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짓
안정은 지음 / 동아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서로를 남자 대 여자로 사랑하는 게 나쁜 짓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서로를 향한 마음을 숨길 수밖에 없었던 서연과 한서. 그들은 서로를 깊이 갈망하고 사랑하면서도 마음 한 자락 내보일 수 없었다. 어느 남녀보다 다정하고 친밀했지만 세상에서, 타인의 시선에서 그들은 사이좋은 오누이였기에!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서연과 한서는 한 집에서 남매처럼 지내왔다. 서연이 열 살, 한서가 열일곱일 때부터. 서연의 아버지가 사업이 망하면서 비관자살을 하자, 서연의 어머니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만다. 자신의 딸과 함께 남편의 뒤를 따르기로. 다행히 두 사람 다 살았지만 서연의 어머니는 마음의 병으로 딸의 존재를 잊고, 서연은 어린 나이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아픔을 짊어지고 한서의 집으로 오게 된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친구로 그녀를 딸로 받아들여준 한서네에서도 쫓겨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고사리 같은 손으로 그 큰 집을 쓸고 닦고 하던 서연의 모습이 생각난다. 안쓰럽기 그지없었던……. 무뚝뚝한 한서에게도 그런 서연의 모습은 애처로울 수밖에 없었다. 특히 몽유병처럼 벚꽃나무 아래서 잠든 서연의 모습을 봤을 때 그는 각인시켰는지도 모른다. 서연을 지켜주고자 함과 동시에 사랑의 마음을 말이다. 서연의 엄마를 만나고서는 더욱 강해졌을 것이다. 서연을 누구보다 소중히 지켜주고 싶다는 마음이. 저를 잊어버렸는데도 어미의 품에 안겼다는 것에, 언젠가는 엄마의 마음의 병이 다 나아서 함께 살게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는 서연의 모습도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저를 죽이려고 했던 어미인데도. 그게 가족이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서로에게 어떠한 잘못을 해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는 게 바로 가족이라는 것을. 

  

 한서의 집에서 사랑 받으면서 예쁘게 성장해가는 서연. 그런 서연을 향한 한서의 갈망. 애써 동생이라며 되뇌며 스스로를 억누르던 그와 마찬가지로 서연도 더욱 남자다워지고 멋있어진 한서를 남자로 느낀다. 그러면서도 제 마음을 내비쳤다가 혹시나 동생으로서도 그의 곁에 있지 못할까봐 마음 깊숙이 감춰두고 혼자서만 열어 보일 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서로를 향한 마음은 애틋하기 그지없지만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오누이로 자라온 서연과 한서이기에 그들은 결코 서로에게 남자일 수, 여자일 수 없다. 어느 누가 봐도 잘 어울리는 한 쌍임에도…….
 서로에 대한 마음을 감춘 채 사이좋은 오누이 행세를 해오던 그들의 관계가 새로운 변화가 찾아온다. 열아홉 서연의 수줍으면서도 대담했던 고백으로 인해. 그와 같이 서연 또한 자신을 사랑한다는 고백에 한서는 기뻐하지만 그녀의 고백에 답하지 못한다. 서연의 어머니로 인해서. 그 후로 그들 사이에는 어색한 기운이 감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오누이로 지내오지만……. 그랬던 그들의 관계가 또 한 번의 변화를 맞는다. 한서의 절친한 친구인 현제로 인해서.   

 

  “녀석에게 좋은 오빠는 되지 못했지만……, 좋은 남자가 되겠습니다. 세상과 척을 지고, 하늘과 척을 지고, 운명과 척을 져서라도 서연이게만은 좋은 남자가 되겠습니다. 제 목숨과 바꿔서라도 이 약속만은 꼭 지킬 것입니다. 그러니…… 이 녀석을, 서연이를 제가 사랑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나쁜 짓> 251쪽 중


 돌아가신 서연의 어머니 앞에서 서연을 향한 진심을 내보이는 한서. 그의 저 절실한 고백처럼 그들의 절실하고 애틋했던 사랑이 드디어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서로에 대한 마음을 재확인한 두 사람에게 남은 숙제는, 한서 부모님으로부터의 허락. 서연을 친딸처럼 여겼던 그들에게 서연과 한서의 사랑은 충격일 것이다. 그 어느 오누이보다 사이좋았던 아들과 딸이 서로를 사랑한다는 고백을 할 때 어느 부모가 충격 받지 않을까. 그렇기에 한서 어머니가 바로 허락을 했을 때 놀랐었다. 내심 눈치를 채고 마음을 준비를 해왔다고는 하지만, 저렇게 단번에 허락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졌었다. 역시나 허락은 했지만 혼란스러워하던 한서 어머니의 모습이 현실성 있게 느껴지고 공감이 갔다. 좀 더 고뇌하는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할까. 혈연적으로도 법적으로도 가족이 아니었지만 가족처럼 살아왔던 그들, 그들이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고 진정한 가족이 되는 데 좀 더 시간이 걸리는 것은 당연했다. 

  

 사실 <나쁜 짓>에서 서연과 한서가 보여주는 사랑은 조금 위험스럽지 않은가 하고 반문했었다. 오누이 같았던 것이 아니라, 실제로 한 집에서 오빠 동생 하며 지내왔던 그들이 서로를 이성으로 바라본다는 것이 공감이 갈 수 있을까 의문도 가졌었다. 그래서 처음 책을 펼쳤을 때는 이들 사이가 어떻게 될까 하는 궁금증보다는 서연과 한서의 어려운 관계를 작가가 어떻게 풀어나갈지가 더 궁금했었다. 아울러 공감이 가게 그려낼 수 있을지도.
 작가 또한 이 점에 있어서 많은 고민을 하지 않았을까. 그런 점에서 서연의 다이어리를 통해 그녀의 마음을 엿보게 한 점은 탁월한 선택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서연의 다이어리를 통해서 어린 서연이 점점 성장해가면서 한서를 마음에 담고서 고뇌하는 심리가 잘 전달이 되었다고 할까. 또한 글의 주 전개를 한서의 시점에서 그려나감으로써 그의 심리가 잘 드러났고, 서연에 대한 그의 진심도 더 잘 전달된 것 같다. 보통은 여주를 전면에 내세우는 데 반해 <나쁜 짓>은 한서를 전면에 내세우며 점점 성숙해지는 서연에 대한 그의 커져가는 마음을 잘 표현한 것 같다. 이러한 설정이 있었기에 한서와 서연의 관계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고 응원할 수 있지 않았을까.  

 

 <나쁜 짓>은 다소 무겁고 어려웠던 글이었던 것 같다. 서연이 가진 아픔과 더불어 그녀와 한서의 사랑이 결코 쉽지 않은, 어려운 것이었기에. 작가가 잘 그려냈기에 다행이지, 앞으로도 이러한 소재는 내게 어렵기만 할 것 같다. 실제로 만약 내가 아는 사람이 서연과 한서였다면 그들이 좀 더 쉬운 사랑을 할 수 있게끔 충고했을 것 같다. 법적으로 혈연적으로 아무 관계도 아니기에 객관적으로 보면 충분히 사랑을 할 수 있는 사이이지만 그러한 구속력보다 더 깊은 마음으로 남매로 한 가족으로 지내왔었기에 그냥 남매처럼 지내는 게 더 좋지 않을까 하고 조언했을 듯싶다. 소설처럼 해피엔딩이 되기에는 쉽지 않으니까. 그럼에도 에필로그에서와 외전에서 보여주는 한서와 서연의 행복한 모습이 마냥 보기 좋은 이 아이러니한 마음이란! <나쁜 짓>에서 인상적이었던 인물 중 하나가 바로 현제였다. 한서의 절친이자 서연을 이성으로 좋아했던 그. 한서와 서연의 위태로운 틈을 비집고 들어갈 수 있었음에도 쿨하게 응원하는 멋진 모습을 보여줬던 현제의 모습을 보면서, 현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야기도 나왔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바람을 가져본다. 신혼여행을 즐기는 한서와 서연의 모습을 보면서 ‘서로를 사랑하는 그 나쁜 짓이…… 가장 아름다운 짓이었다’는 현제의 말이 가슴 깊이 와 닿아서는 계속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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