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침략과 대한제국의 종말 - 러일전쟁에서 한일병합까지 청소년과 시민을 위한 20세기 한국사 7
서영희 지음, 역사문제연구소 / 역사비평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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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권피탈 100년을 맞이해 지난 2010년에는 한국 근현대사에 깊이 새겨진 일제 식민통치의 실상과 유산을 더듬어 보려는 노력들이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저자는 늘상 있었던 "망국 책임 논쟁과 틀에 박힌 반성" 이외에 특별한 연구사적 진전이 없었다고 진단하였다. 나아가 식민통치의 원인과 배경을 묻는 저자의 질문에 대해 대다수는 틀에 박힌 답변만을 내놓거나 피상적인 역사 상식만을 열거할 , 원인에 대한 깊이 있는 반성과 성찰이 함께 하지 못한다고 지적하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저자는 저서를 통해 망국으로 귀결되는 과정을 세밀하게 들여다 보고자 시도하였다. 이를 통해 병합 추진과정 속에 나타난 일본과 대한제국의 시행착오들을 언급하면서, 이들을 낱낱이 살필 때야 비로소 식민지화되는 과정이 갖는 의미를 파악해볼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저자는 통감부와 대한제국 정부가 동시에 존재하는 이중 권력의 시대의 특수성을 감안하면서, '시정감독' 명분을 내세운 일본이 어떻게 대한제국의 권력을 해체하고 잠식시켰는지 파악해 보고자 하였다. 또한 이러한 역사 전개의 중심에는 제국주의 권력만이 아니라, 고종, 개화지식인 등의 여러 세력들이 실재했고, 저자는 그들의 경합, 갈등 양상을 주요하게 다루고자 시도한 것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이러한 저자의 목적은 과연 전반에 구현되었을까? 위의 서술의도가 전반에 걸쳐 반영되고 있기는 하지만, 서술의 비중은 일본의 침략과정 전반의 상술에 놓여져 있다. 아무래도 시기 권력 관계의 주요 축이었던 일본의 활동을 감안한다면 충분히 이해가 가는 대목이긴 하다. 그러나 기왕 저자가 책머리에 밝혔던 대로 근대 국민국가 형성을 위한 여러 정치세력들의 동향과 갈등이 실재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에 조금 신경을 썼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민씨 세력, 고종, 근위세력들, 문명개화론의 입장을 취했던 이들, 유교적 입장에서 시대변화를 읽고 대응하려 했던 이들 다양한 세력들은 각자의 정치적 지향은 물론 나아가 세계관의 근본적인 차이마저 드러나던 때가 바로 시기였다. 이들은 종래 어떠한 지적 경험과 사회적, 정치적 배경 속에서 자신들의 태도를 취하였는지 기존의 연구성과들을 통해서 보다 상세하게 설명해 있지 않았을까. 결론 부분의 문장대로 한국 근대사에서는 "근대적 정치 체제 형성을 둘러싼 민족 내부의 갈등과 일제의 국권 침탈 과정은 함께 맞물려 전개되었다". 이에 반해 저서에는 '국권 침탈 과정' 관한 높은 비중에 비해 '근대적 정치 체제 형성' 대한 설명이 부족하고, 주요 세력끼리 '갈등'하는 양상만 초점을 두어 설명하는 한계가 엿보이기도 한다.

 

  책 전반을 관통하는 개념에 대한 부가적인 설명도 보다 필요하지 않았나 싶다. 가령 대한제국의 보호국 결정을 '평화조약'이라 명명하고 이를 주도한 루스벨트에게 노벨평화상을 수여한 것에 대해 저자는 아이러니라고 지적하였다. 하지만 1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이전까지 당대의 맥락에서 '평화'라는 개념은 경제적 차원에서 국제 무역의 안정적인 보장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과 연관된 것이었다. 주요 강대국끼리 벌이는 대규모의 무력시위를 외교적 노력으로 중재하는 가운데 국지전의 발발은 용인하던 때가 19세기였고, 평화로운 영리활동의 보장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으로 인식되었던 것이 당대의 '평화'임을 감안한다면 저자의 지적은 다분히 오늘날의 시선에서 평가한 것이고 때문에 다소 안이하지 않냐는 것이다.  '신의' '공론' 중시하는 유교적인 습속에 머물러 근대적 만국공법 체계에 대한 안이한 이해에 머물렀다는 당대 정치세력에 대한 비판 역시 설명해볼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일제에 병합당한 대한제국의 한계를 장기구조사적인 맥락에서 살펴볼 여지도 있음을 책머리에 저자가 밝혔던 것처럼, '신의' '공론' 대한 '유교적 인식' 무엇인지 인식이 유교적 세계인식의 일면적이고 단편적인 상에 지나지는 않는지 설명해볼 필요가 있다. 당시 유교적 '변통론' 입각해 제국주의 국가들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으로까지 나아간 소위 '변법론자'들이 실재하였음을 감안한다면 유교인식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다른 실천으로 귀결될 있음을 지적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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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역사 1 - 건국과 인민주주의의 경험 1945~1960 청소년과 시민을 위한 20세기 한국사 5
김성보 지음, 역사문제연구소 기획 / 역사비평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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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잃어버린 10을 거치면서 북한을 알아가는 것, 가까이 하는 것 정도는 일상이 되어버린 줄 알던 때가 있었다. 추억일 줄 알았는데 난 잠시 단잠에 빠졌던 모양이다. 역사적으로 옳고이제야 제 궤적을 밟고 있는 지금, 북한을 이야기하는 것은 다시금 무언가 불온한 일이고 그래서 눈치를 살펴야 한다. 북한을 연구하는 것 자체로도 혐의는 충분하지 않느냐는 시대의 한가운데에 우리가 있다. 후지다. 후져도 이렇게 후질 수가 없다.

  어쩌면 이런 때에 북한의 역사를 감히내놓는 것은 그 자체로 도발일 지도 모르겠다. 눈치를 살피며 구석진 곳에서 책을 꺼내어 들었더니 놀랍게도 금새 차분해진다. 북한이 어떻게 남한은 붉게 전복시키고자 애썼는지, 한국전쟁을 통해 어떤 만행과 학살을 저질렀는지 선동하듯 캐묻는 글들과 다르다. 해방 직후 그토록 염원하던 우리의 나라 건설의 꿈이 어떻게 좌절되었는지 이 과정에서 동북아시아를 둘러싼 국제적 조건은 어떠했는지 그때의 사람들이 꿈꾸던 이상향은 어떤 사상적, 사회적 영향 속에서 태어난 것인지 알 수 있다. 입체적인 분석이 주는 앎의 즐거움이 적지 않다. 사회주의적 인간형으로의 개조를 위해 노력을 마다하지 않는가 하면 반봉건의 기치 하에 전통의 극복을 내세우는 1950년대 북한을 보며 과연 이것이 가능한 일일까 갸우뚱하다가도 어느 시골장터 아낙의 모습을 담은 사진은 그때 우리네 할머니의 주름과도 참 닮았다. 우리의 자본주의와는 다른 모습에 의아하다가도 같은 한국인의 모습에 금새 안도하기도 하는 것이다.

언제까지나 북을 주적으로만 여기며 배척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늘의 북한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차분하게 알아가고, 같음을 느끼는 것은 통일을 위한 소박하지만 중요한 출발이다. 북한을 그네들의 언어로도 이해해보고 우리의 눈으로 비판도 해보는 것은 남과 북 모두를 위해 꼭 필요하다.

조금 더 역사적인 의의를 찾아볼 수도 있다. 이념에 의해 구분이 가시화되고 하나의 체제로까지 굳어지는 과정을 겪기 전만 하더라도 남과 북은 하나의 민족이었고 동일한 감수성이 흘렀음은 이미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 같은 민족이 현대사를 거치면서 두 가지 역사적 경험을 만들어 냈다. 이 점에서 남과 북의 현대사는 인간과 사회에 대해 물음을 품은 모든 이들에게 훌륭한 사례이자 학습도구이다. 인민민주주의의 역사적 경험이 북한식 사회주의 건설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1950년대 북한만큼 다원성으로 가득찼던 사회가 어떤 경험을 통해 획일화의 궤적을 밟게 되었는지에 초점을 맞춰서 볼 수도 있다. 동시에 획일화된 궤적의 극한으로 다가가는 오늘날의 북한을 안타까움으로 바라보면서 그들에게도 건강함을 새겼던 때가 있었음을, 그 건강함이 다시 회복될 수 있음을 기대하는 저자 특유의 시선도 함께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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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이라는 스캔들
나이토 치즈코 지음, 고영란 외 옮김 / 역사비평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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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기의 문화와 일상을 새롭게 바라보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쩍 유행을 타던 시기가 있었다. (한풀 꺾인 것 같기는 하지만 요새도 이러한 유행가는 계속되는 모양새다) ‘한국사에 의해 전유되다시피 했던 지배와 저항의 구도를 넘어서 생동하는 근대인의 결을 읽어보자는 의도에서였던 것 같다. 국문학 쪽에서 특히 유행에 민감했다. 역사학이라고 해서 현재적 요구와 무관한 것은 결코 아니겠지만, 국문학의 일제시기 읽기는 유독 그러한 감이 컸다. 역사학의 식민지기 연구들이 후져서(?) 그랬는지 21세기임에도 한국의 후짐(?)이 그들을 자극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나보다.

그래서였을까? 그들의 일제시기 읽기는 역사적으로 엄밀하지 못했다. 1910년대와 1940년대가 보여주는 간극은 왜소화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문화통치기와 전시체제기는 그저 일제시기일 뿐이었던 가보다. 대중도 너무도 쉽게 설정되었다. 근대적 문화현상과 그 주체들은 조선인과 일본인이 구별되지 않기도 하였다. 계급적으로나 지역적으로 나누어 따져봄이 필요할 법 한데도 그저 문화소비와 생산 주체로서의 대중이 손쉽게 소환되었다. 오늘날 우리의 안목으로 그때를 바라보는 것이 편하긴 하다. 그렇다고 막 가져다 써서는 곤란한 것도 더러는 있는 법이다.

<<암살이라는 스캔들>>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으리라 여겼던 것도 사실이었다. 조금 무안해져 버렸는데, 필자가 스스로 역사적인 연구는 아니라고 밝혔던 것도 이유였겠지만 저작의도가 꽤 신선하고 간명했기 때문이었다. 저자는 이야기의 정형을 미리 설정해 놓고 그 틀에 사건을 이입시켜 의미를 부여하는 미디어에 주목한다. 이 미디어는 심지어 여자라는 기호를 항상적으로 욕망하는 남성중심적 사회구조의 일부이다. 즐거운 이야기가 되기 위해 요구되었던 몇 가지 장치들과 그 속에서 차별-억압을 암묵적으로 때론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독을 바라보자는 것이다. 메이지 시대를 대상으로 삼아 일본 미디어가 어떠한 이야기를 요구하고 편성하였는지, 어떤 사건이 선택되었는지를 보고 싶다면 이 책은 흥미롭다. 질병과 위생관념이 어떻게 사회에서 여성과 결합되어 이해되는지, 흰 피부와 미용이 진화론과 어떤 식으로 연관되고 있었는지 저자의 논지를 한 번 따라가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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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과 80년대 민주화운동 - ‘서울의봄’에서 군사정권의 종말까지 청소년과 시민을 위한 20세기 한국사 4
정해구 지음 / 역사비평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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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과 80년대 민주화운동 - ‘서울의 봄에서 군사정권의 종말까지

  서평이 지녀야 할 최고의 덕목은 무엇일까. 단순히 책을 소개하거나 비평하는 데에 그치는 것으로는 곤란하다. 조금 노골적으로 말해보자면, 서평은 이 책을 사서 읽을 만한가를 언급해줘야 한다. 돈 값을 하는 책인가, 값어치에 비해 훨씬 가치가 있는 책인가, 영 형편없는 책인가를 잠재적 독자들에게 말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전두환과 80년대 민주화운동>은 청소년과 시민을 위한 ‘20세기 한국사쓰기란 목적 하에 필자 자신의 관점보다는 학계의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역사적 사실을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서술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구체적으로 저자는 이 책의 서술목적으로 박정희가 사망한 이후 1980서울의 봄시기의 민주화 이행이 어떻게 전개되고 실패했는지, 그 과정에서 광주민중항쟁이 어떻게 발생하고 진압되었는지, 그리고 5.17군사쿠데타를 일으킨 신군부 세력이 이후 체제 정비를 어떻게 해나갔는지 살펴보고자시도하였다. 더하여 “1980년대 민주화운동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그것이 어떻게 6월 민주항쟁의 성공으로 이어졌는지, 그리고 6월항쟁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민주화 이행 과정에서 민주화운동 세력에 의한 민주정부 수립이 왜 실패하게 되었는지살피려 하였다.

  청소년과 시민들에게 먹힐만한글쓰기란 뚜렷한 서사가 있는 글쓰기, 역사전개 특유의 복잡성을 최대한 이야기 구조 속에서 녹여낼 수 있는 글쓰기여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역사에 대한 어느 정도의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이다. 역사적 사건에 대한 풍부한 배경설명과 전개과정이 단순하게 병렬, 나열되기보다는 저자의 이야기 속에서 구조화되고 있다는 인상이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역사에 대한 호기심을 증폭시키고자 하는 청소년, 이미 80년대 역사에 대해 평균 이상의 지식을 갖춘 시민에게는 그리 매력적이지 않은 듯하다. 여기서는 일단 역사에 대한 초보적인 지식을 가진 청소년의 시각에서만 살펴보자.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한 용어들이 더러 보인다. ‘유화조치’, ‘공민권’, ‘NL’, ‘PD’ 같은 용어는 풀어쓰거나 추가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당대 운동세력, 정치세력이 각기 다른 입장에 따라 나뉘는 것에 대해서도 보다 쉽게 설명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다음 문장을 한 번 보자.  

“‘민족통일’ ‘민주쟁취’ ‘민중해방의 삼민 노선에 머물러 있던 학생운동은 1986년 상반기에 들어 반미자주화 반파쇼민주화 투쟁위원회(자민투)’ 계열과 반제반파쇼 민족민주투쟁위원회(민민투)’ 계열로 분화되었기 때문이다.”(126 

이 문장을 과연 청소년이 이해할 수 있을까. 이들에 대한 이론적 기반도 각각 NLPDR(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NDR(민족민주혁명)에서 구했다고 설명하는 데에 그쳐 정확한 이해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학문적으로 엄밀하게 설명하는 수준에까지 미치지는 못하더라도 최대한 쉽게 배경설명을 해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이다.

  오늘날에 이르러 부쩍 강조되는 논리들을 염두에 두어 서술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법치준법등이 요새 두드러지는데 그 이면에는 정부의 정책이나 지향에 저항하거나 이견을 표출하는 세력들에 대한 정권 차원의 견제가 작동한다. 하지만 맥락을 잘라내고 법치준법그 자체로만 보게 되면 말 자체는 틀린 말이 아니라는 생각도 분명 떠오르게 된다. 그렇다면 북한과의 민간교류를 대해 청소년들은 단순히 불법적 행동이냐 민주화운동의 일환이냐는 가치판단의 문제와 마주하지 않을까. 역사적 차원에서 특정한 사건을 평가하는 것이 가치판단에 대한 고민의 결과임을 감안한다면, 저자가 생각했던 고민의 흐름을 풀어서 설명해보는 것 자체가 훌륭한 역사서술일 수 있다.

  조금 비판이 심했다 여겨질 수도 있지만 사실 청소년과 시민을 위한 역사서술이 생각만큼 쉬운 작업은 아니다. 청소년과 시민이라는 독자설정은 한편으로 분명해 보이지만, 굉장히 그 층위가 다양한 까닭에 필자 역시 서술에 많은 고민을 한 흔적도 발견된다. 어쨌든 역사에 대한 어느 정도의 관심이 있는 청소년에게 그리고 정규교육과정을 이수한 성인 시민들에 한해서 이 책은 유용하다. 단편적으로, 부분적으로 알고 있던 80년대의 민주화운동과 한국 사회의 모습을 구조적으로 잘 엮어 주고 있기에 놓치고 있던 부분들에 대한 보충도 가능하고, 전체적인 모습을 그려보기에도 적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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