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글 자체를 들여다보자. 혐오감과 희열감euphoria의 어울림은 포스트모더니즘의 고유한 특성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의 교본으로 삼을 수 있을 정도다. - P77

「정크스페이스」는 이 책들의 다른 부분에서는 결코 찾을 수 없는, 그리고 결코 멈추지 않는 ‘공연‘을 선사한다. 그것은 이미만들어진 공간의 공연으로, 현대 도시의 공간뿐만이 아니라전 우주의 공간, 무엇이든 다 될 수 있는, 무정형의 마그마로녹아버리기 일보 직전에 있는 이 모든 공간들이 수행하는 공연이라 할 수 있다.
PR - P77

이 글은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잔여remainder(변증법적 합성 이후에 남는 것들 혹은 정신분석학적 치료 이후에 남는 찌꺼기)로서의 쓰레기 junk에 대한 개념으로 시작한다. - P78

콜하스가 의미한 것은 바로 영구 혁신이었다. 옛것을 부수고동시에 그것을 끝없이 재활용한다. 한때 위대한 건축가의 고귀한 (심지어는 과대망상증적인) 소명이 바로 이런 과거의 파괴와 재활용으로 축소되었다. - P81

접두사 re-로 시작하는 동사는 정크스페이스를 양산한다..."
이것은 분명 원본original의 상실이며, 그와 더불어 역사도 사라진다. - P82

이제 우리는 (로절린드 크라우스Rosalind Krauss가 바타유Georges Bataille에게서 끌어와 개념화한) 형식 없음the formless의 영역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형식 없음도 여전히형식이며, 형식이 없는 것 또한 하나의 유형이다." - P82

컴퓨터를 활용하는 "비정형 건축가blob architects"로 통하는 건축의 새로운 세대(그레그 린Greg Lynn, 벤 판베르컬Ben van Berkel)가있다. 그들은 ‘어떤 것이라도 좋다‘고 외친다. 하지만 형식 없음은 이런 비정형 건축가의 슬로건과는 다르다. " - P83

여기에서 사이버펑크가 참조점이 될 수 있는데, 사이버펑크 역시 콜하스와 비슷하게 오직 모호하게 냉소적인 방식으로만 자기 자신과 그리고 자신이 속한 세계)의 과잉excess을 탐닉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사이버펑크는그다지 묵시록적이지 않다. 그보다는 발라드 James Ballard, 즉복합적인 "세계들의 종말을 그려내는 발라드에 가깝다고 할수 있다. - P85

누군가 한때 이렇게 말했다. 자본주의의 종말을 상상하는 것보다 세계의 종말을 상상하는 것이 쉽다. 이제 우리는 이 말을 수정하여 이렇게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세계의 종말을 상상함으로써 자본주의를 상상하자. - P86

어떻게 근본적 차이를찾아낼 것인가? 어떻게 하면 역사에 대한 감각을 다시 소생시킬 수 있을까? 그리하여 역사가 우리에게 시간의 신호를, 타자성의 신호를, 변화의 신호를, 그리고 유토피아의 신호를다시 한 번 전송하게끔 할 수 있을까? - P87

문제의 해결은 간단하다. 바람 한 점 없는 포스트모던적 현재를 탈출하여 실재 역사적 시간 속으로, 그리고인간에 의해 창조된 역사 속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정크스페이스」는 역사로의 탈출을 위한 기획이며, 또한 그렇게 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라 할 수 있다. - P87

이 글은 공상과학소설의 장르적 특성이 두드러진다. 즉 부재하는 미래속에 내재된 한 가지 파괴적인 성향을 선택하여 그것에 초점을 맞추고, 이를 극단적인 방식으로 확대하고 확장하는 것이다. - P87

이 글이가지고 있는 디스토피아적인 겉모습은 후기자본주의라고 하는 솔기조차 보이지 않는 매끈한 뫼비우스의 띠에 균열을 낼수 있는 날카로운 칼날이며, 일종의 푼크툼punctum 내지는 지각 강박perceptual obsession 같은 것이다. - P87

역사적 상상력이 독사에 물린 것처럼 마비되고 유폐되어버린 상황에서도 우리는 대문자 역사를 가로막고 있는 견고한 장벽을 돌파해야 한다. - P88

하지만 유토피아를 꿈꾸는 것은 고사하고 미래를 향해 돌진하여 [포스트모더니즘적] 차이를 다시 정복할 수 있는 방법은 보이지 않는다. - P88

한 가지 방법이 있다면, 글쓰기를 통해우리 자신을 미래 속에 각인시키고 뒤돌아보지 않는 것이다. - P88

[콜하스의] 문장들은 이런 반복적 두드림의 굉음이며, 공간의 공허함을 향해 날리는무지막지한 공격이다. - P88

그러한 문장들의 에너지는 이제 힘찬돌진과 신선한 공기를, 안도의 희열을, 시간과 역사 속으로그리고 하나의 단단한 미래 속으로 다시 한 번 돌진하는 오르가슴을 예언한다. - P88

『쇼핑 안내서』전체의 주제라 할 수 있는 상업의 세계적 변화 과정에 대한좀더 절제되고 학문적인 글의 말미에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결국 쇼핑 말고는 할 일이 별로 없을 것이다." - P89

우리가 붙잡혀 있는 이 세계는 사실 그 자체로 쇼핑몰이다. 바람도 통하지 않는 이 밀폐 공간은 이미지를 진열하기 위해 파놓은 지하땅굴 네트워크에 지나지 않는다. 정크스페이스라는 바이러스는 사실 쇼핑 바이러스인 것이다. - P89

마르크스는 상품 이론의 "형이상학적 미묘함과 이론적 세부 사항"이 상품의 구매자들(쇼핑하는 사람들)로부터 노동관계를 은폐시키기 위한 방법이었음을 명확히 꿰뚫고 있었다. - P90

서구 마르크스주의의 시작을 알리는 기념비적 저서 『역사와 계급의식Geschichte undKlassenbewußtsein』에서 게오르크 루카치는 서구 철학사라는좀더 큰 틀 위에서 상품에 대한 분석을 수행하는데, 그는 상품화 개념을 재정초하여 정신적·물리적 사물화reification라고하는 일반적인 사회적 과정의 중심에 위치시킨다. - P90

즉, 단순한 생계 유지나 사회적 재생산을 위한 소비가 아닌 사치품의 판매와 소비가 일반화된 것이다. 이때 상황주의자들과 이론가 기드보르Guy Debord는 상품화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창안해낸다. 그들의 말을 그대로 옮기면, "상품 물신주의의 최종 형식은 이미지다." 이 명제가 바로 그들이 발명한 소위 스펙터클사회spectacle society 이론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 P91

우리가 이미지를 구매한다는 개념 자체가 이미 상품 개념에 대한 유용한 낯설게 하기라 할 수 있는데, 그보다는 이미지를쇼핑한다고 말하는 편이 훨씬 더 유용할 것이다. - P92

덩샤오핑의 체계 내에서 ‘부자가 된다는 것‘은 실제로 돈을 많이 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차라리 거대한 쇼핑몰을 건설하는 것에 더 가깝다. - P93

쇼핑은 하나의 공연이다. 돈과는상관없는 공연이다. 중요한 것은 적당한 공간이며, 그 공간이바로 정크스페이스인 것이다. - P93

"쇼핑은 우리에게 남아 있는 공적 활동의 마지막 형식이다." - P97

이는 쇼핑이 21세기의 사회적 관계를 구성하고 우리의 삶을조직화하는 궁극의 원리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 P97

쇼핑은 우리의 정치적 삶을 조직화한다. - P97

우리 삶의 가장 사적인 부분까지자본의 감시하에 종속시키는 행위가 바로 쇼핑이며, 또한 쇼핑을 통해 우리는 지배와 종속의 관계를 위장하고 은폐하며주체의 자율성을 주장한다. - P97

아울러 쇼핑은 가장 강력한 정치적 힘이자 무기이며, 우리가 자본에 대항하여 사용할 수 있는가장 효과적인 저항의 수단이기도 하다. - P97

쇼핑은우리의 사회적·공간적 경험마저도 조직화한다. - P97

우리는 쇼핑을 통해서만 도시를 경험한다. 쇼핑을 할 수 없는 공간은 도시가 아니며 반면 쇼핑을 할 수 있다면 그곳이 곧 다운타운이고 시내다. - P97

그러면 어떻게 쇼핑은 도시를 자신의 모습대로 조직화하고 변화시키는가? 2002년 발표된 콜하스의 아방가르드적 에세이 「정크스페이스」가 답하고자 했던 것이 바로 이문제다. - P98

이 글을 통해 콜하스는 근대화 과정 속에서 펼쳐지는인간의 창조적 활동의 흔적을 추적하면서, 그 이면에 감추어진 깊은 주름들을 파헤친다. 그리고 그 주름 속에서 콜하스가발굴해낸 것이 바로 정크스페이스다. - P98

바로 이 널빤지 뒤로 가려진 공간 그리고 그 위에 붙여진 푯말이 정크스페이스의 기표가 된다. - P98

그런데 이 기표가 지시하는 것이 모더니즘적인 의미에서 도시 군중 속의 소외나고독 혹은 실존적 죽음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변화와 혁신의 표시다. - P98

콜하스는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모든 물질적 구체화는 잠정적인 것이다. 자르기, 구부리기, 찢기, 코팅하기. 건축은 이제 양복을 짓는 일과 다름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새로운 종류의 부드러움을 획득했기 때문이다." - P99

이는 건축이후기자본주의의 유동성과 결합했음을 의미한다. 마르크스의말처럼 "모든 단단한 것은 공기 속으로 날아가버리고 쓰레기와도 같은 찌꺼기만이 남는다. - P99

즉, 건축이 건축을 벗고 후기자본주의의 유동자본과 결합하는 순간 건축은 정크스페이스가 된다. - P99

건축이 기념비가 되는 것을 포기할 때, 그것은 과거와 미래를상실하고 항구적 현재 속에 유폐된다. - P99

이 항구적 현재 속에서공간은 건축과 결별한다. 공간이 자율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 P99

이제 남은 것은 그러한 공간의 끊임없는 유희와 재배치다. 공간 자체가 유동자본의 일부로 편입되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언제나 손쉽게 얻을 수 있으며 또한 버릴 수 있다. - P100

모든 공간은 이제 변화의 과정 중에 놓여 있으며 또한 해석적 깊이를 상실한다. 깊이를 상실한 공간은 원근법이 사라진 공간이며 따라서 표피적인 공간이다. - P100

또한 모든영토는 그것이 실재이건 가상이건 관계없이 모두 잠정적인것이 된다. 공간의 정체성이 이제 절대성을 상실하는 것이다. - P100

그것은 언제나 새롭게 재편될 수 있으며 또한 변화되어야만한다. 정크스페이스의 가장 큰 특징이 바로 이것이다. 그것은더 이상 건물의 구조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정크스페이스에서는 잠정적이고 대체 가능하며 수정 가능한 하부조직이 전체 구조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 P100

이런 상황에서 건축가의 임무는 건축 속에 역사와 공간의 의미를 담아내는 것이 아니다.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웅장하고 세련되며 항구적이고 기념비적인 구조물을 디자인하고생산하는 것도 아니다. - P101

대신 건축가가 참조해야 할 단 하나의키워드는 바로 ‘쇼핑‘이다. 모든 건축과 도시계획은 쇼핑을담아낼 수 있는 비닐봉지를 만들어내는 것과 관계를 맺는다. - P101

건물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정크스페이스의 상부구조는 건축이 아니라 쇼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콜하스는 주장한다.
"정크스페이스는 거미 없는 거미집이다." - P101

쇼핑하는 존재로서의 포스트모던적 주체는 벤야민의‘산보자‘와는 다르다. 19세기 후반 파리의 아케이드를 배회하던 산보자는 시간 속에 묻힌 도시의 폐허를 응시한다. 그런데 이 응시를 가능케 했던 것은 산보자의 통찰력이 아니다. 그것은 근대 도시 공간의 불균등 발전uneven development 이다. - P10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