닐까.
제목 자체는 힘겨움 자체이지만 그 속에 담긴 글들은 실조가 아닌 풍요로움이다. 이런 풍요로움을 쉽게 누려도 되나 싶을 정도로 책을 읽어가는 내내 더할나위 없이 좋았다. 어렵고 힘든 책 제목은 어쩌면 이런 제목임에도 불구하고 책장을 펴는 사람들에게 선택적으로 주어진 선물이 아닐까. 낭만이 가득 담긴 책은 한 여름의 무더움에 지친 몸과 마음 모두를 회복시켜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