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런 벽지
샬럿 퍼킨스 길먼 지음 / 내로라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하루 종일, 매 시간 내가 할 일을 처방해 주지.

이토록 세심하게 돌봐 주는데 은혜를 아는 사람이라면

응당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할 거야"

"이런 건 내 상상 속 괴담을 망치는 이야기지. 하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아.

이 집에 무언가 이상한 것이 있음을, 나는 분명히 느낄 수 있으니까."

월간 내노라 출판사의 단편문학과 저자의 책은 처음 접해보았는데 128페이지의 짧은 책의 내용이 혼란스러웠다.저자는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샬롯 퍼킨스 길먼, 자신의 이야기를 일기형식의 글로 담아 놓았는데 꼭 21세기를 살고 있는 내가 수신자가 되어 그녀의 비밀 편지를 읽어본 느낌이었다.(일기로 쓰여진 편지글처럼 느껴졌다.)

19세기 문학을 읽으며 그 시절 여성의 위치와 상황이 그리고 한 사람의 삶이 그려져 마음아팠다.그녀는 액세사리같은 삶을 강요했던 시대에 일도 할 수  없고, 글도 쓸 수 없고, 마음대로 생각도 상상도 할 수없었던 삶을 살아간다.

불우한 어린시절 충분한 사랑을 받지도 못했고 깊은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도 배우지 못한 그녀는 스스로 정신병이 있는것 같다고 생각하게된다. 아이를 낳고 우울증을 앓게 되었던 즈음 더욱 심해지게 된다. 그리고 그녀의 책 <누런 벽지>는 그당시 그녀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조신하고 순종적인 아내상을 요하고 별거와 이혼이 금기였던 시대.

여성은 본래 나약한 존재이고 그들이 호소하는 고통은 나약함에 징징거리는 것으로 치부했던 시대에 살고 있던 지성인이었던 그녀. 그녀는 이런 불합리한 차별들이 숨이 막혔을것이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에 화가 났을것이다. 무엇이든 감시받고, 스스로 결정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없고, 거스르는 행동을 하면 치료의 대상이 되어버렸던 그 시대의 그녀들.

상상만해도 숨이 막힌다. 여름 한철 그녀의 신경쇠약증을 치료하기 위해 '휴식치료법'을 받으러 그녀는 남편과 함께 유서깊은 대저택에 가게 된다.

말이 대저택이지 정신병원같은 곳에 감금된채 누워지내야만 한 그녀의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침대에 누워 모든것을 통제당했던 여자가 완벽한 치료를 위해 6~8주 동안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그녀는 점점 더 상태가 안좋아지지만 남편은 그녀의 고통의 호소를 무시한다. 감옥에 갇힌듯한 갑갑함을 느끼던 그녀의 눈에 들어온 색이바랜 오래된 벽지와 벽지의 패턴들.

그녀는 패턴들이 움직이는 것을 느끼고 그 속에 갇혀 나오지 못하는 여자의 존재를 밝히기 위해 더욱 예민해진다. 방에 갇혀 침대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못한채 살을 찌우고 잠만 자야하는 휴식을 강요 받게 된다면 나라도 못견뎠을 것 같다. 오히려 냄새나고 오래되서 찢어지고 낡은 누런 벽지에 눈을 돌린 그녀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치료기간의 막바지에 이르렀을 즈음 그녀는 그녀를 바라보던 벽지를 갈기갈기 찢으며 벽지에 갇혀 나오지 못한 여자를 꺼내는데 성공한 그녀가 느꼈을 희열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벽지속에 갇혀있던 여자가 그녀자신이었을까?

모든 벽지를 제거하고 그녀를 바라보던 수많은 눈들을 걷어내고 나니 마음이 홀가분해 그녀. 아무것도 없는, 침대만 남아있는 텅빈 방을 계속해서 기어다니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녀의 모습을 목격한 남편은 그자리에서 기절하고 그녀는 그를 넘어 반복해서 방을 기어다니며 책은 끝이 난다.

산후 우울증을 겪던 저자는 '휴식치료법'이라는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더욱 피폐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고 그당시 느꼈던 감정을 글로 옮겼다고 했다. 파멸의 문턱에서 극적으로 탈출한 것을 기뻐하며 이책을 썼다고 말이다.

그녀의 책으로 말미암아 더이상 '휴식치료법'은 시행되지 않았고, 여성은 일상적인 활동을 하도록 가족들의 동의를 얻어냈다고 한다. 잘못된 오랜 관습과 여성의 차별이 19세기 짧은 단편 소설 한편으로 재조명 되었고 악행에서 회복되었다는 것에 뜨거운 갈채를 보낸다.

모든게 금지되었던 그 시대에 그녀의 용기있는 행동이 더욱 크고 값지게 느껴졌다.

"저는 사람들을 광증으로 믿어 넣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이 아닙니다.

광증으로 떠밀려 가는 사람들을 구해 내기 위해서 썼습니다.

이 책은 그들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