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년 개최된 CIAM 회의에서 팀텐(Team X)의 젊은 건축가들은 이동성과 유연성, 성장과 변화를 테제로 내세우며 경직된 모더니즘의 대안을 제시했다.

개인의 자유와 자발성, 다양성이라는 시민사회의 이상 속에서 모빌리티를 강조했던 스미슨과 달리, 모빌리티에 대한 단게의 관심은 사람과 물류, 정보의 흐름을 극대화할 수 있는 효율적인 시스템 구축에 있었다.

단게의 관심은 동시대 건축가인 프라이스나 뉘베느시와는 달리, 개인의 자유와 유희, 해방보다는 국가라는 거대한 조직을 중심으로 한 국토개발 및 관리 모델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1970년 오사카 만국박람회는 단게에게 정보화사회 건축의 모델을 구현할 절호의 기회를 제공했다. 그러나 박람회를 기점으로 국가와 건축이 미래의 비전을 공유했던 시대는 종언을 고했다.

일본 건축이 오랫동안 염원했던 ‘국제적 동시대성’을 메타볼리즘이 획득한 데는 영국의 건축 평론가 레이너 배넘을 비롯해 서구 연구자들의 공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메타볼리즘은 ‘유토피아’와 ‘파국’으로 정의되는 냉전 시대의 독특한 양가적 감수성을 보여준다

1950년대 후반 CIAM의 헤게모니가 붕괴된 국제 건축계의 동향

1950년대 일본 건축계에 등장했던 전통과 정체성에 대한 논의, 즉 일본 전통논쟁의 영향

패전과 폐허를 딛고 막 고도성장기로 들어선 전후 일본 사회의 특수한 맥락

흔히 메타볼리즘은 메가스트럭처 운동의 아시아 분파로서 논의되지만, 이들의 디자인 방법론은 크게 메가스트럭처적 접근과 그룹 형태(group form)적 접근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메가스트럭처는 단순히 규모의 문제가 아니라, 개개인의 자유를 극대화하면서도 혼란한 도시에 질서를 부여하는 시스템 구축에 관한 고민

구성 형태가 기능주의에 근거한 전형적인 모더니즘 도시계획

메가 형태는 도시의 여러 기능을 거대한 프레임에 집적시킨 메가스트럭처

그룹 형태는 부분과 전체의 구별과 위계가 없는 보다 유연하고 역동적인 도시 모델

메타볼리스트들의 공통된 관심은 도시 인프라가 집적된 인공대지에 관한 것

1960년 초반 거대한 인공대지가 메타볼리즘 건축을 대표했다면, 1960년대 중반부터는 캡슐이 메타볼리즘의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오직 건축가와 디자이너만이 위기의 순간에 낙관주의자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들이야말로 인류가 모두 사라진 후에도 오래도록 남을 무언가를 창조하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 우리는 폐허 속에서 새로운 창조로 이어질 무언가를 만든다.

가와조에는 기계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게 된 미래 사회에서 건축가는 조개처럼 가만히 꿈꾸는 일만이 남아 있다고 고백한다.

‘조개’의 메타포는 전체주의와 전쟁에 대한 저항과 함께, 일본인을 전쟁의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로 보려는 전후의 정서를 나타낸다

고마쓰와 가와조에가 그린 최후의 풍경은 전후 사회가 누리고 있는 풍요와 성장이 영원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일종의 경고로 읽힌다.

메타볼리즘의 인공대지 구상에서 방재(防災)는 가장 중요한 고려 사항 중 하나였다.

〈고토만 계획〉을 평한 가와조에 노보루는 "지면이 가라앉아도 이 광대한 플랫폼은 물에 뜰 것이다"라고 설명하며, 그 생존 건축으로서의 면모를 강조

지면에서 수 미터 떨어진 플랫폼 위에 마을 전체를 올려놓은 〈농촌도시〉는 범람의 순간에 마지막 보루가 된다

구로카와는 우주 시대의 생존 논리를 정보화사회의 생존 투쟁으로 치환했다.

버크민스터 풀러의 지오데식(geodesic) 돔

영국의 건축그룹 아키그램 역시 캡슐의 공기막 구조물을 통해 환경오염과 핵전쟁 등으로 인한 위기로부터 개인의 안전과 자유를 지키는 데 관심

케네스 프램튼은 캡슐 구조물에 대한 열광을 최소 주거에도 못 미치는 잔인할 정도로 좁은 공간에서 나르시시즘적인 제스처를 연기하는 데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방공호 건설 붐은 단순히 냉전 체제가 조장한 불안과 공포의 산물로만 볼 수는 없다. 방공호는 잉여의 공간과 물자를 가능케 한 전후의 풍요를 반증하는 것이기도 했다.

프랑스 철학자 기 드보르는 전후의 방공호 붐을 핵전쟁의 공포와 소비사회의 풍요가 공존하는 냉전 체제의 산물로 설명했다.

메타볼리즘 캡슐과 방공호는 풍요로운 소비사회의 꿈과 암울한 생존 건축으로서의 측면이 공존한다는 점에서 둘 다 ‘유토피아’와 ‘파국’으로 정의되는 냉전 시대의 양가성을 체현한다.

‘신메타볼리즘’을 표방한 젊은 건축가 후지무라 류지(b. 1976)는 건축가의 도시적, 사회적 역할을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메타볼리즘의 DNA를 계승하는 길이라고 여겼다.

전위와 국가 권력의 대결,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경합이라는 도식 속에서 박람회 건축이 보여준 다양한 비전과 실험은 오랫동안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박람회 총괄 건축가를 맡은 단게는 만국박람회의 목표가 정보화사회에 적합한 건축과 도시의 새로운 모델을 제안하는 데 있음을 분명히 했다.

오사카 만국박람회는 바로 이 미래학 붐의 중심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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