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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레터 - 나희덕, 장석남 두 시인의 편지
나희덕.장석남 지음 / 좋은생각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가끔씩 방안 정리를 할 때마다 버리지 못하고 어느 한켠 신주단지 모시듯 박스안에 고이 보관하고 있는 것이 있다. 학창시절부터 현재까지 받은 편지이다. 그리고는 아주 가끔씩 꺼내보고는 한다. 그 안에 활자를 읽어 내려가다보면, 어느세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 회상에 젖어있는 나를 발견한다. 요즘은 편리한 네트워크 구축으로 실시간으로 메일을 보낼 수도 확인 할 수도 있으며, 언제 어디서건 문자 서비스로 대화도 가능해 졌다. 이런 편리함 뒤에 점점 숨어버리고 있는 그 옛날의 향수가 묻어나는 것들이 그립다.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진심을 전하고자 할 때 편지지와 연필을 꺼내 들고는 한다. 소통의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편지만큼 진심을 전하기에 따뜻한 매개체가 또 있을까.
조금은 얇은 다이어리 두께의 <더 레터>라는 이 책은 나희덕 시인과 장석남 시인이 주고 받은 편지 모음집이다. 두 시인이 주고 받는 총 서른통의 편지를 읽고 있노라면 계절이 변화하는 시간의 흐름속에 어느세 나를 내맡기고 있음을 느낀다. 눈이 오는 산골짜기 깊은 곳에서의 하얀세상을 만끽하기도 하고, 고요한 산속의 울림속에 눈을 감고 명상의 시간을 가져 보기도 하고, 옥수수 밭이 비로 축축히 젖는 느낌을 느껴보기도 하고, 매미소리, 계곡물 흐르는 소리에 어느세 나 또한 여유라는 것을 품어 보기도 한다.
작년인가 <채링크로스 84번지>라는 책을 읽은적이 있다. 저자와 헌책방 주인이 공간을 초월하여 20년간 우정을 쌓으며 주고받은 편지 모음집이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이런 구성의 책은 같은 공간에 함께 있지않아도 꼭 함께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두 시인이 다른 장소에서 자연이 변화하면서 느끼는 관찰속에는 자연이 곧 삶이라는 오묘한 진리가 숨어있는 듯 하다. 문학적 소양이 얕은 독자라 두분의 담소와 중간 중간에 담긴 여덟편의 시의 깊은 뜻을 다 헤아리지는 못하지만, 이 안에는 아주 작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감사함도 있고 슬픔도 있고, 진화되고 있는 시대의 씁쓸한 고독함도 느껴진다.
어찌 보면 집을 떠나 낯선 방을 찾아 나서는 이유는 자신이 살아온 날들을 들여다보며 마음껏 울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극하긴 하였는가?'라는 질문을 마음 깊이 던져 볼 수 있는 것도 그 막다른 방이 안겨 준 선물이겠지요. 13p
울고 싶을 때 울고, 웃고 싶을 때 웃으면서 감정표현에 충실히 살아가고 사람이 얼마나될까? 언제인가부터 울음이라는 감정 표현은 타인에게 비춰서는 안되는 것이라는 강박에, 울고 싶을 때 울지 않으려고 애쓰는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이처럼 스스로 만들어 낸 강박을 내려놓지 못하고 무겁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이 책은, 잠시 모든것을 내려놓고 명상을 가져보는게 어떠냐고 권하는 느낌이다. 진정한 배움과 성장은 치열한 경쟁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는 성찰의 시간 안에 있음을 다시금 느끼게 해 준다. 몇시간안에 다 읽고 덮어버릴 수도 있으나 언제든 한통의 편지씩 꺼내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