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명고 - 저주를 부르는 북
이문영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09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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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영 작가의 전작인 <숙세가>를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평이 좋고 작가가 사학과를 전공한 만큼 어느 정도 기대를 가지고 이 책을 읽었다. 우연찮게도 출간일과 동명의 드라마 방영이 엇비슷해 처음에는 드라마를 소설화한 것인가 하는 생각도 했지만, 그건 아니었다. 이 책에 관심이 있는 몇 몇 분 중 드라마 <자명고>의 원작 소설인 줄 알고 읽으실 분들도 계실 것 같은데 <자명고>는 드라마 <자명고>와는 소재만 동일할 뿐 전혀 다른 스토리의 소설이라는 것을 명심하길.    

뭐, 솔직히 드라마보다  구성력이나 재미도를 봤을 때 낫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문영 작가의 <자명고>는 자명고 설화와 역사, 그리고 판타지, 로맨스를 엮어 꽤 흥미롭게 이야기가 전개된다. 고구려의 왕자 호동과 낙랑의 공주 옥연, 표면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던 설화에 살을 덧붙이고 판타지를 가미해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었다. 끝나지 않은 자명고의 설화를 엿보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가장 흥미진진했던 것은 역시나 자명고가 찢어지고 난 후의 이야기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설화에 숨겨진 비밀과 또 다른 이야기의 서막을 열었다. 작가의 상상력이 날개를 다는 시간.   

로맨스가 주가 되는 만큼 역사적인 이야기보다는 로맨스에 치중했다. 물론 그렇다고 역사적인 것에 소홀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작가가 사학과를 전공한 만큼 그런 부분 또한 신경 쓴 점이 보인다. 글을 읽어가는 필요한 배경지식을 이해하고 몰입하는 데 도움을 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대만큼의 만족도를 주지는 못한 책이었다.  
이 책을 보면서 역사적 고증에 충실하면서 로맨스를 자제한 <월성연화>와 가상국을 배경으로 로맨스를 부각한 <기란>이 떠올랐다. 스토리가 비슷해서가 아니라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간 작가들의 구성력과 필력을 비교해보게 되었다고나 할까. <월성연화>는 마립간 눌지의 일대기와 로맨스를 다룬다. 역사적인 이야기에 비중을 두고 세심하게 표현해간 작품이다. 그 사이에서 펼쳐진 눌지의 로맨스는 상대적으로 부족하게 보이기도 했지만 애틋함과 섬세함을 느낄 수 있었다. 혹자들은 로맨스가 부족해서 아쉽다고 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웠다. <기란>은 가상국을 배경으로 하는 만큼 역사보다는 로맨스에 중점을 두었다. 시대적인 배경은 중국 황실을 차용한 만큼 소재나 묘사에서 그런 역사적인 느낌이 풍기기도 하고 황실의 권력을 둘러싼 암투가 벌어지기도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로맨스를 엮어가는 하나하나의 고리일 뿐이다. 가상을 다룬 역사소설이기는 하지만 로맨스를 최대한 즐길 수 있는 소설 중 하나이다.    

문영 작가의 <자명고>는 역사를 바탕으로 한 자명고 설화를 배경으로 하지만 로맨스에 더 많은 할애를 한 작품이었다. 판타지를 가미시킴으로써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해낸 소설이었다. 나름대로 절충한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여러 가지가 조합되어 있는 것에 반해 각 요소들의 매력이 살아나지 못했다. 결론적으로는 어중간했다. 역사와 설화의 이야기에 매료되지도 호동과 옥연의 로맨스를 즐기기에도 뭔가 부족하고 아쉬움이 남았다. 재미도나 만족도면으로 따지자면 위 두 작품보다는 아래였다. 소재가 참신하고 작가의 상상력이 돋보이기는 했지만 등장인물들의 성격이나 스토리를 이끌어 가는 것에 있어서도 약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로맨스에 더 힘을 준 것이 오히려 인위적으로 보이며 자연스러운 몰입을 방해하기도 했다.    

아쉽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재밌게 읽었다. 연극이나 소설, 드라마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재조명되는 자명고 설화이지만 작가만의 색깔로 구상한 자명고의 재탄생과 작가가 의도한 결말로 닿기 위해 하나하나 놓았던 설정과 복선들이 신선했고 작가의 필력에 무게감을 실어줬다고 생각한다. 작가 나름대로의 고뇌와 노력이 엿보였다. 비극적으로 마감되었던 설화와는 다른 문영 작가의 <자명고>는 자명고의 슬픈 이야기에 안타까워했던 사람들에게 위안이 될 소설이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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