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가장 덜 외로울 때는 고독할 때래. 혼자만의 시간을 두려워하지 마. 외로움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오히려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야." - P134

"날 위해 그림을 그려줘."
석기가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널 위해 그려달라니? 내 그림은 이미 다 널 위한 것이야."
"아니. 진짜 네 그림 말이다. 나의 낙관이 찍힌 거짓 그림말고, 너의 낙관이 찍힌 진짜 네 그림을 그려줘." - P202

그동안 석기는 궁금했다. 많고 많은 사람 중에 깨어나 처음 만난 사람이 왜 단비였을까.헤어짐을 앞둔 지금, 석기는 알 것 같았다. 어쩌면 서로딱 맞는 홈을 가졌기 때문에 단비와 만난 게 아니었을까. - P246

단비는 다른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별은 끝이 아니었다.
소멸이 아니었다. 삶의 일부로 채워지는 일이었다. 이별은기억이라는 다른 이름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삶과 죽음이 서로 등을 맞대고 있는 것처럼 이별과 기억도 마찬가지였다. 단비가 엄마를 기억하는 한, 석기를 기억하는 한, 엄마도그리고 석기도 단비를 기억할 것이다.
사랑했던 사람과 함께한 행복한 기억, 그것이 힘든 이별이 기다린다 해도 서로 사랑해야 할 이유였다. - P248

"오래 기다렸겠구나. 현아."
석기가 그를 향해 말했다.
"그랬지. 오랫동안 웃전에 징글맞도록 떼를 썼다. 너의 완전한 죽음을 잠시만 보류해 달라고 말이야. 네가 이 세상에서 잠시라도 좋은 시간 보내게 해달라고, 살아있을 때 못누린 행복을 당연하다는 듯이 누릴 시간을 달라고, 먹고 싶은것 실컷 먹고 하고 싶은 것 실컷 할 시간을 달라고, 내가 너에게 미안했다고 말할 기회를 달라고, 먼 길 너와 함께 가면서 못다 한 이야기 나누게 해달라고......" - 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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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은 규칙이 전부야. 설사 큰 이익을 가져다준다고 해도 그게 부정한 방법으로 얻어지는 거라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지.
큰 손실을 보더라도 그게 올바른 절차에 따라 이루어진 거라면 그어떤 책임도 물을 수 없어. 그게 은행의 논리지. 세상 사람들은 이러쿵저러쿵 흉을 보는 일이 많지만, 은행의 논리에도 정의라는 게있어. 결과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이점이 있지. 그걸 잊지 말도록해. 결국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단 하나."
하마나카는 진지한 눈빛으로 이자키를 바라보며 말했다.
"자네가 결과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는 거지. 올바른 방법으로도출한 판단이라면 이유 없이 굽히지 마." - P570

"그동안 호프자동차는 날 심하게 업신여겼어요. 나뿐만이 아니죠. 우리 직원들은 물론 가족도, 피해자 유기 씨도 업신여겼죠. 호프자동차 때문에 인생이 어긋나 고통을 받았죠. 그런데 저놈들을보세요. 뻔뻔하게 자기들 잘못을 인정하지 않잖아요. 결함이 있는자동차를 만들어내면서 사고가 일어나면 모두 정비 불량 탓이라며 모르는 척하고 있죠." - P608

"그 사고 이후 우리 회사는 고전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거래처가 떠나갔고 은행에서는 융자를 빼겠다고 합니다. 퇴직자도 나왔고요. 가족도 주위로부터 여러 가지 비난을 견뎌야만 했죠. 그게어떤 상황인지 다카하타 씨는 이해가 되나 싶어서" - P615

"만약 호프자동차가 재판에서 다투면서 결과적으로 은폐 공작이나 리콜 은폐가 밝혀졌을 때, 그런 기업 태도는 사회 윤리에 비추어 절대 용인될 수 없을 겁니다. 이런 사실이 공개될 시 귀사의사업 실적에 미칠 타격도 상당할 거로 생각합니다. 오히려 지금 결함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지금까지 해온 은폐 공작, 리콜 은폐를 자세히 밝혀 세상에 사죄하고 동시에 아카마쓰운송에 보상하는 것이 가장 나은 선택이 아닐까요? 만약 그럴 생각이 있다면 받아들일 준비는 되어 있다는 겁니다." - P627

‘별 볼 일 없는 동네 운송회사 주제에..‘
그건 전에 아카마쓰운송이 클레임을 걸었을 때 사와다가 느꼈던 생각이다.
훅 불면 날아갈 듯 영세한 중소기업이 매출액 2조 엔을 자랑하는 호프자동차에 창을 들이대다니. 건방지고, 아니꼽고, 주제넘은...... 이런 표현이 머릿속에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하지만 이제 그런 표현 중 어느 것도 아카마쓰에게 어울리지 않
는 것 같았다. 아카마쓰를 칭찬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위협이 느껴졌다. 1억 엔이나 되는 보상금조차 걷어차는 아카마쓰에게는
‘완고‘라는 표현이 어울릴지도 모른다. 그 완고함 때문에 두려운것이다. - P647

순간 숨을 죽인 미야시로의 표정에 차츰 분노가 떠올랐다.
"반환을 요구하는 부품을 폐기했다는 건가요, 호프자동차가?"
"증거가 될 테니까. 인멸한 걸 테죠."
혀를 세게 쯧쯧 차면서 미야시로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표정으로 얼굴이 굳어졌다. 아카마쓰는 자리에서 일어나 미야시로가앉아 있는 소파 맞은편 의자에 몸을 던지듯 주저앉았다.
여태까지 쌓아 올린 것이 무너진 듯한 충격을 받았다.
대체 내가 지금까지 해온 것은 무엇이었던가?
거듭된 호프자동차와의 교섭. 무시당하고, 휘둘리고, 업신여김을 당하면서도 끈기 있게 물고 늘어져 직원과 회사, 그리고 가족의명예를 위해 싸워왔다. 언제 체포될지 모른다는 공포와 거래처의이탈, 도산 위기. 내 손으로 사고를 한 건씩 꼼꼼하게 체크하고 전국 운송회사를 찾아다닌 나날들......그런데 결말이 이게 뭔가.
"호프자동차는 대체 제정신인가? 해도 너무 하는군." - P698

사와다는 결국 호프자동차를 파괴했다. 회사에 얹혀산다고 생각해 회사를 부모처럼 여겼는데 그 신념을 굽혔다. 한 차례 무너뜨릴 필요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후회는 하지 않는다.
그냥 아주 조금 실망했을 뿐이다.
이 호프자동차라는 조직에, 그리고 거기에 모든 걸 걸었던 자기인생이라는 것에 대해.
그게 모두 지난 일이 되어, 이제 그 혼돈 속에서 뭔가 미래가 생겨난다면 좋겠다. - P767

힘들지만, 일이 마음먹은 대로 잘 풀리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해내고 있어요, 아버지, 어머니, 어떻든 이렇게 살고 있어요.
아카마쓰는 가슴속에서 울컥 올라오는 것을 참으며 똑바로 앞을 보았다.
고마워요, 직원 여러분.
고마워, 여보. 그리고 아이들도.
모두 다 내 소중한 보물이야. - P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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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뭐든지 해볼 생각이에요."
상미는 김연영이 하는 말을 잠자코 듣기만 했다.
"민서랑 수경이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민서가 수경이를 죽일 만한 동기가 뭐였는지."
상미는 코웃음 쳤다.
"뭘 할 건데?"
네까짓 게.
"무엇이든요."
아무리 파봐도 우리 민서가 수경이를 죽였다는 증거는 안 나올거야. 우리 민서는 그럴 애가 아니거든. 그리고 그럴 만한 이유도 없거든. 그럴 만한 애도 아니고 그럴 만한 이유가 없는데 그런 일이일어날 순 없어. 네가 잘못 짚은 거라고, 이 멍청한 년아.
"무슨 짓이든?"
김연영의 입술 끝이 올라갔다. 그 입술이 열리더니 마치 다짐하듯대답했다.
"무슨 짓이든." - P224

그래서 엄마가 연락이 없는 건 나에게 차라리 다행인 일이었다.
그런데 연영 언니가 찾아왔다.
이번에는 언니를 피해 숨을 곳이 없었다.
붙잡는 언니, 뿌리치려는 나...
‘민서야, 제발 말해줘. 수경이한테 무슨 일이 있었어? 수경이 컴퓨터 보니까 친구와의 이별 어쩌고 상담한 글이 있던데, 너랑 왜 사이가 멀어졌던 거야? 말해줄 수 없을까? 너랑 멀어졌다고 해도 수경이가 자살한 건 말이 안 돼. 너도 알잖아! 유서? 절대 아니야. 그거수경이 글씨체 아닌 거 너도 알잖아!‘
‘몰라요. 난 그거 못 봤어요.‘
‘한번 봐봐. 경찰들이 내 말은 이제 들으려고도 안 해. 네가 가서말해주면......‘
나는 언니가 보는 앞에서 뛰어내렸다.
이렇게 하면 아무것도 설명할 필요도, 엄마가 내가 원조교제 같은걸 했다는 사실에 상처 입을 필요도, 수경이만 죽었다는 죄책감으로 평생을 살아갈 이유도 사라질 것 같아서.
떨어지면서 내가 후회한 건 딱 두 가지였다.
엄마에게 사랑한다고 더 많이 말해주지 못한 것과, 연영 언니에게수경이가 평소에 언니를 얼마나 많이 존경하고 사랑했는지 알려주지 못했다는 것.
그 두 가지.
사실 죽었어야 할 사람은 나였는데 수경이만 죽었으니까. 나도그 길을 따라가는 게 맞는 것 같았다.
내 친구 수경이가 외롭지 않게. - P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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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뜰에 봄-

정원은 평생 궁금했었다. 안리를 편애하는 신이 나에게만내어 준 한 조각이 있을까? 그런 게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정원이 비로소 찾은 답은 ‘시간‘이었다. 안리에게는 단 1초도 없겠지만 정원은 아니었다. 살아서 움직이며 말하고 웃을수 있는 무수한 날들이 정원을 기다려 주고 있었다.

마지막 인사를 건네기 위해 안리의 방으로 향했다. 문을열자마자 커다란 액자가 보였다. 거대한 사각 프레임 속에활짝 웃는 그 애의 사진이 박제되어 있었다. 가여운 안리, 스무살 겨울에 평생 갇힌 안리. 이제 언제나 동생일 안리에게정원은 참아왔던 귓속말을 했다.
"그랜드 스타렉스, 72머 3284." - P237

-없는 사람-

소설가는 거짓말에 능숙해야 한다. 그래야 없는 이야기를지어내고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캐릭터를 창조할 수 있다. - P252

‘라이터스 블록‘이라는 게 있다. 벽에 막힌 듯 글을 쓸 수없게 되는 걸 말한다. 인정하기 싫지만 나도 거대하고 단단한 벽에 가로막혀 있다. 소설을 쓰려고 컴퓨터를 켜면 머릿속이 멍해진다. 아무런 단어도 채워 넣지 못한 문서 프로그램이 몇 시간이고 저 혼자 깜빡인다. 그걸 보고 있자면 오싹해진다. 다시는 글을 쓸 수 없게 될 것만 같아서. - P253

산사 입구에 L이 서 있었다. 두 형사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듯했다. L은 내가 상상했던 그대로의 모습을 한 채 환하게 웃었다. 그러고는 뚜벅뚜벅 걸어 어딘가로 사라졌다.

*

강의할 때 종종 하던 말을 떠올린다.
"잘 만든 캐릭터는 생동감을 얻어 작품 밖으로 나가서도살아 움직입니다."
거짓말이라 생각했는데, 진짜였다. - P285

-아메이니아스의 칼-

있잖아, 언니를 보고 있으면 나를 보는 것 같아. 이번 생이아닌 다른 생의 나. 차원의 틈새에서 길을 잃고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버린, 저주 같은 강박에 사로잡혀 누구보다 희생적인 척 지독하게 이기적인, 버려진 어린애처럼 겁에 질려스스로를 똑바로 바라볼 줄 모르는 어리석은 나.
난 언니를 보면 어디까지가 내 모습이고 어디부터가 내가아니게 되는지 헷갈려. 우리는 다른 듯 닮았고 닮은 듯 다르지. 하지만 확실한 건 우리는 분명 이어져 있다는 거야. 그러니까, 내가 언니에게 입을 맞추고 싶은 건 당연한 거야. 인간은 스스로를 제일 사랑하기 마련이니까.
오늘이 지나면 언니가 원하는 대로 다 해줄게. 언니만을위한 무대의 배우가 되어 줄게. 그러니 언니는 계속 나만을위한 희생적인 언니로 남아 줘.
언제까지나. -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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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목 놓아 울 수 있는 자기만의 바다가 필요하다. 연남동에는 하얀 거품 파도가 치는 눈물도 슬픔도 씻어 가는 작은바다가 있다" - P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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