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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질은 부드러워
아구스티나 바스테리카 지음, 남명성 옮김 / 해냄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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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를 읽는 내내 피비린내가 코끝을 떠나지 않는 기분이었다. 손에 쥔 것이 빳빳한 종이가 아니라 물컹한 살가죽인 것 같아 내내 찝찝했다. 인간에게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걸린 동물들로 인해 반려동물도, 가축도, 동물원도 모두 ‘방역’이 된 세계에서 지금까지 잘 사용했던 가축을 대체할 수 있는 존재로 꼽힌 것은 ‘특별고기’라는 단어 속으로 숨어버린 가축화된 인간이었다.
동물복지가 확실히 뜨거운 이슈이긴 한 것같다. 이 책은 전체적으로 동물과 인간에 대한 미러링이라고 보여지는데, 1부에서는 동물의 가축화, 공장화된 축산시스템, 도축, 도축된 가축의 쓰임새와 이용들을 동물대신 인간으로 대입시켜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오히려 현재 ‘가축’이 얼마나 비정하고 잔인한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런 말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이 책을 읽고 지금 잔인함을 느낀다고? 그럼 너네가 먹는 고기. 너가 드는 가방. 전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생각해봐. 너도 결코 그 과정에서 빠질 수 없어. 저 상황을 결코 비난할 수 없을걸?”

그 덕분에 고기를 먹기 힘들어져 책을 읽는 내내 치킨값은 굳고 빵 소비량이 늘었다.

주인공 마르코스 테호의 아버지는 아내를 사랑하고 책을 사랑하고 음악을 사랑하며 버려진 개를 데려와 키우는 점잖은 육류가공공장의 주인이었다. 동물을 죽이는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의 아들이 수의사가 되고 싶어졌다는 점이 좀 흥미로웠다.

[15P. 어려서 일을 막 배우기 시작했던 그는 고기를 존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고, 결국 돼지에게 물어뜯겨 손이 거의 떨어져 나갈 뻔 했다. 작업반장과 다른 직원들은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세례를 받은 거야. 그들은 말했다.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돼지에게 물리고 난 뒤부터 직원들은 그를 사장님 아들이 아닌 그들과 함께 일하는 팀원으로 보기 시작했다.]

아마 당시의 가공공장은 좀 더 사냥꾼의 마인드에 가깝지 않았나 싶다. 인간에게 일방적으로 이용당하는 하등한 개체가 아니라 그들 덕분에 먹고 살고 입을 수 있는 어느정도 비등한 고마운 존재. 그렇기에 테호가 수의사로 진로를 정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희망회로는 사실 2부로 들어가면서부터 조금씩 깨진다. 그래, 이렇게 망해버린 세상에도 좀 정신이 있는 사람은 있을거야. 하는 생각을 하지만 1부가 자본주의와 식인합법화의 결합을 보여줬다면 2부는 거기에 부합한 온갖 인간세태를 보여준다. 종교. 가정내가축사육. 빚을 진 사람과 빚을 지운 사람들의 놀이. 그리고 테호의 결정까지. 동물권에서 돌도 돌아 인권으로 다시 돌아오는 2부의 스토리를 보며 작가가 글을 확실히 잘쓰는구나 싶었다.

책모임에 들고 나갔는데, 아르헨티나작가분이라는 말을 듣자 마자 다들 우르르 웃으며 납득했다. 워낙 식육산업이 발달한 나라니……. 중간에 우를레트라는 사육장 주인이 나오는데 루마니아 출신에 죽음을 쾌락화 시킨데다가 귀족적인 분위기에 데코레이션으로 꼬챙이에 꿰인 흑인들의 사진을 걸어놓은 사람이 나온다. Urlet을 찾아보니 비명이라는 뜻이 있다는데….이거 아무리봐도 드라큘라느낌이 나서 좀 웃었다.

마지막 결말이 좀 너무 임팩트만을 위해 갑자기 저런식으로 끝내버린것 아닌가 싶어서 오히려 좀 납득이 안가고, 묘사가 자칫하면 좀 위험할 수 있겠다 싶지만 아슬아슬하게 선을 잘 탄것 같다. 작가의 다른 책들도 읽어볼 생각이 든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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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장 나의 어휘력을 위한 필사 노트 - 할 말은 많지만 쓸 만한 말이 없는 어른들을 위한 숨은 어휘력 찾기
유선경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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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서평단에 당첨되어서 신나서 읽었습니다. 좀 더 일찍 올리고 싶었지만 필사책인만큼 조금 더 꾹꾹 눌러 쓰고 싶어서 밍기적 거리다가 벼락치기를 하게 됐네요. 

일단 책이 양장이라 좋았습니다. 필사를 할 수 있게 된 만큼 책이 좀 탄탄해야 오래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것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주신 것 같습니다. 


아쉬운 점은 세일러 F촉으로 쓴 부분은 잉크가 다 번지고 뒤에도 비침이 심해서 만년필을 사용하기에는 어려워보인다는 점이었습니다. 필사책이라면 저처럼 만년필을 사용하는 사람들도 꽤 많을 텐데 그 점은 아쉬웠습니다. 

하루에 하나씩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일기처럼 사용할 수 있더라구요. 필사페이지가 넉넉해서 좋았습니다. 
 사실 이 책을 신청했던 이유는 ‘필사하기 좋은 작품 134편’이 수록되어 있다는 문구 때문이었습니다. 

필사하기 좋은 작품이라면….오호, 추천서적이 134편이나 된다고? 따라서 책을 같이 읽어내려가면 좋겠다. 싶어졌습니다. 책모임을 운영중인데 요즘 지정도서 고르기가 귀찮았던터라 굉장히 유용한 컨닝페이퍼가 하나 떡하니 나타난 기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책의 가장 마지막을 보면 작가 목록이 나오는데 따라서 읽기가 아주 좋을 것 같습니다. 


필사를 하는 이유는 사람들마다 다를 것 같지만 저는 필사할 때의 ‘명상’같은 상태를 좋아해서 합니다. 제 생각이 아득해지고 누군가의 생각으로 가득차는 상태일 때 마음에 평온이 찾아오곤 합니다. 그리고 잘 이해 안되는 구절도 일단 써보면 이해한듯한 착각이 들기도 하거든요. 무턱대고 필사를 종종해왔기 때문에 ‘정말 필사를 잘하는 사람은 어떻게 할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습니다. 

저자분은 ‘쿵‘ ’쿵쿵‘ 같이 단어가 어떻게 다르게 쓰였는지로 ’필사의 맛 좀 볼래?‘ 하고 미끼를 살짝 흔드시더니 2장 말맛 체험하기 부터 아껴놨던 필사리스트들을 꺼내놓으시면서 낚아채버리셨습니다. 좋은 문장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와 그것을 내 속에 어떻게 녹여내어 궁극적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느끼고 글로 쓰도록 하는지를 차근차근 가이드해 주셨습니다. 


마지막까지 읽고 보니 이 책은 필사를 통해 생각하고 글을 쓰는 방법을 배우는 책이더라구요. 


아직 아껴서 조금씩 필사중이지만 이 책을 끝낼 즈음에는 저도 저 나름의 글쓰기 방법이 정립될 수 있을 것 같아 매우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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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 만든 공간 - 새로운 생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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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난겨울 지인들과 함께 한옥에서 하룻밤을 묶은 적이 있다. 어렸을 적에 잠시 마당이 있는 벽돌집에서 살다 기억이 또렷한 어느 순간부터는 계속 아파트에서 살아왔던 터라, ‘ㄷ’자 모양의 한옥의 고즈넉한 정취가 꽤 인상 깊었다. (그리고 웃풍도 잊지 못할 듯하다) 집이란 것은 그저 들어가서 자고 나오는 것에 불과했고, 건물 역시 사용 용도가 중요했을 뿐이었다.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들을 더 중요시했던 내가 건축이나 공간에 대해 관심을 두게 된 것은 한옥으로 만든 집에서 먹고 마시고 자는 와중에 어째서 같은 하늘 같은 지역인데 이곳에서는 하늘을 바라보게 되고, 좀 더 느긋해지게 되는 걸겠냐는 생각을 하면서였다. 물론 놀러 와서 마음이 느슨해진 것이 80%쯤 됐을 테지만 말이다. 그렇게 내가 살아가고 있는 하드웨어에 관심이 가던 찰나에 이 책 ⟨공간이 만든 공간⟩을 읽게 됐다.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은 사는 사람을 닮는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사람이 건축물에 따라 살아가게 되기도 한다. 책은 환경에 순응했다가 다시 그 안에 어떠한 철학이나 다른 자극들이 들어와 건축으로 새로운 지평을 열고 그것에 익숙해져서 살다가 다시 또 다른 자극이 들어오는, 그러한 건축과 자연과 사람의 뒹굼을 보여준다. 그래서 책의 첫 부분이 농업발달로 인류가 모여 살게 되면서 도시가 형성되고, 각각 지형에 따라 건축물이 다르게 발전해온 것을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독서 모임에서 [총,균,쇠]와 [코스모스]를 연달아 읽었던 터라 앞부분의 개념들을 좀 더 반갑게 읽을 수 있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우리 인간이 2.5차원으로 세계를 인식한다는 것이었다. 3차원의 존재이지만, 기억을 통해 2차원을 재구성해서 2.5차원으로 인식한다는 것이 꽤 인상 깊었다. 그런 면에서 3차원을 다루는, 그리고 더 상위 차원을 고민하는 건축은 좀 더 직접적으로 인간한계에 도전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동양과 서양으로 나누어 자연환경과 연관 지어 건축을 설명하는데 왜 중동은 설명하지 않을까 궁금했는데, 이동하는 유목민 생활 때문에 건축의 역사가 짧은 것을 볼 수 있었다. 단청이라든가, 체스와 바둑, 기둥과 벽의 구조 등등 익숙하게 느껴왔던 것들의 이면에 서로 다르게 발전한 사고가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특히 동양의 기둥 구조와 서양의 벽 구조에 대한 전반적인 글을 읽으며, 아 그래서 심즈에서 집을 지을 때 바닥 깔고 벽을 세우는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책의 전반부는 사고방식이 어떻게 공간을 만들고, 공간이 또 어떻게 사고를 창출해내는지에 다루었다면, 중반부부터는 교통의 발달로 공간이 압축되면서 사고가 서로 교류가 되고, 그 결과가 건축물에 나타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미스 반 데어 로에, 르 코르뷔지에, 루이스 칸, 그리고 안도 다다오까지. 일본과의 교류가 많았던 터라 동양 건축의 예로 드는 것이 주로 일본 건축인 것이 아쉬웠지만, 그만큼 10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은 세계와 교류가 정말 없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개방적인 사고가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내고 더 나아가 흐름을 주도한다는 결론을 내리는 와중에, 코로나로 인해 동양인에 대한 혐오가 번지고, 미국에서는 플로이드 사건으로 흑인 인권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을 보면서 굉장히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다. 책을 덮으면서 드는 단 한 가지 확신은 앞으로의 미래는 기술발전, 여러 가지 가치의 도가니 속에서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지만 열린 태도로 배척하지 말고 받아들여야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소개된 건축가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든 건축가는 안도 다다오. 코르뷔지에를 동경해서 기르는 개 이름을 코르뷔지에로 지었다는데…….과연 동경이었을까 싶다. 배변 실수를 한다든가…. 밥을 안 먹는다든가…. 혼낼 적에 코르뷔지에! 나쁜 개! 라고 하면서 혼내지는 않았을까. 반대로 굿보이 코르뷔지에! 하는 상상도 좀…….의, 식, 주 중에서 의와 식에 관한 책은 꽤 읽어봤지만 ‘주’는 유난히 소홀한 경향이 있었는데, 나처럼 문외한도 아주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고, 유현준 교수의 전작들도 다 찾아 읽고 싶게 만들어지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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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고화질] 아이 앰 어 히어로 22 (완결) 아이 앰 어 히어로 22
하나자와 켄고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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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전설이다 오마쥬같은 느낌이었다. 굉장히 와닿은 결말이라 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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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톨스토이 인생론 · 참회록 - 개정판 세상을 움직이는 책 32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병덕 옮김 / 육문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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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f 파일인데 스캔상태가 별로예요. 눈아파서 읽기 힘드네요. 돈 버렸다고 생각하고 다른 책을 사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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