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비불패 1 - 완전판
문정후 지음 / 스페이스인터내셔널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현대는 “각자 원하는 것을 하고 싶어 하는 개인들의 욕망이 뒤섞인 항아리 속” 이다. 따라서 현대엔 이데올로기 충돌도 없으며, 흑백논리나 이분법적 판단은 힘을 잃었다. 다만, 누가 자신의 욕망을 이루려는 데 더 철저한가 만이 있을 뿐이고, 어떤 매개체를 통해 이러한 욕망들은 서로 충돌한다. 따라서 이제 세상엔 ‘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 매개체라는 것은 목적지이다. 100인이 있으면 100가지 욕망이 있다. 왜 그것을 욕망하는 가는 100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목적지는 동일하거나 유사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목적지에 이른 후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은 또한 100가지가 존재한다.


그런데 그 목적지 혹은 목표 대상이 단일하여, 제로섬의 경쟁이 될 경우, 충돌이 일어난다. 그리고 자신의 욕망에 더 철저한 자가 예전의 ‘악’으로 규정될 수 있다.


만화 ‘용비불패’는 이러한 개인들의 욕망이 황금성과 뢰신청룡검이라는 동일한 목표에서 부딪히는 이야기이다.


일반적으로, 무협의 세계는 정파 대 사파의 충돌, 백도와 흑도 혹은 마교의 충돌이 주된 배경이 된다. 즉, 집단과 집단 간의 충돌에서 한 명의 영웅이 나타나 중원을 평정하는 이야기다. 용비불패는, 무협 만화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으로, 개인대 개인의 욕망이 충돌하는 이야기를 다루어 이체를 띈다.


물론, 이 이야기에도 모략과 음모, 뒷공작이 등장하지만 악은 없다고 한다. 필자도 기존 무협지의 경험으로 인해 마교를 악으로 규정할 뻔했다. 그러나 그들은, 중원을 차지하기 위해 뢰신청룡검을 얻고자 했다. 다시 말해 마교도 자신들의 목표를 향해 열과 성의를 다해 뛰는, 성실한 무림인이라는 말이다.


예를 들어, 한정 판매 사과가 마트에 진열되어 있다. 특상품 사과가 100개만 진열되어 있고, 더 채워지지 않는다고 한다. 평소 아침 사과를 매일 섭취하면 성인병과는 ‘바이 바이’라는 의견에 동조하던 차에, 오래간만에 정말 맛있는 사과를 먹어보자는 ‘내’가 있다. 그리고 특상품 사과가 기존 5개 1만 원에 팔리던 것이 7개 1만 원에 팔리는 가성비에 끌려 이 사과를 사려는 ‘너’가 있다. 또한 ‘옳바른 쇼핑이란 언제나 최고의 상품을 사는 것’이라 믿고, 매장에 잘 나타나지 않는 특상품의 사과에 눈독을 드린 ‘그’가 있다.


이 3 사람 중에 ‘악’은 없다. 그런데 ‘그’가 마트 관리자에 접촉해서 100개 중 30개를 웃돈을 주고 따로 구매하는 바람에 매장에 70개만이 살 수 있는 대상이 됐다. ‘그’는 악인가? 자신의 원하는 목적을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역량을 발휘해 목적을 달성하는 것을 ‘악’이라 규정할 사람은 없다. 다만, 모두 동일한 환경에서 경쟁해야 올바른 경쟁이라는 가치관에 따르면 ‘그’는 ‘비겁하고 전형적인 악’으로 규정이 된다. 그러나 이 용어는 ‘더 유리한 조건을 최대로 활용한 얄미운 그’가 되지는 않을까?


만일 ‘너’가 혼자 오지 않고 7명의 가족 전체를 끌고 와서 1인당 5개의 사과를 확보하기로 목표를 정하고 우르르 매대로 달려들어 35개의 사과를 선점해 목표를 이루었다. 이런 ‘너’는 악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혼자 왔는데, 사과를 독점하기 위해 가족을 동원한 ‘비겁한 악’으로 규정할 것인가? 오히려 ‘자신이 보유한 인적 자원과, 이를 체계적으로 운영해 원하는 바를 이룬 발 빠른 너’로 규정될 수는 없는가?


위 두 사람이 악이라면, ‘혼자 와서 다른 사람들과 동일 혹은 유사한 환경에서 경쟁을 해 7개의 사과만 구입할 수 있었던 나’는 선인가? 혹시 ‘자신의 보유한 역량도 파악하지 못하고, 동원할 수 있는 인적 자원도 없어 홀로 묵묵히, 그것도 매장에 와서 판매 소식을 들은, 맨땅에 헤딩하는 약자인 나’로 규정되지는 않나?


이렇듯 현대는 규정된 ‘악’은 존재하지 않고, 약삭빠르거나 발 빠른 사람들이 원하는 욕망을 이루고 사는 각박하고 능력 위주인 욕망의 항아리 속은 아닌가?


그 안에서 ‘나’와 ‘너’와 ‘그’는 각자의 경험 속에서 통찰을 얻고 다시 내일을 살아가게 되는 것은 아닐까? 다만, 3 사람 모두 눈에 핏발이 선 모습을 거울에 비춰 본다면, 그런 자신의 모습에 실망을 하고 힘이 빠질 수는 있겠다. 그러나 이제 ‘악’이 존재하지 않아 ‘선’은 서로 뭉칠 기회를 잃었고, 개인대 개인의 욕망 경쟁으로 현대인들은 예전보다 더 홀로 세상을 사는 것은 힘들다는 결론을 내리고 내일의 막을 열며 사는 지도 모른다.


각자의 사연을 각자의 마음속에 담고 각자의 역량만큼 지금을 살아가는 세상이 지금이며, 용비불패는 그런 이야기를 하는 작품이다.


필자가 기다리는, 용비불패 2기 ‘대마교전(필자 마음대로 붙인 가칭)’ 또한 집단 간의 싸움이 아니라, 개인 간의 싸움이 될 수 있을까? 마교의 중원 재침공은 집단의 이야기이며, 이는 개인 한 사람의 힘으로는 경쟁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기대를 하고 있는 것은, 그것 역시 개인대 개인의 싸움으로 이야기를 만들 것이라는, 작가 2 사람에 대한 필자의 바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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