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세계의 절반, 50%가 굶주리는 원인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하고 있다.
정치 부패, 시장가격 조작, 인종의 갈등과 토착자원 독점 욕망, 국제기업의 외부 세력 개입등으로 일어나는 전쟁, 집중재배시스템을 야기하는 식민지 정책, 국제 테러, 다국적 기업의 횡포 등, 이 부분은 주워들은 이야기들로 희미하게 정리되지 않았지만 이 책을 통하여 딱딱하지 않게 정리하며 알게 되었다.
또한 이 기아문제와 관련된 무제한의 이윤추구를 향하고 있는 금융자본과 신자유주의의 심각성에 대한 이해를 주고 있다. 자유로운 세계 시장에 맡기면 진정으로 공평한 사회가 실현된다는 신자유주의는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에서 다름과 같이 설명되고 있다. “미국, 영국 등 강대국들을 나쁜 사마리아인들이라고 지칭하며 이들은 한때 신자유주의의 신봉론자였지만 이제 신자유주의는 현실에 맞지 않는 이론임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선진국들은 경쟁자가 또 나오는 걸 원치 않기 때문에 후진국들에게 신자유주의를 강요한다”
그런데 이런 기아의 상황을 지지하고 있는 논리가 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토머스 맬서스의 논리, 질병과 배고픔은 이사회의 필수적인 기능을 한다. 지구상의 인구를 줄여주는 자연적인 수단이라는 논리가 오늘날 우리의 심리적 기능을 충족시키고 상황을 외면시키는 지지기반이 된다는 것에 충격을 가한다.
딴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상황에 대한 정확한 분석, 그리고 어리석은 논리에 이끌려가지 않는 냉철한 판단이 너무 필요하고 그러한 힘을 우리는 아이들과 우리세대에 키워가야 할 필요가 절실하게 느껴진다.
그럼 기아에 허덕이는 세계의 절반의 반대편의 절반에 속한 나에게 이책은 묻고 있고 촉구한다. 친절한 아버지의 태도로 기아의 현상을 다국적 기업과 약탈하는 군부, 금융자본, 시카고 곡물거래소 등의 어두운 모습을 조목조목 설명하지만 “소수가 누리는 자유와 복지의 대가로 다수가 절망하고 배고픈 세계는 존속할 희망과 의미가 없는 폭력적이고 불합리한 세계”라고 어조로 우리의 책임을 묻고 호소하고 있다.
나는 세계의 절반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었는가? 내가 살아가는 삶의 형태와 태도가 바로 반대쪽 절반의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 기아의 상황에 일조하고 있다면?
‘박원순의 아름다운 가치사전에서 정의는 각자 누릴 수 있는 몫을 제대로 누리는 것’이라는 점에서 볼 때 반대의 절반은 자기의 몫을 나누어야 하며 제대로 몫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의 삶을 볼 때 나는 우리는 책임이 없다고 손 씻는 빌라도의 변명으로 문제를 끝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각자가 누릴 수 있는 몫을 제대로 누리는 공정한 정의의 사회에서 절반의 사람들이 자신의 노동과 가치에 대해 공정한 누림을 가지고 있지 못한다면 배부른 절반의 사람은 각자의 몫 이상을 누리고 있을 수 있기 때문으로 여겨졌다.
저자의 마지막으로 전 지구적인 민간단체의 참여과 적극적인 행동을 강조한다. “사회 운동, 비정부조직, 노조들의 세계적인 연대만이 ‘워싱턴 합의(1970-1990년 윌스트리트의 은행가들과 미 재무부 및 국제 금융조직 사이에 맺어진 비공식적 신사협정으로 민영화, 규제철폐, 거시 경제 안정, 예산 감축의 제가지 원칙을 내용으로 한다.)’와 인권 사이의 대립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고 기아와의 투쟁은 이런 대립을 끝낼 수 있는가에 그 성패가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