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자 X의 헌신 - 제134회 나오키상 수상작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현대문학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한 남자가 있다.   그는 고등학교 수학 선생이다.   그리고 수학을 사랑한다.   그에게 있어서 수학이라는 것은, 목숨을 잇기 위해서라면 누구나 감수해야 할 부잡스럽고 천박한 일상의 흐름을, 그 뻔한 통속성을 견디기 위한 힘을 주었다.   또, 하찮은 감정의 기복에 들쑥날쑥하는 대다수의 생을 무시해도 좋을 확고한 의미를 부여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종이와 연필, 그리고 방해받지 않는 시간뿐이다.   그는 살아 숨쉬는 수를 호흡하고, 수를 어루만지며, 수를 빛으로 치장한다.   그의 존재 의미는 곧 수학이다.

그러나 수학에 대한 그의 사랑이 한결같은 것은 아니었다.   백년에 한번 나올까말까 한다는 수학의 천재란 소리를 명함처럼 달고 다니던 그와 수학과의 사랑은 이내 조금씩 비틀어지기 시작했다.   부모를 보살펴야 한다는 윤리적 입장을 앞세우느라 수학을 등뒤로 밀어두었고, 호구지책을 마련한다는 핑계로 수학자로서 입신할 생각을 버렸다.  

 증명의 아름다움이 무언지도 모른 채, 뜻도 모르는 숫자의 나열만을 무작정 머릿속에 쑤셔넣으려는 학생들을 가르치며 그는 자신의 삶이 점점 초라해져 간다고 느꼈다.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평가받을 기회도 얻지 못하며, 수학 자체가 아니라 수학이라는 세계의 입구가 어디 있는지 알려고도 들지않는 학생들과 소모적인 반복을 일삼으며, 그는 지쳐버렸다.   그의 유일한 즐거움이자 삶의 빛인 수학이 자신과 영 상관없는 길을 간다고 느끼자, 그는 삶이 짐스러워졌고 그만 놓아버리고 싶었다. 

목을 매달 준비를 끝내고 후련하게 받침대에 오르는 그 순간, 우연히 한 모녀가 찾아왔다.   단지 이웃이라는 것 뿐 아무 인연도 없는 그녀들을 처음 보자마자, 그는 다시 살아보고자 하는 강렬한 욕망이 일었다.   그때까지 어떠한 모습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하지 못했고 감동한 적도 없던 그에게 그 모녀는 숭고한 미 자체였다.   기적처럼 행복감이 밀려들었다.  

물론 그는 그 모녀와 어떤 관계도, 의도도, 구체적인 인연도 원하지 않았다.   그저 손대지 않고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행복한, 아름다운 대상이었다.   그는 깨달았다.   그녀들이 곧 잃어버린 수학이라는 것을.   아무 것이 안 보여도, 아무 소리가 안 들려도, 심지어 손발이 꽁꽁 묶여있다 할지라도 그 어떤 힘도 건드릴 수 없는 것.   그의 머릿속에 다소곳이 자리잡으며 무한으로 펼쳐져 있는 수학의 광맥.   누구에게 인정받을 필요도 없고, 평가 받기에는 그 자체로서 너무나 순수한 수학이 항상 그를 쳐다보고 있었던 것을 그는 여지껏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살인이 일어났다.   그 모녀가 저지른 우발적인 살인이었다.   그는 서슴없이 그녀들을 돕기로 한다.   그는 모녀의 죄를 은폐하기 위하여 맹목적이다.   통상적인 선악의 구별이나 윤리적 인과관계 쯤이야 그에게는 사소하다.   그가 지키고자 하는 모녀의 행복한 생활은 그런 윤리의 잣대와는 무관하게 신성 불가침이다.   어떠한 세속의 얼룩으로도 감히 범하지 못할 순수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는 수학의 도움을 받아 그 수학의 형상인 모녀를 구하려 애쓴다.   섬세하고 치밀한 사고력으로 그는 살인 은폐의 방정식을 짠다.   모순 덩어리의 이미 주어진 방정식을 아무도 그 모순을 발견할 수 없도록 그는 교묘하게 다듬고, 완벽하게 재구성하여 드디어 세상에 내어놓는다.

과연 그 방정식은 성공할 수 있을까?   천재 수학자의 치밀한 완전범죄의 방정식, 그리고 그의 수식을 풀기 위해 고분분투하는 옛 친구이자 역시 천재인 한 물리학자, 게다가 아무리 너그럽게 보아도 역시 미련하달 수 밖에 없는 경찰들.   자, 우리도 한 번 이 방정식 풀이에 참여해 봄이 어떨까?   소위 고등학교식 방정식 풀이만으로도 미리 경기부터 일으키고 보는 독자가 있다면, 걱정 마시라!   그냥 책장을 훌렁훌렁 넘기기만 해도 계산은 끝난다.   게다가 그 풀이가 아주 미묘하고, 재미있다.   덤으로 가슴 저리도록 아름답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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