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의 날 - 어느 날 고래가 우리에게 왔다 꼬마도서관 12
코르넬리우스 지음, 토마소 카로치 그림 / 썬더키즈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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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고래가 주는 신비한 느낌이 있습니다.
고래 자체뿐만 아니라, . .라는 그 글자가 왠지 모르게 영적인 느낌을 주는 것만 같거든요.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에 자꾸 사라져 간다고 해서 그런 걸까요?
고래가 없어진다면 정말 큰 재앙이 떨어질 것만 같거든요.

그래서 저는 '고래'와 관련된 그림책들은 반사적으로 손이 가게 되더군요.
픽션, 논픽션 장르를 가르지 않고 말이에요.



그래서 그런지 도서관에서 처음 [고래의 날] 그림책을 본 순간 저도 모르게 손을 뻗쳤습니다.

이번에는 '고래'가 주는 분위기뿐만 아니라 오직 연필, 데생으로만 그려진 점 역시 눈길을 끌었답니다. 그리고 고래가 헤엄쳐 다니는 곳은 저 깊은 바닷속이 아니라 뉴욕인 듯한 모습의 도시 빌딩 속을 유영하는 표지를 보니 어찌 된 사연인지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겠더라고요.



그러면서 바로 '코르넬리우스'라는 이름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림은 '토마소 카로치'라고 적혀있는데 글 없는 그림책임에도 불구하고 '코르넬리우스' 이름이 먼저 적혀진 것을 보면 이 분이 기획한 것 같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코르넬리우스'라는 이름은 평소 좋아서 즐겨보던 그림책 작가'다비드 칼리'의 또 다른 필명이더군요. 왜 갑자기 다른 필명을 사용하시게 되었는지, 그리고 왜 [고래의 날] 작품부터 필명을 사용하셨는지 정말 궁금해지는 순간입니다.



빽빽이 빌딩으로 가득 찬,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세계에 고래 떼가 몰려옵니다.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흘러갔는지 알 수는 없지만, 마치 원래 자신의 세계인 듯한 모습으로 고래 떼들은 유유히 헤엄쳐 갑니다. 아니 어쩌면 자신들이 살아갈 삶의 터전을 찾으러 가는 길이었는지도 모르죠.



신기한 건 고래들은 인간들의 놀란 모습과 당황한 모습에는 관심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고래들의 평화로운 모습은 인간 세계에 조금도 해가 되지 않아 보여요.
어떠한 건물도 무너지거나 사람들도 다치지 않으니 말이죠.

그들은 그저 자신들의 갈 길을 갈 뿐인 것 같았어요.


. . . 우리 인간들은 이 기이한 현상을 그저 바라볼 수는 없었나 봅니다.
분명 무언가 있을 것이라 의심하고 우리 존재에 해를 끼친다고 판명 내리니 말이죠.
아무것도 발생하지 않는 상황인데도 말이지요.



[고래의 날]이라는 이름 역시 아마도 인간의 이기적인 관점에서 지어졌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요그림책을 보고 난 후 [고래의 날]이라고 불러보는 그 이름의 소릿값은 씁쓸하기만 합니다이건 정말 [고래의 날]이 맞나?라는 생각이 드니 말이에요.
분명한 건 고래들을 위한 날은 아니니 말이죠.



단순히 환경 그림책이라고 보기에는 숨어 있는 인간의 뒤틀린 욕망이 너무나도 부끄럽게만 보입니다. 나와 다른 존재는 배척하고 정복할 대상으로 보는 인간의 욕망이요.고래들은 정말 인간에게 아무런 직접적인 피해를 입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요.
오히려 정복했다고 믿고 그것을 기념해대는 인간의 행동이 결국 우리 인간의 삶을 조금씩 스스로 파괴했다는 것을 아무도 모르는 것 같아 보여 안타깝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믿도록 누군가가(위에서, 정부? 군대?) 그렇게 만들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결국 고래의 의미는 겉으로는 멸종 위기에 처해있는 고래 자체였을 수도 있겠지만, 수많은 나와 다른 존재들... 나와 다른 너였던 것이었던 것 같아 보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는 (너무 앞서나가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고래의 날] 그림책을 통해 전쟁, 유대인 학살, 언론 플레이 등이 키워드로 떠오르게 되더군요.



그리고 누군가 이렇게 우리의 세계를 이기적으로 끌고 간다 하더라도 그것에 휘말려 소신껏 나의 목소리를 내는 용기가 한 번쯤은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되네요. 개인의 소리가 모여 다수가 되고, 결국에는 세상을 상생하며 공존할 수 있는 방향으로 길을 조금이라도 틀어 줄 수 있을 테니 말이죠.



[고래의 날]의 리뷰를 마칠 때가 되니, 왜 다비드 칼리가 코르넬리우스라는 필명을 [고래의 날] 그림책부터 사용하셨는지 조금이라도 이해가 됩니다. (물론 저만의 해석이지만요.) 종교적인 관점에서 볼 때 코르넬리우스 가문은 유대인에게만 포교되는 초기 최조 그리스도교에서 최초로 이방인을 신자로 인정한 가문이라고 해요. 만약 코르넬리우스가 세례를 받지 못했다면 오늘날의 그리스도교가 유대교처럼 유대인들 사이에서만 믿어지는 종교로 남았을지 모른다고 하네요. (출처: 나무위키)



나와 다른 존재, 나와 다른 이방인들 역시 그들의 삶이 있고 서로의 삶을 존중하며 이해하고자 하면 폭력과 이기심이 상당히 줄어들 것입니다. 물론 현실적으론 수많은 논쟁과 토론이 있겠지만요. 하지만 평화롭게 우리 인류가, 또 나아가 우리 지구 생명들이 오래도록 상생하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아마도 다비드 칼리, 아니 코니멜리우스와 토마소 카로치는 그 점을 [고래의 날]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 출판사로부터 그림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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