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애덤 스미스 국부론 서울대 선정 만화 인문고전 50선 12
손영운 기획, 손기화 글, 남기영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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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사전적 의미는 ‘오랫동안 많은 사람에게 널리 읽히고 모범이 될 만한 문학이나 예술 작품’, 그리고 ‘옛날의 서적이나 작품’이다. 이 글에서 논하고자 하는 고전은 두 번째 의미이다. 


고전 읽기가 대중화된 것은, 아마도 인문학의 붐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Apple을 비롯한 세상을 이끌어가는 창의적 조직들의 활동력에 인문학이 근간을 이룬다는 조사 결과의 발표가 시발점이 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럼 인문학이란 무엇인가?

인문학의 사전적 의미는 ‘언어, 문학, 역사, 철학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창의력의 근간을 이루는 지식에 언어, 문학, 역사, 철학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 말은, 언어, 문학, 역사, 철학을 연구한 결과를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창의력의 근간이 되는 것은, 그러한 연구 결과보다는 상대적으로 ‘생각하는 방법’이 더 큰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닐까 판단된다.


필자는,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근원적 고민, 즉 개인의 삶의 영위, 사회생활, 영역의 존속과 개선 방안 등은, 동양의 경우 제자 백가의 시대에, 서양의 경우 그리스 철학 시대에 현대까지 시의성을 가질 정도의 수준으로 발달했다고 생각한다. 그 내용들이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 따라 변형되고 융합되어 현재의 모습을 갖춘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한 고전을 읽는 우리들이 기대하는 점은, 21세기까지 그 영향력을 보유한 저자들의 집필 내용을 살펴보고 앞으로 나아갈 바를 고민하는데 도움을 얻기 위해서 일 것이다.


100명의 사람이 있으면, 100가지의 삶이 존재한다. 유사하게도 보이는 이 100가지 유형의 삶이 선택하는 고전은 또한 유사하기도 다르기도 할 것이다. 동일한 고전을 읽더라도 얻고자 하는 것이 다를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고전을 읽는 것이 앞으로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까?


필자는, 국부론, 종의 기원 등의 고전을, 20세 이상의 성인이나 그 분야에 지식을 갖춘 사람들이 보는 책으로 고전 읽기를 시작하지 않는다. 초중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편찬된 학습 만화를 그 시작점으로 삼는다. 왜냐하면, 이러한 학습 만화들은 보유 지식이 없는 사람들이 전체적인 부분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구성되어 있어서이다. 그렇다고 하여, 이러한 학습 만화들이 개요나 단순 소개 수준에 머물러 있지도 않다. 기초 지식이 적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하는 데엔 교과서 정도의 지식은 있어야 속도를 높일 수 있다. 아마도 이러한 고전을 아무리 쉽게 집필하려 했더라도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하한선은 있을 것이다.


국부론의 경우, 자본이 무엇인지, 노동이 무엇인지, 지대라던가, 세금, 관세에 대한 이해도가 필요하다. 아마도 이런 학습 만화를 이해하려면 중학생 정도의 지식은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용어들은 인터넷 사전 혹은 사전 앱 하나만 있어도 쉽게 넘을 수 있는 허들이기도 하다.


이번에 국부론(주니어 김영사)를 선택한 것은, 대통령 선거 시즌이기도 했다. 대중매체를 통해 접하는 국가의 운영, 경제 문제에 대한 뉴스 보도와, 다큐멘터리 혹은 교양 프로그램을 통해 접하는 분석 내용들만으로는 사실 현재의 전반적 운영 상황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이번에 실시하게 된 경제 정책이 과연 우리 실정에 맞는 것인지, 부의 불평등은 결코 해소될 수 없는 것인지, 특정 소수에게 전반적인 부가 편중되어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등등에 대해 어느 정도의 이해가 있어야 이러한 뉴스와 분석 내용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고, 선택의 순간에 적어도 어제의 ‘나’보다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학습 만화 한 권 읽었다고 해서, 세상이 돌아가는 것의 이치를 한방에 이해할 수는 없다. 대신, 국부론을 읽으면서, 경제 측면에서의 사회적 계급 간 관계, 해외 무역과 국내 생산과의 함수, 도시와 농촌의 함수, 국가 세수 등에 관해 기억해 낼 수 있는 부분을 하나둘 확인하는 기회를 갖게 됐다. 

예를 들면, 톨게이트 통행세의 경우, 중량을 중심으로 통행세를 거둘 경우, 무거운 짐을 나르는 영세한 사람들이 더 많은 통행세를 내게 되고, 가벼운 짐을 나르는 부유한 사람들은 적은 통행세를 내게 된다. 따라서 지금처럼(물론 현재 상태가 영속적으로 이상적이라는 것은 아니라 생각하지만) 대형 차와 소형차로 나누어 통행세를 받는 것이 상대적으로 합리적이라는 것은 이해하게 됐다. 또한, 통행세는 도로 등 관련 시설의 유지 보수 및 발전에 사용되어야 하고, 그 외의 용도로 이 자금을 당겨쓰게 되면, 실제 도로 등 관련 시설을 보수하려고 할 때 자금이 부족해질 것이란 이해를 했다. 


단지 이해일 뿐이지만, 적어도 통행세의 기준이 부의 차이에 따라 나누어져 있다는 이해를 했으며, 징수 용도에 맞게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해했다. 또한 국부론이 집필된 연도를 생각하면 그 시의성에 매우 놀랐다.


그럼 이러한 이해를 갖게 된 ‘나’는 이 이해를 내가 앞으로 나아가는데 어떻게 활용하면 될까? 


국부론 학습 만화를 읽고 나서 필자가 앞으로 나아감에 도움이 된다고 여긴 것은, ‘부의 추월차선(엠제이 드마코/토트)’를 읽고 나서 생각한 점과 동일하다. 현재의 흐름에 대한 이해도가 한 걸음 나아갔다는 것이다. 그 이해도로 앞으로 어떤 유익한 결과를 낳게 될지는 아직 명확하진 않다. 그렇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버는 방법은 자본 투자를 통해서이고, 투자 수익이 큰 부분은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을 생산할 능력을 보유하는 것이며, 필요로 하는 집단의 크기(시장의 크기)가 클수록 수익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이해를 갖게 됐다. 그리고 이러한 이해는, 내가 잘하는 것이 어느 정도의 필요를 충족하거나 리드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됐으며, 가능한 나의 좋은 능력과 관련된 블루 오션이나 틈새시장은 어디일지 찾는 노력을 시작하는 계기가 됐다.


아이들이나 읽을 책이라 폄하하지 않고,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고전을 골라 읽고, 내가 앞으로 나아가는데 필요한 것을 하나둘 이해해 나가는 것이, 필자가 고전을 읽는 이유이고, 어떤 고전을 읽을지 선택하는 기준이다.

여러분은 어떤 고전을 읽고 있으며, 어떤 이해를 얻고 있나? 그 이해는 어떤 소화 결과를 낳고 있나? 


보다 적시적 생산 능력을 가진 사람이 주도적이고 자유로운 인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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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교실 1 - 암살 시간
마츠이 유세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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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군사력을 뒷받침할 개발이 이루어졌다.  

실험 과정에서, 실험동물 체내의 생체 변환 물질의 수명이 다 되어 폭발했다. 이로 인해 달의 2/3가 날아가 초승달 모양이 됐다. 

정부는 그 사이 세계 최고의 암살자를 대상으로 생체 실험을 병행했다. 그리고 초파괴생물이 탄생했다. 

그러나, 초파괴생물도 실험동물과 같이 생체 변환 물질의 수명이 다하면 폭발을 일으킬 것이다. 그래서 그전에 초파괴생물을 없애려 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마하 20으로 움직이는 이 생물을 파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 초파괴생물이 한 가지 제안을 한다. 고등학교 낙오자 반의 담임이 될 것이고, 그 사이 자신을 암살하라. 

정부는 현상금 100억 엔을 걸고, 아이들에게 초파괴생물 암살을 의뢰한다. 하루 일과를 함께 하므로 암살할 기회가 많으며, 본교사에서 격리된 건물이므로 국민이 알지 못하게 거사를 진행할 수 있다. 


하루아침에, 누구도 죽일 수 없는 초파괴생물의 암살을 담당한 아이들은, 초파괴생물에게만 해로운 BB탄과 나이프로 무장을 하고, 쉴 새 없이 암살을 시도한다. 

이들은, 다양한 사연으로 이 낙오자 반에 온, 소위 사회적 문제아들이다. 누구보다 뛰어난 지능을 가졌지만 폭력적인 아이, 한 가지 과목에는 특출나지만 나머지 과목에선 낙제를 면치 못하는 아이들, 학교와의 갈등으로 낙오자 반으로 누락된 아이들. 이 아이들에겐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고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그런 아이들은 현상금 100억 엔을 목표로 초파괴생물에게 BB탄을 날리고 나이프를 던진다. 그 작은 머리로 자살 테러를 감행하는 등 이 아이들이 현실에 발을 붙일 이유는 없었다. 

그런 아이들에게 초파괴생물은 끊임없이 교육을 시도한다. 그것도 아이들의 일거수 일투족에 대한 데이터를 모아, 20명 남짓한 아이들 각자에 맞춘 맞춤 교육을 실시한다. 물론 환영받지 못한다. 


정부는 끝까지 성장하지 못한다


정부는 달을 파괴한 것을 초파괴생물이 한 일이라 학생들에게 거짓 정보를 제공한다. 그리고 1년 후 지구를 파괴할 것이니, 이 생물을 암살하라 말한다. 

장소를 제공한 학교에 천문학적 지원금을 사용하고 100억 엔이란 막대한 현상금을 걸고, 국민들 모르게 자신들의 실수를 소멸시키려 한다. 

그리고 10대 낙오자들에게 암살이란 과제를 부여한다.  

게다가, 초파괴생물(이하 살생님)이 교육적으로 어떤 성과와 노력을 하고 있는 지, 살생님의 행동은 보고조차 받지 않으며 살생님을 암살해 자신들의 실수만 되도록 빠르게 처리하려 한다. 

그러나 살생님은 정부가 비상식적으로 변환한 암살자까지 학생으로 포용한다. 

정부의 희생자일 수 있는 살생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약속을 지키려 하는 점이 남다르게 보인다. 


아이들은 성장한다.


아이들은 살생님의 맞춤 교육에 성적이 올라가는 경험을 한다. 그리고 암살을 자의반 타의 반으로 해나가며 '생각과 연구'라는 과정을 겪는다. 그리고 정부 감시자를 통해 암살에 필요한 군사훈련도 병행한다. 

아이들의 고등학교는 높은 대학 진학률로 명성이 높은 학교다. 가장 뛰어난 아이들이 있는 A 반과의 지속되는 경쟁 기회, 그리고 아이들의 노력, 비록 암수가 끼어들어 속 시원한 승리를 얻진 못해도 노력 후 성장하는 자신들의 모습을 목도하게 된 아이들. 

아이들은 조금씩, 자신의 목표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그리고 소통과 팀워크를 배우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사회적 협업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된다. 

자신들의 잘못을 감추려는데 열심인 정부, 비정상적인 교육 방식을 고집하는 이사장, 그 이사장의 모략에 휘둘리고 세뇌되어 낙오반(E반)을 무시하는 것으로 자신의 우월감을 찾는 삐뚤어진 A반 아이들. 그 현실 역경을 하나 둘 뚫고 올라가며 아이들은 스스로 생각하고, 올바른 길을 찾는 방법을 하나 둘 배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찾은 길이, 남들이 보기엔 우습고 촌스러우며 황당하더라도, 진정으로 옳은 길을 가는 방법을 익히고 이를 실천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엔 성장한 자신들의 모습과,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구축해 나가기 시작한다. 


자기반성과 자기 개선을 통해 성장하는 인간상을 보여주는 이야기


우리는 매일 반성을 한다. 아니, 후회를 한다.  

반성은, 자신의 잘못이나 부족함이 없는지 돌이켜 보는 행위이다. 후회는, 잘못을 깨치고 뉘우치는 행위이다. 

하지만, 우리가 사용하는 후회라는 단어는 잘못을 되뇌기만 하는 행위란 의미로만 사용하고 있어, 반성은 긍정적인 이미지, 후회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됐다. 

그러나, 사전을 통해 정확한 의미를 알았다고 해도, 돌이켜 깨우치기만 해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깨우친 대로 행동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영원히 반성과 후회의 늪에 발이 묶인다. 결국, 반성과 후회를 부정적 이미지로 간직하게 된다. 

반성과 후회를 하게 되는 계기는, 스스로 느끼는 경로, 타인에게 받는 자극, 사회적으로 목도하는 사건들이 있다. 하지만, 애써 그 마음을 접고, 접는 것이 당연한 시간들을 보낸다면, 우리 인생은 영원히 다시 살기 싫은 시간들이 되어 버리고 만다.  


무언가 알게 됐다면, 그 알게 된 것을 기반으로 앞으로 필요한 것을 만들어 내고, 사용한다. 이것이 자기애의 한 방법이다. 바로 해결되지 않는 고민에 빠져 있는 것보다, 지금 나서면 바로 해소되는 작은 것들부터 개선해 보자. 그것이 선순환이 되고 연쇄 효과를 일으켜 도저히 손도 되지 못했던 문제가 사라지는 일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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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노블판)
스미노 요루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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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에는 2 가지 형태가 있다고 정의하겠다.

하나는 Relationship. 무언가 덕지덕지 붙어 끈끈할 것 같은 뉘앙스. 또 하나는 Interaction. 각자의 역할과 역할 수행이 존재하는 상콤한 뉘앙스.

모든 관계는 접점의 형성을 그 시작으로 한다. 접점은 또 2 가지 계기로 만들어진다 정의하겠다.

하나는 우연, 또 하나는 선택.

우연은 마주침을 동반하고 선택은 계획을 동반한다. 선택은 선발의 과정을 거치고, 우연은 느낌의 과정을 거친다.


그녀 벚꽃과 비밀을 아는 클라스메이트의 관계는 비밀의 공유라는 접점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비밀을 아는 클라스메이트의 감정 폭발로 마무리가 된다.


이 둘의 관계의 지속과 유지는 선택의 문을 거친다.

인생의, 결과로서의 모양새는 인간 각자의 선택의 결과. 원인은 강요일 수 있지만, 하기로 한 것이 강요를 못 이겨서 일 수 있지만, 결국 내가 그 행동을 하고 그 결과로 만들어진 내 인생의 모양새는 내가 선택했기 때문이다.


비밀을 아는 클라스메이트가 이 관계를 지속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녀 벚꽃이 이 관계를 지속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가 이 관계를 지속한 이유는, 스스로 자기완성을 원하는 기존의 습성이 첫 발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도발적이라 움찔거리기는 했지만, 그녀의 도발은 기존 그가 피해 오던 인간관계와는 다른, 즉 받아들일 수 있는 도발이었다. 비록, 고 2 여름의 나이이지만, 두 사람이 이성 임이 느껴지는 순간들이 이성관계만이 주는 텐션을 높였고, 상대에 대한 주목과 집중, 그리고 기다림을 낳았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통상적으로 '그건 사랑'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상태인가는 의문이었다.


그녀 벚꽃은 속마음을 털어놓을 상대이기에 관계를 지속했을 것이다. 

속마음을 털어놓을 대상 중에, 가족이 제외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그 이유는 어쩌면 따져 물을 것도 없을지도 모른다. 가족도 타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족을 타인이라고 정의하는 것에 거부감이 드는 이유는, 아무 이유 없이, 가족에게 절대적인 관계적 위치를 부여하는 사회적 통념 때문이다. 가족처럼 타인으로 느껴지는 대상도 없는데 말이다.


그녀 '벚꽃'은 가족 외에는 아무에게도 자신의 병을, 죽는 그 아슬아슬한 순간까지 숨기며 살아가려 결심했다. 그런데 의외의 사건이 생긴 것이다. 아무리 두터운 둑이라도 작은 구멍이 생기게 되면, 그 구멍이 커지기 전에 보수하지 않으면 무너져 버리듯 그런 사건이 생겼다.

시한부 인생이라는, 10대가 받아들이기 힘든(50대라고 받아들이기 쉬울까) 인생 완결의 모양이, 가족 외 속마음을 나눌 친구로서의 그를 선택한 것은 아닐까? 절친인 교코는 이런 자신을 보고 매일 눈물을 흘릴 것이므로, 대상에서 제외됐다. 비밀을 아는 클라스매이트에게는, 우연히 자신의 병을 알아 버린 그에게는, 인간이라면 가질 수 있는 비밀스러운 부분까지 열어 버린다. 우연을 핑계로 절친도 아닌 한 남자를, 자신의 불안과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토로할 대상으로 삼았다. 


10대 아이들에게는 나쁜 짓일 수 있는 행동들의 시도. 사실 죄같이 들리는 나쁜 짓이라는 명칭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오히려 책임지기 힘든 나이에 벌인 일이니, 섣부른 행동이라 칭하는 것이 더 마음에 든다. 그런 섣부른 행동도, 최후에는 추억이 되어 버렸다.

벚꽃의 성격상, 다른 반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와 크게 차별점은 느낄 수 없다. 다만, 숨기지 않아도 좋을 존재, 어쩌면 우리가 한 명 정도 가졌으면 하는 동반자를 벚꽃은 가지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시한부 인생이라는 자기 정체성이 낳는, 기존의 상식을 넘는 행동을 하게 하고, 하고 싶은 일들을 할 수 있다는 기회를 비밀을 아는 클라스메이트를 통해 분출했는 지도 모른다.

스스로 밝히기도 하지만, 벚꽃은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이 완성된다 생각하고 있으므로, 일련의 도전들은 비밀을 아는 클라스메이트가 곁에 남아 있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기로 선택했는 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 소설은 로맨스 소설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인생의 마지막을 아는 소녀와, 인생의 모양을 결정해 버린 소년의 만남의 이야기뿐일 지도 모른다. 


내가 그녀 벚꽃이라면 어떤 시간들을 보냈을까? 물론 하고 싶은 일을 했을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미루고, 미루다 시기를 놓쳐 마음속 다락방에, 그 먼지 속에 던져 놓은 일들을 하나씩 꺼내어, 혹은 몇 개를 한꺼번에 했을지도 모르겠다. 시한부라는 한계가 생긴 후, 내가 행동하기로 선택하지 못한 한계를 걷어 내고, 망설였던 일들을 저지르고 다녔을지도 모른다.


내가 비밀을 아는 클라스메이트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나에게, 첫눈에 반하지도 않은 소녀가 시한부 인생이라는 것을 알고, 그로 인해 접점이 생기고, 만나자는 제안을 받았을 때, 한 번도 타인에 의해 울리지 않은 메시지 도착음이 울리기 시작했을 때, 난 아마도 곁에 머무르는 일은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대인 관계를 필요하지 않다 생각한 내 정체성을 근거로, 나는 가족에게 돌아가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내가 선택한, 혼자만의 생활을 지켜나갔을지도 모른다. 스스로를 안고 살기에도 버거운 내게, 타인을 끌어안을 공간이 마음속에 남아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건조한 생각이, 소설과 같은 이야기를 만들어 내지 못했을 것이다. 시한부 인생에 대한 동정마저 없는, 건조한 남자로 남는 선택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더구나, 비밀을 아는 클라스메이트가 이성에 대한 끌림으로 이 관계를 유지했을 리도 없다고 아직까지 생각하고 있다. 시한부 인생이란 그 슬픈 스토리를 목도하고 있으면서도, 슬픔보다는 긴장감이 늘어 그녀의 처지에 눈물 한 번 흘리지 않고 비밀을 아는 클라스메이트는 그녀와 시간을 보냈다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마지막의 감정 폭발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그녀의 죽음을 대면했으면서도 예의 건조한 마음을 유지하고 있던 그가 마지막, 자신의 감정을 확인한 순간 터져 나온 눈물을 나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사랑하게 됐지만, 그 감정을 애써 숨긴 것도 아니지만, 그가 그녀 곁에 머문 것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사랑이라는 감정의 또 다른 외연이었기 때문일까? 어쩌면 나는(필자는) 특별한 순간에 자신의 감정을 확인하는 사례들을 기억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벚꽃이 죽지 않았다면, 병이 나아 버렸다면, 오히려 친구가 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절친 교코와 같은 위치에 있었을 수도 있다. 인간은 스스로의 마음을 다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나는 잊고 이 책을 읽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스스로의 마음을 잘 알지 못하는, 스스로의 감정에 익숙하지 않은, 상식과 이성이라 오해한 선입견으로 가득 찬 인간이므로, 이런 독서를 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필자 역시, 비밀을 아는 클라스메이트와 같은 시기에 감정이 폭발했을 것이란 확신을 숨기지 않겠다. 그리고 신체적인, 농밀한 접촉 없이도 사랑은, 남을 아끼는 마음이 생기고 유지되고 내면에 쌓인다는 사실을 애써 숨기지는 않겠다. 다만, 부러운 것은, 벚꽃이 남긴 유언을 실천하는, 그것이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것임을 인정하는, 비밀을 아는 클라스메이트의 태도이다. 물론, 그런 선택을 하기까지 그도 시간이 필요했고, 나였어도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아는 이는 이미 이 세상에 없고, 알고는 있지만 비밀을 아는 클라스메이트가 그런 선택을 했다는 것을 눈으로 목도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벚꽃의 가족들은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그런 선택을 하기엔 나도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적어도 벚꽃과 비밀을 아는 클라스메이트는 공식적인 연인은 아니었기 때문에, 의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비밀을 아는 클라스메이트의 선택과 실천을 나는 부러워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 공식적으로도 사적으로도 내가 사랑한다 정의한 사람들이 주위에 있는 대도 불구하고, 나는 그들이 내가 했으면 하는 행동들을 선택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소설의 대미는 반전을 통해 전환된다. 만일 그렇지 않고, 우리의 선입견 대로의 결말을 맞이했다면, 어쩌면 마지막 비밀을 아는 클라스메이트의 감정 폭발은 나뉘고 분할되어 글의 마지막을 채웠을지도 모른다.


이 글이 추측으로 점철된 것은, 이 글을 읽고 다시 깨닫게 된, 인생은 어떤 결론으로 맺어질지 인간은 알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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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크애비뉴의 영장류 - 뉴욕 0.1% 최상류층의 특이 습성에 대한 인류학적 뒷담화
웬즈데이 마틴 지음, 신선해 옮김 / 사회평론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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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의 2.5개월.

뉴욕 북쪽 끝에서 남쪽 끝까지,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브루클린과 애틀랜타, 멀게는 보스턴까지.

6개월의 무급 휴직을 내고, 자동차까지 팔고 마련한 천만 원의 돈을 가지고 우리 부부는 비오는 6월 첫 날 뉴욕으로 향했다. 그리고 눈으로 샅샅이 뉴욕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스튜디오 렌트) 아래 카페에 책이나 노트북을 들고 앉아 있었고, 커피 맛이 진한 아이스 라테 벤티(우리나라 벤티는 미국 그란데 사이즈)를 앞에 놓고 노천 좌석에 앉아 있기도 했다.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차에 의존하던 서울 생활과 달리, 두 발로 열심히 걸어 다녔다. 집이 있던 이스트 빌리지 3rd Avenue에서 센트럴 파크까지 내 걸음으로 57분이 (편도 거리) 나왔다.

우리는 2.5개월 동안 뉴욕의 전부를 본 것이 아니다. 어쩌면, 뉴욕 전체를 이 잡듯이 돌아다녔다고는 하나, 이 책에서 분류하는 아랫동네의 문화를 경험하고 온 것이다. 그들과 같이 동네 글로서리에서 장을 보고, 청소를 하고, 커피를 마셨다. 소호를 구경하고, 첼시 마켓을 구경하며, 보스턴의 레드 라인을 따라 걸었다. 하버드 설립자 조각의 발을 만지고, 보스턴 해산물로 배웅 채웠다. 애틀랜타에서 게임도 경험했다. 뉴욕 아랫동네의 사람들 문화였다.

그래서 이 책을 선택했는지도 모르겠다. 뉴욕에 사는, 상위 0.1%, 어쩌면 미국 전체 상위 0.1%일 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생활이 궁금해서.

 

작가는 6년간 어퍼이스트 세계 속에서 그곳 원주민의 생활을 살펴봤다.

책 말미에 이를 때까지, 작가는 시각적 이질감에 몸서리를 친다. 그리고 좀 더 내밀한 부분까지 알아보려 실제 원주민과 동일한 의상을 걸치고, 그들의 문화를 체득한다.

 

새로운 세계로의 진출에는 언제나 외로움이 동반된다.

알지 못하니 당황되고, 당황하고 있어도 아무도 손을 내밀지 않는다.

내가 상식이라 알고 있는 범위를 넘는 현상과 반응들이 뇌 속에서 착각을 일으킨다. 알고 있던 것이 하나도 없는, 하얀 벽으로 둘러싸여, 집기가 하나도 없는 방 한 가운데에 홀로 서 있는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기존의 내 색깔대로 새로운 세계 원주민들에게 다가가지만, 돌아오는 것은 'Who!?' 였다.

신입에게는 견디기 힘든 눈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 역시, 매일 같이 붙어 다니던 그룹에 새로운 인물이 들어오려 하면, 보자마자 '환영해!!!!' 라고 하지 않는다. 이유는 없다. 그 때 떠오르는 단어는 '?' 보다는 '누구?'일 것이다.

우리 그룹이 형성된 역사가 있고, 어떻게 모여 마음을 나누게 됐는지의 사연이 있었기 때문에, 공유한 사연도 역사도 없는 신입에게 우선 떠오르는 것은 '누구?'이지 않을까?

 

옷을 바꿔 입고, 버킨 백을 고생을 해가며 마련하고, Physique 57로 그들의 외모에 근접하도록 노력한다.

내 외모가 그들과 같으면, 동류라고 인식하지 않을까 라는 좁은 식견이 나를 더 혼란스럽게 한다. 마치, 오리 사냥을 하기 위해, 머리에 오리 탈을 쓰고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사냥꾼처럼. 사냥꾼은 오리는 아니다. 작가는 어쩌면 어퍼이스트 원주민에게는 사냥꾼이었을 지도 모른다. 어퍼이스트 문화를 알아내려는 정보 사냥꾼.

비슷한 외모를 가지면 동류라고 생각할 거라 누구나 생각하게 된다. 같은 의상, 액세서리와 더불어, 어퍼이스트에서는 몸매도 바싹 마르고 탄탄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상대들 속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일반적으로 이런 상황에서는, 크게 이성적 거부감이 없는 사람들과 먼저 말을 트게 된다. 실제 작가가 접하려는 그룹은, 여왕벌들의 여왕이 중심인, 어퍼이스트의 핵심 그룹이었다. 그 곳에 속해야 자신이 쓰려는 글에 이 집단의 진정한 속내를 담을 수 있다는 생각에.

우리 부부는, 당시 나온 책, '파이 이야기'가 주민들과 소통을 연 매개가 되었다. 친구까지 발전시키려는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카페 옆자리의 남자가 '파이 이야기'를 읽던 아내에게 말을 걸었다. “나도 그 책 재미있게 읽었어.”

조금 확대 해석을 한다면, 동류의식을 만드는 것은, 외모보다는 내면인가 보다. 나와 같은 책을 집중해서 읽는 처음 본 사람, 나와 같은 음악에 영혼 가득 몸을 흔들고 있는 처음 본 사람, 같은 팀을 응원하는 옆자리 처음 본 사람.

 

작가가 어퍼이스트 원주민들과, 원하던 마음 담은 대화와 교류를 시작한 것은, 작가가 겪은, 그리고 그들도 겪은, 또 그들이 마음 아파하는 일을 겪은 순간부터였다.

여성 특유의 모성애도, 어머니로서의 동류의식도 그 사건으로 비롯되었다. '너도 나와 같은 사람이구나' 라며 인식하는 순간. 그런 순간이 처음 만나자마자 나온다면 외로움을 느낄 새도 없겠지. 이런 규범 아닌 규범은 신이 만들어 놓은 통과 의식이 아니다. 인간이 규정해 놓은 제도도 아니다. 단지, 모든 생물은 자신과 같다는 판단을 내린 후에야 가까워지는 것이다. 모든 생물은 사회적 생명체이므로.

 

이 책으로 어퍼이스트 상위 0.1%의 모든 면을 알 수는 없다. 너무도 이질적인 문화에 긍정보다는 부정적 시각이 부풀어 올라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외형적으로 들어난 것은 우리에게 익숙한 장면들이다. 그들의 집단 내에서 이루어지는 관계상의 외연은 조금 신선했다. 그러나 경제적 수준과는 다르게, 작가가 확인한 어퍼이스트 원주민의 일상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전업주부(‘이 붙는 것은 불만이지만)가 부자 남편에게 의존하는 생활, 아이의 신분 상승이나 능력이 자신의 정체성(동일성; identity)이 되는 모습. 돈 많은 유한부인을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경제권 내 영향력이 탑인 남편을 둔 아내, 상위 0.1% 성적과 탁월한 운동 능력으로 그룹 선두에 선 내 아이의 엄마가 그들이 추구하는 동일성으로 작가의 눈에 보였다.

그 글을 읽은 필자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진 않았다. 어느 엄마가 자식이 뛰어나지 않길 바랄까? 어느 부인이 남편의 성공을 바라지 않을까? 그리고 남편과 아이의 성공에 자신의 기여도를 인정받고 싶어 하지 않는 부인도 엄마도 없다고 본다. 단지, 아랫동네는 하지 않는, 극한까지 치달아가는 그들의 속도와 힘에 작가는 그만 기가 눌린 것은 아닌가 짐작해 본다.

 

우리와, 상위 0.1%가 다른 부분은, 재력의 차이가 투자하는 시간의 종류 차이를 낳는다는 것이다.

내가 가성비를 따져 대형마트와 지역 상권을 왕복하는 사이에, 그들은 최고의 장인에게서 필요한 물건을 말 한 마디로 확보하거나, 계약에 따라 가져다 놓는다. 내가 마트를 돌아다니는 시간동안 어퍼이스트 부인들은 사회적 지위를 만드는데 노력하는 것이다. 그들이 유지하고자 하고 앞서 나아가고자 하는 목표에 집중하는 것이다.

별장에 1,500병 이상의 와인 창고를 구축해서 자랑을 겸하는 그들과 달리, 우리는 '신의 물방울'에서 보여준, 저렴하지만 맛있는 와인을 찾기 위해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우리가 와인을 찾아 인터넷을 뒤지고 마트 와인 코너에 오래도록 서있는 사이, 어퍼이스트 남자들은 사업을 하고 교류를 한다.

우리가 인터넷을 뒤져 해독 주스의 레시피를 구하고, 그에 따라 재료를 구해, 직접 주스를 만들어 마시는 동안, 그들은 경제 소식을 살펴보며 그런 그들 앞에 전문가가 해독 주스를 보기 좋게 담아 그들 앞에 둔다.

결국, 그들도 의식주가 필수적인 삶의 부분이며, 문화를 통해 일상을 구성한다. 단지, 재력이 시간 투자의 농밀함과 농도를 더 생산적이게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필자는 상위 0.1%를 이해한 것이 아니라, 현대 여성 심리의 언저리를 여행한 기분이 들었다.

왜 그들은 의상에, 헤어에, 뷰티에 많은 신경을 쓰는가? 정보를 모으고, 잘 하는 사람들의 경험을 알려고 하나? 그리고 자신을 돌아보고 취할 수 있는 것을 취한다. 왜 그러는가?

왜 원활한 신진대사와 탄탄한 면역체계, 그리고 건강한 세포 유지가 아니라, 체지방 5% 미만의, 근육으로 팽팽해진 외모를 운동의 목표로 삼는지 엿본 것 같다.

필자 역시 그렇지만, 아이를 보다나은 교육 환경에 있게 하고, 그 교육 환경의 아이들과 친하게 어울릴 기회를 만들어 주고 싶다.

 

상대적 빈곤감이 들었다기보다, 그들도 우리와 다른 점이 없구나, 단지 그들은 재력을 통해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구나. 그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은 부럽구나. 나는, 적어도 나는, 본질적인 부분에 집중하고 살자. 외연을 통해 나를 표현하는 것도 의미는 있지만, 내가 가진 역량에서 피어나는 아우라를 만드는데 집중해 보자. 그런 소박한 생각을 했다.

 

이 책을 읽을, 혹은 읽은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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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누피의 글쓰기 완전정복 - 세계 유명 작가 32인이 들려주는 실전 글쓰기 노하우
몬티 슐츠.바나비 콘라드 지음, 김연수 옮김 / 한문화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는 글을 쓰고 있다. 당연히 책과 블로그와, SNS는 누군가가 쓴 글이다. 더구나 음악의 가사도 글이다. 이렇게 확장해서 생각하면, 그림도 표현이라는 측면에서 글이고, 춤도, 연극도, 뮤지컬도, 영화도 글이다. 아니 표현이다. 


'스누피의 글쓰기 완전정복'이 다루는 글쓰기 이슈들은, 표현의 범주이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표현을 하는 사람들이 주목해야 할 주제를 기술하고 있다. 


베스트셀러를 쓰는 공식은 없다. 각 항에 수치를 대입하면 답을 내는 공식은 표현의 세계에는 없다. 그런데 우리는 일상에서의 표현을 제외하고도 표현의 세계를 열고 있다. 보고서, SNS, 하다못해 카톡도. 내 의사를 상대가 이해하도록 표현하지 못하면, 대화는 돌고 돌게 되고, 아무도 읽으려 하지 않는다. 


이 책은, '거짓말도 공들여 만들라'든가, '배경 묘사는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라든가, '일상 속에서 유머를 찾으라', '도입부로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아라'는 등의 방법론을 기술을 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비즈니스의 측면에서는 '작가는 편집자의 노력에 감사하는가', '거절 편지는 내가 글을 쓰고 있다는 증거', '독자가 건너뛰고 읽을 부분은 아예 쓰지 마라'는 말도 들려준다. 


이 모든 내용을 다 읽고 나면, 지금 구상한 글을 지금까지와는 다른 속도로, 쭉쭉 풀어나갈 수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 이는 이 책뿐만 아니라, 모든 글쓰기 가이드들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아!' 하는, 내 고민을 살짝 건드려 힌트를 얻게 되는 경우까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어떤 책에서는, 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지속적으로 고민하다가, 사과가 떨어지는 순간, '아!' 하는 힌트를 얻었다 기술하고 있다. 모든 위대한 발견과 발명들도 지속적 고민 속에서 꽃을 피운다.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줄줄 쓰고, 초안을 여러 번 읽고, 탈고를 하고, 그리고 발표를 하는 과정에서 장애를 만나지 않는 순간은 없다. 그래서 모든 창작에는, 분야와 무관하게, 아이디어가 필요하다고 한다. 만난 장애를 극복할 아이디어 말이다. 


사방이 꽉 막혀, 눈앞이 깜깜한 경험들이 심하면 글을 쓰려는 의기까지 무너뜨리기도 했다. 그래도 이 책은 말한다. 글쓰기는 독학으로 익히는 것이라고. 자꾸 쓰라고. 하루 중 글만 쓰는 시간을 마련하라고. 


누군가 그랬다. 글은 엉덩이로 쓰는 거라고. 계속 쓰고, 또 쓰고, 살펴보고 고치고. 얼마나 끈기 있게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글과 씨름하는지가 좋은 글쓰기의 공식이라면 공식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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