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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로 사랑에 속아주는 버릇
류근 지음 / 해냄 / 2018년 5월
평점 :
새벽에 많은 포스팅을 하고 2시간 잠을 더 잤다.
날씨가 조금은 후덥지근하지만 집 안에 있으니 책 읽기 딱 좋은 온도인 것 같다.
어제도 일하러 나가면서 시인 류근의 에세이집인 '함부로 사랑에 속아주는 버릇'을 읽었는데 내 마음을 적적하게 하는 글들도 있고 공감가는 글들, 감동을 주는 글들도 많았다.
오늘 이 반절 정도 남은 에세이들을 읽으면서 함께 공유하고 싶은 글과 공감갔던 글을 올려보고자 한다.
나는 나처럼 갈 곳 없고, 약속할 사람 하나 없는 사람들에게 요즘같이 더운 날에는 부담스럽지 않은 류근의 에세이집을 읽으면서 주말을 잘 보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류근 시인의 일상에서 생각한 것들을 에세이집으로 담았는데 각 글마다 저자가 전하고 싶은 힘이 담겨있다.
1장 희망을 기다리는 그대에게라는 챕터에서 몇 감동을 주고 공감가는 글을 몇 편 찍어보았다.

'숙제도 의무도 아닌 것들'이라는 글을 읽으면서 나의 일상을 잠시 생각하게 해줬다.
류근 시인의 글은 나의 인생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다.
공부를 열심히 하고 그렇게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하고 나이에 맞춰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는 것은 자칫 평범해 보일지 언정, 막상 살아보니 평범한 것만큼 어려운 일이 없는 것 같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만 하더라도 누구나 다 가는 대학에 들어갈 수 있고 성인이 되면 저절로 연애를 할 수 있는 줄 알았다.
그리고 20대 후반 들어서면 결혼할 상대가 저절로 생겨서 소위 말하는 남들처럼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촌스럽지만 그것이 약간 의무처럼 느껴졌다. 요즘 자발적으로 비혼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많고 위에서 적은 대로 사는 사람들도 많다.
이런 삶, 저런 삶도 있어 내가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겠지만 아직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의무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그리고 세상의 시선도 그 범주에서 벗어나면 가만두지 않는 것도 한 몫하는 듯 싶다.
개인의 사생활에 은근 관심이 많다고 해야 할까?
다른 이야기이지만 나는 꾸미는 것, 치장하는 것에 관심이 딱히 없는 편이다.
그렇지만 나의 외적인 부분에 이런저런 이야기가 있으니 옷을 사고 꾸미는 것, 화장하는 것이 일종의 의무처럼 느껴질 때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상당히 답답하다.
노동처럼 연애를 해본 경험은 없지만, 내 나이에는 몇 번의 연애를 해봐야 하고라는 의무나 숙제처럼 생각이 들 때가 간혹 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는 나도 그리 자유로운 정신이 아니라고 느꼈다.
이 글을 읽으면서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 잠시 돌아볼수 있어서 좋았다.

'낮은 자리'라는 글은 읽고 잔잔한 감동을 받았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흘러들어 바다로 향한다. 바다는 지구 상에서 가장 힘이 쎈 곳이고 바다 위에 있는 인간은 우주에서만큼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깨닫게 해주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파이이야기라는 책을 읽고 더 그렇게 느꼈던 것 같다.
지구에서 가장 낮은 곳이 가장 센 곳이고 가장 넓은 곳인데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는 가장 힘이 없고 병들고 나약한 사람들이 산다.
하지만 류근 시인은 슬퍼하지 말라고 한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나약한 사람들은 그저 나의 시각일 뿐 낮은 곳에는 가장 깊고, 넓고 가장 힘센 것들이 산다고 생각해야 한다.
나는 예전부터 직군을 여러차례 바꾸었으나 여전히 경제적으로, 육체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자주 만나는 직업이었다.
그때 나는 그 사람들을 대하며 어떤 태도를 가졌었는가 돌이켜보았다.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내가 무시하는 태도를 가진 것은 아니었는지 내 인간성을 돌이켜보며 반성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시인의 말대로 그 모든 사람들은 다 나의 이웃이고 동무라는 것.
내일 출근할 때도 잊지 말아야지.

지난 몇 년간, 지금까지 '자존감'이라는 단어가 온라인, 오프라인, 티비에서 자주 등장했다.
사람들은 연예인의 사진만 보고 '자존감이 높을 것 같다.'라는 말을 많이 했다.
특히나 대표적으로 김연아 선수를 보고 자존감이 높다고 많이 말한다. 김연아 선수의 책이나 인터뷰 내용, 그리고 그녀가 살아왔던 인생을 보고 자존감이 높은 케이스라고 한다.
나도 동의를 하면서 자존감이라는 것은 타고 나는 것인가, 나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인가 고민을 많이 했다.
어떤 사람들은 자존감은 어렸을 때 가족환경, 학교에서 경험한 것, 후천적으로 성취한 것에 의해서 복합적으로 형성된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유전적으로 타고난 성격에 의해서 만들어진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반반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많다.
내가 생각하는 자존감은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자기자신을 비하하지 않으며 내 삶에 큰 충격이 오더라도 다시 오뚜기처럼 일어날 수 있는 힘이 자존감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대학에서 쌓은 얄팍한 나의 지식과(교수님께서 보여주신 자존감과 성격에 관한 인상깊은 다큐와 현재는 만날 수 없지만 옛날옛적 학자들의 이론 등을 통해서) 짧은 인생 경험으로 보았을 때 자존감 형성의 비율은 아주 어렸을 때 부모의 양육환경은 한 30%...?
타고난 유전적인 것은 한.. 40%. 그리고 살아가면서 나 혼자서 스스로 성취해내서 자존감을 만드는 것은 한 30%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자존감이 어떻게 생겨먹었나 이것을 따지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나도 자존감이 낮은 사람으로써 일종의 푸념이다. 자존감이 낮다고 슬퍼할 필요도 없이, 자존감을 쌓는 것이 앞서 말한 숙제가 되어서는 안된다.
시인이 말하는 것처럼 남들과 경쟁을 하느라, 눈치를 보느라, 내가 즐길 수 없는 일에 전전긍긍하는 것을 조금이라도 줄이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벌써 이번 년도도 절반이 지났는데 남은 시간이라도 내가 진정으로 잘하고 하고 싶은 일에 많은 시간과 관심을 쏟아야 하는 것이다.
이제 곧 있으면 내가 바래왔던 서포터즈 활동을 시작할 텐데 귀찮다고 말하지 말고 바래왔던 만큼 열심히 할 일이다.

어제 일을 하러 가면서 '감당하는 사람'이라는 글을 읽었는데 주말에도 더운 밖에서 일하실 아버지가 생각나서 마음이 울컥했다.
요즘은 이런 얘기가 많이 줄어든 것 같은데 작년만 하더라도 기사에 금수저, 흙수저와 같은 단어가 많이 쓰였던 것 같다.
부모가 얼마나 돈이 많고, 힘이 있냐에 따라서 계급론적인 단어가 탄생하고 젊은 사람들은 패배주의적인 시각이 많았던 것 같다. 애초에 부자들은 착함까지도 사들였다고 할 정도로 돈이 많으면 정서적으로 풍족해서 예민함이 덜하다고 하던가, 그래서 자녀 양육을 할 때도 소위 말하는 자존감이 높은 아이로 커갈 가능성이 높다는 식의 얘기를 자주 들었다.
하지만 대기업의 갑질논란에서 재벌 자녀들의 태도나 사건들을 들여다 봤을 때 돈이 전부가 아닌 콩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나는 것 같다.
한 영재가 나오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육체적으로 장애가 있는 부모에게 감수성이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풍부한 천재아이가 나온 것을 캡쳐로 본 적이 있는데 부모님은 돈이 많거나 권력이 센 사람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자녀에게 무너지지 않는 신뢰감과 믿음, 사랑을 주었고 그 신뢰와 사랑으로 그 아이는 공감능력이 아주 뛰어난 아이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때론 공감능력은 지능과 직결되고 삭막한 세상을 살아갈 때 매우 중요한 인간의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그 방송 캡쳐를 보며 돈과 권력이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류근 시인이 어린 나이에 가난한 아버지를 생각하며 대답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마음이 조금 짠했다.
나는 어린시절 밥을 굶을 정도로 가난하지는 않았지만, 항상 언니의 병원비에 쪼들리며 돈 때문에 싸우는 부모님을 바라보며 큰 터라 비싼 거, 없어도 살 수 있는 것을 보며 사달라고 조르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리고 어린 시절의 영향 때문인지 지금도 그렇게 약간의 짠 내를 풍기면서 대체로 만족해하며 사는 성격이다. 아니면 아직도 넉넉하게 소비할 주머니가 아니던가..
류근 시인이 말하듯 부모라는 존재는 돈 있고 능력을 필수로 갖춰야 하는 존재가 아니다.
이 생각을 갖기까지 고백하건데 약간 시간이 걸렸다.
돈 없고 능력은 없는데 그것에 열등감을 느끼며 자녀에게 신뢰와 사랑을 표출하지 않아 정서적으로 부족하게 키운다면 그건 문제가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자식은 당연히 부모가 언제나 내 옆에서 있어줄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요즘들어 드는 감정인데 확실히 잔인한 사회생활에 나와 돈을 벌어봐야 부모님의 위대함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이 못난 자식을 키우려고 몇십년간 고되게 일을 하셨는지.. 지금도 일하고 계신다는 게 마음이 더 짠하다.
올해 처음 어버이날에 편지와 현금 약간을 보내드렸는데 그 돈으로 모자와 옷, 신발을 샀다고 자랑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마음이 되게 찡했다.
아버지가 내가 드린 소액으로 산 신발을 보며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마음도 들었다.
시인의 말처럼 그런 부모님의 뼈와 살과 피를 밟은 자리가 바로 나의 현재와 미래인 것이다. 내가 자녀를 낳으면 자녀도 현재 나와 같은 자리에 있는 것이고 그것은 바로 꺼지지 않는 우리 삶의 추동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부모님에 대한 큰 감사와 존경, 말로 직접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을 류근 시인의 글을 통해 큰 감동을 했다.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