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꼭꼭 씹으면 뭐든지 달다 ㅣ 꿈꾸는 돌고래 1
홍정욱 지음, 윤봉선 그림 / 웃는돌고래 / 2013년 12월
평점 :
선생의 <꼭꼭 씹으면 뭐든지 달다>를 며칠 동안 꼭꼭 씹어서 읽었다. 장르를 따지자면 동화라고 하겠는데, 청소년과 어른들도 같이 읽고 싶은 책이다. 도시의 아이들에게 자연과 생명에 대한 감수성을 일깨워주기 위해 선생님이 벌이는 기상천외한 놀이와 공부와 이야기들이 감탄스럽고 여운이 길다. 도시의 학교로 날아든 비둘기와 직박구리와 두꺼비들을 만나고 헤어지며 아이들은 사랑을 배우고 상처를 치유해간다. 능청스레 곁에서 지켜만 보는 것 같지만, 함께 사랑하고 아파하는 ‘우리 선생님’은 콘크리트 속에서 자란 아이들을 마음을 살려내는 마술사다.
저자의 어린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했을 옛날 시골 이야기들은 더욱 묵직한 깊이와 재미가 느껴진다. 내가 소띠라 그런지 이 책에서 특히 소 이야기가 좋았다. 노루와 송아지와 뱀과 놀고 노동하며 성장해 가는 아이들. 수박농사를 짓고, 소를 먹이고 뱀을 팔아서 중학교에 다닐 자전거 살 돈을 모으는 아이들은 요즘 도시에서 엄마의 치마꼬리를 잡고 학원가는 일 외엔 일이 없는 아이들과 다르다. 책을 읽으며 노동과 자연, 인간과 짐승의 깊은 관계와 힘을 되새겨 본다. 농촌에선 사람만이 가족이 아니다. 늙은 소, 젊은 소, 송아지와도 인간 식구 이상으로 함께 노동하고 교감하는 훈훈한 농가의 풍경. 이런 글을 읽으며 내가 열 살 때 이농을 결정하신 부모님이 아쉽다. 홍선생만큼 나도 시골에서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면 훨씬 여문 인간이 되었을 텐데. 우리 부모님은 자식들에게 무슨 공부를 시켜볼 거라고 그렇게 일찍 대처로 나가셨나. 진짜 공부는 마을과 자연, 짐승과 이웃들 속에 있는 것을..
이오덕 선생님이 ‘일하는 아이들’이라는 책도 냈지만, 농촌의 고된 노동은 책상 앞 지식공부와 비교할 수 없이 고달프겠지만, 이것이 참다운 삶이고 배움이라는 생각이 든다. (적성에 맞지 않는 공부를 꾸역꾸역 해 내는 것도 격심한 노동 이상의 고문이다.) 아이들은 이렇게 자라야 한다. 아동과 청소년들은 늘 보호받아야 할 어린애가 아니고 열 너댓 살만 먹으면 집안의 훌륭한 일꾼 노릇을 하고 부모의 의논 상대도 되는 것이다. 아동이라는 개념은 근대 이후의 소산이다. 현대 도시 문명은 갈수록 인간을 더디 성장시키는 것 같다.
우리는 참된 배움, 건강하고 진실된 삶을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는가. 학교는 과연 한 인간이 성장기를 보내는 데 충분한 공간이며 제도인가를 다시 묻게 된다. 책상과 교과서만이 아니라 동무들과 짐승들, 함께 일하고 어울려 놀 수 있는 들판과 마을을 물려주는 것이 가장 큰 유산이 아닐까. 백면서생의 길이 아니라 건강한 노동자와 농민의 삶이 훨씬 알차고 달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이제 이런 경험으로 글을 쓸 수 있는 필자는 흔치 않을 것이다. 이런 살아있는 글의 대를 이으려면 아이들을 도시로 학교로 학원으로만 내몰지 않아야겠다. 다시 자연과 마을을 살려야 하고 그런 곳에서 아이 낳고 살 수 있도록 젊은이들을 불러 모을 수 있어야겠다. 마을을 지키고 마을을 살려가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없다는 생각. 이것들을 거의 다 잃어가는 시점에서 이 책을 읽고 더욱 강렬하게 드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