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직 어려서 미안해 - 시보다 더 아름다운 학생시와 감상문
배창환 엮음, 상주여고 학생들 읽음 / 작은숲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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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창작에 도움이 많이 될 책이다. 학생이 쓴 시를 학생이 읽고 쓴 감상문. 이런 몇 편만 보여줘도 시에 대한 감을 어느 정도 잡을 수 있다. 책에 수록된 작품 하나.

 

밥상 앞에서 / 이성기

 

감기는 눈을 치켜뜨며

아버지와 마주 앉았다.

밥상 가운데 놓은 찌개가 조용히 끓어오른다.

아버지가 먼저 한 숟갈 입 안으로 들이미신다.

밥알을 씹으시며 내 성적을 물어보시기에

나도 얼른 찌개를 한 숟갈 떠서

입 안에 넣으며 우물거린다.

뜨끈한 국물을 삼키며

걱정 마시라 하고 아버지 눈치를 살폈다.

알았다며 조용히 웃으면서 반찬을 집으신다.

굳은살이 터박하게 박힌 아버지 손과

구릿빛 굵은 팔뚝을 보며

슬며서 수저를 만지작거렸다

* 이 시를 읽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열심히는 하지만 내 마음처럼 성적이 오르지 않고, 나에게 거는 기대가 없으신 것 같지만, 항상 걱정하는 말투로 무심하게 나의 성적을 물어보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이 시를 읽으면서 내 머릿 속에 재생되었다. 나 또한 아버지와 같이 밥을 먹을 때 혹시나 나에게 성적이나 공부에 대해 물어볼까 봐 겁이 나서, 후다닥 재빠르게 밥을 먹고 자리를 뜨는 경험을 적지 않게 하였다. 가끔씩 아버지가 나에게 성적을 물어보시면 이 시의 걱정마시라 하고 아버지의 눈치를 살폈다라는 구절처럼 행동하곤 하였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더 이상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으시고, 열심히 하라는 말씀으로 묵묵히 식사를 마저 하신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수저를 만지작거리며 슬그머니 일어선다. (정서윤)

 

                                                                             - 배창환 엮음 <<내가 아직 어려서 미안해>>

 

- 멋진 시다. 장면과 행동 심리 묘사가 생생하다. 영화 한 장면처럼 부자간의 밥상 풍경이 선명히 떠오른다. 설명하지 않고 보여주기만으로 인물의 심리와 성격까지 환히 드러난다. 걱정마시라. 독자들은 진정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한다. 이런 푸근한 아버지라면, 이렇게 속 깊은 아들이라면. 성적보다 소중한 것을 가진 사람들이므로 진짜 걱정할 것이 없겠다. 닥치는 고생이야 하면 되는 것. 굳은살이 박히고 구릿빛 팔뚝으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으면 좋은 삶이다. 학생들이 이런 시를 읽으면 무엇을 시의 내용으로 가져와야 할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저절로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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