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와 함께하기
셰리 풀러 지음, 이선화 옮김 / 현북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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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는 매우 특별하다. 물론 조부모도 손주들에게 위대하다. 이 시대에 다시 특별하게 생각해야할 주제이다. 적극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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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처 걸 - 청각장애 소녀, 환경 재앙이 닥친 내일을 구하다 장애공감 1318
아스피시아 지음, 이주영 옮김 / 한울림스페셜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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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ture Girl(퓨처 걸) 

아스피시아 글-그림 / 이주영 옮김 .

한울림스페셜 


청각장애 소녀, 환경 재앙이 닥친 내일을 구하다.

표지에 그려진 소년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지은이 아스피시아 Asphyxia 는 호주 멜러른 출신의 예술가이자 작가, 연설가이다.

세 살에 청각장애를 얻었고, 열여섯 살에 수어를 배우면서 삶이 바뀌었다고 한다. 어떻게 바뀌었다는 것인지? 궁금하다.

이때부터 농인(청각장애인)의 경험을 공유하는 운동을 해왔고, 농인이라는 이유로 배제하지 않고 함께하는 법을 호주 사회에 널리 알리는 활동으 펼치고 있다고 한다.

자신의 주어진 환경과 여건을 탓하지 않고 오히려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저자의 태도가 놀랍다.

온라인으로 무료 호주 수어 강의를 진행하고 있고, 지금까지 15,000명이 넘는 청소년이 이 강의를 들었다고 한다. 청각장애자가 오히려 다른 이들을 돕는 활동을 한다고 하니 놀랍다. 

그리고 청소년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소설 시리지 [그림 스톤 Grimstones]를 썼다고 하는데 나도 꼭 읽어보고 싶다. 한국에 소개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퓨처걸~ 미래소녀인데, 앞 부분 처음을 읽으면서 몇 단어로 미래를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르나 어느 때 어느 정도의 시기인지 감 잡기가 어렵다.

청각 장애 소녀 파이퍼 맥브라이드의 일기장 ~ 개인 소유!(읽지 말것.) 이라 되어 있는데 지금 읽고 있다. 

파이퍼의 엄마는 먹는 것 연구학자로 레콘이라는 식재료를 만들어서 상품화하는 회사에서 일한다. 

8쪽 이제는 레콘만 먹기 때문에 요리할 일이 없어서 조리대를 더는 쓰지 않는다.

9쪽 엄마가 또렷이 발음했다. "레콘의 안전성에 관한 소문. 비염이나 천식 같은 걸 일으킨다는 소문 말이야." 

"이제 인류의 65퍼센트가 레콘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모두가 거부해봐. 오가닉코어는 파산하고 말 거야. 

10쪽 파이퍼, 우리는 암을 뿌리 뽑았어! 이 문제도 우리는 해결해내고 말거야. 나는 확신해. 다만 시간이 필요할 뿐이야."

11쪽 오가닉코어에는 식품 디자이너로만 구성된 팀이 있다. 식품 디자이너들은 엄마의 연구실에서 가루 영양제인 뉴트리움 서스테이트를 가져가 해면처럼 생긴 칼로리 발생 물질인 바이오스포어와 섞은 뒤, 거기에 맛과 색깔 그리고 식감 생성제를 더한다. 모양 틀에서 나온 생김새만 보면 그게 진짜 생선 요리나 죽, 또는 콩 통조림이 아니라는 걸 구별해내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12쪽 이런, 소리를 듣지 못하면서 제대로 발음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엄마는 우리가 각자의 맞춤 레콘만 먹도록 아주 염격하게 관리했다. 테일러와 내가 매일 레콘 식사를 바꿔 먹는다는 사실은 엄마에게 비밀이었다.

15쪽 보청기를 빼고 싶었지만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서는 끼고 있는 게 좋은 것 같아서 꾹 참았다. 

27쪽 우리를 둘러싼 문명이 무너져 내리고 있는데도, 엄마는 내 발음에 안달내는 걸 멈추지 못했다.

37쪽 "저는 코다(CODA - Child of Deaf Adult)예요.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청인 자녀를 뜻해요."

52쪽 기업이 자사 상품에서 나온 폐기물을 자체적으로 수거하고 재사용하게 하자는 아이디어도 아드햐가 가장 먼저 주장한 것이었죠. 그 결과물이 바로 레콘입니다. 그리고 이 레콘이 아드햐 바시가 '미래 소녀'라고 불리게 된 이유예요. 바로 늘 앞서 나가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죠.

미래 소녀라는 제목이 여기서 등장했다. 앞서 나가는 생각을 하는 소녀.


책 내용 앞 부분은 너무 황량하다. 먹고 사는 문제로 힘들다. 

중간에 나오는 '상상해보라, GDP보다 행복지수를 우선시한다면 우리의 삶이 어떻게 달라질지를!' 이라는 말~ 오늘도 변함없이 생각해야할 명제이다. 경제와 행복, 숨길 수 없는 상관 관계에 있지만 정직하지 못한 점들, 진실되지 못한 점들이 많다.

이런 속에서

고장난 자전거를 매개로 청각장애소녀인 파이퍼와 코다인 말리가 사랑을 피우기 시작했다. 이 황당한 미래의 척박한 살림살이에 상상력을 발휘해 속깊이 들어가게 만드는 작가의 실력이 놀랍다. 


95쪽 오늘 하루 동안 있었던 모든 일이 경이롭게 나를 휘감았다. 마침내 내게 두 날개가 자라났고, 말리와 로비가 나의 첫 비행이 시작되도록 힘껏 밀어준 것처럼 느껴졌다.


날개가 돋아난 날

작가는 글과 함께 그림을 자작으로 그려서 작품을 만들었다. 그림들이 뭐 상큼하거나 수준이 높다고 생각이 되지는 않는다. 그저 자신만의 표현법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을 인상 깊게 그려놓고 있다. 꼴라쥬로도 그렇고 다양한 방법으로 그림 말을 하고 있다.


지금 373쪽 중에 167쪽을 읽고 있다.

장편이 일기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읽기가 쉽지 않다. 

미래 사회에서 먹거리를 중심으로 인공음식제공 공급자들편과 자연식 주장자들 사이의 긴장이 배경을 이룬다. 레콘이라는 인공음식, 만병통치약처럼 음식에 각종 암을 예방하는 재료들을 넣어서 만들어진 음식, 이것만 먹으면 여러가지 질병으로부터 해방되고 비만도 조절되고 각종 유익한 것들이 가득하다고 주장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정보의 제한으로 레콘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이 언론통제를 통해 감추어지고 자연 친화적인 먹거리를 고수하려는 사람들은 소수의 비밀 네트워크에 의해서 유지된다. 

주인공 파이퍼는 청각장애아로서 이런 외면적인 환경 속에서 남자 친구 말리를 만나서 사랑을 꽃피운다. 파이퍼의 장애에도 불구하고 다가오는 말리와의 관계가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하다. 


쭉쭉 읽어나가면 좋겠는데, 시간도 넉넉치 못하고 틈틈히 시간을 쪼개서 읽어가는데 신속하게 끝내고 싶은 마음이 있다. 어떤 위기가 어떻게 다가올지 어떤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이야기가 종결로 나아갈지 아직은 모르겠다. 대중성이 얼마나 확보될지 모르겠으나 정성을 들여서 읽어볼 필요가 있다.


183쪽 말리는 여전히 내가 자신과는 실질적으로 정반대편에 서 있는 오가닉코어 중심 인물의 딸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세상에, 정말 다행이야.

185쪽 어제 말리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자전거를 돌려주기 위해 가계에 찾아 갔었다. 말리는 생기가 없었고, 심지어 조금 거리감마저 느껴졌다.


(어제 꽤 많은 분량의 독후감을 정리했는데, 저장하기가 제대로 안되어 다 날라가버렸다. 짧게 스라고 하는 신호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하고 싶지만 그게 잘 되지 않는다. 너무 오래 두지 말고 중간 중간 바로 바로 저장을 해야 한다.)


이제 책의 반을 지났다. 파이퍼는 엄마가 시드니에 일자리를 구하여 이사를 해야할 형편이었는데, 16살 소녀의 독립심을 드러냈다. 그 계기가 자연정원,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하게 되는 말리와의 관계때문이었다. 그래서 기차역에서 엄마와 함께 시드니행 기차를 타지 않고 도망하여 집으로 돌아오지만 말리가 여자 친구 켈시와의 뜨거운 포응(?)을 하는 장면을 보게 되고 완전히 실망하게 된다. 

파이퍼는 엄마가 자기 없이 시드니로 떠났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엄마는 청각장애인 파이퍼를 경찰에 신고하여 찾으려 했지만 결국 시드니행을 포기하고 일자리도 날아가 버리고 집으로 돌아와 있었다. 파이퍼는 기뻐한다. 


파이퍼는 결국 로비(말리의 엄마)에게 간다. 자연정원에 대해서 더 알아야 할 것들을 알기 위해서였다. 거기서 다시 말리를 만나는데, 말리는 켈시와 사이가 가까와졌지만 켈시가 농인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려고 하지 않음도 말하며 간격이 있음을 드러낸다. 

여기서 이 이야기에서 파이퍼는 결국 말리와 사귀게 되겠구나하는 암시를 얻게 되었다.


책읽기가 쉽지 않다. 농인 청각장애인의 이야기를 이야기로 풀어내는 것이 의사소통에 있어서 제기되는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저자는 어떻게 이런 작품을 써냈고, 또 그것이 우리 한국말로 번역되어 읽히게 되었다는 것이 놀랍고 고맙다. 

파이퍼는 말리의 자전거 가게에서 자전거 조립하는 일을 하게 된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이제 292쪽을 읽고 있다. 2/3을 넘어서 이제 마지막을 향해 고비를 넘고 있는 셈이다.

파이퍼는 유명해졌다. 그의 엄마와 정반대의 길을 가기로 16살의 청각장애 소녀가 일부러 결정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접하게 되는 사람들로 인해 큰 영향을 받게 되었고, 미래 사회의 극단적인 인 과학주의적 생활 방식에 저항하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지향하는 가운데 결국 엄마와도 화해하고 엄마의 지지를 받는다. 그녀의 재능을 따라서 예술적인 재능이 그녀와 주변의 사람들을 돕는 일에 사용되고 유명해진다. 

그런데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도대체 미래 사회의 모습과 인간 관계를 16살 소녀의 시각과 눈으로 그린다는 것이 말이 될까? 궁금하다.


312쪽

파이퍼는 유명해지고 자연식 먹거리 운동을 비롯한 사회개혁 움직임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그러나 청각장애인으로서 완전한 의사소통 앞에서 남자 친구 말리의 솔직한 요구에 다시 갈등이 증폭된다. 파이퍼는 엄마에게 ~


오늘은 마무리하고 싶다. 이 장편 소설을 ~

315쪽 파이퍼의 갈등이 그대로 적나라하게 노출된다.

"안 돼! 잘못 생각했다. 수어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 엄마는 크게 실망할 거다. 내가 둘러댄 걸 밝힐 게 뻔했다. 언제 수어를 배웠냐고 물어볼 거고, 내가 입 모양을 읽어낼 능력이 있다는 걸 모두가 알게 될 뿐 아니라, 수어에 유창하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될 거다.


몸이 반으로 찢긴 것처럼 느껴졌다. 절반은 완벽하게 평범한 사람이어야 한다. 또 다른 절반은 농인이고, 수어를 하고, 음성으로 말하지 않는다. 대화 도중 사람들이 또 다른 절반을 만난다. 하지만 소개할 수 없다. 왜냐면 둘 중 하나가 거짓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쪽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건지 알아낼 수 없다."

진실 공방이 아니다. 정체성에 대한 문제이다. 장애아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 그 자체로 온전한가? 그렇지 못하다. 그렇지 않다면 장애아가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그를 이해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장애우라는 말을 쓰려고 했다가 그것이 장애인들에게 우호적인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서는 쭈빗했다. 장애인, 비장애인 이라고 쓰는 것을 선호한다고 했다. 장애인 중심의 언어다. 그런데 무엇이 온전한 것인가? 그냥 그대로 온전한 것이다. 그가 존재하는 그대로 자기 중심을 잡고 살아가면서 그의 역할을 그대로 해 나가면 된다. 물론 거기서부터 성장과 성숙과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일은 누구든 해야할 인생의 과업이다. 그것이 비록 더디고 서로 비교할 수 없는 절대적인 면이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 쉽지 않다 하더라도 말이다.


346쪽 "만약 뭔가 우리 사이에 문제가 있다고 느껴지면 싸움을 걸고 관계를 끝내버리는 대신 나하고 대화를 하는 건 어때? 우리가 함께 해결할 수 있도록 말이야."

말리와의 관계가 다시 회복된다. 파이퍼는 말리가 코다로서 장애인과 정상인 사이의 중간에서 자신을 어떻게 이해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제대로 세워가는 일에 어디까지 같이 할 수 있을지를 다시 생각한다. 

그렇다 문제는 소통과 관계, 이렇게까지 서로 소통하려고 하는데, 소통을 멀리하고 자기 길로만 가려고 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나? 왜 나는 그것을 바라만 보고 있는 거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냥 하늘만 바라볼 뿐이다. 그러나 그것에서 멈추어서는 안 되고 내가 열어야할 것들, 성장해야 할 것들이 있으니 그 길에는 중단이 있을 수 없다. 그래 가자~ 그 날이 이르기까지, 


361쪽 "계단을 내려오자마자 말리가 나를 품에 안았다.'너 정말 대단했어! 정말 대단해! 네가 다음 미래 소녀가 될 거야. 아드햐 바시를 넘어서서 말이야. 파이퍼, 네 손에 식량의 미래가 달려있어."

파이퍼는 광장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수어로 연설을 했다. 그녀가 겪은 자연주의 농법과 먹거리, 그리고 표현의 자유에 대한 생각과 그녀의 예술적 작품 포스터, 그리고 그것들을 스텐실로 만들어 광장 거리에 스프레이로 표현하고, 경찰에 체포된 일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그녀를 지원하는 모든 이들과 함께 이 광장에서 그들의 미래를 위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며 온몸으로 연설하는 것이다.


373쪽으로 끝이다. 작가가 그린 그림들, 일기 형식으로 이렇게 긴 글을 써냈다는 것이 대단하다. 그 구성력과 디테일이 남다르다. 페이지마다 그림이 가득하다. 이런 것을 그렇게 그려내려면 어느 정도의 정성과 재능이 필요했을까? 도 생각해 보았다. 

하여튼 내가 이것을 끝까지 다 읽어냈다는 것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미래의 사회, 장애인과 비장애인, 자연식 먹거리와 인공식 먹거리, 질병과 건강, 소통과 불통, 관계 그리고 사랑,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다. 당장 소통해야할 이웃이 옆에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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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너 시티 이야기 - 2020년 케이트 그린어웨이 수상작
숀 탠 지음, 김경연 옮김 / 풀빛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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숀 탠 글그림 김경연 옮김. 이너 시티 이야기. 풀빛 / 2020923일 초판 1

 

뒷표지에 있는 소개글이 책을 접근하는 데 한 빛을 던져주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서로의 그림자 속이 아니라면 우리는 어디서 살 수 있을까?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티스트 숀 탠이 인간과 동물의 본성과 도시에서의 공존을 독특한 상상력으로 그려 낸다. 악어에서 개구리까지, 호랑이에서 벌까지, 우리 사랑과 애정, 가해와 파괴에 대한 어둡고 초현실적인 탐험을 이야기한다. 동물들이 우리를 어떻게 구할 수 있을까? 어떻게 우리의 삶은 좋은 싫든 영원히 얽히게 될까?

이 책은 숀 탠 특유의 위트와 신랄함을 매우 아름답고 강렬한 글과 그림으로 아우른 걸작이다.”

숀 탠은 1974년생이다. 올해가 2022년이니까 48세이다. 숀 탠이 이 책을 2018년에 출간했으니 그때 나이로는 44세이다. 작업을 몇 년 동안 했는지 모르나 40대에 이런 작품을 낸 것이다. 그는 오스트레일리아 퍼스주의 프리멘틀(호주 서안의 바닷가 도시)에서 나고 자랐다.

혼자 그림 공부를 해서 16살 때부터 공포 소설, 공상 과학 소설에 삽화를 그렸다(1990년부터). 대학에서 미술과 영문학을 공부했으며, 1992년 국제미래출판미술가상을 수상한 뒤(18살 때)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애니메이션 <-E>,<호튼>의 컨셉 디자이너로 일한 바 있는 비주얼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쓰고 그린 작품 잃어버린 것으로 볼로냐 라가치 명예상을, 빨간 나무CBCA 명예상을, 도착으로 볼로냐 라가치 특별상을 받았다. 그의 그림책으로는 빨간 나무》《여름의 규칙》《매미등이 있다.

그의 경력이 화려하다. 혼자서 그림을 그리다서 대학에서 미술과 영문학을 공부했고, 이런 작품을 창작해 내다니 대단한 사람이다.

 

인간과 동물의 본성과 도시에서의 공존

(나는 표지부터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너 시티 라는 제목도 불가해하다. 도대체 숀 탠을 이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

141 하마 / 131 개구리 / 161 고래 / 137 /173 ? / 17 나비 / 61 달팽이 / 71 고양이? / 65 상어 / 193 여우? / 149 도룡뇽? / 187 독수리? / 179 / 207 / 85 돼지

79 / 111 올빼미(부엉이) ? / 23 / 91 물고기? / 225 인간(여자) / 217 아메리카 대륙의 소? / 165 표범, 호랑이, 치타 ? / 107 코뿔소 / 11 악어 / 199 까마귀?

(인간이 여러 날짐승과 들짐승, 물짐승? 26종 중에 하나이다.

세상의 동물들은 고유한 이유로 존재한다. - 앨리스 워커

(숀 탠이 창조를 믿는 지 모르겠다.)

 

11쪽 악어들은 팔십칠 층에 산다. (이 말부터 이해불가이다. 난해하기 그지없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악어들이 시간을 초월한 평화 속에 산다는 거다.

17쪽 나비들은 점심시간에 왔다. (나비는 무엇을 상징하는 것이지? 진짜 나비를 말하는 것일까?)

23쪽 옛날 우리는 서로 낯설었다.(하나도 모르겠다. ?)

61쪽 대중은 그들을 외설적이라고 했다.(달팽이의 사랑이라고?)

67쪽 녀석들의 창백한 배들로부터 더 많은, 더 작은 상어들이 희망을 갖고 허우적거리며 굴러 나왔다.

74쪽 터크보트는 그런 것들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오직 영원히 현재밖에 없었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여기와 지금뿐이었다. 달콤한 야옹 소리, 영혼이 담긴 초록빛 응시, 지친 하루가 끝날 때의 털처럼 가벼운 무게, 모든 불안과 고통을 치유하는 가르랑 소리, 터그보트는 맨 처음부터 분명히 그냥 고양이가 아니었다.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고양이는 고양이로 대변되는 그 무엇이다. 그 이미지와 느낌을 담은 그릇이라고 할 수 있겠다. 동물은 그렇다. 사람도 그럴까? 사람이 고양이를 보는 것과 고양이가 사람을 보는 것은 어떻게 다를까? 같을 수 있을까? 고양이는 고양이에게 대체 무엇일까? 사람은 사람에게 대체 무엇이지? 나는 나에게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나이다. 그러나 나는 내가 아니다. 나는 나에게 물음표이다.)

(물 속의 고양이 머리 위 두 귀 사이에 여자와 아이가 부둥켜 안고 있었다. 나는 처음에는 그것이 무엇인지 잘 몰랐다. 처음에는 그것이 무슨 막대기가 고양이 머리 위에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엄마와 딸 아이였다. 그들은 왜 고양이 머리 위에 있지? 파도가 휘몰아치는 바다인지? 무슨 호수인지? 아니면 강인지? 도대체 알 수 없는 물 속 고양이 머리 위에 서로를 부둥켜 안고 있다. 무슨 일인지?)

 

88쪽 말들이 그 무엇보다도 잘 아는 사실은 어떤 동물이건 인간에게 돈의 가치가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저주라는 거다.

 

87쪽 나중에, 모두가 잠들고 모든 시계가 어제와 오늘 사이의 틈새에 멈춰 서 있고 세상이 파란색이 되면 우리는 살그머니, 돼지를 데리고, 빠져 나온다. 형제자매를 만나 서로 아는 이야기든 모르는 이야기든 모두 다 말하는 돼지들의 꿀꿀꿀꿀 꽥꽥꽥꽥 소리를 들어 보라.

(이게 무슨 황당한 이야기인지? 도대체 말이 돼지 않는 이야기들을 지껄이고 있다. 숀 탠의 화법은 왜 이 모양일까? 무얼 이야기하고 싶은 거야?)

 

91쪽 우리 도시에는 바다가 없다는 걸 고려해 보자.

도시에서 물고기를 위해 남겨진 유일한 장소가 있다면, 조수나 조류가 있으면서 유일하게 훼손되지 않고 사방으로 트인 곳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하늘이다. 그렇기에 물고기를 잡으려면 가까이 가야 할 곳은 하늘이며, 도시 낚시가 어려운 이유의 절반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가장 높은 빌딩 꼭대기에 이르는 것이다.

(이 물고기의 그림이 책의 표지를 장식하고 있다. 이 물고기의 이름은 모르겠다. 금붕어 비슷하기도 하고, 그런데 숀 탠이 말하는 물고기는 물고기의 이미지를 사용하지만 물고기가 아니다. 하늘을 헤엄칠 수 있는 물고기? 아니지. 하늘 고기이다. 그래 물고기의 이미지를 이용해 하늘을 자유롭게 헤엄칠 수 있는 생명체를 그리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아니, 하늘을 자유롭게 헤엄치는 것인 새들이 아닌가? 그러면 하늘을 나는 새와 하늘을 헤엄치는 물고기는 뭐가 다른 거야?)

92쪽 그러나 도시의 하늘 낚시꾼 모두가 언제나 커다란 놈을 잡는 크고 웃기는 꿈을 갖고 있었다. 황금빛 갈돔이라든가 꼬치 삼치, 폭격 가오리, 네온 민어, 적갈색 사암 샛돔, 또는 거의 모든 종류의 하늘 연어 같은 것. 달물고기? 꿈도 꾸지 못할 꿈이었다.

95쪽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살아 있는 빛의 형상이 우리 머리 위에서 마지막 나선형을 그리고 있었다. 평평한 원반 같은 달물고기는 만만찮은 근력으로 반항하며 우리가 줄과 갈고랑이를 잡아당기는 내내 우리의 엉덩이와 발뒤꿈치를 쳤다.

96쪽 달물고기는 바로 가까이에서도 전혀 물고기 냄새가 나지 않았고 오히려 매우 가문 여름에 이어지는 축복의 비 같았다. 아니 어쩌면 달 같았다. 별 같았다. 돈 같았다.

97쪽 위기는 우리를 하나로 만들고 우리의 모든 고독과 슬픔을 잊게 한다. 이것이 달물고기의 두 번째 커다란 선물이었다.

(이건 뭐 그냥 단어의 나열이다. 이미지의 이미지가 꼬리를 물고 그냥 이어지는 것 뿐이다. 과연 숀 탠의 머리에서 나오는 이 모든 것들이 무슨 말인가? 그도 이것을 의식하고 전체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그냥 부분적으로 그리다 보니 그림이 모아져서 한 권의 책이 된 것일 뿐일까? 궁금하다. )

101달물고기는 하늘에 살지요.”

빛나고, 거룩하고, 완벽한 생명체죠. 여기, 이 세상에서는, 죽습니다. 몸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다. 영혼, 정신, , 모든 것이 죽습니다. 고객들은 달물고기를 먹고 싶어 합니다. 달물고기를 위해 많은 돈을 지불합니다. 늘 달물고기에 대한 꿈을 꿉니다. 왜냐, 고객들은 달물고기를 먹을 수 없기 때문이죠. 한 시간, 두 시간, 태양이 떠오르면, 모든 것이 사라집니다. 우리는 서둘러 여기, 그리고 여기, 작은 조각을 구해서 빨리 내놓아야 합니다. 아직은 좋을지도 모르니까요.”

(히로 씨의 말이다. 그는 음식점의 주인인가? 쉐프인가? 주인 겸 쉐프인가? 모르겠다. 그는 어쩌다 달물고기를 알게 되었을까? 학교 선생님 생각이 난다. 학교 선생님들은 이렇게 모든 것을 다루지 않는가? 책 속의 지식들, 하늘의 것들을 끄집어 내서 함께 나누어 먹을 수 있도록 식사하는 법을 가르치려고 한다. 재료는 철자와 그림과 온갖 신경 세포와 시냅스와 뉴런이다.)

102쪽 내가 얼마나 우리 가족을 사랑하느냐고? 이만큼 많이. 아무것도 우리가 바랐던 것으로 되지 않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그것이 뭔가가 되기를 희망한다. 우리는 삶이 실망스럽다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다. 비록 이유를 모르더라도 우리는 언제나 뭔가를 하느라 너무 바쁘다.

103쪽 여기에 달물고기의 세 번째 커다란 선물이 있었다. 위쪽으로 퍼부어지는 금빛 불꽃들, 초월적인 알들의 축복, 그리고 회한이 그것이다.

(그랬다. 표지의 그 물고기와 소년?이다. 뭘 말하려고 하는지 알 듯 하기도 한데, 잘 모르겠다. 어떻게 말로 표현할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림은 아름답다. 숀 탠의 생각은 그림으로 모아져 있다. 달물고기이다. 지붕 위, 아니 아파트 , 아니... 도시 속의 한 지붕 안테나들이 있는 그곳... 소년이? 달물고기를 잡고 있다. 빛나는 하늘물고기를. 그냥 하늘물고기다. 나도 모른다.)

 

107쪽 코뿔소가 다시 고속도로에 있었어.

아무도 그것이 마지막 코뿔소인지 몰랐어.(이게 뭐지? 생물종 보호를 위한 캠페인인가? )

 

127쪽 그때까지 올빼미는 결코 내 곁을 떠나지 않을 거야.

(밤을 밀쳐내고 빛 아래 살고 있는 아파트 건물? 각 방들의 환한 유리창들...밤의 올빼미들이 되었나? 모두 밤을 갈아 먹고 산다.)

 

131쪽 어느 날 오후, 이사진이 모두 개구리로 변했다.

이 이야기는 개구리로 변한 이사들을 발견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132쪽 하지만 자연스러운 질서란 없어. 모든 것이 운이고 부조리해.

자신도 똑같이 모두 실패로 이어진 어리석은 가정들을 했고,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양서류건 아니건, 연약함과 두려움, 복잡한 약점을 지닌 존재였는데도 말이다.

 

137양을 존중하라.” (한국 학교의 교실 같은 곳인데)

 

141쪽 소년은 천재다!

그들의 급진적 교육 방법이 마침내 풍자적 비난 대신 찬사를 받았던 거다. 세상을 향해 모든 문을 활짝 열 때가 왔다.

142쪽 소년은 하마를 꿈꾸었다. 오로지 하마에 대해서만 꿈을 꾸었다.

(꼭 숀 탠이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143쪽 소년이 모든 군사적 갈등을 종식시킬 정체 체제라든가, 도덕적 덕목에 상업적 지표를 부여하는 재정 제도, 종교가 없는 세상에 대해 공연 강연을 하자 여론은 더욱 시큰둥해졌다.

145쪽 하마들은 넓고 넓은 입을 벌려 그 물을 들어오게 했고, 함께 수면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156쪽 우리가 폐어였다. 폐어들의 모든 공개 포럼, 모금 행사, 의식 캠페인, 싱크 탱크, 행동 집단, 손바닥만 한 크기의 모든 비판적 논평 잡지, 모든 긍정적 정의, 그 모든 것은 우리를 더 나은 사람들로 만들려고 열망하는 뭔가가 있었다.

(이렇게 보니 폐어는 핸드폰이 아닌가 생각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잘 모르겠다.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이미지는 떠오르고 움직이는데 이 전체를 다 모아서 무엇을 말하려는지 모르겠다. )

157쪽 폐어들은 상처받은 자부심이라든가 인간 본성의 진정한 타성에 대해서는 조금도 몰랐다. 폐어들은 우리에게 말하는 방법을 몰랐다.

전선과 혈류에 이는 소우주적 진동 어딘가에, 얽히고설킨 염색체들 어딘가에, 저 모든 다른 자아들이 있다.

 

161쪽 우리는 새끼 범고래를 바다에서 데려다 하늘에다 두었다.

너무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범고래는 여전히 하늘에 있다. 다만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내려야 할지 모른다.(비행기에서 본 도시의 야경 모습, 범고래는 인공위성일지도 모르겠다.

 

165쪽 당신의 절대 호랑이를 피하지 못할 거다.

(165 표범, 호랑이, 치타 ? 생각을 했는데, 호랑이였다. 숀 탠이 생각한 호랑이는 무엇일까?)

167 모든 사람이 다 쓰지 않는 한, 거의 아무도 마스크를 쓰려고 하지 않는다. 이것이 인류의 큰 약점이다. 우리는 매우 자의식이 강하고, 쉽게 당황하고, 마치 호랑이처럼, 일반적으로 가능한 한 언제나 남부끄럽지 않게 보이고 싶어 한다.

우리는 우리가 하고 싶은 것과 남들이 우리에게 기대하는 것 사이에서 끝없이 갈팡질팡하며, 대개는 후자를 따른다.

결국은 사회적 압력이 이르는 대로 마스크를 쓰지 않는 보통 생활로 되돌아갔다.

 

173쪽 앵무새와 함께 살지 않는 사람들은 앵무새와 사는 사람들에게 거듭 묻는다.

(나는 새 중에 앵무새라고 생각하기보다 매 종류의 새가 아닌가 생각했었다. 부리 쪽의 모양으로 오히려 쉽게 생각할 수도 있었을텐데...)

인간의 언어를 다른 존재로부터 듣는 것은 참으로 기쁜 일이다.

175쪽 앵무새의 심장이 우리 뺨에서 정글의 아주 작은 북처럼 떨리고 지구가 수십억 년 된 지축을 또 한 번 돌면, 우리는 남몰래 생각한다. ‘여기, 지금,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앵무새와 함께 산다는 것, 이것은 얼마나 이상한 특권인가.’

 

179쪽 변호사와 함께 있는 곰.

알고 보니 인간의 법은 지구에서 유일한 법체계가 아니었다.

182쪽 우리의 회계 체계는 세상에서 유일한 체계가 아님이 밝혀졌다. 더 나쁜 것은 우리의 채무가 헤아릴 수 없이 심각했다는 거다. 더 더 나쁜 것보다 더 나쁜 것은, 우리가 역사에 걸쳐 축적했던 모든 자본은 인간의 상상이 일궈 낸 집단적 허구였다는 거다. 부동산, 주식, 달러, 모두. 우리가 가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곰들은 애초에 결코 우리의 소유가 아니었던 모든 것을 그만 움켜쥐고 있으라고 부탁했다.

 

187쪽 취리히에서 독수리를 본다.

 

193쪽 나는 여우야! 나는 어디든가! 나는 무엇이든 해! 여기 너의 거실에서, 너의 부엌과 욕실에서, 바로 여기 너의 침대에서! 너의 무광 아크릴 벽과 긴 털 융단 카펫에 뛰어오르며 밤새도록 달리지.

 

199쪽 돈이 모이는 곳에 비둘기도 모인다. (이것도 새이지만 비둘인줄 몰랐다.)

 

203쪽 강들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동안 모든 식물, 곰팡이, 곤충, , 도마뱀, 포유류가 빛나는 초록 세계를 재건하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올 거다. 심지어 인간들조차 천 년의 이끼와 지의류 아래에 숨겨진 경제적 교훈까지는 아니어도 풍요로운 초록 세계를 즐기기 위해 돌아올지도 모른다.

 

211쪽 유일무이한 기쁨, 말 없는 감탄, 모두 함께 만들어내는 진동, 벌 떼 소리. 그렇다. 정확히 그것이다.

212쪽 벌들은 너무 오랫동안 기다렸고, 삶은 너무 짧고, 이미 죽어 가는 꽃들은 그 비현실적인 존재를 지속할 수 없다.

213쪽 찾아온 사람들, 꽃 피는 순간, 박수갈채, , 그 모든 것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있다.

왜 우리 입에서는 언제나 꿀맛이 날까?’

 

217쪽 우리가 여기서 만드는 것들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아무도 모른다.

218쪽 아 그래, 야크, 야크, 야크가 오고 있다.

(나는 야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야크는 인도 북부, 중앙아시아, 중국 서부의 고지에 사는 소과 동물이다. 나는 아메리카를 생각했다. 아메리카 벌판의 그 무엇? 아직도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구나. 그런데 버펄로를 생각했다. 나는 그게 아메리카의 들소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아프리카의 물소라는 말이다. 그러면 아메리카의 넓은 평원에서 인디언과 함께 생각나는 그 들소의 이름이 무엇이지? 뭐야? 북아메리카 들소를 검색하니까 버팔로(buffalo) 라고 나오는데? 버팔로는 본래 아메리카 들소를 포함한 야생 들소 전체를 지칭한다고 하네.)

219쪽 사실 야크는 내가 아는 가장 현실적이고 희망적인 존재다.

 

225(이제 마지막 이야기에 도달했다. 여기까지 오는 데 너무 어려웠다. 물론 쉽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읽기 시작하고 나서 19일이니까 이틀 만이다. 무슨 이야기인줄은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이미지들이 겹치면서 쌓여지는 무슨 감흥이 있다. 그게 무엇일까?)

우리는 서로 똑같은 이야기를 한다.

우리에겐 너무 많은 질문이 있다! 하지만 태양은 우리 머리를 내리누르고 우리 등을 태우며 모든 이론과 종교를 바싹 말린다.

227쪽 왜 우리는 그토록 많이 싸웠을까? 이 높은 암석의 띠 위에서 우리는 왜 그토록 잔인하고, 냉담하고, 이기적이고, 분리되고, 외로웠을까? 다만 지금, 너무 늦었지만, 우리는 퇴적물 속에서 모두 형제와 자매들을 한데 묶고 있는 것들을 조용히 기억한다.

상어, , 악어, 올빼미, 돼지, 폐어, 달물고기, 앵무새, 비둘기, 나비, , 호랑이, , 개구리, 달팽이, 고양이, , , 야크, 범고래, 독수리, 하마, 코뿔소, 여우... 적어도 우리는 그들에게 가장 아름다운 단어를 주었다.

 

감사의 말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등장한다. 나는 이렇게 어떤 책을 내면서 작가가 자신에게 도움을 준 사람들의 이름을 일일이 나열하는 것이 참 부럽다. 영화관에서 영화가 끝난 후 지루하게 검은 자막에 영화를 만들기 위해 수고하고 도움을 준 많은 사람들과 기관들의 이름이 나열되는 것들에 대해서도 지루하지만 끝까지 본 적도 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리하였다. 이렇게 사회적인 연대 의식과 고마움을 항상 기억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나 혼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나를 있게 한 많은 사람들, 그리고 지금도 나를 돕는 이웃들이 얼마나 많은 지 모른다. 사실 아무 이름도 모르는 저 동해안의 어부, 남해안의 농부, 중부 지방의 노동자, 택배 노동자, 그리고 이제는 저너머 중국의 노동자들, 더 멀리 동남 아시아의 노동자들, 남미의 노동자들, 아프리카의 노동자들, 유럽의 노동자들, 북한의 노동자들, 오스트레일리아의 노동자들,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사실 연계되어 있다. 그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다. 그리고 태양과 온 우주와 이 지구와 먼지 하나까지도 나의 존재를 이루어는데 분자들이 되어 있다. 그렇게 나는 존재하고 살아가고 있다. 물론 하나님의 은혜로 그렇게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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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것들의 도시 일인칭 4
마시밀리아노 프레자토 지음, 신효정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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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난해한 책이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몇 번을 읽어보아야할지? 그러나 내게는 시간이 없다. 읽어야할 책들은 책상 위에 수북히 쌓여있다. 여기에 얼마큼의 시간을 들어야 할까? 이런 생각을 하며 천천히 그림책의 책장을 넘겼다.


잊혀진 것들의 도시

지은이는 이탈리아의 라비에리에서 2013년 이후 꾸준히 여러 권의 책을 내면서 작품 활동을 하는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만화 작가이다. 

표지에는 멜빵 바지를 입은 까마귀가 빗자루와 쓰레기받이를 들고 하늘을 쳐다보고 있다. 색상은 보라, 연노랑, 검정, 검은 파랑, 하양 등을 사용하였다. 움울하고 분위기가 묘하다. 까마귀의 눈이 하늘을 쳐다보는게 예사롭지 않다.


동양북스 책소개에는 "인류가 창조하고, 사랑하고, 잊어버린 모든 것에게 고하는 가장 화려한 작별. 우리에게 잊혀진 것들에 대한 기발한 상상에서 출발하는 이야기다. 책은 우리에게 잊혀진 물건들이 모여 있는 한 도시와 그 도시를 관리하는 어느 까마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작가는 환상적인 모험담과 신비로운 분위기의 일러스트에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담았다. 시선을 뗄 수 없는 신비로운 장면들과 예측할 수 없는 흡입력 있는 스토리는 독자들을 순식간에 새로운 세계로 이끌 것이다." 라고 쓰여있다.

잘 모르겠다. 도대체 모르겠다. 그러나 그림의 구성과 전개는 무언가 마음을 울리는 것이 있다. 사막-괴상한 도시 -쌓여진 집들- 창문없는 집들- 나이 지긋한 노인(까마귀? 왜지?)-달팽이- 샤(잊혀진 것들의 도시) - 까마귀(샤의 주인)-보물창고 관리-책-편지들-시계-고양이들-'말'

(책에 쪽수가 없구나.)

까마귀는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말들을 병에 담아 두었습니다. 가끔식 병마개를 열고, 멀리 날아가는 말들을 보며 조용히 눈물 흘릴 수 있게 말입니다.

왜 눈물을 흘리는 것일까? 이별의 아픔? 사라짐에 대한 아쉬움?

눈물은 작은 유령들의 먹이로 쓰였다. 아 그렇네, 작은 유령들은 무얼 상징하는 건가?

하나도 제대로 이해되는 것이 없다. 그런데도 이 책을 던져 버리고 싶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 말로 다 할 수 없지만 잊혀진 것들에 대한 아쉬움을 생각하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잊혀진 것들????

나에게서 잊혀진 것들은 무엇일까? 생각이 든다.

나의 어린 시절, 나의 친구들, 나의 부모님, 나의 추억, 나의 시간, 나의 땀과 노력, 과거의 사실들은 지금 남아있는 것들도 있지만 모두 사라지고 나의 기억 속에 희미하게 남아있기는 하지만 거의 잊혀져버렸다. 


유령들은 날카로운 비명을 질러 댔습니다. 너무나 날카로워 그들이 아침밥을 먹을 때에는 '두려움들'도 겁에 질려 옷장 안에 숨어든 채 벌벌 떨었습니다. 

두려움들도 잊혀진 것들이었다. 그래 많은 두려움이 있었다. 그런데 점점 나이를 먹어가며 담대해진 점도 있고, 사리분별을 하며 어느 것을 진짜로 두려워해야 하는 지를 알게 되면서 많은 두려움이 사라졌다. 

그런데 여전히 무의식 속에 남아있는 두려움들이 겁내는 것이 무엇일까?

유령의 정체는? 

매일 밤 까마귀는 버려진 알들을 향해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열정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림책에는 까마귀가 책을 펼치고 커다란 알을 만져가면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모습이 나온다. 

이야기에 관심을 갖지 않은 심술궂은 알이 있는데, 그들은 밖으로 나가 별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곤 했다. 알과 이야기, 까마귀와 별?

잊혀진 장난감들은 까마귀의 꿈속에 보관되어 있었다. 그 장난감들을 모두 넣을 수 있을 만큼 큰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꿈이 나온다. 꿈 속의 꿈같은 이야기이다. 꿈에 보관된 장난감들~어린시절의 추억이 담긴 장난감들이 생각난다. 그런 것들이 모두 사라졌다. 


밤이 되면 사막은 바다가 된다.

샤(잊혀진 것들의 도시)는 들꽃처럼 활짝 피어난다. 집들은 제각기 떨어져 나와 춤추기 시작했다. 그렇게 매일 밤 같은 장면이 연출되었다. 사막과 같은 삶의 현장이 밤에는 바다처럼 들꽃처럼 활짝 피어나고 요동치는 곳이 되는 것인가? 그럴지도 모른다. 오히려 사막한 삶의 순산들에서 잠시 머물러 쉬게 되면 그야말로 삶이 요동친다. 왜 살아야 하는가?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가?를 진지하게 더 고민하고 옛날의 추억들이 요동치고 그때는 그랬는데, 왜 지금은 이렇게 삭막할까? 들꽃처럼 피어난다.


동이 틀 무렵 바다는 다시 사막이 되었고, 하루 일과가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도착한 것은 밤사이 추락한 이상이었다. 이상(理想) ? 오히려 밤에 이상을 꿈꾸는 것이 아닌가? 밤 사이에 사라졌던 이상이 낮에 다시 찾아온다니? 그렇기는 하다. 모든 사람들이 낮에 그렇게 열심히 일하고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것은 이상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진짜 그것이 이상일까? 현실에 쪄들은 이상? 진짜 이상은 뭐지? 나는 왜 이렇게 독후감을 쓰고 있지?

나의 이상은 뭐야? 나는 훌륭한 작가를 꿈꾸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독후감을 올리면서 바라는 과제를 하나는 해결하고 나가게 된다. 그만큼 이상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진짜 나의 이상일까? 이상은 그렇게 현실을 바탕으로 한 단계씩 가까와지는 것일까? 아니면 어느 순간 갑자기 이상처럼 변해버리는 것일까?


이어서 그 외의 것들, 잊혀질 수 있는 모든 것들이 도착했다. 온갖 기억으로 뒤덮인 사막에서 샤의 주인은 매일 아침 아주 진지하게 선별 작업에 임했다. 

예를 들어 돈은 냄새가 고약한 물건과 함께 전부 태워 버렸고, 신발과 양말 그리고 라이터는 달팽이에게 먹이로 주었다. 

아, 그러고 보니, 샤는 잊혀진 것들의 도시이다. 현실이 아니다. 아니 현실이라고 할 수도 있다. 사실 현실은 잊혀진 것들로 이루어진 곳이다. 꿈이 잊혀지고 이상이 사라지고 현실의 막막한 벽 앞에 온갖 기억들 중에서 아주 진지하게 필요한 것을 골라내는 작업을 부지런히 하는 곳일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잊혀진 것들의 도시는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삭막한 대도시의 개인주의화된 현실의 삶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달팽이는 누구지? 느릿한 달팽이? 까마귀의 등 뒤에 엎혀있는 달팽이~


'거울'이 나온다. 거울에 비추인 까마귀는 까마귀가 아니다. 머리숱이 거의 없는 대머리에 흰 턱수염이 더부룩하게 길게 자란 안경쓴 노인이다. 안경이 두 개나 된다. 

까마귀는 거울을 발견할 때마다 돌처럼 굳어 버렸고, 하던 일을 모두 멈추었다. 

마치 거울에 비친 무언가를 보는 것 같았다. 자신조차 잊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조차 잊게 만드는 도시, 잊혀진 것들의 도시?

그러는 동안 달팽이는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을 먹어 치우고 있었다.

거울이 모래로 뒤덮이고 나서야 까마귀는 정신을 차리고, 도시의 가장 깊은 곳을 향해 달려갔다. 도시의 가장 깊은 곳? 그곳에는 작은 우물 하나가 있었다.

그는 어깨에 거울을 메고 자세를 낮춰 천천히 우물 바닥으로 내려갔다. 그곳에는 잊혀진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오직 거울 앞에서만 제 색을 되찾을 수 있었다.

까마귀는 잊혀진 사람들이 자신의 모습을 기억해 낼 수 있도록 거울을 가져다주고 있었다. 

여기서 생각해보면 까마귀는 작가이고 거울은 문학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작품을 통해서 사람들은 자신의 잊혀진 것들을 기억해 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을 기억해 내라고 거울처럼 사람에게 읽혀지는 것이고, 작가들은 그런 거울을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욕심 많은 달팽이가 모든 것을 먹어치운다.

샤에서는 한때 전쟁이 일어나기도 했고, 전쟁이 끝난 뒤, 샤에 악취를 풍기는 거대한 알이 떨어졌다. 이게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한참을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작은 행성이라고 한다. 지구를 가르키는 것일까? 멸망 직전의 지구, 깨어진 지구, 

작은 유령들이 타들어가는 행성이 고통을 느끼지 못하도록 잔바람을 일으켰고 행성의 상처를 소독하는 일에 그동안 모아 놓은 눈물을 전부 다 써버린다. 

잊혀진 것들에서 나온 눈물을 다 써버렸다. 

밤이 되자 행성은 온통 푸른빛을 띠었고, 사방으로 향기를 내뿜었다. 그런데 행성의 상처 깊숙한 곳에 폭탄이 박혀 있었다. 터지지 않은 폭탄~ 샤의 주인은 그것을 알지 못했다. 결국 폭판이 폭발하고 행성에 가득한 모든 것들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셀 수 없이 많은 물건들과 기억의 폭풍

그것은 인류가 창조하고, 사랑하고, 잊어버린 모든 것에게 고하는 가장 화려한 작별이었다. 까마귀는 폭풍 속으로 사라져버렸고, 꿈에서 보았던 노인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깨몽~ 기억과 상실, 되돌려진 기억들, 작가는 작품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아직도. 그냥 느낌이 있을 뿐이다. 창조, 사랑, 추억, 작별, 

작은 행성의 상처가 모두 치유되었다.

서둘러 고맙다는 인사를 남긴 행성은 우주 그 어딘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멀리 날아갔다.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행성, 그리고 기억은?

샤는 점점 가라앉는다. 남겨진 건 까마귀와 우물뿐. 우물 속에서 한 소녀가 밖으로 떠오르더니 그날 밤, 잊혀진 사람들은 모두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사흘 후에 샤의 주인도 발코니에서 훌쩍 뛰어 날아가 버렸다.

이제 잊혀진 것들의 도시는 영원히 잊혀지는 것일까?

그러나 여전히 샤에는 잊혀진 것들이 끊임없이 도착했고, 책의 활자들과 낙서들을 깨끗이 씻어내는 일은 계속 되었다. 

누가 이 일을 하는 것이지? 샤의 주인이 사라졌는데?

제가 기억하는 마지막 단어는 '장미'입니다.

제가 꿈을꾸고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최선을 다해 관찰하고 배울 것입니다.

그리고 잊혀진 것들을 돌볼 것입니다.

마지막 쪽은 달팽이가 벽에 붙어있는 장면이다. 

달팽이가 남아있다. 달팽이는 무엇을 말하는 것이지?

느릿느릿 모든 것을 먹어치우던 달팽이~ 


그냥 느낌만 있다. 잊혀지는 것들을 기억해야 하는가? 어딘가 쌓여지고 있는 잊혀진 것들~ 누가 그것을 기억할 것인가? 무엇 때문에? 언제 어디에서? 

매일을 살아가는 나는 잠재의식 속에 그 모든 것들을 담겨두고 산다. 언제 어떻게 표출될지 모르지만 그 잊혀진 것들로 말미암아 오늘 내가 있다. 그리고 내일을 향해 살아간다. 마지막 날에 이 모든 것들이 파노라마 처럼 펼쳐져서 내가 누구였고 어떻게 살아왔으며 그 마지막은 어떠했다는 것을 숨김없이 증언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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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야 베들레헴의 길고양이 모퉁이책방 (곰곰어린이) 38
데보라 엘리스 지음, 김배경 옮김 / 책속물고기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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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중성의 실루엣 - 최대규


데보라 엘리스의 작품들을 좋아하게 되었다. 우연히 읽게 된 <브레드위너 시리즈> 4권을 한 순간에 다 읽게 되었고, <택시소년>, <택시소년, 지지 않는 잎>도 담박에 읽었다. 

그러나 내가 데보라 엘리스에 대해서 잘 아는 것은 아니다. 그녀의 문제 의식과 실천 행동에 대해 어느 정도 인식을 하고 있을 뿐이다.

하여튼 <나는야 베들레헴의 길고양이> 를 회사 서재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는데 이 작품이 데보라 엘리스의 것인지를 몰랐다. 전혀 의식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유심히 보니 표지 왼쪽에 작은 글씨로 데보라 엘리스가 작가임을 적어놓고 있었다.

기대가 되었나? 데보라 엘리스보다는 <나는야 베들레헴의 길고양이> 라는 제목에 호기심이 생겼다. 베들레헴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상식이 있고, 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유대 땅 베들레헴에 대한 낭만적인 인상을 가지고 있는 정도이다. 물론 역사를 통해서 얼마나 많은 굴곡이 그 땅에 있었는지에 대해서 피부로 와닿지 않기에 긴가민가한다. 

일단 크리스마스 시즌 쯤에 이 책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니, 당연히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된 어떤 이야기이지 않을까? 정도에서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내 책상 책꽂이에 꽂아두었던 이 책을 2021년 말에 읽게 되었다.

표지를 유심히 보았어야 했다. 분명 표지에는 군화발과 맨발의 그림이 있다. 한 고양이가 소파 밑에 낯의 눈을 뜨고서 앞을 응시하고 있다. 몇 동의 건물들이 좌우로 자리하고, 표지의 색상은 보라색과 옅은 노란색이다. 보라색이 주조이고, 노란색이 주변을 두르고 있다.

표지 일러스트는 윤주희 씨라고 대한민국 사람이다. 표지만 보아서는 잘 모르겠다. 왜 베들레헴의 고양이를 제목으로 뽑았는지. 

차례를 살펴보면 총 25장으로 되어 있다. 허기진 하루/안전한 집/새 학년/길고양이/비밀 통로/숨어 있던 아이/첫 번째 벌칙/뜨개질의 추억/여름의 의미/두 번째 벌칙/훌륭한 연설/시끄러운 시위대/크리스마스/제자리/아이들의 노래/학부모 면담/돌을 던지는 소년/오해/남은 벌칙/총소리/사라진 벌칙/시위대/후회/기막힌 재주/행복한 나


허기진에서 시작하여 행복한 나로 끝났다.

"이 혼란한 세상에 친절을 베푸는 사람들에게"


이중성을 띤 작품이다. 

1. 주인공은 클래어이다. 그런데 클래어는 열세 살에 죽었고 고양이로 다시 태어났다. 그러니 13세의 소녀와 그녀의 환생동물인 길고양이, 이중 주인공이 등장한다.

둘이 다르지만 결국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어떤 때는 13세의 소녀의 소리로, 다른 때는 길고양이의 소리로 그러다가 길고양이로 마무리된다. 그러니 제목도 클래어가 아니라 길고양이가 맞다.

2. 베들레헴도 이중적이다. 

중동 팔레스틴의 베들레헴과 미국 펜실베니아 주의 베들레헴읻.

클래어는 미국의 베들레헴에서 살았고, 길고양이는 팔레스틴의 베들레헴에 산다.

3. 클래어의 이중성

클래어는 아주 성적도 좋고 공부도 잘하는 모범 학생이지만, 품행이 그렇게 모범적이지 못하고 아주 짖궂은 장난꾸러기이고 그런 점에서는 악한 아이다. 함부로 악하다고 말해서는 안 되지만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데 있어서 그러하다. 선생님에게도 동생에게도 그리고 특별히 장애인에게 보인 특이한 행동은 이건 아니다 싶다. 

4. 길고양이의 이중성

클래어의 환생 동물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클래어를 모조리 기억하고 그의 분신이라는 점에서 클래어의 성격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길고양이의 그 독특한 야생성, 그리고 표독성이 보인다. 그러나 나름 어린 아이에게 보이는 따뜻함이 의외로 고양이의 부드러운 털 만큼 작품 전체에 살며시 스며든다. 


작가가 말하려고 하는 바가 무엇일까?

줄거리를 잘 정리하면 좋겠는데, 중요한 문장 들만 정리해보자.

1. 허기진 하루 (나는 열세 살에 죽었고 고양이로 다시 태어났다. 지금 나는 집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낯선 동네의 길고양이다. 지금 나는 장벽 위에 앉아 있다. 나는 이름 말고는 기억하고 싶은 게 별로 없다. 그러나 그 사건만은 생생히 기억이 난다. 그날 밤, 나는 베들레헴 시내에서 멀지 않은 마을에 있었다. 

죽어서 고양이가 됐으니, 한 번 더 죽으면 사람이 될지도 모르지, 나는 마지막까지 젖 먹던 힘을 짜내 군인들 쪽으로 뛰었다. 나는 군인들의 다리 사이를 지나 집 안에서 가장 구석진 소파 밑으로 들어갔다. )


2. 안전한 집(이 작은 집에는 별다른 게 없었다. 벽은 예수님이 태어난 이래 한 번도 칠한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베들레헴 남부, 난민 캠프촌 동쪽, 공터 옆, 언덕 위 집. 이 집이 맞다니까. 여기가 동네를 감시하기에 딱 좋은 곳이야." "만약 우리가 테러리스트를 잡으면, 원래 잡으려 했던 놈을 잡든, 다른 놈을 잡든 높은 사람들은 상관하지 않을 거예요. 누구를 잡아도 우린 영웅이 되는 거죠." "테러리스트를 잡는 게 중요한 게 아니야. 사람들이 안전한 게 중요한 거지."

미칠 노릇이다. 이 불공평한 세상! 열 세살에 죽은 것도 억울한데, 이런 끔찍한 곳에 길고양이로 다시 태어나다니. 보이는 것이라곤 돌멩이뿐이고, 사방에서 총성이 울리고, 날씨는 말도 못 하게 더울 데다 다른 고양이들도 많은 곳에 말이다.)


3. 새 학년(죽은 뒤에도 내 마음을 차지하고 있는 감정이 떠올랐다. 끝까지 날 도와주는 것처럼 굴던 담임 선생님에 대한 미움. 내 죽음에 책임이 있는 사람. 내가 죽은 것은 모두 담임 선생님 잘못이다. )

책임 문제가 나온다. 아이가 13세에 죽었다. 무슨 연유로 그렇게 되었을까? 뒷 부분에 가면 그 이유가 나온다. 결국 담임 선생님과의 관계에서 교통사고로 죽었다. 그런데 그것은 길고양이 클래어의 관점이고, 정확한 이유는 부주의로 말미암은 것이다. 폭력, 교통 사고로 인한 죽음과 베들레헴의 시가지 전투에서 애매하게 죽임을 당하는 사람들의 죽음은 어떤 점에서 서로 연관된다. 


길게 뒷 이야기들을 이어서 살펴볼 수도 있겠지만 여기 이 정도에서 마무리하여야 하겠다. 

길고양이가 숨어든 베들레헴의 작은 집에 이스라엘 군인 2명이 들어와서 주변 감시와 테러리스트 검거 및 사살을 위한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 있다. 그런데 그 집에 원래 살고 있는 한 어린아이가 군인 몰래 숨어있다가 발각되었고 군인들은 이 아이를 데리고 부대로 귄환하려고 한다. 그런데 이 아이는 집을 떠나려고 하지 않고 아이의 생존을 확인하기 위해 찾아온 아이의 담임교사와 학급 친구들 사이에서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다가 결국 팔레스틴 소년투사에게 발각되어 일촉즉발의 위기에 처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클래어가 6학년 자기 교실에서 담임 선생님과의 사이에서 벌어지는 신경전으로 인해 소위 찍히는 아이가 되고 엄청난 벌칙을 넘치게 받게 된다. 그 벌칙은 [데시데라타]라는 아주 긴 시를 종이에 써서 제출하는 것이었다. 그 시는 1927년에 맥스 어만이라는 시인이 쓴 시이다. 

그런데 왠 일인가? 베들레헴의 작은 집에 숨어있었던 한 어린아이의 입에서 이 시가 계속 흘러나오는 것이다. 위험한 상황에서 아이는 선생님께 배워서 암기한 이 시를 읊조린다. 이것도 이중성이다. 클래어는 억지 벌칙 과제로 이 시를 몇 십번이나 써서 담임 선생님 책상에 제출했고, 이런 과정에서 담임 선생님의 교육 방침에 이의를 제기한 클래어의 부모님에 의해서 학교를 옮기게 되는 마지막 순간에 담임 선생님과 함께 번갈아가며 읽게 된다.


"소란스럽고 바쁜 생활 속에서도 침묵 안에 평화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선생님은 나를 쳐다보며 가만히 기다렸다. 선생님에게 소리를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대신에 나는 그 다음 구절을 읽었다. 읽은 게 아니라 그 구절이 절로 입에서 흘러나왔다.

어쩌다 보니 시가 내 머리 속으로 흘러 들어가 자리를 잡은 것이었다. 그러길 바란 적도 없는데 말이다.

"포기하지 말고 가능한 모든 사람들과 잘 지내십시오."

"어리석고 무지한 사람들의 말에도 귀 기울이십시오. 그들도 할 이야기가 있을 테니까요."

선생님도 시를 읽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자신이 하찮아 보이고 초라한 마음이 들 수 있습니다."

내가 내뱉었다. 내 목소리가 더 커졌다.

"더 위대하거나 더 못한 사람은 언제나 있기 마련입니다."

"자기 자신의 모습을 찾으십시오."

제로 선생님이 조용히 말했다.

"나이 든 사람의 충고는 겸손히 받아들이고......"

'늙은 여우 같으니.' 라고 생각하며 내가 말했다.

"대개 두려움은 피로와 외로움에서 생깁니다."

".......자신에게 너그러워지십시오."

내가 말했다. 이 망할 놈의 시도 거의 다 끝나 간다. 눈이 따끔거리기 시작했다.

"당신은 나무나 별들과 마찬가지로 우주의 자녀입니다."

"당신은 이곳에 머무를 권한이 있습니다."

"당신이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이 자존심 싸움에서 선생님이 이기도록 놔둘 순 없었다. 나는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고, 다시 그 구절을 외웠다.

"당신이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제로 선생님이 내 대신 나머지 구절을 외웠다.

"우주는 나름의 질서로 펼쳐져 있습니다."

'재수 없는 학교, 재수 없는 시.'

세상은 나름의 질서대로 펼쳐져 있지 않다. 세상은 착한 사람은 총에 맞아 죽고 나 같은 사람은 계속 살아남는 거대하고 끔찍한 쓰레기장이다.

이 학교는 나와 끝이다.

나는 끔찍한 학교와 거기 있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영원히 벗어나기를 바랐다.

마침내 도로가 나왔다. 나는 걸으면서 미친 듯이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재수 없는 시야.'

나는 차도로 나가면서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재수 없는 시나 가르치는 재수 없는 선생.'

바로 그 순간, 트럭이 날 치고 지나갔다. 


아, 클래어의 제로 선생님과 팔레스틴 베들레헴의 어린아이의 선생님도 이중성이다.

발간된 이스라엘 군사, 응징하려는 시위대, 그 중간에 어린아이, 그리고 어린아이의 선생님, 선생님은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려고 한다. 

기묘한 침묵이 안개처럼 내려앉았다. 군인들이 총을 겨누는게 보였다. 소년들이 돌멩이를 집어 드는 것도 보였다. 눈앞에 지옥이 쫘악 펼쳐지는 것 같았다.


이 위기의 순간에 길고양이 클래어는 그들의 중간 사이로 달려가서 춤추기 시작한다.

왠 고양이가?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해 춤을 췄다.

그렇게 이기적이고 나쁜 아이였던 클래어가 자기가 아닌 모든 사람을 위해 죽을 각오로 행위를 한다. 뛰어오르고, 공중제비를 돌았다. 새 잡는 시늉도 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쥐를 이리저리 굴리고 때리는 시늉도 했다. 바닥에 등을 대고 드러누워 앞발을 흔들고, 우쭉대며 걷기도 하고, 리리듬을 타며 숨겨 두었던 춤 실격을 뽐냈다.

전부 입을 다물고 가만히 나를 지켜보았다.

군인들은 총을 내려놓았고 시위대도 돌을 떨어뜨렸다.


모두들 숨을 내쉬었다. 파시마 선생님이 달려와 오마르를 감싸 안았다. 군인들은 시위대에 둘러싸인 아론과 심카를 데리고 갔다. 다들 자신을 안아 주는 품으로 돌아갔다.

우리 할머니가 봤더라면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칭찬했을 텐데.


길고양이/비밀 통로/숨어 있던 아이/첫 번째 벌칙/뜨개질의 추억/여름의 의미/두 번째 벌칙/훌륭한 연설/시끄러운 시위대/크리스마스/제자리/아이들의 노래/학부모 면담/돌을 던지는 소년/오해/남은 벌칙/총소리/사라진 벌칙/시위대/후회/기막힌 재주


25장 행복한 나

내가 세계 평화를 이룬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서로를 죽이려는 걸 막았다. 어쨌든 나는 쓸모 있는 고양이라서 기분이 좋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맥락이다.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면, 일이 계속 꼬인다.

내가 선생님을 오해했다는 생각이 든다.

선생님은 날 미워하거나 처음부터 나한테 나쁜 감정이 있던 게 아니었을지 모른다.


세상은 끔찍한 곳이 아니다.

스스로 행복하려고 노력하면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


결말이 행복했다. 그렇다고 길고양이가 다시 사람이 되지는 않지만, 


이 혼란한 세상에 친절을 베푸는 사람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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