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위엔 온종일 흐린 하늘
말랑말랑함이란 없는
차분한 일요일 오후
지나온 것들이 진실이 아님을
이제 안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다는 듯
하루종일 흐린 하늘은
지나온 길들을 의심하고
가는 길들을 멈추게 하고
가야할 길들을 감추며
짙은 잿빛이 더해지고
어제는 멀어지고 있다
네게 품었던 소망은
비눗방울처럼 반짝이다가
기어코 사라지는
애써 반짝일 수 있는
인위적인 것이더냐
의무의 무게이더냐
소박한 꿈은
화려한 치장을 걸치고
집을 나서는 여인네처럼
눈길을 끌고 있었을 뿐
영혼이 빠져 감흥이 없다
수고가 빠져 보람이 없다
딸아 아들아
짧지만 걸어온 길 위에
때로 주어진 영광의 그늘에
머물러 떠나지 않은 것이더냐
어제의 소요도 오늘의 고요도
처음처럼 걸을 이유가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