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이후 주택을 둘러싼 논의는 고령화와 인구감소, 소자녀화 등 당시 일본에 불어닥친 급격한 사회적, 인구학적 변동에 의해 추동되었다는 점에서 과거와 달랐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건축가들은 다음의 세 가지 방향에서 전후 주택의 규범을 근본적으로 해체하고자 했다. 첫째, nLDK로 수렴되지 않는 주택 평면의 다양화, 둘째, 공유 공간의 확보를 통한 공동체성의 함양, 셋째, 도시를 향한 개방성 확보가 그것이다.

SANAA의 주택은 기능주의에 근거해 엄밀하게 구획된 nLDK 평면을 해체하고, 초경량 철판과 가느다란 기둥, 투명/반투명/다공성 재질의 벽면을 도입해 방과 방, 주택과 도시,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의 ‘유연한 경계’를 구축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통상적으로 nLDK의 대안이라면 방과 방, 방과 거실의 경계를 없앤 원룸 타입이 고려되지만, 매화숲 집은 그 반대의 방식을 택한다.

모리야마 하우스는 독신자들이 공동 거주하는 일종의 하숙집이다. 니시자와는 상자 형태의 주택 안에 방과 거실, 부엌을 배열하는 대신, 각각의 주거 기능을 여러 개의 작은 볼륨의 건물로 나누어 배치한다.

SANAA가 표준화된 nLDK를 해체함으로써 다원화된 주거 양식에 대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했다면, 야마모토 리켄은 주거 공간 내 공용 공간을 확보함으로써 주택의 밀실화를 극복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야마모토의 호타쿠보 집합주택(1991)은 기존의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의 구분을 넘는 중간적 개념인 ‘공용 공간’을 도입한 공영주택이다.

호타쿠보 집합주택에서 야마모토는 건물을 일괄적으로 남향으로 배치하는 기존의 방식 대신, 두 동을 서로 마주 보게 배치함으로써 동 사이의 외부 공간을 중정으로 확보했다.

야마모토가 ‘공용 공간’의 개념을 도입해 주거 공동체의 활성화하는 데 관심이 있었다면, 아틀리에 바우와우는 도시에 대한 주택의 개방성을 강조했다

아틀리에 바우와우를 일약 국제 건축계의 스타로 올려놓은 것은 실제 건물 설계가 아니라, 『메이드 인 도쿄』(2001)와 『펫 아키텍처 가이드북』(2001)으로 대표되는 일본의 도시 공간에 대한 일종의 인류학적 조사 프로젝트이다

건축가 하라 히로시는 1950년대 일본 지성계에 큰 영향을 끼친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의 참여문학론 테제 「문학이란 무엇인가?」(1948)를 인용하며 "건축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의 질문은 건축이 재난 복구에 어떻게 개입할 것인가에 관한 실천적 차원의 고민을 넘어, 건축의 존재론과 사회적 역할, 앞으로의 방향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촉구했다.

3·11 직후 건축계의 대응은 즉각적이고 적극적이었다. 재난 발발 불과 이틀 후부터 일본 건축학회가 재해조사부흥지원본부를 설치해 건조 환경의 피해 상황에 대한 전수 조사에 착수했다.

3월 말에는 이토 도요, 구마 겐고, 세지마 가즈요, 야마모토 리켄, 나이토 히로시(b. 1950) 등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유명 건축가들이 ‘기신노카이’(歸心会)를 결성하고 모금과 자원봉사를 통해 가설주택 단지에 집회소를 제공하는 〈모두를 위한 집〉 프로젝트를 개시했다.

이러한 열의와 헌신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건축가는 정부 차원에서 진행된 공식적인 피해 복구와 부흥 사업에서 사실상 배제되었다.

재난 복구는 건축가가 아닌 정부와 건설업자들의 몫이었다. 건축가라는 존재가 자기표현에만 집착하고 정부 방침에 사사건건 반대만 하는 불필요하고 불편한 존재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커뮤티니 케어형 가설주택의 대표적인 예로 도쿄대학 오쓰키 도시오 교수팀이 동 대학 고령사회종합연구소와 함께 제안한 헤이타시의 가설주택을 들 수 있다.

개별 건물의 설계자를 넘어 일본 사회의 다양한 소프트웨어적인 문제에까지 개입하는 생활 개조자이자 사회 개혁가로서의 건축가의 역할은 이토가 3·11 부흥에 참여한 경험을 토대로 쓴 『‘건축’으로 일본을 바꿔라』의 제목에서 선언적으로 나타난다

무지(MUJI)의 예술 감독이기도 한 하라 겐야는 하우스 비전 개막식에서 일본을 비극적인 재난 국가가 아니라 고령화, 저성장, 인구감소, 재난 등 전지구적인 문제를 다른 나라보다 먼저 경험한 성숙 국가로 묘사했다

고령화나 인구감소, 재해를 단순한 재앙이 아니라 새로운 기회로 파악하고, 성숙 사회에 맞는 상품과 기술, 산업을 선도적으로 발굴함으로써 인류의 미래 주거를 제시하고자 했다.

하우스 비전은 일본뿐 아니라 중국과 동남아시아 각국을 포함한 범아시아 건축 네트워크를 표방하며 "거대한 아시아의 시대"를 내세웠다.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온 디자인 파트너스(ON design partners)의 니시다 오사무(b. 1976)와 나카가와 에리카(b. 1983)가 설계한 요코하마 아파트(2007)다.

독신인 젊은 예술가 네 명이 함께 거주하는 요코하마 아파트는 필로티 위에 올린 2층을 사적인 주거 공간으로 확보하고, 개방된 1층 중정은 다목적의 공유 공간으로 활용해 주민 간의 친교를 구축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여전히 그 피해 규모조차 가늠할 수 없는 방사능의 위험에 노출된 피해지의 실상은 외면된 채, 과거 히로시마가 그랬던 것처럼 후쿠시마도 일본 부흥의 상징이 되었다.

하디드는 인터뷰를 통해 문제의 본질이 자신의 디자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외국인이 일본의 상징물을 짓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일본 건축계의 배타성에 있다고 성토했다.

일본 건축가로서는 예외적으로 하디드를 지지했던 이소자키는 애도문을 통해 공개적으로 조의를 표했다.

건축사학자 이가라시 다로는 도쿄 올림픽 주경기장을 둘러싼 논란과 구마의 당선안의 핵심을 ‘일본회귀’(日本回帰)에의 열망으로 읽어냈다.

목조 주택의 특징인 개방적인 툇마루와 흙바닥은 근대주택의 폐쇄성과 고립성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여겨졌다.

구마의 범아시아주의에는 은연중에 일본 중심주의가 자리한다. 일본이 아시아의 변경에 위치하기 때문에 중심부 문화의 정수를 응축해서 보존한다는 식의 발언이 그러하다.

일본 건축가들이 전통으로부터 영감을 구한 것은 결코 새로운 일은 아니지만, 전통의 배타적인 우월성에 대한 강조는 21세기 들어 강화된 일본 사회의 배외적 민족주의 정서와 같이 간다.

‘작고’ ‘약한’ 일본의 목조 건축이 결국 ‘크고’ ‘강한’ 서구 모더니즘 건축을 능가하고 대체할 것이라는 구마의 주장에서 국내외적 위기 속에서 위축된 일본 건축의 입지를 강화하려는 절박함마저 감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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