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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게 갔었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21년 3월
평점 :
아이를 낳고 키우며 나도 부모님이 나를 낳아 키우시던 그때의 나이가 되고보니 부모님을 부르는 호칭이 변해있다. '엄마'는 그대로 '엄마'인데 '아빠'는 '아버지'라는 호칭으로 말이다. 나의 아버지는 20년전 돌아가셨는데도 떠올려 회상할때 조차 '아빠'가 아니라 '아버지'가 되어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생전에는 한번도 아버지라고 불러드린적이 없다. '아버지'로 호칭이 바뀌면서 쓰지않던 존댓말까지 같이 하게 되었다. 나도 뭔가 어색했지만 그냥 자연스럽게 가족 모두가 그렇게 '아빠'를 '아버지'로 부르며 회상하고 있었다. "이번 아버지 기일은 무슨 요일이야? ,"아버지가 나 어릴때 00 해주셨어~엄마 기억나?" 그런 말들이 자연스레 나온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도 어렴풋하다. 그런 존재인가보다. 나이가 들면 아무도 시키지 않아도 존대를 하고, 존경의 표를 하나보다. 그렇다고 엄마는 존경하지 않아서 그대로 엄마고 반말도 하냐하면 그건 또 아니다. 이 세상 모든 엄마는 존재자체로 존경스럽고 위대한 분이니.. 어쩌면 그저 가족분위기 탓일지도 모를 일이고 또 어쩌면 그만큼의 거리감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제 아버지를 더는 '아빠'라고 부르진 않는다.
책장을 한장 넘겼을 뿐인데 곤혹스러웠다. 뭔가 압축된 감정들이 쏟아져 나올것만 같았다. 아버지의 눈물얘기가 나오는 순간부터 뭉클했다. 우리 아버지가 떠올라서 한참을 먹먹해졌다.
엄마의 병원입원을 위해 엄마를 모시고 나오는 대문앞에서 아버지가 울었다는 말을 여동생에게 전해들은 헌이. 딸을 잃은 후 늙은 부모님이 계시는 J시의 고향집에는 5년동안 찾아가지 않았다는 그녀. 그녀가 아버지를 뵈러 J시를 향했다. 그리고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길목에서 고향에서의 추억들과 마주한다. 마침내 고향집 대문을 열고 들어가 만난 아버지 모습. 야위고 수척해진 아버지가 울고 계신다. (아~ 터져버렸다. 눈물이 펑펑) 그날 밤 헌은 아버지와 함께 누워 잠을 청하며 도란도란 얘길 나눈다. (작가가 써내려간 아버지의 대사가 가슴에 적나라하게 와닿았다.) 어릴적부터 엄마보다 아버지를 더 따랐던 헌이는 아버지와 둘만의 시간을 보내며 그동안 몰랐던 아버지의 모습을 보게 된다. 헌은 4남 2녀 중 넷째로 장녀이다. 아버지는 그렇게 여섯 자식들을 키워내며 최선을 다해 헌신하셨음에도 늘상 미안해하신다. 이제 헌은 아버지의 이야기를 글로 쓰기로한다. 주변 지인들에게 아버지의 말못한 추억들과 이야기들을 전해들으며 아버지의 삶이 녹록치 않았다는것을 알게된다. 그리고 비로소 아버지의 진정한 참 모습과 마주하게 되었고 아픔과 고난 슬픔이 공존하는 그의 인생을 제대로 들여다 보게된다. 책은 아버지의 과거와 얽힌 이야기들 그리고 자식 한명 한명과의 이야기 그리고 한없이 미안한 아내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는데 누군가의 자식이고 누군가의 형제였던 그가 남편이 되고 아버지가 되어 살아온 그동안의 파란만장한 삶의 이야기들이라 어느순간 불쑥불쑥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지곤했다. 특히 자식에게 헌신하셨음에도 끝도없이 미안해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영락없는 나의 아버지같아 더없이 슬펐던것 같다. 헌이의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그 힘든 세월 자식들 때문에 버티고 견디며 살았다고..
부모님이 계신 고향집에 필요없는 짐을 놓고 오듯 헌이는 그녀의 고난도 놓고 왔었나보다. 아버지를 보호하러 가서 되려 보호받게 된 그녀가 둘이 남겨진 집에서 아버지를 오롯이 알아간 시간을 보내고 왔고 자신의 놓고 온 아픔들도 들여다보게 됐다. 아버지에게 갔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하고 생각해본다. 책을 읽는 내내 먼저 떠난 내 아버지가 떠올라 먹먹했었지만 단락단락마다 '아버지'란 존재가 어떤 의미인지를 정확히 알게된 계기가 된것 같아 벅찼다. 존재만으로도 너무나 든든하고 고마운 큰 나무같았던 내 아버지가 보고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