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숲을 지날 때 온그림책 19
송미경 지음, 장선환 그림 / 봄볕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안개 숲을 지날 때, 송미경, 온그림책

디스토피아는 이미 여러 매체에서 활용되었고,
하나의 소 장르로 굳혀져 널리 쓰이고 있다.
그런 디스토피아 위에 한 아이를 올려놓은 그림책에 등장했다.

<안개 숲을 지날 때>


인터넷 서점에서 표지만 봤을 때는 짤막한 내용의 그림 동화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글밥이 많은, ‘아이도 읽을 수 있는, 어른을 위한 그림 동화’였다.
(디스토피아라고는 해도 여타의 작품이나 미디어처럼 자극적으로 활용하지 않기에,
어린 아이도 좋아할 작품이기도 하고,
어른과 함께 읽으며 감정을 교류할 수 있는 특별한 작품이라 생각한다.)


책장을 펼치기 전, 표지의 그림이 시선을 끈다.
동화라고 하기에는 다소 음울한 분위기이고,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등장인물이 너무 어린 데다가,
의인화한 듯한 사슴마저 보인다.
(목도리에 두툼한 몸이 가려진 캥거루인 줄 알았다.)

얼마 전에 읽은 <당신이 잠든 사이 뇌과학>에서,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까지 의인화한 동물 꿈을 꾼다는 대목이 있었다.
사회성이 길러지고 어른이 되어가며 의인화한 동물을 받아들이기 어렵게 되는 거다.
그런데 작가는 <안개 숲을 지날 때>에서 의인화한 세상을 펼쳐 놓았다.
그 의인화가 이 이야기를 ‘디스토피아’로 이끄는 핵심 요소가 된다.



📌 “인생은 그런 거지, 설상가상이라고.”

속담을 말하는 사슴의 등장이 다소 낯설게 느껴지지만,
몇 개의 문장을 넘어가면 불쾌한 골짜기를 가볍게 지나간다.
현실과 다름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장르의 벽이 허물어진다.
그때야 비로소 이야기가 시작된다.
‘절망할 것인가? 살아갈 것인가? 너는 누구인가?
어떤 상황인가? 왜 이래야 하는가? 그래서 너는 누구인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면,
이야기가 습한 안개처럼 눅진하게 젖어든다.

‘안개 숲을 지날 때’는 주인공이 처한 상황이지만,
그건 이 책을 읽는 독자의 처지이기도 하다.
그리고 독자를 그런 처지로 이끄는 데에는 ‘그림’이 한몫한다.
그림도 글 못잖은 깊은 이야기가 될 수 있음을,
책을 읽는 내내 체감했다.




📌 “다른 방법은 없어. 비가 오면 우산을 쓰듯이, 그냥 그런 거라고.”

치열한 이야기는 아니다.
아니, 치열한 이야기다.
웹소설을 쓰는 내가 생각한 치열함은 현실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타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안개 숲을 지날 때>의 치열함은 현실 그 자체였다.
우리의 삶에 곰팡이처럼 들러붙은 현실이 어쩔 수 없이 우리를 치열하게 만든다.



📌 나는 이 모든 게 아주 당연하게 느껴졌다.

<안개 숲을 지날 때>는 인류의 일부가 동물로 변해버린 세상을 다뤘다.
그 세상은 독특함으로 다가오지만, 평이함으로 마무리된다.
그 평이함 속에서 공감을 끌어낸다.
그게 참 묘한 일이다.
‘흥미로운 세상이네?’라고 생각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가,
‘그래, 삶이 이렇지. 그래도 사슴이, 돼지가, 여우가 있구나. 또 오늘을 살아봐야지.’라고 다짐하게 된다.

오늘을 또 살아내봐야겠다.

"안개 숲에 들어서면 기억이 밀려오지." - P3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