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토와 이전 세대와의 관계는 미묘하다. 알토는 일반적으로 핀란드판 아르누보에 해당하는 민족적 낭만주의를 부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그의 디자인에서는 이 운동에 가담했던 스승들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알토는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 디자인과의 연대 체제를 추구했으며, 1920년대 북유럽 고전주의와 1930년대 북유럽 기능주의와 발을 맞추어, 마침내 가장 개인적인 차원으로 귀결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 P108

그러나 사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은 것 같다. 실츠의 연구에서도 지적된 것처럼, 알토는 아르누보 또는 민족적 낭만주의의 외형만을 거절한 것이라는 지적이 정확할지 모른다. 알토는 "성장 · 변화 · 유동하는 유기적인 전체 속에서, 생활 속에서, 그리고 건물을 에워싸는 자연과 도시 환경 속에서, 거의놀랄 정도로 아르누보의 기본 자세를 유지했다." -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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