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방 - 우리 시대 대표 작가 6인의 책과 서재 이야기
박래부 지음, 안희원 그림, 박신우 사진 / 서해문집 / 2006년 6월
평점 :
품절


내 시력은 좋은 편이 아니다.   두 쪽 중에 왼쪽은 없다 치부하는게 낫고, 다행히 오른쪽은 '나 눈이다' 하고 제 구실을 곧잘 하는 편이다.    심한 좌우 시력의 편차 때문에 안경을 쓰는 것이 내 앞길의 선명도에 보탬이 될 터인데, 나는 평소에 안경을 쓰지 않는다.   아주 중요한 일, 집중해야 할 경우 또는 보고싶은 것을 빤히 쳐다볼 때에만 무슨 의식처럼 안경을 찾는다.    길거리에서 아는 사람들이 보고도 모른척 한다고 나를 꾸짖지만, 굳이 안경까지 쓰고 아는 사람들을 구별하여 아는 척 해가며 발걸음을 멈추고 싶지 않다.    잡다한 것을 다 상관하고 똑바로 보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질이 아닌데다, 워낙 부족한 내 두뇌의 용량을 아는지라, 가뜩이나 좁은곳에 별 하찮은 것들을 마구잡이로 담아넣고 싶지 않다는 나름대로의 삶의 지혜이기 때문이다.   또, 열번 보아도 다시 보면 까무룩하여 새삼스럽게 누구더라? 어디더라? 하는 얼굴기억능력의 저조함과 방향감각상실증, 타고난 무관심 때문에 쓰나 안쓰나 매한가지인 안경의 필요성을 못느껴서이기도 하다.       

   

책상과 운전대를 떠나면 즉시 벗어버리는 안경이 꼭 필요할 때가 있다.     그것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볼 때와 그와 연관된 것을 살필 때이다.    나는 내 좋은 사람을 포착하면 기필코 그의 주거지를 방문하고야 만다.    현관문을  들어서자마자 어색해하는 그를 밀쳐내고 나는 천장에서 침대밑 바닥까지,  창문을 통과하는 햇살의 양까지 꼼꼼하게, 낱낱이, 그를 연구한다.    콧등에 안경을 처억, 걸쳐놓고.      왜?     그를 알고 싶으니까.     그를 이해하고 싶으니까.

    

늦은 저녁에 뭐 없나 하고 슬슬 인터넷 서점을 뒤져보다가 내 눈에 번쩍 뜨인 것은, 와! 작가의 서재탐방이다!     일찌기 각종 작가에 대한 각종 평전과 분석은 무슨 공식처럼 나열해 있으면서도, 정작 그다음으로 내가 고대하던 그들의 실생활터의 단계에서는 탐구는 커녕 변변한 구경조차 하기 힘들었던 차에, 다짜고짜 그들의 서재 방문이라니.    내 눈이 번쩍 뜨일수 밖에.    더군다나 전부 279페이지에 여섯 작가가 들어 있으니까 저자의 말 같은 페이지 빼고도 대략 한 작가당 40페이지가 넘으니, 그럭저럭 좋은 서재구경은 될 성 싶었다.

   

흥분한 마음에 미리 이틀동안 안경을 쓴 채로 기다리고 기다려서 받고보니, 하얀 거죽에 그림으로 그린 책장들과  그 속을 빼곡하게 채운 책과 파일들이 보기에 흐뭇했다.    부제목이 '우리 시대 대표 작가 6인의 책과 서재이야기'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작가는 그중 2명 뿐이었지만, 어떤 연유에서든지 우리 시대의 한국대표 작가들중의 몇명임에는 틀림이 없고, 다른것도 아닌 그들의 책과 서재 이야기라........하하하.

    

처음 나온 이문열의 방을 보고 내 고개가 갸우뚱, 했다.    사다리를 걸칠 정도로 높게 쌓아올린 책장과 책들을 포착한 첫머리 사진은 좋았는데, 그 다음은 멀끔한 집 외관 사진, 그 다음은 이미 보여준 사진 그대로 그린 알록달록한 그림 한 장이 한 페이지 전체를 차지하고(도대체 왜?), 내가 보고싶었던 책제목이 뚜렷이 보이는 책장 사진은 겨우 두 단 짜리로 밑구석에 조그맣게, 끝나고 만다.    큰 사전 몇 개 진열된, 미리 정리되어버린 썰렁한 책상 하나가 나오더니, 뜬금없이 잔디밭에 잘생긴 소나무가 떠억 버티고 서서 또 한 페이지.     저자의 서재 묘사라는게 이렇다,  '옆방은 역사와 철학, 20세기 관련 서적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의 해박한 고전지식은 독자를 풍부한 인문교양에 빠져들게 한다'        아, 내가 보고 싶은 것은 그 옆방에 무슨 역사책이, 무슨 철학책이 채워져 있는지, 지금 그가 일하고 있는 책상 위는 어떻게 되어 있는지, 그 사진을, 그 목록을, 그 묘사를 원하는 것이지, 이미 다 아는 작가의 경력 해설이나 생뚱맞은 전원주택 잡지식의 집구경이 아니란 말이오, 박래부씨!

    

실망을 간신히 누르고 다음 김영하의 방을 들렀는데, 허참!  내 고개는 심하게 기울어져 버렸다.    뭐 서재도 아니고, 어두운 것 빼고는 한없이 평범한 대학 연구실과 한없이 평범한 책장과 책들, 한없이 평범한 신변잡기식의 사진과 대화들.     어찌나 평범하든지 구석에 놓인  먼지털이까지 천연색 그림으로 한 페이지를 너끈히 장식해 버리더라.     이 방에서 얻은 것이라곤 '서울 6백년사' 라는 책의 정보뿐이었는데, 얄궂게도 이 책마저 품절이라서 주문 불가능이라나.

그외 강은교, 김용택, 공지영, 신경숙의 방들도 거의 체념식으로 둘러봤는데, 별 번쩍임이 없었다.   그중 김용택의 방은 좀 나아보였는데 그것도 저자의 구성이 좋다기 보다는, 김용택의 삶과 그의 주거지가 탁월하게 아름답고 서정적이어서일 것이다.

     

방문 허락이 될리 없는 그들의 방을 손가락 물고 궁금해 하기 보다 저자의 애매모호한 개인적 느낌의 말을 가려 읽으며 몇장이나마 사진으로라도 흘끗거리기는 했으니 그런대로 아주 나쁘지는 않다.   적어도 신경숙의 더듬거리는 말투가, 공지영의 당돌한 태도가, 김용택의 푸근한 가슴이 어디에서 태어난 것인지 사실적 확인은 가능했으니까.     다만, 어머니의 자궁처럼 깊고, 어둡다못해 푸르른 막막한 공간에서 솟아오르는 생명의 치열함을 그 탄생의 에너지를 어느 방에서도 나는 찾을 수가 없었으니, 이는 결코 박래부의 잘못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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