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캡슐은 전체 메가스트럭처의 일부분으로 기능하는 데 반해, 이토의 ‘도시 로봇’은 프레임에서 떨어져 고립된 상태로 존재한다.

모체와 분리된 캡슐은 오로지 빛으로만 가득 찬 온전하게 무용한 공간이다.

나는 가짜 영웅주의를 싫어하고 자기 영웅화를 원치 않는다

「기쿠타케 씨에게 묻는다」에서 이토는 기쿠타케를 대신할 자신의 새로운 멘토로 미학적인 주택 설계로 유명한 시노하라 가즈오(1925-2006)를 언급했다.

시노하라는 수학의 카오스 이론을 인용하며 도시의 본질을 혼돈 상태로 규정하고, 건축가의 일이란 도시 전체에 인위적인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규모의 건물을 질서 있고 일관성 있게 디자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택이야말로 "건축가의 사상과 조형의 전체 시스템이 응축적으로 표현"된 분야이며, 결코 도시와 무관한 것이 아니라 "도시의 미래를 생각하는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신주쿠 외곽 주택가에 자리한 U HOUSE는 복잡한 도시에서 벗어나 자연과 가깝게 지내며 애도와 치유의 시간을 갖고자 하는 건축주의 바람에 따라 외부로부터 차폐된, 고립되고 내향적인 공간을 지향한다.

중정을 둘러싼 U자형의 미분화된 긴 복도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빛과 그림자가 투사되는 빈 스크린 역할 외에는 아무런 기능을 갖지 않는다.

이들에게 도시는 상업주의와 관료주의로 얼룩진 부패와 타락, 카오스의 공간이며, 외부와 단절된 자족적인 소우주로서의 주택이 도시의 악으로부터 개인의 자유와 사생활을 위한 마지막 보루로 여겨졌다.

안도가 노출 콘크리트의 미적 가능성을 일관성 있게 탐색하며 외부와 차폐된 내향적인 건축을 지속한 것에 반해, 이토는 다양한 하이테크 재료를 도입한 가볍고 개방적인 건축으로 선회한 것이다.

이토는 1970년대를 지배했던 부정과 저항의 기획을 폐기하고, 대신 1980년대의 변모한 도시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기로 했다.

즉물성과 표피성에 대한 이토의 감각은 샤넬, 루이뷔통, 구찌 같은 고급 브랜드명이 끝도 없이 나열되며 나른하고 매끈한 상품 세계에 대한 긍정과 욕망을 당대의 시대정신으로 포착한 『어쩐지, 크리스털』과 공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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