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몫 ㅣ 테이크아웃 11
최은영 지음, 손은경 그림 / 미메시스 / 2018년 9월
평점 :
글쓰기는 단지 종이 위에 문장을 나열하는 행위만이 아니다. 내가 발 딛고 선 세계의 무게를 오롯이 감각하고 그에 합당한 책임을 지려는 몸부림이다.
최은영 작가의 소설 『몫』을 읽으며 글을 쓴다는 것의 비정함과 숭고함 사이를 위태롭게 오가게 된다. 우리는 흔히 글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거나 혹은 글 뒤에 숨어 세상을 비판하는 것만으로 스스로의 도덕적 결벽을 증명받으려 하니까. 하지만 이 소설은 묻는다. 당신이 쓴 문장이 정말 당신의 삶과 일치하느냐고, 당신은 당신에게 주어진 ‘몫’을 다하기 위해 어디까지 자신을 몰아넣어 보았느냐고.
문장의 벽을 부수고 나아가는 일
소설 속 화자인 ‘당신’은 대학 교지 편집부에서 만난 희영과 정윤을 통해 글쓰기의 본질에 다가간다. ‘당신’이 꿈꿨던 글은 명료하다. “한 번 읽고 나면 읽기 전의 자신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는 글, 첫 번째 문장이라는 벽을 부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글.” 이것은 단순히 유려한 문장력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존재의 변화를 촉구하는 선언이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글쓰기는 종종 초라한 질투와 결핍을 동반한다. ‘당신’은 희영이 가진 통찰력과 절제력, 그리고 타인의 상처에 깊게 공감하는 재능을 보며 동경과 동시에 깊은 열등감을 느낀다. 희영의 재능은 글쓰기에서는 빛날지언정 삶에서는 스스로를 갉아먹는 독이 되기도 한다. 타인의 고통을 내 것처럼 느끼는 감각은 예민한 칼날이 되어 자신을 먼저 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영은 쓴다. 그것이 그녀가 선택한 삶의 방식이자 그녀가 짊어진 존재의 ‘몫’이었기에.
읽고 쓰는 것만으로 면죄부를 얻는 이들에게
“나는 그런 사람이 되기 싫었어. 읽고 쓰는 것만으로 나는 어느 정도 내 몫을 했다, 하고 부채감 털어 버리고 사는 사람들 있잖아. 부정의를 비판하는 것만으로 자신이 정의롭다는 느낌을 얻고 영영 자신이 옳다는 생각만으로 사는 사람들.”
종종 정의롭다 생각하는 글을 공유하거나 비판적인 댓글을 다는 것만으로 사회적 책무를 다했다고 착각한다. 키보드 위에서 휘두르는 문장은 서슬 퍼렇지만 정작 그 문장이 가리키는 현장에서는 뒷걸음질 치고 있을지 모른다. 희영이 경계하는 것이 바로 그 지점인데, 문장이 삶의 방패가 되어선 안 된다고, 문장은 오히려 나를 세상의 풍파 속으로 밀어 넣는 창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최은영 작가는 늘 사람과 사람 사이의 미묘한 파동을 포착해 내는 데 탁월하다. 작품 속 인물들은 대개 선량하지만 그 선량함 속에 숨은 이기심과 비겁함을 정직하게 응시한다. 그녀는 인터뷰에서 소설을 쓸 때의 원칙으로 ‘나의 가장 더러운 부분도 쓸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꼽았다. 『몫』은 바로 그 정직함의 산물이다. 자신이 쓴 글의 무게만큼 살지 못하는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
상처의 조건과 공감이라는 저주받은 재능
소설 속 희영은 타인의 상처에 대한 직관을 지니고 있다. 작가는 이를 두고 “글쓰기에서는 빛날 수 있으나 삶에서는 쓸모없고 도리어 해가 되는 재능”이라 표현했다.
우리는 공감 능력을 미덕이라 칭송하지만 진정한 공감은 수렁으로 함께 걸어 들어가는 일이다. 타인의 고통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체험하는 일일 것이다. 스물한 살의 '당신'이 여성에 대한 폭력과 부조리한 가족주의에 분노하며 잠 못 이뤘던 것처럼 앎은 곧 고통이 된다. 아무것도 모르고 세상이 그럭저럭 잘 굴러가는 곳이라 믿었던 순진한 시절로 돌아갈 수 없게 되는 것. 그것이 글을 쓰는 사람이 감내해야 할 첫 번째 형벌이다.
나의 '몫'은 무엇인가
작가는 소설을 통해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당신의 삶에서 어떤 몫을 감당하고 있느냐고. 정윤은 공평하고 사려 깊은 사람이었지만 ‘당신’이 느꼈던 미세한 소외감을 읽어내지 못했다. 혹은 읽어냈더라도 자신의 안온함을 위해 외면했을지 모른다. 반면 희영은 자신의 결핍과 초라함을 직면하며 끝내 답장하지 못한 편지들에 대한 미안함을 품고 살아간다.
이 에세이를 쓰며 나는 내가 뱉어낸 무수한 문장들을 되돌아본다. 나 역시 읽고 쓰는 것만으로 내 할 일을 다 했다 자위하며 문장 뒤에 숨어 안전한 정의를 외치지는 않았는가. 누군가의 고통을 나의 사유를 풍성하게 만들 재료로만 사용하지는 않았는가.
삶에서의 성찰은 대단한 깨달음에서 오지 않는다. 내가 쓴 문장이 나의 삶을 배신할 때 느끼는 그 서늘한 부끄러움에서 시작된다. ‘그대로’라는 말이 수많은 변화 속에서도 여전히 당신이 거기 있음을 확인해 주는 눈물겨운 인사인 것처럼, 우리가 글을 쓰는 이유는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도 끝내 지켜내야 할 인간다움의 ‘몫’을 서로의 눈에 보여주기 위함일 것이다.
다시, 첫 번째 문장이라는 벽 앞에 서서
『몫』은 결국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랑하고 싶었지만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던 서툰 영혼들이 글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서로의 존재를 증명하려 애썼던 기록이다. 희영이 정윤에게 보낸 마지막 인사는 비단 소설 속 인물에게만 향하는 것이 아니다.
정윤 언니, 내가 언니에게 관대하지 못했던 것을 용서해요. 그렇게 사랑하고 싶었으면서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던 거, 편지들에 답하지 않았던 거 미안해. 아주 오래 보고 싶었어요.
잘 지내.
잘 지내라는 짧은 마침표 안에 차마 문장으로 다 옮기지 못한 삶의 무게가 심겨 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몫을 지고 살아간다. 누군가는 투사가 되어 벽을 부수고 누군가는 그 파편을 주워 모아 기록하며, 누군가는 그 기록을 읽으며 뒤늦은 눈물을 흘린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문장을 쓰느냐가 아니라 그 문장이 내 삶의 어디쯤에 놓여 있는지를 살피는 태도일 것이다. 아는 척하지 않는 것, 내가 뭐라도 되는 척하지 않는 것, 그리고 나의 초라함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것. 그것이 최은영 작가가 말하는 소설의 정신이자 내가 문장을 대하는 태도여야 함을 깨닫는다.
나와 당신의 문장은 평행선처럼 어쩌면 영원히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간극을 메우려 노력하는 행위 자체가 바로 우리의 ‘몫’ 일 것이다. 읽기 전의 자신으로 되돌아갈 수 없게 만드는 단 한 줄의 문장을 찾기 위해 오늘도 나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다시 첫 번째 문장이라는 벽 앞에 선다. 이미 쓴 문장이 앞으로 올 문장의 벽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