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이 구조물로 남아 유지되면서 현재의 활동을 지원해준다는 점이 나무 같은 존재의 위대함이다.

교양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 매우 큰 힘이 되어준다. 나무에게 있어서는 흙이나 물 같은 존재이며, 우리에게 있어서도 신체를 지탱해주고 지켜주는 것이 교양이다.

건축은 자칫 자본주의의 앞잡이가 되기 쉬운 위험한 학문이다

막스 베버가 말하는 경계인은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기 때문에 어느 쪽을 상대해도(도시를 상대하건 촌을 상대하건) 비판적인, 다소 심술궂은 견해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이다.

경계를 경계라고 인식하려면 경계의 양쪽을 모두 경험해봐야 한다.

경계를 넘어 이동하면서 이쪽에서 저쪽을, 또 저쪽에서 이쪽을 바라보지 않으면 경계를 경계로 느낄 수 없다.

아버지가 성실한 직장인이고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는 고지식한 분이어서 그에 대한 반발로 막스 베버에게 이끌렸는지도 모른다.

막스 베버는 프로테스탄티즘의 금욕과 자본주의의 탐욕이 혼재된 개념을 멋지게 발굴하여 논리화했다. 마찬가지로 모더니즘 건축 안에도 그런 혼재된 개념은 깃들어 있었다.

장식을 배제한, 철저하게 금욕적인 하얀 벽이 존재하는 한편, 관능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역동적이고 유동적인 공간이 존재한다.

르코르뷔지에나 미스의 건축적 매력은 이 혼재된 개념에서 유래한다. 모더니즘 건축은 순수하고 청순한 디자인이 아니라 비틀리고 혼재된 개념의 디자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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