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춤
조정래 지음 / 문학의문학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뉴스와 신문을 거부한지 몇개월이 지나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보고 싶지 않은것은 보지 않으며, 듣고 싶지 않은 것은 듣지 않는 것. 구린내 나는 시대를 외면하고 싶은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이 그것이었다. 조정래님의 장편소설 <허수아비 춤>은 외면하려고 했던 이 나라의 부패한 세태를 여실히 보여준다. 읽는내내 한마디로 씁쓸했지만, 허구와 사실을 반영할 수 있는 문학이라는 공간이 있어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허수아비 춤>에 등장하는 태봉그룹과 일광그룹은 나라를 좌지우지 하는 대기업이다. 왜냐하면 돈이면 뭐든 다 되는 세상을 만들어 놓았으니 말이다. 일광그룹 회장이 비자금 관련 6개월 실형을 받고, 급기야 태봉그룹에 뒤쳐지지 않는 새로운 부서를 결성하기로 한다. 부서 결성의 주축을 이루는 세사람이 등장하며, 부서의 명칭은 허울 좋은 <문화개척센터>이다. 이 부서의 업무로 말할 것 같으면 전국 로비망 구축에 있다. 국세청, 검찰, 언론매체등 그들의 손이 뻗치지 않은 곳이 없으니, 이루지 못할일도 없다. 그러니 옛날 상상속에서나 존재했던 숫자 억단위를 넘어 조단위의 비자금 생성은 일사천리인 것이다.

눈에 띄는 주요 인물은 일광그룹 남 회장의 신복(?) 윤성훈, 박재우, 강기준이다. 이들이 회장의 거룩한 업적을 쌓아 나가는 대가로 받은 스톡옵션은 보통 사람이 평생을 벌어도 모으기 어려운 억대의 금액이니 덩달아 어깨에 힘이 들어갈 만도 하지만, 그들이 보여주는 사내들의 야욕은 끝이 없고, 세상이 모두 그들의 발 아래에 있다는 듯한 행태는 참으로 불편하다. 헌데 가슴 한켠 그렇게 사는것도 그들의 능력이니 비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바닥에서 치고 올라오니 나도 어쩔 수 없는 천민 자본주의에 발이 담겨 있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소설의 끝자락 그들의 대화는 거북하고 역겹기 그지 없지만, 그들의 말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라 생각이 든다. 그들 앞에 항쟁하는 전인욱은 한자락 희망같은 존재이지만, 처음부터 이기려고 하는 싸움이 아닌것임을 그도 안다. 다만, 부끄럽지 않은 자신과 함께 끝까지 가보는데 의의가 있었던 것이다. 한 집안의 가장으로 갈림길에서 고뇌하는 그의 모습에서 마음이 아팠고, 나 또한 그의 아내처럼 손을 잡아 주고 나란히 걷고 싶어진다.
 

과연 허수아비 춤을 추고 있는 사람들은 돈에 현혹되고 돈으로 권력을 남용하는 그들만일까? 저자가 전하고자 했던것은 천민 자본주의만이 씁쓸하게도 아니었다. 천민 자본주의는 누가 만든 것인가? 그들이 말하는 자발적 복종은 결국 우리에게 던져진 물음인 것이다. 40년이 넘게 기업을 믿고 지지하고 옹호했던 것은 다름아닌 국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세 길들여져 버린 것이다. 그러니 그들을 비난하기에 앞서 그들을 선택한 우리 자신을 되돌아 볼 일이다. 돈이라는 권력의 힘으로 이용하는 언론매체라는 한부분에서, 오늘날에 조차도  이리저리 흔들리며 춤을 추고 있는 사람들이 과연 누구인지 말이다. 

또한 기업들이 투명 경영을 하고, 그 혜택이 고루 분배되어 진정 사람답게 살게 되는 세상? 어쩌면 실현 가능성이 없는 '꿈' 일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만들어 놓은 세상에 대해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이 담겨 있는 소설이었지만, 대기업의 녹을 먹고 있는 현재 본인이 다니고 있는 중소기업인 우리는, 그들이 골프 챔피언쉽 대회의 명목으로 요구하는 협찬금이 우리가 일년동안 땀흘려 고생한 당기순이익에 버금가는 금액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내 놓을 수 밖게 없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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