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많은 이들이 (그들 중 대다수는 내 옆에서 죽었지만) 증오와 분노, 살육과 말살 등은 대상들과는 관계가 없음을 예리하게 깨닫기 시작했다. 아니, 목적이든 대상이든 철저하게 우연이었다.

가장 원초적이고 과격한 감정들조차 적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그 피비린내 나는 행위는,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 미쳐 날뛰고 죽이고 말살하고 스스로 죽어 버리려는, 분열된 한쪽 영혼에서 발산되는 것일 뿐이었다.

사람들의 대열이 커다란 동굴로 들어가듯 여신에게 집어삼켜졌다. 땅바닥에 웅크리고 앉은 여신의 이마에서 표식이 빛났다. 여신은 어떤 꿈에 지배당하고 있는 것처럼, 두 눈을 감았고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갑자기 그녀가 비명을 질렀다. 그러자 이마에서 별들이, 수많은 반짝이는 별들이 튀어나와서 멋진 활모양과 반원을 그리며 검은 하늘로 날아 올라갔다.

그 별들 가운데 하나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면서 곧장 나를 향해 날아왔다. 마치 나를 찾아오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굉음을 내며 수천 조각의 불꽃으로 쪼개져서, 나를 솟구쳐 올렸다가 땅으로 내동댕이쳤다. 우레와 같은 소리를 내면서 세계가 내 위에 무너져 내렸다.

깊이 잠들면 잠들수록 무엇인가가 나를 끌어당기고 있으며, 내가 그 힘을 따라가고 있음이 격렬하게 느껴졌다.

붕대를 감는 것은 몹시 아팠다. 그 이후에 내게 일어났던 모든 일이 아팠다.

가끔 열쇠를 발견해서 내 자신의 깊은 곳으로, 어두운 거울 속에서 운명의 형상들이 졸고 있는 곳으로 내려가면, 그 어두운 거울 위로 몸을 굽혀 내 모습을 비춰 보았다. 이젠 완전히 내 친구, 나의 인도자인 그와 똑같이 닮은 모습이다.

지식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세계를 인식하는 방법은 자아가 끊임없이 낡은 껍질을 벗고 새로 태어나는 방법뿐이다.

내 세계에 조금만 위협이 와도 금방 죽을 것처럼 공포에 질리는 게 아니라, 새가 알을 깨고 나오듯 사력을 다해 껍질을 부수고자 해서 극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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