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허수아비 북극곰 무지개 그림책 52
베스 페리 지음, 테리 펜 외 그림, 이순영 옮김 / 북극곰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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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부터 정말 아름답다.

가을 냄새 물씬 나는 색채와 빙그레 웃으며 까마귀를 바라보는 허수아비의 조화가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

어렸을 적 내 기억 속의 허수아비는 노랫말처럼 "성난 허수아비 아저씨"라거나

들판에 우뚝 서 있어 나를 깜짝깜짝 놀래키곤 하던 존재였다.

그나마도 요즘은 보기 힘든 추세여서 아들이 과연 허수아비를 알까? 했는데 표지를 보더니 '허수아비다!' 한다.

요즘 어린이집에서 가을 열매 따기 등 가을을 주제로 수업을 했는데 아마도 그러면서 한번 들어본 모양이다.

허수아비가 뭐 하는 사람인 줄 아냐고 물었더니 두 팔을 벌리며 한 발로 서있는 흉내를 내던 아들. ㅎㅎ

정확히 뭔지는 몰라도 그 이미지만 간직한 모양.

 

 

이 책 속의 허수아비도 처음엔 크게 다르지 않다.

너른 들판에 양 팔을 벌리고 우뚝 서 있는 허수아비.

들판을 지켜야 하는 임무를 띠고 있는 허수아비이기에 그의 주변엔 동물들도 얼씬하지 않는다.

참 이상하다.

여태 허수아비를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는데

멀리서 바라본 허수아비의 모습은 무척이나 쓸쓸해 보인다.

 

아무도 얼씬거리지 못합니다.

누구도 다가오지 못합니다.

허수아비 혼자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허수아비 옆으로 아기 까마귀가 한 마리 떨어진다.

그런데 웬일?

까마귀 떼로부터 들판을 지켜야 할 허수아비가 허리를 굽혀 까마귀를 들어 올린다.

그리고는 아기 까마귀를 가슴에 품고 보듬어준다.

아기 까마귀를 품고 있는 허수아비의 표정은 이제껏 상상해 본 적 없는 따스한 표정.

늘 홀로 서 있던 허수아비도 사실은 외로웠던 걸까?

까마귀와 함께 하는 그의 모습은 무척 충만해 보인다.

그러나 다시 겨울은 돌아오고..

까마귀도 이제 떠나야 할 시간.

그렇게 허수아비는 다시 홀로 남는다.

마음이 부서졌습니다.

기둥이 부러졌습니다.                  

                  

구멍난 가슴은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과연 허수아비는 이 겨울을 버틸 수 있을까?

그리고, 다시 행복해질 수 있을까?

홀로 남겨진 허수아비를 보며 코끝이 찡해졌다.

이토록 서글픈 모습을, 이토록 아름답게 그려냈다는 사실에 감탄하며.

네 살 된 아들에게는 다소 어려울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아들에게도 이 책은 무척 인상 깊었나 보다.

이 책을 읽고 난 다음다음 날, 산책을 하던 아들이 공원에 우두커니 서 있는 나무를 보며 팔자 눈썹을 만들었다.

나무는 가지치기를 한 건지 어쩐 건지 한쪽 면의 가지가 듬성듬성 다 잘려 있었다.

"엄마 이 나무 좀 봐. 허수아비 아저씨처럼 혼자 있네. 팔이 없어"

그러면서 매우 안쓰러운 표정으로 한참을 바라보다가 팔을 쭉 뻗어 나무를 안아주던 아들.

그 마음이 너무 예쁘고, 또 이 그림책 생각이 나서 무척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좋은 책은 이토록 예쁜 마음을 키워준다.

+) 계절의 변화에 따른 색채의 변화도 무척이나 아름다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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