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열정 1~3 세트 - 전3권
이지환 지음 / 우신(우신Books) / 2018년 5월
평점 :
품절


※ 최대한 배제하려고 했지만 스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으니 이 점 감안하셔서 읽어 주세요.


★내 마음대로 키워드: 현대물, 재벌물, 연예인물, 스폰서물, 고수위, 몸정에서맘정으로, 상처男, 상처女, 후회男, 순정女, 절륜男, 강단女, 완벽男, 절세미女
  

★소개글 발췌
  

검붉은 쾌락의 꽃이 점점이 피어나 둘이 전쟁처럼 엉킨 침대 위로 흩날렸다.
옆자리는 구겨진 채였다. 그러나 텅 비어 있었다.
밤새 내내 그녀를 타고 올라 지독하게 약탈하고 지독하게 쾌락을 누리게 만들어 주었던 남자는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투자하세요, 내게. 당신이 바라는 이상으로 근사한 여자가 되어 드릴게요.”
“조건은 단 하나. 침묵. 그 대신 널 하늘 위로 올려 주지.”
  
노름에 미쳐 딸을 팔아먹은 아비라는 지옥을 정리하려고, 그보다 더한 지옥의 문을 열었다.
수완은 그 지옥의 주인에게 스스로를 노예로 팔았다.
  
후회는 없다. 이제 직진이다.
이글거리는 붉은 오기를 꾹꾹 눌러 담으며 수완은 허리를 곧추세웠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쓸쓸하고 서러운 지난날을 등졌다.
  
이제 나는 김수완이 아니다. ‘NO’수완이다.
  

★본격 리뷰


그 남자, 권원제(30~33세). 금화그룹의 재벌 3세이자 후계자. 금화그룹 권무혁 부회장과 한국 최고의 배우 설영라의 장남. 뉴욕대와 와튼 스쿨에서 수학한 능력남. 잘난 외모와 신체, 두뇌에 배경까지 날개로 난 완벽남. 그에게 단 한 가지의 결점을 꼽자면 이혼한 부모이다. 그렇기에 그는 알게 모르게 흠결 없는 완벽한 가정을 꿈꾼다. 받은 게 있다면 주도면밀하게 배로 갚아주는 잔혹한 면모도 있다.


“갬블을 하면서, 전 저의 밑바닥, 끝의 끝까지 봅니다. 내가 터무니없는 이 충동을 어디까지 통제하고 절제할 수 있는지. 내가 어디까지 밀고 갈 수 있는지, 내 한계를 시험해요. 단순한 갬블이 아니에요, 어머니. 나 자신에 대한 혹독한 싸움이죠.”


그의 유일한 일탈은 갬블. 그의 앞에 수완이 나타남으로써 그의 인생 최고 최대의 위험한 배팅이 시작된다.


그 여자, 김수완(21~24세). 김수완이었던 인생을 벗어던지고 노수완으로 거듭난 톱스타. 다섯 살에 사진 콘테스트 대상으로 연예계에 입문하여 삼 년 연속 아역상을 휩쓴 후, 영화 <시간>으로 그해 대종상 신인상, 최연소 조연상까지 타며 인기가도를 달라던 아역이었으나 열 살 때 돌연 활동을 중단했다. 그리고 열다섯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노름쟁이 아비로 인해 19금 그라비아 화보를 찍은 일로 깊은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연기를 하고 싶으나 카메라 앞에 서는 것도,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도 두려운 그녀가 다시 배우가 되길 결심하게 된 건, 원제를 만나면서다.
딸을 팔려는 아비를 경멸하며 그를 자신의 삶에서 내쫓기 위해 채권자 원제에게 거래를 제안하는 수완. 지금의 자신은 그의 성에 차지 않을 거라고, 가져봤자 쫀심 상할 거라며, “당신이 바라는 이상으로 근사한 여자가 되어 드릴게요.”라고 당차게 자신에게 투자할 것을 말하던 수완. 갖은 역경을 겪어 단단해졌다기보다 그녀 또한 원제처럼 타고난 승부사가 아닌가.


아, 우선 수완의 입장에서 한탄하고 갈게요. 아름다운 외모와 몽환적인 분위기에, 천부적인 연기력까지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불우한 환경과 파렴치한 아비라는 작자로 인해 겪게 되는 수완의 삶이 너무 박복해요. 제 핏줄인 딸을 향해 모질고도 음란한 말을 퍼붓는 아비가 얼마나 인간말종이던지. 그런 아비에게서 벗어나고 싶어, 원제에게 딜을 하며 자신을 내던지기까지 하는 수완의 심정이 이해가 되더라고요. 참혹했던 시간을 견뎌내고 드디어 벗어났다 싶었는데, 여러 가지 알바를 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입장에서 얼마나 숨이 막혔을까요. 다시 나타난 아비가 거대한 빚을 안기고 딸을 팔려고 하니, 아버지 이상의 지옥이란 없다며 강단 있게 아버지를 자신의 인생에서 치워주면 그에 대한 보상까지 하겠다며 빚에 빚을 더 얹기까지 하죠. 그렇게 시작된 수완과 원제의 채무관계. 그들 사이에는 10억이라는 어마어마한 빚이 생기고 말았죠.


원제에겐 십억이 그리 큰돈이 아니었을 거예요. 물론 수완의 아비가 훔쳐서 팔아버린 찻값은 받아야 했었겠지만, 굳이 수완의 인생에서 그녀의 아버지를 치워주는 대가로 채무관계를 이어갈 필요는 없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나방처럼 자신에게 모든 것을 내건 수완에게 원제는 흥미를 느껴요. 수완이 예뻐서요? 아니요. 첫만남과 두 번째 만남에서는 수완이 알바를 하던 중인지라 분장을 하고 있어 볼품없었다고 볼 수 있죠. 원제는 그녀의 강렬한 눈빛과 패기에 흥미를 느껴요. 그런 수완의 모습이 그의 도박사 기질에 불을 붙였고, 결국 말도 안 되는 수완의 딜을 받아들이게 된 거죠.


‘조건은 단 하나. 침묵’
원제에게 있어 수완과의 관계는 감추어야 할 수치 혹은 은밀한 일탈이었어요. 그렇기에 감추고자 했고, 수완과의 관계를 단순히 기브 앤 테이크로만 여겼죠. 물론 정리도 쉬울 줄 알았고요.
 

“전 절대로 실패하지 않을 결혼을 하고 싶거든요. 그러니 제대로 골라 주십시오. 완벽하고 확실한 사람을.”


절대로 실패하지 않을 인생을 위해 그간 인내해왔던 원제의 미래에 수완은 존재하지 않았기에, 약혼이 결정되었을 때 원제는 그녀를 향해 뛰는 심장을 무시한 채 가차없이 수완에게 이별을 고하죠. 그리고 그의 후회가 시작돼요.


좀 그랬던 게, 아니 관계 정리를 할 거면서 마지막까지 관계를 가지는 건 뭔가 싶었어요. 그랬기에 수완이 더 비참하지 않았을까 싶었고요. 그간의 정을 봐서라도 좀 더 인간적으로 정리할 수는 없었던 건지……. 수완에게 가는 제 마음을 어쩔 수 없어 그녀와는 안 된다는 것을 다짐하기 위해 자신을 몰아붙이며 더 가차없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원제가 야속하더라고요. 마음은 나락으로 떨어졌는데도 있는 힘껏 끌어 모아서는 원제에게 당당하게 일격을 날리던 수완 때문에 속이 시원하긴 했지만……. 그 이후 수완이 느끼는 상실감을 같이 느끼자니 원제에 대한 원망만 더 커졌어요.


채무자와 채권자, 배우지망생과 스폰서로 시작된 관계였지만, 수완은 원제를 마음에 담게 돼요. 그녀에게 있어 원제와의 관계는 단순히 유희나 거래가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난, 사랑하는 이를 갈망하는 욕망이었죠.
채무관계를 떠나 최고의 자리에 올라 원제의 곁에 당당하게 설 날만을 기다렸던 수완이었기에, 빚을 갚기 위한 목적도 있었고 연기가 좋아 배우의 일을 다시 시작하긴 했지만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했던 원동력에는 원제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겠다는 그녀의 소망이 내재되어 있었던 만큼 결국은 원제에게 내쳐진 그녀가 안타까웠어요. 그렇기에 보란 듯이 더 잘나가고, 그녀를 버린 바보 같은 원제가 뼈저리게 후회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랐죠.


계약에 의해 맺어진 관계이긴 하지만, 수완을 여느 여자와 달리 대하는 원제에게서 그녀에게 흔들리는 모습을 느낄 수 있어요. 그렇기에 완벽한 인생, 완벽한 결혼, 완벽한 가정을 강박적으로 지향하며 그의 진심을 외면한 원제의 어리석음에 대한 대가를 두고두고 받죠. 결국 후회를 거듭한 끝에 갑이었던 그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직 사랑만을 위하게 되는 을이 되니까요. 완벽한 결혼이란 없다는 것을, 그저 진정한 사랑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깨달음도 얻고요.


잠깐 <지옥열정>이라는 제목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요. ‘지옥열정’, 풀어쓰면 ‘지옥에서 시작된 열정’ 정도로 볼 수 있겠죠. 수완은 자신을 팔아먹은 아비라는 지옥을 정리하려고 그보다 더한 지옥의 문을 열었다고 하지만, 글쎄요 원제와 함께 하는 게 마냥 행복하지 않았고 불안하기도 했고, 외사랑이 가슴 아프기도 했지만 결코 지옥이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지옥인 줄 알고 뛰어든 곳에서 결국 행복을 찾았으니……. 오히려 원제를 만나 그녀의 삶이 180도 바뀌고 인생역전을 했다는 점에서 ‘지옥열정’이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고 할까요. 서로를 향한 강한 끌림과 욕망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열정’이라는 키워드는 이해가 갔지만, <지옥열정>보다 더 어울리는 제목을 내걸었다면 어땠을까 싶었어요.


출간하면 아묻따 구입할 정도로 이지환 작가님의 글을 좋아해요. 로설에 막 입문했을 때 작가님의 글을 접하면서 신세계처럼 빠져들고 재탕을 얼마나 했는지 몰라요. 출간된지 오래된 작품들도 이따금씩 다시 찾아 읽고는 할 정도로 작가님의 글에는 특유의 재미와 매력이 있어요. 그렇기에 작가님 신간 소식도 무척이나 기다렸죠.
<지옥열정>이 리디북스에서 연재되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오랜 호흡을 따라가는 게 힘들 것 같아 읽고 싶은 걸 참고 단행본이 나오기만을 기다렸고 종이책과 동시에 이북이 출간되자마자 이북부터 구입해 읽었어요. 긴 호흡의 글을 읽고 난 후 느낀 건 작가님의 전작인 <그대가 손을 내밀 때>와 <폭염>이 연상된다는 거였어요.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꿋꿋하고 당찬 수완의 면모가 <그대가 손을 내밀 때>의 무이를 떠올리게 했고, 나이에 비해 진중한 원제의 모습은 <폭염>의 태흔을 떠올리게 했어요. 물론 원제가 태흔을 동경하고 닮고 싶어 한다는 점에서 태흔과 비슷한 면모를 보이는 게 이해가 되긴 하지만, 연륜의 차이 때문인가 <지옥열정>에서 조력자로 등장하는 태흔에게 밀리는 듯했는데 그 점이 아쉽네요. <그대가 손을 내밀 때>와 <폭염>을 좋아했기에 비슷한 느낌을 받은 건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다만 오랜 시간 작가님의 책을 즐겨 읽은 독자로서 솔직한 평을 하자면, 예전 작품을 답습한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작가님의 출간작 전부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읽었는데, 지금껏 진부하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거든요.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렸던 <폭염>도 재밌게 읽었던 입장에서, 이번 <지옥열정>은 전작보다는 참신함도 임팩트도 부족한, 아쉬움이 남는 글이었어요. 비슷한 배경과 캐릭터, 플롯일지라도 차별화할 수 있는 점이 있다면 그게 하나의 매력 포인트가 될 수 있는 법인데. 전형적인 느낌이라 기대를 많이 한 입장에서 다소 아쉬웠어요.
그리고 초반 고수위의 씬이 난무하다 보니 진입 문턱이 높게 느껴졌어요. 소재나 글이 지향하는 방향성 때문에 고수위일 수밖에 없었다고는 하나 인물에 감정이입도 하기 전에 초반부터 몰아붙이니 좀 지치는 면이 없지 않아 있었어요. 그 고비를 넘기면 술술 읽히긴 하지만요.


재미가 없진 않아요. 작가님의 필력이 어디 가는 게 아니기에 가독성도 좋고, 기승전결 과정이 흥미롭고 다이내믹하긴 해요. 특히 끝으로 치달을수록 고조되는 긴장감과 해소 후의 카타르시스는 긴 호흡의 글임에도 시원하게 다가오기도 했죠. 너무 극적인 것 같기도 했지만 요즘 화제인 사회적 문제까지 메시지로 담았다는 점에서도 나름 의미 있게도 다가왔고요. 하지만 중반부의 과정이 꼭 필요했나 싶더라고요. 한 권의 분량도 많은데 굳이 3권까지 진행했어야 할 이야기였나 싶기도 했고. 절제와 집중을 통해 스토리를 정리했더라면 더 몰입되고, 재밌게 읽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지옥열정>이 기대만큼의 만족을 채워주지 못했지만 이지환 작가님은 여전히 애정하고 기대되는 작가예요. 작가님의 글을 좋아하는 독자로서 다시 한 번 작가님표 시대물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전작을 넘어서는, 작가님의 정수를 제대로 담은 글말이에요. 그런 작품을 조속히 볼 수 있기를 희망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