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잃어버린 것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32
서유미 지음 / 현대문학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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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절과 고립을 넘어, 잃어버린 나를 찾아가는 길"

 

 

월간 『현대문학』의 특집 지면 '현대문학 핀 시리즈'의 서른두 번째 소설선, 서유미의 <우리가 잃어버린 것>. 저자의 책은 2008년 제1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인 <쿨하게 한걸음>으로 먼저 만났었는데 그당시 나는 30대의 문턱에 접어든 직장인이었고 서른 셋이었던 책 속 주인공의 일상이 너무나 공감되어 수긍하며 읽었던 기억이 있다.. 2021년, 작가는 40대의 경단녀가 된 육아맘 경주를 주인공으로 세워 그녀의 일상 이야기를 <우리가 잃어버린 것>으로 담아냈다. 작가가 만들어낸 주인공이 나와 같이 늙어가나보다. 절묘하게도 나역시 40대 경단녀여서인지 주인공 경주가 전하는 이야기들이 모조리 내 얘기 같아 조금은 씁쓸하고 또 조금은 서글펐다. 아닌게 아니라 첫장을 펼치자마자 내 일기장을 훑는것같은 현실의 이야기들이 튀어나와 역시 심리묘사의 대가 서유미 작가의 저력을 실감했다.

 

 

 

40대의 경단녀이자 육아맘인 경주. 그녀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카페 제이니'에 앉았다. 커피 한잔을 시킨 후 휴대폰으로 아이의 사진과 동영상을 보고, 노트북을 열어 구직활동을 하는 루틴으로 하루를 보낸다. 워커홀릭이었던 경주는 육아휴직이 끝날때쯤 육아와 복직의 귀로에서 육아를 선택한다. 자신은 얼마든지 하고 싶을때 다시 일을 구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가혹했다. 재취업은 녹록지 않고 점점 자신감마저 잃어간다. 자신이 보낸 메일은 확인조차 않고 닫혀있고 그나마 열어본 메일에도 답은 없다. 그녀는 그렇게 하루하루를 '카페 제이니'에 출근도장 찍으며 버텨내고 있었다. 그녀가 선택하지 않은 복직이 자신이 선택한 사회에서의 자발적 고립이 되는 순간이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점점 더 멀어지는 느낌이다. 여기까지만 읽어도 극공감하는 육아맘들이 있을것이다. 우리의 이야기이고, 똑 닮은 내 이야기라 맘이 아팠다.

경주가 전하는 고등학교 친구들과 절친J 의 이야기 역시 너무나 와닿았다. 사실 갈수록 누군가를 만나고 사귀는 일은 쉽지 않고 그나마 유지하고 있는 관계 속에서도 벽이 존재하는 것을 경험했을것이다. 전부 아는듯해도 같은 상황이 아니면 절대 이해받을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관계. 경주는 이 관계에서도 스스로 투명한 벽을 치며 자발적 고립을 선택한다. 경주는 결혼, 출산, 육아를 선택하며 만나게 되는 단절들을 감당해내며 목적지를 잃은채 미래를 생각하고 있다. 모든게 자신의 탓인것 같고, 바뀌지도 않을 결론을 놓고 자꾸만 돌아보고 후회한다. 그래봤자 역시 바뀌지 않는다. 오랜만에 찾은 까페 제이니, 그녀는 더이상 일이 하고싶다는 막연한 계획을 구직사이트와 회사, 재취업에 두지 않는다. 조금 다른 꿈을 꿔본다. 그리고 미스 제이니를 바라본다. 뭔가 달라질 수 있을것 같다.

어느날.. 매일 출근도장 찍던 그곳, 미스 제이니가 있던 그곳, 막연한 미래를 꿈 꿨던 그곳, '카페 제이니'가 갑자기 임시휴무를 한다. 무슨 사정인지 알 수없으나 본래의 휴무일보다 더 오래 문을 열지 않고, 경주는 초조해 한다. 단절되고 고립되어 있던 그녀의 삶의 숨통을 틔워주던 곳이 없다. 경주는 자신의 루틴이였던 그곳을 잃고 방황하다 잠시 다른 곳을 돌아본다. 까페가 '제이니' 그곳만 있는 곳은 아니니까.. '까페 제이니'를 출근하듯 들렀던 루틴은 이제 깨졌다. 다른 까페를 찾으며 잠시 쉰다는 느낌으로 자신을 쉬게 한다. 그리고 그녀는 답답하게 느껴졌던 반복해서 오가던 길에서 무심코 소박한 새로움을 발견해간다. 매일 강박적으로 취업에만 매달려있던 그녀에게 이제 다른것도 보이기 시작한것이다.

"좁고 짧은 동선을 반복해서 오가는 길이 한동안 답답하게 느껴졌는데 경주는 점점 매일 다니는 길에서 조금씩 색이 변해가는 나무와 하늘을 보며 소박한 새로움을 발견해나갔다. 그것이 넓은 세계, 미지의 도시보다 더 아름다운 건 아니지만 경주는 한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세계가 그리 넓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경주는 공간으로서의 제이니뿐 아니라 제이니에서 보낸 시간도 자주 돌아보았다.카페 제이니가 문을 닫아서 갈 수 없다는 것은 단순히 한 곳의 카페가 영업을 하지 않는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제이니에서 재취업을 준비하며 두달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경주는 일자리와 월급의 개념이 바뀌고 사라지는 시대에 자신의 자리는 어디에 있고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 고민했다. 그게 재취업의 문제가 아니라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는 걸 제이니에서 두 달을 보낸 뒤에애 알게 되었다."

휴무 공지가 끝난 뒤 카페 제이니는 문을 열었다. 경주는 안도하면서도 어떤 마음이 자신에게서 떠나갔음을 느꼈다. 그러다 우연히 마트에서 만난 미스 제이니의 모습은 그동안 자신이 알고있던 모습이 아니었다. 무슨일이 있었던건지 초췌하고 수척해져있다. 과거와 현재와 막연히 꿈꿨던 미래가 있던 카페 제이니의 미스 제이니의 모습이 아니다. 마주 볼 용기가 없었던 건지 그녀는 인사도 않은채 미스 제이니를 뒤로 하고 돌아섰다. 얼마뒤 미스 제이니가 남긴 종이 한장이 문닫힌 카페 유리창에 붙어있다. 그 종이에는 아이가 많이 아파 당분간 카페 문을 닫는다고..아이를 위해 기도해 달라는 당부가 적혀있다. 경주는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문닫힌 카페앞에서 그녀는 조용히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인다.

 

경주가 말하지 못해, 행동하지 못해 후회하는것들로 오해하며, 잃어가는 것들을 보고 갑갑함이 밀려왔다. 그렇게 기다렸으면서도 다시 문을 연 카페 제이니에 들어가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는 무언가 결연한 의지가 엿보였다. 책을 덮고 경주의 일상이 공감되어 가슴이 아려왔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며 얼마나 많은 것을 잃게 될까? 하지만 그것이 정말 잃는것이기만 할까?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선택해야 후회가 남지 않을지 알 수 없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고립과 단절은 이어진다. 모든걸 가질 수 없다. 하지만 조금 생각을 바꿀 수는 있다. 그리고 다시 바라보면 다른것들이 보일것이라는 걸 안다. 그러니 또 살포시 위로를 받는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쓴 주관적인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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