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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사랑
미셸 투르니에 지음, 이원복 옮김 / 섬앤섬 / 2006년 6월
평점 :
질 드 레(프랑스어: Gilles de Rais 1404년 가을~1440년 10월 26일)
프랑스 귀족이자, 군인이며, 한때 잔 다르크의 전우였다. 본명은 질 드 몽모랑시-라발(Gilles de Montmorency-Laval)이다. 그는 뒤에 고문, 강간 및 수많은 아동 살해로 기소되어, 유죄 판결을, 받아 처형을 당했다. 여러 역사학자에 따르면 질 드 레는 한 세기 휠씬 뒤의 사디즘적인 행각을 벌인 헝가리의 귀족 에르제베트 바토리와 함께 근대 연쇄 살인범의 전조로 여겨지게 되었다
미셸 투르니에의 책은 이 번이 두번 째 이다. 첫 번째는 뒷모습이라는 사진집이었기 때문에 작가의 아주 짧은 글들만 만날 수 있어서, 사실 이번이 그와의 첫번 째 만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하다.현존하는 프랑스 최고의 지성이라고 불리우지만 그 명성과는 다르게 평생처럼 결혼 한 번 하지 않은채 작은 마을에서 은둔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의 부제는 질 & 잔 이다. 질은 위에 소개한대로 질 드 레를 말하고, 잔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잔 다르크를 가리킨다.마치 헷세의 나르치와 골트문트가 떠오른다. 나르치스와 골트문트가 '지와 사랑'이라면, 질 & 잔은 '지독한 사랑'이라는 제목을 달고있다. 질 드 레 와 잔다르크 두 사람의 열정적인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짐작해 보았다. 물론 두 사람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 임에는 틀림없지만 남,녀 간의 아름답고 슬픈 그런 평범한 사랑은 아니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말 앞에 붙은 '지독한'이라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셸 투르니에는 이 책에서 신화적 역사소설을 지향한다. 백년전쟁의 영웅 잔다르크와 그에 버금가는 시대의 영웅 질 드 레를 중심으로한 작품은 실존하는 인물의 무게감 만큼이나 커다란 매력을 불러 일으킨다. 잔 다르크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진 질 드 레. 하지만, 질의 사랑은 결코 에로스적 욕망이 아니었다. 그 당시까지 절실한 신앙을 가지고 있던 질에게 잔은 자신을 구원의 길로 이끌어 줄 유일한 사람이었다.
질은 머리를 숙이고 잔의 상처를 살펴보았다. "한 번만이라도 내 키스를 받아주시겠습니까?" 그는 몸을 숙이고 한참 동안 입술로 잔의 상처를 눌렀다. 이윽고 다시 몸을 일으키고 혀로 입술을 핥았다. "나는 당신 피로 영성체를 했습니다. 나는 영원히 당신과 결할되었습니다. 이제부터 당신이 어디를 가든 쫓아다닐 것입니다. 하늘이든 지옥이든!" [본문중에서]
잔 과 질의 사랑은 작품 초반 마녀사냥에 의한 잔다르크의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 그렇다면, 잔 다르크의 죽음이후 질의 행보는 어떠했을까? 자신의 전부였던 잔의 죽음을 목격한 질은 그 이후 엄청난 변화를 겪게된다. 외할아버지의 막대한 유산으로 프랑스 최고의 영주중 한 명이었던 질은 자신의 지위와 재산을 이용하여 엄청난 부정을 일으킨다. 미소년들만을 자신의 성으로 유인하여 변태적 애정행각을 벌리고, 연금술을 비롯한 온갖 부 도덕한 행위에 몰입하여 강간,유괴,살인등을 서슴없이 저지른다. 끈임없이 이어지는 인간사냥과 동물적인 쾌락을 위한 남색. 무수한 생명을 죽이면서 희열을 느끼는 사디스트가 되고 만 것이다. 한 때 프랑스를 구한 가장 위대한 영웅중의 한 명이었던 질 드 레는 사라지고, 오로지 악마를 숭배하며 육체적인 쾌락과 변태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급극한 추악한 인물로 타락하게 된 것이다. 오직 어린 소년만을 재물로 삼았던 질 드 레. 그는 화형대 위에서 불에 타들어가는 잔 다르크를 보면서 , 자신 또한 소년들의 죽음을 통해서만 잔 다르크와 같은 영생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갇게 되었다. 처음에는 소년들을 무척 사랑했던 질 드 레 지만 그의 광기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욱 난폭해 지기만 할 뿐이었다. 그에대한 엄청남 소문은 결코 그의 악마적인 행각을 지켜보지 만은 않게 된다. 무수한 죄목으로 인해 재판장에 선 질 드 레. 그는 끝내 종교적 파문 이라는 극단적인 순간에 이르러 서야 자신의 죄를 인정하게 된다. 물론 그 당시의 사회는 종교적이든 도덕적이든 결코 깨끗한 사람만이 존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누구를 신문하고,재판하는 사람들또한 마찬가지였으며 어느 누구도 누군가에게 돌을 던질 자격이 없는 부폐한 상황이었다. 자신의 전부였던 인물 잔 다르크의 죽음을 통해 시대의 부폐를 일찍 깨달았던 질 드 레는 결코 거대한 부폐 앞에 자신의 죄를 인정할 마음이 없었다.
하지만, 질 드 레는 잔 다르크가 당했던 똑같은 화형대 위에 올라서야 모든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감사의 눈물을 흘린다. 자신으로 인해 고통받고 죽음을 당했던 모든 이들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하고, 영원히 함께 하겠다던 잔 다르크와의 약속을 지키게 된 것에 감사하게 된다. 시대의 살인귀 질 드 레는 그렇게 한 줌의 재로 변하게 된것이다.
질 드 레 라는 실존인물은 근대 연쇄 살인범의 효시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고 한다. 또한 후대에 [푸른수염]의 토대가 되는 등 많은 이들에 의해 회자되어지는 아주 독특한 인물인 듯 하다. 잔 다르크로 인한 지독한 사랑이 가져다 준 삶의 후폭풍은 정말 무서움 그 자체였다. 하지만, 어려서 부터 종교적으로 불안했던 그에게 잔 다르크만이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안식처 였을지 모른다. 미셰 투르니에로 인해 다시 태어 난 두 인물. 지독한 사랑이아니라 정말 무서운 사랑인 것만은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