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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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스토너>는 나지막이 이어지는 긴 추도문 같았다. 고인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그가 존재했음을 입증하는 동시에 그의 죽음을 애도하게 만드는, 쉽지 않은 임무를 짊어진 추도문.

소설은 스토너의 죽음을 알리는 데서 시작해 그의 인생 궤적을 차근차근 좇다 그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으로 끝맺는다. 소설 속 스토너의 삶을 한 줄로 요약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농부의 아들 스토너는 1891년에 태어나 미주리 대학에서 38년 간 영문학 교수로 재직했으며 1956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간결한 삶이다. 하지만 사망 진단서와 재직 증명서만 떼도 확인할 수 있는 정보로는 그가 생전에 어떤 인물이었는지 파악하기에 충분치 않다. 작가는 한 사람의 생애는 결코 한 줄로 요약될 수 없음을 증명하려는 듯이, 스토너가 살면서 겪은 일들을 392쪽에 걸쳐 성실하게 묘사해 겹겹이 쌓아올린다. 스토너의 가족사, 스토너의 교우 관계, 스토너의 연애, 스토너의 결혼 생활, 스토너가 일군 작은 승리, 스토너에게 닥친 시련, 스토너의 정열, 스토너의 발병, 그리고 스토너의 죽음까지. 성실한 관찰자인 작가 덕분에 스토너의 모습은 차츰 또렷해진다. 키 크고 깡마르고 어깨가 구부정한 이 평범한 사내가 긴 시간 동안 그의 어깨를 구부리고도 남을 삶의 무게를 묵묵히 감당해 왔음을 알게 된다.

나는 스토너가 인생의 고비마다 마주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을 읽으며 그를 응원하고, 설득하고, 그와 함께 슬퍼하고, 체념하고, 때로는 함께 기뻐하다가 마침내 스토너가 세상을 등지는 순간 슬픔과 애도의 눈물을 쏟고 말았다. 소설의 첫머리에서 그의 부고를 무덤덤하게 읽어내려간 사실이 무안할 만큼 엉엉. 죽음이 스토너에게서 어떤 삶을 앗아갔는지를 알고 나서야 비로소 그의 부고를 현상으로서의 죽음이 아니라 상실로서의 죽음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스토너>는 세상의 그 어떤 죽음도 무덤덤하게 잊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덤덤히 증명하는 소설이다. 한 줄짜리 부고 기사로도 남지 않을 평범한 죽음들에 앞서, 평범하지만 존중받아 마땅한 인생들이 존재했음을 상기시키는 소설. 연신 눈을 훔쳐 눈물범벅이 된 손으로 책장을 덮었다. 추도문 낭독과 추모의 시간은 끝났다. 이제 아무것도 아닌 삶을 살다 아무것도 아닌 죽음을 맞이할 또 다른 스토너들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일이 내 몫으로 남은 듯하다. 그 전에, 스토너를 낳은 두 분의 스토너에 대해 생각한다. 해가 갈수록 척박해지기만 하는 땅을 일구는 일에 평생을 바친 부부. 소설 속에 짤막하게 언급된 그들의 인생과 죽음을 여기에 옮겨 적는다.


아버지는 서른 살 때 이미 쉰 살처럼 보였다. 노동으로 인해 몸이 구부정해진 아버지는 아무 희망 없는 눈으로 식구들을 근근이 먹여 살리는 척박한 땅을 지긋이 바라보곤 했다. 어머니는 삶을 인내했다. 마치 생애 전체가 반드시 참아내야 하는 긴 한 순간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제 두 분은 평생을 바친 땅 속에 누워 있었다. 땅은 앞으로 서서히 두 분을 자기 것으로 만들 것이다. 습기와 부패의 기운이 두 분의 시신이 담긴 소나무 상자를 서서히 침범해서 두 분의 몸을 건드라다가, 마침내 두 분의 마지막 흔적까지 모조리 먹어치울 것이다. 그렇게 해서 두 분은 이미 오래전에 자신을 바쳤던 이 고집스러운 땅의 무의미한 일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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