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정원
심윤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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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드디어 심윤경의 전작에 성공했다. 작가의 첫 작품을 가장 늦게 읽게 된 것이다. 사실 오래전부터 읽고 싶었던 작품이었는데 어쩐지 이 작품을 읽고 나면 더 이상 읽을 작품이 없다는 아쉬운 생각이 들것 같아 차일피일 미루게 되었다.  그 녀는 이번에도 역시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고, 한겨레 문학상을 받기에 충분한 역량의 작품이었다. 황석영의 심사평처럼 계속된 글쓰기를 할 작가에게 점수를 후하게 줬다는 것이 지금 생각해 보면 대단한 선경지명 같다. 지금까지 이어온 심윤경의 글쓰기는 개인적으로 충분히 후한 점수를 주고도 남을 만 하다.

 

성장소설의 정의는 무었일까? 그리고, 성장소설의 한계는 무엇일까? 지금까지 내가 읽어온 수많은 성장소설중에서 가장 으뜸으로 여겼던 것은 은희경의 '새의 선물'이었다. 그 작품을 읽으면서 철저히 공감할 수 있었으며, 지독하게 열중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나의 아름다운 정원은 어떤 작품이었을까?  성장소설이라는 관념을 일시에 무너뜨려버리는 대단한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이 작품의 형식이 특별하다거나 지금까지 전혀 없었던 새로운 시도를 한 것은 아니다. 단지 동구라는 한 소년이 겪는 시대적 상황이 아주 절묘하게 잘 어울러져 있다는 사실이다. 개인의 고통이 시대적 아픔이 되고, 시대적 아픔이 개인의 성장으로 이어지는 유기적인 관계가 아주 아름답고 치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주인공 동구는 나보다는 조금 빠른,아니 거의 비슷한 시기에 어린시절을 보내고 있다. 초등학교 시절 좋아하는 선생님은 광주의 아픔으로 사라져 갔고, 어느순간 자신이 살던 동네에는 생전 보지도 못했던 탱크와 무장한 군인들이 나타난다. 우리 역사에서 새로운 군부가 등장하는 80년대 초반의 이야기이다.  동구네 가족은 최고의 권력을 가진 할머니와 아버지. 그 사이에서 온갖 핍박을 받고 살아가는 어머니가 등장한다. 엘리트이지만 시대를 잘못 만난 덕에 항상 패배자의 길을 걷는 아버지의 모습은 어머니라는 존재를 통해 자신의 탈출구를 삼고자 한다. 그것은 강압과 폭력이라는 형태로 분출되고 만다. 불합리하고 억압적인 집안의 분위기에서 자란 동구가 초등학생이면서도 책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난독증에 걸린 이유도 그러한 분위기와 상관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어둡기만 한 동구네 가족에게 희망은 찾아온다. 둘 째 아들을 애타게 기다리던 할머니의 바람에도 아랑곳 없이 6년 터울의 여자 동생이 태어난 것이다. 4대독자인 동구네 집에 여자 아이는 반가울 수가 없다. 자연히 할머니의 며느리에 대한 지처구는 날로 심해져 간다. 하지만, 동생은 동구와 달리 매우 영특하다. 자라면 자랄 수록 스스로 글을 깨우치고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전혀 애같지 않은 대견한 행동을 한다. 한마디로 영재끼가 보이면서, 하루 아침에 집안의 기대주로 발돋움하게 된다. 동구 또한 자신의 동생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게 된다. 하지만, 동구가 그토록 바라던 아름다운정원은 쉽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얼마 있지 않아 꽃피고 새우는 봄이 찿아 올 것 같았지만,동구의 염원은 80년대의 얼어붙었던 시대 상황만큼이나 아득하고 차갑기만 했다. 그 아픔과 어둠은 어린 동구로서는 헤아리기가 너무도 힘들었을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할머니 속에서 갈등해야 하는 동구는 어떠한 해결책도 만들어 내지 못한다. 오로지 대문 너머로 기웃거린 이웃집의 정원을 바라보며 혼자의 마음속으로만 자신의 정원을 꿈꿀 뿐이었다. 동구가 그토록 찿아 헤매던. 동구의 어머니가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끝까지 지키고자 했던. 오랜세월 당신의 자식과 손주들을 보며 만들어가고자 했던 정원은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어느 누구도 찾지 못한 자신의 아름다운 정원. 그 모습이 참으로 궁금해진다.

 

심윤경의 이번 작품은 정말 아름다웠다. 어린 동구의 시선에 비친 모습들은 눈물겹도록 아름다웠다. 다만, 나의 작은 바람대로 아름답게 끝내지 못한 결말이 너무도 아쉬워서 작가를 원망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작품을 또다시 만나는 것도 결코 쉽지는 않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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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쳐 간 사람들 - 분도우화 3
앤 슬리벤 지음, 윤소임 옮김 / 분도출판사 / 197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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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이라는 물고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거센 조류에 휩쓸려 자신이 살던 바다를 떠나 백사장으로 떠밀려 오게 되었습니다. 욱이로써는 처음 당해보는 일이라 당황할수 밖에 없었지요. 자신이 살던 물속과는 너무도 다른 육지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쏟아지는 태양 덕에 몸에서 물기는 말라가고 점점 숨이 가빠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때 저쪽에서 한 사람이 다가왔습니다. 욱이는 속으로 이젠 살았다라고 환호했지요. 다가온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제발 저를 바닷속으로 다시 돌려 보내 달라고요. 그냥 발로 툭 쳐주던가. 아니면 막대기 같은걸로 밀어주던가 하라고 애원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도와주고는 싶지만 너무도 바뿐 일이 있다면 그냥 지나쳐 갔습니다. 욱이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그래! 얼마나 바빴으면 그냥 지나갔을까? ' 잠시 후 또 한 사람이 다가왔습니다. 욱이는 다시 한번 사정을 했습니다. 전 보다 더 간절하게 사정을 했지요. 제발 저 좀 물속으로 보내주세요. 이번에 만난 사람은 참 생각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물고기를 돌려 보내주면 언젠가는 또 다시 밖으로 밀려나와 허우적 거리겠지.... 그렇다고, 그냥 놔 두면 죽을텐데..... ' 고민에 고민 끝에 이번 사람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 갔습니다. 욱이는 점점 힘들어졌습니다. 숨이 가빠오고 정신도 아득해 지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이번에는 한 여인이 다가왔습니다. 욱이는 이번 기회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그 여인에게 필사적으로 매달렸습니다. 제발 저 좀 물속으로 다시 돌려보내 주세요. 욱이를 불쌍하게 생각한 여인은 욱이에게 커다란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여기에 오기 전에는 어떻게 살았는지. 지금 상황은 어떤지에 대해 꼼꼼히 물어보기 시작했습니다. 욱이는 친절한 여인의 마음에 감탄해서 마지막 힘을 끌어모아 자신의 처리를 이야기 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와 바닷속에서의 가정사. 그리고 여기까지 밀려오게 된 상황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야기를 다 들은 여인의 대답은 뜻 밖이었습니다. 당신이 여기까지 오게 된 데에는 당신의 책임도 있다. 설사 내가 당신을 물속으로 돌려보낸다고 해도 언젠가는 이와 똑같은 어쩌면 더 나뿐 상황에 처하게 될지도 모른다. 내 이야기는 당신이 다시는 이런 일이 당하지 않도록 구체적이고 원론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내가 지금 당신에게 도움을 주는 건 장기적으로 봤을 때 당신에게 커다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앞으로 어떻게 대책을 세울지 진지하게 고민해 봐라. 잠시 후 내가 다시 돌아올테니 그때가지 고민을 하고 이야기를 해달라. 그렇게 말하고는 여인은 자리를 떠났습니다. 욱이는 여인이 한 말을 되새기기 시작했습니다. 그 여인의 말이 옳은 것 같더군요. 똑똑한 여인에게 감탄을 하며 욱이는 점점 의식을 잃어 갔습니다. 그 때 또 한사람이 자신의 옆에 와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욱이는 마지막 힘을 다해 꼬리를 한 번 흔들며 살려달라고 외쳤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욱이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저 쓸쓸한 눈빛으로 욱이를 바라보며 한탄할 뿐이었습니다. '자연은 정말 잔인한 곳이군' 욱이는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자신이 돌아가야할 곳이 바로 눈 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지나쳐 가는 사람들로 인해 욱이는 쓸슬한 최후를 맞이해야 했습니다.  그 때 다시한 번 심한 파도가 몰아쳐서 죽어있는 욱이를 바다로 데려갔습니다. 그토록 가고 싶어하던 바다를 죽음으로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그 때 아까 욱이에게 일장 연설을 했던 여인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욱이가 없어진 것을 안 여인은 기쁜 마음으로 혼잣말을 합니다. 그래, 나는 분명히 그 물고기가 스스로 해결할 줄 알았어. 역시 내 판단이 옳았다고. 앞으로 그 물고기는 절대로 바닷가로 떠 밀려 오는 불행을 당하지 않을거야.....  그렇습니다. 욱이는 다시는 바닷가로 떠밀려 오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죽었기 때문입니다.

 

분도출판사 우화시리즈는 정말 짧고 강렬하다. 읽으면 읽을수록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책에 나오는 물고기처럼 우리는 상대방이 처한 어려움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 하지 않고, 저마다의 입장으로 저마다의 시각으로 재 해석하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많은 오류를 범하게 된다. 폭격으로 자신의 터전을 잃어버린 처참한 곳을 찾아가 폭탄주라는 말도 안되는 농담을 하고, 보온병을 들고서는 해박한 군사학을 논하게 되는 웃지 못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어린이들에게 무상으로 밥을 줘야 한다는 말에는  잘 사는 학생들에게까지 공짜로 밥을 줄만큼 돈이 남아나지 않는다고 강력하게 반발한다. 노인들은 일정한 나이가 되면 무상으로 버스를 탄다. 어쩌면 보유재산을 등록해서 기준 이하의 노인들에게만 무상으로 버스를 탈수 있는 제도가 생길지도 모를 일이다 저마다가 자신의 입장만 생각하는 그냥 지나쳐 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렇다. 바로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에 벌어지는 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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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 가족 레시피 - 제1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6
손현주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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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 가족 레시피는 제1회 문학동네 청소년 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요즘들어 이상하게 청소년 문학을 많이 접하게 된다. 나 또한 청소년 시기를 지나온 사람으로써 그 시절에 대한 향수와 아쉬움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그런 작품들에 손이 가는줄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 시기에 이런 작품들을 읽어 보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 있을수도 있다. 잘 나간다는 출판사들이 너나 할거섮이 청소년 문학관련 작품집을 내는 걸 보면  청소년 문학이 하나의 트렌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 작품의 첫 인상은 천명관의 고령화 가족과 꽤나 유사하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표지 그림때문일 것이다. 고령화 가족의 오함마를 연상시키는 뚱뚱한 인물의 인상이 워낙 강렬했다. 첫 인상은 작품을 읽는 내내 영향력을 발휘 했다. 내 머릿속에는 고령화 가족의 불량스러운 가족구성원이 이 책의 가족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인상을 지우기가 힘들었다. 아마도 요즘 우리 주변에 이와 같은 불량스러운 가족 구성원이 점차 자연스러워지기 때문일지도 모를 일이다. 더이상 독특할 것 없고 그래서 다른 이들에게 감출것도 없는 콩가루 집안의 이야기 들. 그 속에서 살고자 허우적 대는 우리 청소년들의 모습이 안스러울 뿐이다. 고령화가족의 화자가 성인 이었다면 , 이 책의 화자는 이제 고등학교 1학년인 권여울 이라는 소녀라는 것이 큰 차이점 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청소년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에서 여고까지 나온 팔십이 넘은 할머니. 허영과 잔소리로 가득차 있는 이 집안의 최고 어른이다. 그 밑에 아버지라는 사람이 있다. 콩가루 집안의 중심은 언제나 가장이다. 가장이 부실하기 때문에 그 집안은 콩가루라는 오명을 쓸 수 밖에 없다. 세번의 결혼과 세번의 이혼. 그에 따른 엄마가 다른 세명의 자식들..... 채권 추심대행이라는 엄연한 직업이 있지만, 경영란에 허덕여 자신의 가족들을 직원으로 써야하는 아주 부도덕하고 무능한 인물이 바로 아버지이다. 그 밑에 한 때는 잘나가는 주식의 대가였지만 뇌경색으로 인해 폐인의 길을 걷고 있는 삼촌. 선천적인 병으로 인해 20살의 나이에 기저귀를 차야하는 큰오빠. 거대한 몸 만큼이나 미련하고 독설적인 언니. 그리고, 그런 가족들에게로 부터 한시라도 빨리 출가하고 싶은 고등학생 나. 불량가족의 레시피는 이렇다. 가만히 보면  불량스럽기 짝이없지만, 요즘 시대에 정말 그럴수도 있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드는 가족 구성원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공부니, 성숙한 자아의 실현을 바라기는 어렵다. 고등학생인 여울이는 불량스러운 가족에게로 부터 일탈하고자 출가의 계획을 세운다. 그의 꿈은 이 지긋지긋한 가족으로부터 하루 빨리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남들이 저질렀던 즉흥적인 감정에 의한 가출을 하지는 않는다. 치밀한 계획에 의한 완벽한 출가를 꿈꾼다. 고등학교 1학년 치고는 제법 치밀한 면이 엿보인다. 하지만, 불량가족에게 있어 여울이 또한 하나의 레시피에 불과했다. 모든 사람들도 그 가족으로부터의 일탈을 꿈꾸고 있었다. 언니,오빠,삼촌의 가출과 아버지의 부재... 여울이는 자신보다 먼저 선수를 친 사람들을 바라보기만 해야 했다. 그에게 남은 것은 이제 팔순이 넘은 자신의 천적 할머니 뿐이었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내 태생의 근본인 가족들에게 내가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진정한 가족의 의미는? 엄마와 아빠. 형.누나,오빠,동생..... 그 들이 갖는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가족이라는 커다란 울타리가 부실하기에 불량가족이 되는 것인지, 아니면 그 가족을 이루는 각각의 레시피가 불량스럽기 때문에 불량가족이 되는 것인지는 생각해 볼 문제이다. 지극히 불량스러운 가족중에서도 나 혼자만 고고한척 한다고 해결 될 문제는 아니다. 또한 , 그렇게 하기도 정말 힘든 일이다. 가족은 아무리 불량스러워도 가족이다. 하지만, 점점 그 가족이라는 틀을 깨고자 하는 말도 안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희망의 울타리. 지키고자 하는 노력. 상대방의 불량스러움을 보듬어주고 너그럽게 이해해줄수 있는 사랑만이 가족을 유지시켜주는 가장 힘일 것이다. 스무 살 이전에 발생하는 청소년의 자살은 , 사회에 의한 타살이라고 주장하는 꼴통 도덕 선생님의 말이 오랫동안 귓가에 머문다.  아주는 아니지만 그럭저럭 술술 읽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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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모는 어떻게 영어를 잘하게 되었나? - 3단계 문지아이들 7
다니엘 페나크 지음, 장 필립 샤보 그림, 조현실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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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페낙 전작에 도전하기로 했다. 소설처럼, 늑대의눈,마법의 숙제 등으로 이미 나에게는 검증된 작가. 앞으로 우리 딸들의 독서생활을 핑계로 아빠가 먼저 읽어 보기로 했다.  이 작품은 까모 시리즈의 첫 번째에 해당한다. 검색을 해보니 이 책을 포함해서 총 네편의 까모 시리즈가 있다. 세 편만 주문을 했는데, 한 편이 더 있다는 것을 책을 받아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과연 그 유명한 까모는 어떤 인물일까?

 

까모는 프랑스의 평범한 초등학생이다. 영어를 잘 하지 못하지만, 역사에는 꽤 소질이 있다.친구 관계도 꽤 원만한 보통의 학생으로 보인다. 아버지는 어렸을 때 돌아가셨고 지금은 엄마와 단 둘이 살고 있다. 형제는 없다. 이 책으로만 봐서는 아버지의 부재가 특별히 까모의 성장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 것 같지는 않다. 엄마와의 관계도 아직까지는 원만해 보인다. 한 편 까모의 엄마는 어떠한 일에도 꾸준하지 못한 성격이다. 수차례나 직장을 옮겨야 하는 것은 그녀의 성격탓에 기인한다. 가장 최근 직장인 약학연구소에서는  그 회사에서 파는 약의 95%는 가짜이고 5%는 폭리를 취한다는 발언으로 해고되고 말았다. 그녀의 직설적인 성격을 보여주는 단편적인 일화다. 이 책은 까모와 엄마. 두 사람의 영어에 대한 공부비법을 이야기 하고 있다. 과연 영어에 소질이 없었던 까모는 어떻게 학교에서 가장 영어를 잘하는 학생이 될 수 있었을까?  

 

프랑스는 비 영어권의 국가이다. 또한 자신의 나랏말에 대해서 매우 자긍심이 많은 국가이다. 왜 영어를 배워야 하는지에 대해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영어 점수가 바닥인 까모는 더욱 유별나다.  하지만, 까모의 엄마는 아들의 영어 점수가 매우 못마땅하다. 글로벌한 시대에 영어를 못한다는 것은 꽤나 치명적인 약점이다. 드디어 엄마가 까모의 영어에 대해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에 이른다.  과연 어떠한 사교육의 열풍이 불어 닥칠 것인가? 쪽집게 과외를 할까? 아니면, 고액의 교재와 원어민 가정교사를 채용할까? 아예 이 참에 영국으로 조기 유학을 시키고 기러기 엄마가 되어 버릴까?  아마도, 어떤 나라의 잘 나가는 사모님들이었다면 충분히 이런 생각을 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까모의 엄마가 꺼낸 카드는 매우 독특하다. 지금 시대와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펜팔이라는 카드를 선택하게 된다. 영국에 살고 있는 캐서린 언쇼라는 인물과의 펜팔이 시작 된 것이다. 여자 아이다. 까모는 여자 아이와의 연애를 위해서라도 영어 공부를 해야만 하는 것일까?

 

까모는 프랑스어로 편지를 쓴다. 그러면, 영국인 캐시는 영어로 답장을 한다. 다시말해 자신에게 온 편지를 읽기 위해서는 까모는 영어를 공부해야 하고 캐시는 프랑스어를 공부해야 하는 것이다. 외형적으로는 두 사람 모두에게 다른 언어를 습득할 수 있는 좋은 시스템처럼 보인다. 하지만, 남,녀 관계는 아무도 모르는 법이다.  영어를 지독히 하기 싫었던 까모는 처음 보내는 편지에 지독한 독설로 가득 채운다.그렇다면, 캐시가 보낸 답장은 어떨까? 영어실력이 딸리는 까모는 이 책의 화자인 '나'에게 번역을 부탁한다. 하지만, 답장의 내용은 더욱 가관이다.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그 후 까모는 몇 번의 편지를 더 주고 받게 된다. 그 과정에서 서서히 상대방인 캐시에 대해 호감을 갖게 되고 캐시 또한 처음에 까모에게 보인 공격적인 태도를 벗어나 꽤나 관심있는 내용의 글들을 주고 받게 된다. 자연히 연애편지가 오고가다 보니 까모는 '나'에게 번역을 부탁하는 일이 없어지게 된다. 스스로 사전을 끼고 앉아 편지를 읽고,쓰기 위해 열심히 영어에 심취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까모의 영어실력은 일취월장 하고 만다. 학교에서 최고로 영어를 잘하는 학생이 되지만,  다른 과목은  그 반대가 되어간다. 하지만, 심각한 문제는 성적이 아니다. 캐시라는 묘령의 여인이 보낸 편지가 상당히 의심스럽다는 것이다.유난히 두꺼운 편지지와 어딘지 투박한 펜으로 쓰여진 글씨. 풀이 아닌 밀납으로 봉인이 된 봉투. 그리고, 어느 시대인지 구분이 잘 안되는 편지의 내용까지... 캐시라는 묘령의 인물에 지나치게 심취해 있는 까모를 위해 둘도 없는 절친 '나'는 캐시의 정체를 밝히고자 동분서주 한다. 그 결과 캐시는 지금으로부터 200년도 훨씬 전인 18세기의 인물로 판명된다. 까모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 유령의 인물과 사랑에 빠진 것이다. 누군가의 장난이 아니라면 캐시라는 인물은 정신병자 임에 틀림없다. 과연 까모는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까모는 '나'의 진심어린 충고에 이렇게 답한다. '꿈을 꾸고 있는 사람은 함부로 깨우는 법이 아니야.그러다 미치는 수가 있으니까!' 까모도 캐시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이다. 현존하는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캐시에게 집착하는 걸 보면, 까모또한 정상은 아니다. 그렇다면, 묘령의 여인 캐시는 누구인가?

 

편지의 주인공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있는 문학작품의 여주인공이다. 그녀가 보낸 편지의 내용은 소설속의 명대사를 인용한것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이런 장난을 치게 된 것일까? 영어를 못하는 까모를 위해 영어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누군가의 치밀한 장난이었을까?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런 편지를 받은 것이 까모 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수십명의 사람들이 세계 각국의 사람들과 펜팔을 주고 받고 있으며, 모두 다 상대방에게 심각한 중독 증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정도 되면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기에 충분하다. 평범한 학생들에게 펜팔을 빌미로 , 비 정상적인 사랑에 빠지게 배후 세력은 과연 누구일까? 이 책의 마지막에는 거대한 배후세력의 정체가 드러난다. 그 과정에는 물론 '나'의 치밀한 추리력과 끈질긴 인내력. 그리고 친구에 대한 짙은 우정이 깔려있다. 20점 만점에 3점을 받는 형편없는 영어 실력의 소유자 까모를 전교 1등으로 만든 그 배후 세력은 도대체 누구일까? 책장을 덮는 순간 알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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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사랑
미셸 투르니에 지음, 이원복 옮김 / 섬앤섬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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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 드 레(프랑스어: Gilles de Rais 1404년 가을~1440년 10월 26일)

 프랑스 귀족이자, 군인이며, 한때 잔 다르크의 전우였다. 본명은 질 드 몽모랑시-라발(Gilles de Montmorency-Laval)이다. 그는 뒤에 고문, 강간 및 수많은 아동 살해기소되어, 유죄 판결을, 받아 처형을 당했다. 여러 역사학자에 따르면 질 드 레는 한 세기 휠씬 뒤의 사디즘적인 행각을 벌인 헝가리의 귀족 에르제베트 바토리와 함께 근대 연쇄 살인범의 전조로 여겨지게 되었다

 

미셸 투르니에의 책은 이 번이 두번 째 이다. 첫 번째는 뒷모습이라는 사진집이었기 때문에 작가의 아주 짧은 글들만 만날 수 있어서, 사실 이번이 그와의 첫번 째 만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하다.현존하는 프랑스 최고의 지성이라고 불리우지만 그 명성과는 다르게 평생처럼 결혼 한 번 하지 않은채 작은 마을에서 은둔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의 부제는 질 & 잔 이다. 질은 위에 소개한대로 질 드 레를 말하고, 잔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잔 다르크를 가리킨다.마치 헷세의 나르치와 골트문트가 떠오른다. 나르치스와 골트문트가 '지와 사랑'이라면, 질 & 잔은 '지독한 사랑'이라는 제목을 달고있다. 질 드 레 와 잔다르크 두 사람의 열정적인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짐작해 보았다. 물론 두 사람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 임에는 틀림없지만 남,녀 간의 아름답고 슬픈 그런 평범한 사랑은 아니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말 앞에 붙은 '지독한'이라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셸 투르니에는 이 책에서 신화적 역사소설을 지향한다. 백년전쟁의 영웅 잔다르크와 그에 버금가는 시대의 영웅 질 드 레를 중심으로한 작품은 실존하는 인물의  무게감 만큼이나 커다란 매력을 불러 일으킨다. 잔 다르크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진 질 드 레. 하지만, 질의 사랑은 결코 에로스적 욕망이 아니었다. 그 당시까지 절실한 신앙을 가지고 있던 질에게 잔은 자신을 구원의 길로 이끌어 줄 유일한 사람이었다.

 

질은 머리를 숙이고 잔의 상처를 살펴보았다. "한 번만이라도 내 키스를 받아주시겠습니까?" 그는 몸을 숙이고 한참 동안 입술로 잔의 상처를 눌렀다. 이윽고 다시 몸을 일으키고 혀로 입술을 핥았다. "나는 당신 피로 영성체를 했습니다. 나는 영원히 당신과 결할되었습니다. 이제부터 당신이 어디를 가든 쫓아다닐 것입니다. 하늘이든 지옥이든!"  [본문중에서]

 

잔 과 질의 사랑은 작품 초반 마녀사냥에 의한 잔다르크의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 그렇다면, 잔 다르크의 죽음이후 질의 행보는 어떠했을까? 자신의 전부였던 잔의 죽음을 목격한 질은 그 이후 엄청난 변화를 겪게된다. 외할아버지의 막대한 유산으로 프랑스 최고의 영주중 한 명이었던 질은 자신의 지위와 재산을 이용하여 엄청난 부정을 일으킨다. 미소년들만을 자신의 성으로 유인하여 변태적 애정행각을 벌리고, 연금술을 비롯한 온갖 부 도덕한 행위에 몰입하여 강간,유괴,살인등을 서슴없이 저지른다. 끈임없이 이어지는 인간사냥과 동물적인 쾌락을 위한 남색. 무수한 생명을 죽이면서 희열을 느끼는 사디스트가 되고 만 것이다. 한 때 프랑스를 구한 가장 위대한 영웅중의 한 명이었던 질 드 레는 사라지고, 오로지 악마를 숭배하며 육체적인 쾌락과 변태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급극한  추악한 인물로 타락하게 된 것이다.  오직 어린 소년만을 재물로 삼았던 질 드 레. 그는 화형대 위에서 불에 타들어가는 잔 다르크를 보면서 , 자신 또한 소년들의 죽음을 통해서만 잔 다르크와 같은 영생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갇게 되었다. 처음에는 소년들을 무척 사랑했던 질 드 레 지만 그의 광기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욱 난폭해 지기만 할 뿐이었다. 그에대한 엄청남 소문은 결코 그의 악마적인 행각을 지켜보지 만은 않게 된다.  무수한 죄목으로 인해 재판장에 선 질 드 레. 그는 끝내 종교적 파문 이라는 극단적인 순간에 이르러 서야 자신의 죄를 인정하게 된다. 물론 그 당시의 사회는 종교적이든 도덕적이든 결코 깨끗한 사람만이 존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누구를 신문하고,재판하는 사람들또한 마찬가지였으며 어느 누구도 누군가에게 돌을 던질 자격이 없는 부폐한 상황이었다. 자신의 전부였던 인물 잔 다르크의 죽음을 통해 시대의 부폐를 일찍 깨달았던 질 드 레는 결코 거대한 부폐 앞에 자신의 죄를 인정할 마음이 없었다.

 

하지만, 질 드 레는 잔 다르크가 당했던 똑같은 화형대 위에 올라서야 모든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감사의 눈물을 흘린다. 자신으로 인해 고통받고 죽음을 당했던 모든 이들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하고, 영원히 함께 하겠다던 잔 다르크와의 약속을 지키게 된 것에 감사하게 된다. 시대의 살인귀 질 드 레는 그렇게 한 줌의 재로 변하게 된것이다. 

 

질 드 레 라는 실존인물은 근대 연쇄 살인범의 효시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고 한다. 또한 후대에 [푸른수염]의 토대가 되는 등 많은 이들에 의해 회자되어지는 아주 독특한 인물인 듯 하다. 잔 다르크로 인한 지독한 사랑이 가져다 준 삶의 후폭풍은 정말 무서움 그 자체였다. 하지만, 어려서 부터 종교적으로 불안했던 그에게 잔 다르크만이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안식처 였을지 모른다. 미셰 투르니에로 인해 다시 태어 난 두 인물. 지독한 사랑이아니라 정말 무서운 사랑인 것만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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