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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상처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 상실에 대한 153일의 사유
량원다오 지음, 김태성 옮김 / 흐름출판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집에서 엄마와 얘기를 하다 보면 집 안 물건들의 역사를 알 수 있다.
'이 그릇은 누가, 저 냄비는 어디서...'
얽힌 이야기들과 추억이 쏟아져 나온다.
처음에는 그 모든 이야기들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이야기 해 주시는 게 신기했다. 그런데 이제 나도 그렇다.
큰 숫자는 아니더라도 옹기종기하게 모여있는 각 물건들을 보기만 해도 기억이 깨알같이 적힌 꼬리표가 보이는 것 같다.
소소한 물건들도 이러니, 추억과 기억에 대한 이야기들은 더 깊고 진한 잔상으로 남아있다.
그 중에는 행복하거나 괴로운 감정들이 골고루 녹아들어 있는데,
ㅌㅌ「모든 상처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량원다오의 기억과 경험과 느낌에 관한 책이다.
내게는 낯설 량원다오는 20대에 벌써 주목을 받기 시작해서
현재는 칼럼니스트, 진행자, 강연등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에세이지만 쉬운 글은 아니다.
철학과를 졸업한 탓일까, 날카로운 비판 정신에 통찰력까지 갖춘 저자의 눈으로 보고, 기억하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단어부터 읽고 소화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단어부터 더듬더듬 한 줄, 한 챕터를 읽는 동안 음미하고 생각에 잠기게 하는 힘이 있다.
특히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이렇게 진부하지도, 달큰하지도 않을 수가 있을까.
사랑에 대한 이야기들이지만 이미 지난 일들이라는 걸 느낄 수 있는 통찰과 담담함만이 느껴진다.
사실 사랑에 대한 에세이라는 설명과 다르게 나는 단순 일상 에세이로 느껴졌다.
내 친구중에는 내가 생각치 못했던 구석구석을 찌르는 생각으로 나를 놀라게 할 때가 있다.
그런 친구를 한명 더 만난 것 같은 느낌이다.
이 친구는 내가 접하지 못했던 일상에 대해서도 다양한 시각으로 나를 일깨워줘서 또다른 경험을 하게 하고, 고민에 빠지게도 한다.
당장 대답할 필요는 없다. 책을 덮고, 이런 저런 일들을 하며 생각한 뒤에 또 책을 펴서 고민해도 되니까.
담담함을 넘어 건조하고, 집중력있는 문체가 난감하면서도 즐거워진다.
사람 사는 건 다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도 비슷한 가 보다.
옮긴이의 말처럼 이해하고 다시 쏟아내기 어려운 저자의 이야기속에서도 느끼는 걸 공감할 수 있으니.
요즘, 사람들에겐 생각하고 고민하는 시간이 절실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량원다오가 하루에 한 편씩 써 내려갔던 것처럼, 한편씩 읽으면서 함께 하고 싶다.
곧 다가올 나른하고 들뜨기 쉬운 봄날에 뜨거운 햇볕이 그 동행을 완벽하게 해 줄 것 같다.
상처를 받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랑의 노래는 연인을 위해 부르는 것인가, 아니면 자신을 위해 부르는 것인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관계가 가능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