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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 만든 공간 - 새로운 생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0년 4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난겨울 지인들과 함께 한옥에서 하룻밤을 묶은 적이 있다. 어렸을 적에 잠시 마당이 있는 벽돌집에서 살다 기억이 또렷한 어느 순간부터는 계속 아파트에서 살아왔던 터라, ‘ㄷ’자 모양의 한옥의 고즈넉한 정취가 꽤 인상 깊었다. (그리고 웃풍도 잊지 못할 듯하다) 집이란 것은 그저 들어가서 자고 나오는 것에 불과했고, 건물 역시 사용 용도가 중요했을 뿐이었다.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들을 더 중요시했던 내가 건축이나 공간에 대해 관심을 두게 된 것은 한옥으로 만든 집에서 먹고 마시고 자는 와중에 어째서 같은 하늘 같은 지역인데 이곳에서는 하늘을 바라보게 되고, 좀 더 느긋해지게 되는 걸겠냐는 생각을 하면서였다. 물론 놀러 와서 마음이 느슨해진 것이 80%쯤 됐을 테지만 말이다. 그렇게 내가 살아가고 있는 하드웨어에 관심이 가던 찰나에 이 책 ⟨공간이 만든 공간⟩을 읽게 됐다.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은 사는 사람을 닮는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사람이 건축물에 따라 살아가게 되기도 한다. 책은 환경에 순응했다가 다시 그 안에 어떠한 철학이나 다른 자극들이 들어와 건축으로 새로운 지평을 열고 그것에 익숙해져서 살다가 다시 또 다른 자극이 들어오는, 그러한 건축과 자연과 사람의 뒹굼을 보여준다. 그래서 책의 첫 부분이 농업발달로 인류가 모여 살게 되면서 도시가 형성되고, 각각 지형에 따라 건축물이 다르게 발전해온 것을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독서 모임에서 [총,균,쇠]와 [코스모스]를 연달아 읽었던 터라 앞부분의 개념들을 좀 더 반갑게 읽을 수 있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우리 인간이 2.5차원으로 세계를 인식한다는 것이었다. 3차원의 존재이지만, 기억을 통해 2차원을 재구성해서 2.5차원으로 인식한다는 것이 꽤 인상 깊었다. 그런 면에서 3차원을 다루는, 그리고 더 상위 차원을 고민하는 건축은 좀 더 직접적으로 인간한계에 도전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동양과 서양으로 나누어 자연환경과 연관 지어 건축을 설명하는데 왜 중동은 설명하지 않을까 궁금했는데, 이동하는 유목민 생활 때문에 건축의 역사가 짧은 것을 볼 수 있었다. 단청이라든가, 체스와 바둑, 기둥과 벽의 구조 등등 익숙하게 느껴왔던 것들의 이면에 서로 다르게 발전한 사고가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특히 동양의 기둥 구조와 서양의 벽 구조에 대한 전반적인 글을 읽으며, 아 그래서 심즈에서 집을 지을 때 바닥 깔고 벽을 세우는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책의 전반부는 사고방식이 어떻게 공간을 만들고, 공간이 또 어떻게 사고를 창출해내는지에 다루었다면, 중반부부터는 교통의 발달로 공간이 압축되면서 사고가 서로 교류가 되고, 그 결과가 건축물에 나타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미스 반 데어 로에, 르 코르뷔지에, 루이스 칸, 그리고 안도 다다오까지. 일본과의 교류가 많았던 터라 동양 건축의 예로 드는 것이 주로 일본 건축인 것이 아쉬웠지만, 그만큼 10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은 세계와 교류가 정말 없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개방적인 사고가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내고 더 나아가 흐름을 주도한다는 결론을 내리는 와중에, 코로나로 인해 동양인에 대한 혐오가 번지고, 미국에서는 플로이드 사건으로 흑인 인권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을 보면서 굉장히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다. 책을 덮으면서 드는 단 한 가지 확신은 앞으로의 미래는 기술발전, 여러 가지 가치의 도가니 속에서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지만 열린 태도로 배척하지 말고 받아들여야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소개된 건축가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든 건축가는 안도 다다오. 코르뷔지에를 동경해서 기르는 개 이름을 코르뷔지에로 지었다는데…….과연 동경이었을까 싶다. 배변 실수를 한다든가…. 밥을 안 먹는다든가…. 혼낼 적에 코르뷔지에! 나쁜 개! 라고 하면서 혼내지는 않았을까. 반대로 굿보이 코르뷔지에! 하는 상상도 좀…….의, 식, 주 중에서 의와 식에 관한 책은 꽤 읽어봤지만 ‘주’는 유난히 소홀한 경향이 있었는데, 나처럼 문외한도 아주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고, 유현준 교수의 전작들도 다 찾아 읽고 싶게 만들어지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