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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에서, 그림책 읽기
김장성 지음 / 이야기꽃 / 2022년 1월
평점 :
"그림책이 뭐예요?"
책육아로 인해 엄마인 저에게도 삶의 긍정적인 변화를 느끼게 된 후 여기저기 그림책에 대한 애찬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알게 된 사실 중 하나가 많은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책"이라는, 나아가
"그림책"이라는 물성을 함께 즐기고는 있는데 유독 "그림책"이라는 단어에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었어요. 그러고 보니 저 역시 "그림책"이라는 단어를 온전히 이해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던 것 같습니다.
"동...동화책 아니었나요?"
하지만 그림책은 동화책과는 분명 다른 무언가가 있습니다. 동화책에 들어있는 삽화보다는 그림이
가지고 있는 비주얼 텍스트의 힘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죠. 그래서 그런지 요즘에는 글, 그림 따로 작업한 그림책보다는 글/그림을 함께 작업하는 작가들이
점점 더 많아지는 것 같아 보여요. () 어떤 그림책 출판사 편집장님께서도
그림책은 글 작가가 있더라도 그림 작가가 새롭게 예술로 탄생 시키는 분야라고 말씀하셨으니 분명 그림책은 동화책과는 구분되는 영역인 것 같습니다. 독자들은 그 구분이 쉽지 않지만 말이죠.
그래서 그럴까요? 그림책 모임을 하고 있는 저에게도 많은 멤버분들이 이런 말씀을 자주 하십니다.
"그림이 너무 어려워요."
"그림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저부터 잘 모르겠어요."
맞아요, 어느새부터인가 그림(Visual Text) 영역이
확장되면서 글로만은 이해할 수 없는 그림책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아예 글이 없는 그림책, 그림으로만 서사가 진행되는 그림책들도 많이 나오고 있으니 말이죠. 아이와
함께 읽었는데 엄마조차 '어? 그래서 이 그림책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지?', '이게 뭐지?' 하는 그림책들로
당황한 적이 한 번도 없는 독자는 없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많은 그림책들이 글과 그림의
사이를, 그리고 그림책과 독자 사이를 독자 스스로 읽어내고 느끼고 해야 하는 부분이 많아졌으니 말이죠.
그림책은 '사이'의
예술이다.
글과 그림의 사이, 장면과 장면 사이, 관념과 표현 사이, 내용과 형식 사이,
어른과 아이 사이, 상상화 현실 사이.... 그림책은 그 사이를 설명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림책은 읽는 일은 사이를 읽는 일이다.
사이를 직관하여 의미에 닿는 일이며, 사이를 통찰하여 의미를
분석하는 일이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삶의 표피보다는 본질에 주목하게 되며,
답을 얻기보다는 질문을 품게 된다.
왜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무엇이 가치 있는 일인가...?
[사이에서, 그림책 읽기] 中, 김장성
그림책 이야기, 이야기꽃
실제로 저 또한 김장성 작가님의 [민들레는 민들레] 그림책을
온전히 이해하는데 약 5년이란 시간이 걸렸던 것 같습니다. 첫째
아이가 유독 좋아했던 [민들레는 민들레]. 당시 아이에게
책을 읽어 줄 때는 어떤 의미인지 모르고 그냥 입으로만 읽어 주었죠. 그랬던 [민들레는 민들레]가 다시 큰 의미로 저에게 다가온 것은 둘째에게
다시 읽어 주었을 때였습니다. 그제서야, "아! 작가가 이걸 말하고 싶었던 것이었나?"라고 쿵 하고 다가오더군요!.
민들레가 단순히 길거리에 핀 꽃 한 송이가 아니라 나 같기도 하고, 또 우리 아이들 모습일
것 같기도 한 모습에서 한동안 민들레에게 꽂혀 헤어 나올 수 없을 정도였어요. 혼자서 민들레에 관련한
그림책 습작?? 비스므레한 것도 만들어 보고 말이죠. 그렇게 [민들레는 민들레]라는 그림책은 저만의 인생 그림책으로 올려지기도
했었죠. 그리고 그 후로 더욱더 겸손한 독자가 되도록 자세를 달리 가졌던 것 같아요. 내가 설령 마음에 와닿지 않는 그림책이라도 그 사이는 작가가 남기고 싶은 메시지라던가 의도가 분명 어딘가에
남아있을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죠.
하지만 여전히 모든 그림책의 사이를 이해하진 못합니다. 저 역시 어떤 그림책의 사이는 읽히나, 어떤 그림책의 사이는 잘 읽히지 않는 그런 경우가 비일비재하는 것 같아요. 이럴
때는 그림책을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는 것이 참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나의 시야를 넓히기도 하고요.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림책 모임을 한다는 것인 쉬운 일이 아니죠. 각자의 사정이 있을 수 있으니 말이죠. 그렇다면 그림책 작가의 눈으로
바라본 그림책 사이를 한번 엿보는 것은 어떨까요?
작가의 눈으로 그림책을 바라보고 계셔서 그런지 몰라도 그 사이의 눈이 살짝 매서운 것도 같습니다. 보통
저는 그림책을 볼 때 나의 이야기, 즉 개인의 나에게까지 그치는 경우가 많거든요. 하지만 김장성 작가님은 그림책과의 사이를 통해 개인을 넘어 사회 이야기까지 관통하는 눈까지 가지고 계시니 말이죠. 그림책을 읽어 내려가는 그 사이에서 사고의 범위가 이렇게까지 깊게 확장할 수 있구나를 통해 살짝 부끄러워지기도
하더군요.
요새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소위 말하는 글밥?을 늘려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좀 더 문장이
긴 동화를 읽어주는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사이를 읽어 내어야 하는 그림책에 다소 소홀해진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사이에서, 그림책 읽기]를 통해 왜 계속 그림책을 읽어야 하는지, 놓으면 왜 안되는지 다시금
다시금 깨닫습니다. 커가는 아이가 글 서사가 긴 문학적인 책을 주로 찾아 읽더라도 저 만큼은 그림책을
놓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말이지요. 결국 그림책은 어린이들만이 읽는 책은 결코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히려 그림책 사이를 읽어야 하는 주 독자층은 우리 어른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말이지요. 그림책에 담겨있는 그 사이를 통해 나는 왜 존재하는지, 누구인지,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내 세계뿐만 아니라 내 주변까지 돌아보며 계속 생각하고 사는 것은 중요한 일인 것만 같습니다.
그림책 사이를 읽어내고자 하는 어른 독자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를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겸손한 독자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아는 만큼 보이고, 알고
보이는 만큼 우리 아이들에게 전달할 것들이 많아지겠지요. 다음 세대인 우리 아이들에게 정말 전달해 줘야
할 것은 무엇인지 그림책을 통해 끊임없이 스스로 질문하고 답해보는 건 어떨까요?
[사이에서, 그림책 읽기]는 그림책 사이를 어려워하는 다 큰 어른이들을 위해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림책은 이런 책이라고 친절히 설명해 주면서 말이지요.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