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반양장) 보름달문고 44
김려령 지음, 장경혜 그림 / 문학동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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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득이], [우아한 거짓말]의 작가 김려령의 최신작이다.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작품을 쓰는 작가답게 이번 작품  또한 동화적이면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담고있는 아주 재미있는 작품이다. [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어쩐지 신파적인 느낌이 나는 제목이다. 마치 이산가족 찾기의 테마송과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는 제목. 작가는 어쩌면 자전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책 속의 또다른 작가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책 속의 주인공 오명랑은 동화 작가이다.  [내 가슴에 낙타가 산다]라는 책으로 화려하게 수상을 하며 등단을 한다. 하지만, 그 이후 변변한 후속작이 없는 말 그대로 별 볼일 없는 작가로 전전하게 된다. 보다 못한 올케의 지청구를 견디지 못한 오명랑은 생활전선에 뛰어들기 위해 아파트 아이들을 모아들인다. 과외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오작가가 시작한 과외는 국어,논술과 같은 것이 아닌 단순히 이야기 듣기 수업이다. 정해진 시간동안 오작가의 이야기를 듣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쓰기,말하기가 중요시되는 시점에 듣기라는 생소한 과목을 내 세웠으니 아파트 주민들에게 인기가 있을리 없다. 당연히 수강생들은 단 세명. 그 나마 영어학원을 다니기 싫다는 이유만으로 온 아이와 그 동생. 그리고, 미래의 동화작가가 꿈인 꼬맹이 뿐이다. 사실 오작가는 듣기수업이라는 형태로 돈을 벌기 보다는 자신의 가슴속에 오랫동안 걸려있던 체기를 말로써 토해내고 싶은 욕구가 더욱 강했기 때문이다.  오작가는 듣기수업을 통해 천천히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오랜시간동안 묵혀 두었던 이야기. 자신의 글로써 다시 탄생 시킬 자신이 없었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넘어야 할 거대한 장애물과 같은 고백을 시작하게 된다. 그 이야기 속에 건널목 아저씨라는 묘령의 인물이 등장한다. 사실 이 책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아파트 단지 후문에는 건널목이 없다. 사람의 왕래가 많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신호등은 물론 건널목 마저 생기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그 길을 통해 어린 아이들은 학교를 다닌다. 많지는 않지만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다. 어는 날 그 찻길에 이상한 사람이 등장한다. 공사장에서 쓰는 헬멧에 신호등을 연상케하는 파란색과 빨간색을 그려 넣고서, 건널목이 그려진 카펫을 들고 다니는 일명 건널목 아저씨. 그 가 등장하자 순식간에 임시 건널목과 신호등이 생긴다. 등,하교길의 아이들을 위해 교통자원봉사를 하게 된 것이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건널목이 되어주는 아저씨는 이제 아파트의 명물이 되었다. 주민들은 물론 경비 아저씨들에게도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가 되어 버린 건널목 아저씨. 사실 그는 일정한 거주지도 없이 전국을 떠돌아 다니며, 사고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에서 임시 건널목이 되어주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관할 행정관청에 건널목을 만들어달라는 무언의 시위이기도 하다. 그 의 딱한 사정을 알게된 아파트 측에서는 건널목아저씨에게 정식 경비직을 제안 하지만, 한 곳에 얽매이기를 싫어하는 건널목 아저씨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지만, 당분간 아파트의 빈 경비실을 숙소 삼아 살면서, 명예 경비직을 수행하게 된다. 건널목 아저씨가 교통 자원봉사를 하게 된 계기에는 자신의 쌍둥이 아들을 교통 사고로 잃은 아픈 과거 때문이다. 부인에 이어 사랑하는 아들들까지 잃게 된 건널목 아저씨는 그 이후 모든 아이들의 행복과 안전을 위해 살아가게 된다.  임시 건널목이 되어 주는 일은 물론이고, 결손 가정 혹은 소년,소녀 가장을 위해 틈틈히 모은 폐지와 고철을 팔아가며 그 들을 후원하고 있었다.  그 아파트에서 만난 아이들이 도희와 태희,태석 남매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싸우는 엄마,아빠를 피해 밖으로만 맴돌던 아이 도희. 아버지의 죽음과 어머니의 가출로 인해 졸지에 고아가 된 태희와 태석. 건널목아저씨를 통해 세 아이는 따뜻한 우정을 키우게 된다.  서로가 부모의 따뜻함에 굶주렸던 아이들은 건널목을 통해 따뜻한 교감을 하게 된다. 건널목 아저씨는 단순히 사람들만이 통행할 수 있는 임시 건널목을 만들어 주는 것이아니라,따뜻한 사랑까지도 공유할 수 있는 영혼의 건널목이기도 했던 것이다. 아저씨의 보살핌으로 인해 아이들은 힘들지만 포기하지 않은 채 꿋꿋한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런던, 어느 날 도희는 부모님을 따라 시골 할아버지 댁으로 떠나게 된다. 둘만 남게 된 태희와 태석남매앞에 끝내 나타날 것 같지 않던 엄마가 모습을 드러낸다.아이들에게 다시 엄마가 생기게 된 것이다. 엄마가 돌아오자 이번에는 건널목 아저씨가 떠났다. 그 이후 아이들은 다시는 건널목 아저씨를 만나지 못하게 되었다.  이야기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처음에는 시큰둥했던 아이들의 반응은 열광적으로 바뀐다. 사실 듣기의 중요성은 말하기,쓰기보다 결코 뒤쳐지지 않는다. 잘 들어야만 잘 말할수 있다는 것은 너무도 자명한 일이다.   이야기가 결말로 다다르는 순간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쉼 없이 이야기를 토해내는 오작가와 그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 있던 오작가의 어머니.  그리고, 오작가의 오빠와 결혼한 올케언니.... 오작가의 이야기가 끝나는 순간에도 아파트 밖 차도에서는 오작가의 오빠가 아이들을 위해 교통정리를 하고 있었다. 비록 오랜 시절 그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베풀었던 건널목 아저씨는 볼 수 없지만, 새로운 건널목 아저씨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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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지코믹스 - 버트런드 러셀의 삶을 통해 보는 수학의 원리
아포스톨로스 독시아디스 & 크리스토스 H. 파파디미트리우 지음, 전대호 옮김, 알레코스 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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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어려운 책을 읽었다. 만화라는 이유만으로 우습게 생각하다가는 얼마나 큰 낭패를 당할 수 있는가는 아주 잘 보여준 책이다. 수학,논리학이라는 분야는 그 말체가 주는 난해함 만으로도 접근을 불가능하게 하는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런 것을 잘 알고 있어서 일까? 많은 이들에게 수학과 논릭학을 알리게 위해 선택한 것이 러셀이고 만화라는 수단이었다. 하지만, 살다살다 이런 만화책을 정말 처음 접해보았다. 무엇이든지 쉽게 풀이한 책들은 많이 있었지만 처음 부터 펼쳐지는 논릭학에 대한 논쟁이 막막하게 느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림이 많다는 것만을 제외하면 이 책은 만화책이 아니다. 어떠한 철학,논리학 책보다 어렵고 무거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절대로 제목에 넘어가면 안된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단순히 어렵기만 한 책은 아니라는 점도 밝혀두고 싶다. 나처럼 논릭학이라는 분야에 전혀 문외한인 사람. 그들의 논쟁이 말장난 이라고 느끼는 사람에게만 국한 된 이야기 이다. 철학자 이자 위대한 사상가라고만 알았던 러셀이 등장하기에 혹해서 읽었던 책이었지만, 그의 방대한 학술적 소양을 경험하고 나니 러셀이라는 인물을 과연 어떻게 표현해야 옳을지 갈피를 잡을수 없게 되었다.  말 그대로 위대한 석학이라고 표현해야 할 것 같다.

 

책은 전쟁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시대의 최고 지성이자 반전주의자로 명성을 떨치던 러셀의 강의장에  나타나면서 시작된다. 자신들의 반전 의지를 지지해주기를 강력히 주장하지만, 러셀은 일단 자신의 강의를 듣고 이야기하자고 한다. 그로부터 러셀의 위대한 일대기와 그의 논리 정연한 논릭학 이야기가 시작된다. 물론 나는 생소하고, 잘 이해하기 힘든 부분들이 많았다. 말 그대로 천재라고 밖에는 표현 할 수 없는 인물 러셀. 하지만, 어머니,아버지조차 잘 모른채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야 만 했던 인물. 그러면서도 증명하고, 고민하고, 공부하기를 종하했던 불가사의한 인물 러셀.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사실은 전혀 당연하지 않다는 것. 하물며 1 + 1 =2라는 지극히 초보적인 산수조차도 논릭학 적인 측면에서는 상당히 중요하고 난해한 문제로 돌변해 버린다.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한 반문과 재해석. 이런 것들이 기본이 되어 현대의 과학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 왔다. 비단 과학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철학,문학,예술에 이르기까지 논리학이 차지하는 범주는 어마어마 하다. 그 중앙에 러셀이라는 위대한 인물이 존재하고 있었다.러셀 뿐만이 아니라 그 가 많은 영향을 받았던 인물이나 혹은 그의 제자라고 알려진 인물들 고틀로프 프레게, 게오르그 칸토어,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앨프리드 노스 화이트헤드, 쿠르트 괴델 등의 학문에 대한 열정은 존경심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물질적으로는 상당히 풍요로웠지만, 정상적이지 못한 가족사로 인해 상대적으로 황폐한 유년기를 거쳤던 러셀에게 수학과,논리학같은 학문은 그를 지지해 주는 유일한 버팀대 였을지도 모르겠다.  학문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그를 지금까지도 가장 위대한 인물로 많은 이들에게 기억되게 하는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만화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그리고 글씨도 무지하게 많은 책 . 로지코믹스. 분명한 것은 이 책이 아주 뛰어난 논리학의 지침서 라는 것이다. 비록 나는 완전히 녹아들지 못했지만, 많은 이들에게는 훌륭한 길잡이가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정말 힘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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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 레볼루션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12
알렉스 쉬어러 지음, 이주혜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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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가 막히게 재미있는 책을 읽었다. 요즘 즐겨 읽고 있는 아지즈 네신에 버금가는 풍자가 돋보이는 책이었다. 초콜릿 레볼루션이라는 제목만 놓고 보면 무슨 이야기 일까 궁금하지만, 책을 펼치는 순간 단 한 순간도 눈을 떼지 못할 만큼 흡인력이 뛰어나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흡인력과 가독성이다. 또한 그 속에 숨어있는 짙은 풍자또한 배제할 수 없다. 작가의 이력을 보니 트럭기사, 백과사전 외판원등 수 십가지의 직업을 거쳐 시나리오 작가로 명성을 떨쳤다고 한다. 작가의 독특한 경력만큼이나 책의 내용또한 기발하다고 할 수 있다. 청소년은 물론 성인들까지도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훌륭한 작품이었다.

 

배경은 영국이다. 시대는 불분명 하다. 어느 날 갑자기 초콜릿 금지령이 내렸다. 초콜릿 뿐이 아니다. 설탕과 사탕등 단 맛을 내는 물건은 모두 금지되었다. 오래전 미국에서 있었던 금주령과 같은 상상을 초월한 법이다. 이 법을 제정한 것은 새로이 집권하게 된 [국민건강당]이다. 국민건강당의 정책이념은 국민의 건강에 악 영향을 끼치는 음식물과 행동은 전면 금지한다는 것이다.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도모하기 위한 강력한 정책들이 등장한다. 그 중의 가장 핵심 법안이 초콜릿 금지령이다. 자신들의 모토 '저질 식단이 야기하는 비만과 질병을 근절하고 국민의 신체 및 치아 건강을 목표로 하는 정당'에 걸맞는 행동이다. 국민건강당의 정책이념을 보면 전혀 잘못된 것이 없다. 초콜릿을 비롯한 당분이 많이 포함된 음식.또한 현대병의 근원이라 불리어지는 정크푸드들. 우리의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므로,그러한 음식물들을 먹지 말자고 하는 것은 아주 바람직한 행동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초콜릿과 같은 유해물질( 국민건강당의 관점에서 본 해석)을 법으로 금지 시키고, 그것을 제조,판매 혹은 소지 하는 이들에게는 강제적인 제재가 따른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국민들의 권리를 박탈한 것이다.

 

초콜릿에 길들어져 있던 국민들은 혼란에 빠지게 된다. 왜. 초콜릿이 금지되게 되었냐라는 질문에 자조적인 대답이 따른다. '난 국민건강당을 지지한 적이 없어' 그렇기 때문에 난 이법에 책임도 없고 따르지도 않을거야. 그렇다면 과연 국민건강당을 지지한 사람들은 누구일까? 물론 국민건강당의 당원들과 그들의 공약을 열열히 지지하는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 이 책에서는 초콜릿 경찰대의 최고 권력자 경감과 청소년 선도단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국민건강당을 지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국민건강당을 지지 하지 않기 위해 다른 정당을 지지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이다. 즉, 무관심이었다. 정치의 무관심은 결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단지 선거를 하는게 귀찮아서, 내가 참여하지 않는다고해서 큰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안일함 때문에 , 역사는 뜻하지 않은대로 쓰여진 경우가 많았다.

 

초콜릿이 금지되자 많은 일들이 벌어진다. 당연히 암거래상이 생겨나고 초콜릿을 소지,판매 했다는 이유만으로 대상을 뛰어넘는 잔인한 탄압이 시작된다.  학교에 까지 침입한 공권력은 급기야 도시락 검사까지 하게된다. 정부 지침에 따른 도시락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도시락 바닥에 몰래 초콜릿을 숨겨두었던 학생이 들통나게 된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정신개조 사업. 우리 나라 말대로 하면 녹화사업이다. 마치 80년대 정신교육대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한 분위기 이다.  정신교육대를 다녀온 학생은 말 그대로 정신이 개조되어 돌아온다. 무서운 일이다.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정권은 엄청난 힘으로 탄압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혹정에 대항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알기 쉽게 이야기하면 민주투사들이다. 자신들의 권리와 자유를 되찾기 위해(초콜릿을 먹기 위해] 그들은 지하조직을 만들어 활동한다. 초콜릿을 직접 만들어 유통하면서 , 마음대로 초콜릿을 먹을 수 잇는 세상을 꿈꾼다. 이 과정은 흡사 유신과 군부과 득실 대던 시절, 민주화를 갈망하며 몰래 활동했던 진정한 투사들을 연상케 한다. 단지 초콜릿을 먹는 행위였지만, 그들은 목숨을 내건 위험한 투쟁이었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번득이는 감시의 눈을 피하지 못한 채 초콜릿 민주 투사들은 공권력의 그물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와해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핵심인물들이 검거된 것이다.  간혹 투쟁의 역사를 보면 핵심인물들의 검거가 민주화의 도화선이 되는 경우가 간혹 있다. 우리 나라의 경우만 보더라도 전태일,이한열 열사등의 죽음이 위대한 투쟁의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더이상 초콜릿을 멀리 할 수가 없었다. 초콜릿이 없는 생활은 건강의 증진이 아닌, 맥빠지는 일이었다. 이젠 초콜릿을 먹는 일만이 남았다. 하지만, 권력은 무서웠다. 그들을 감시하는 눈길을 피할수가 없었다. 누군가가 나서야 했다. 초콜릿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이 필요했다. 대대적인 작전이 펼쳐진다. 목숨을 건 투쟁이 시작된다. 방송국을 점거하여 대국민 연설을 통해 민중의 힘을 결집하고자 하는 눈물겨운 호소가 펼쳐진다. 그들에게 필요했던 건 단 한 자루의 촛불이었다. 하지만, 촛불의 힘은 무서웠다. 우리들은 잘 알고 있다. 힘들 때마다, 견디기 어려울 때마다 거리를 가득 채웠던 함성과 춧불들을..... 드디어 국민들은 초콜릿을 위해 분연히 떨쳐 일어선다. 그들중에는 황혼을 앞둔 노인들도 있었고, 오로지 초콜릿이 좋은 철부지 아이들도 있었고, 초콜릿 사업에 종사했던 사람들도 있엇고, 넥타이부대,유모차부대,군인,경찰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심지어 초콜릿 경찰대라는 권력의 핵심세력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드디어, 초콜릿의 자유을 얻게 된 것이다.

 

말도 안되는 만화같은 이야기 이지만, 읽는 내내 다른 무엇인가를 떠올리게 하는 책이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정치의 무관심이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또한, 자신만이 옳다고 믿는 독선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이 세상엔 다른 사람들을 위해 무엇이 옳은지 알고 있다는 생각에 이건 해라, 이건 하지마라,이렇게 살아라,남들에게 설교하는 걸 너무나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거야.이들은 자기가 알고 있는 길만이 유일하게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 생각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단다'  바로 이것이 독선이고 독재의 시작이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명심해야 할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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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워하다 죽으리
이수광 지음 / 창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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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큼이나 아련한 내용의 책이었다. '그리워하다 죽으리'라는 제목에서 나타나듯 이 책은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의 아쉬움을 잔잔하게 그려가고 있다. 조선시대 비운의  시인 김려의 애틋한 사랑이야기는 200년이라는 시간을 훌쩍 뛰어 넘어 지금의 우리에게 까지 잔잔한 파장을 일으킨다.

소년시절 저잣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여인 연화. 김려와 연화는 첫눈에 반하는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사랑이야기는 흔하다. 이루어지는 사랑이야기는 시시하다. 당연히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게 된다. 무수히 회자된 사랑이야기를 또다시 한다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 그렇다면 작가는 과연 흔하고도 흔한 사랑타령을 어떻게 풀어갔을까? 김려는 뼈대있는 양반의 자손이다. 하지만, 그가 사랑하게된 여인 연화는 기생에 불과하다. 신분제도가 엄격했던 조선시대에서 양반과 기생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다. 아니, 사랑은 이루어질 수 있다. 하지만 신분의 제약을 벗어난 합법적 연애는 이루어질 수 없다. 자연히 양반의 첩이 되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이광표의 소실이 되고자 한양에 온 기상 연화는 이광표의 탄핵으로 파혼 당하게 된다. 연화는 기생이라고 하지만 글과 그림에 능하고 북방의 기생답게 무예에도 능했을 뿐만 아니라  절세미인이라 이광표의 사랑을 한 몸에 받게 된다. 하지만, 이광표의 몰락으로 갈 곳을 잃은 연화는 몸까지 성하지 못한 탓에 하릴없이 한양에서 시간을 보내던 참이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김려와의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된다. 왕의 행차를 구경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김려의 눈에 띄게 되고, 첫 눈에 반한 김려는 몇날 며칠을 연화의 집에 몰래 숨어 연화와의 만남을 기다리게 된다. 이 과정에서 나는 얼마전 읽은 이옥의 [심생전]이 떠올랐다. 청춘남녀의 만나는 과정이 너무도 똑같았고 심지어는 연화와 김려의 대화까지도 토씨하나 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생전을 찾아 비교해 보니 정말 너무도 유사했다.이 순간부터 책을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 책의 마지막 부분 작가의 말을 보니 그 부분은 이옥의 [심생전]에서 따왔다는 말을 듣고 의문이 풀리기는 했다. 김려와 이옥이 절친이었다고 하니, 그 의 글에서 모티브를 따 오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심생전에 대한 그림자는 이 책을 읽는 마지막 까지 나에게서 걷히지 않았고, 책의 재미를 반감시킨 중요한 이유가 되기도 했다.

 

김려와의 운명적인 만남이후 두 사람은 깊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연화는 자신의 고향인 함경도 부령으로 떠나야 했고, 김려는 천주학이라는 누명을 쓰고 경남 진해로 유배길을 떠나게 된다. 이 때부터 두 사람은 만날 수 없는 운명이 되고 만다. 3천리가 되는 머나먼 길은 편지를 주고 받는데만 근 일년이 걸리는 시기이다. 멀리 떨어진 거리 만큼 그 들의 사랑은 그리움이 되고 한이 되어간다. 짧은 만남은 그 들에게 기나긴 기다림이라는 고통만을 안겨줄 뿐이었다. 언젠가는 다시 한 번 만날 것이라는 작은 희망만을 간직한 채 그들은 지나간 시간만을 탐해야 했다.우여곡절 끝에 유배가 해제되지만 또 한번의 당쟁으로 김려는 머나먼 유배길을 떠나게 된다. 하지만, 사랑의 힘 때문인지 유배지가 연화가 있는 부령으로 바뀌게 되고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던 두 사람의 상봉이 이루어지게 된다. 유배지에서 두 사람은 인생에 있어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비록 부부의 예를 갖추지는 못 했지만 그 들은 오랜 시간 가슴에 품었던 연정을 마음껏 나누게 된다. 유배가 해제되면 자신의 곁을 떠나게 될 김려. 평생을 자신과 함께 할 것을 바라지만 운명은 그 들의 사랑을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유배가 풀린 김려는 부령 연화의 곁을 떠나게 된다. 두 사람의 행복했던 시간은 여기까지만 이었다. 한양으로 돌아온 김려. 하지만 김려는 또 다시 유배의 길을 떠나게 되고, 고향에 남은 연화는 춘향이와도 같은 절개를 지키기 위해 수절을 하다 모진 고초를 당하게 된다. 끝내 두 사람은 돌이킬 수 없는 병을 안게 되고 오로지 마지막으로 얼굴을 한 번 보고 죽기만을 소원하기에 이른다.

 

유배가 풀려 연화의 소식을 듣게 된 김려는 운명에 끌리듯 연화를 찾아 길을 떠나게 된다. 이 책은 한양에서 함경도 부령으로 연화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두 사람이 같이 했던 지난 시간들을 회상하는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죽어야 하지만 평생을 기다리던 님을 보기 위해 죽지 못하는 여인 연화. 평생동안 가슴속에 묻었던 연인을 위해 머나먼 길을 재촉하는 김려. 그 과정에서 그 들이 겪었던 결코 편안하지 못했던 사랑 이야기 들은 두 사람이 앞으로 겪어야 할 미래만큼이나 안타깝고 슬프기만 하다. 두 사람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다. 제목 그대로 그리워하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모든 것을 떠나 자신의 목숨과도 바꿀수 있는 사랑이 있다는 것. 평생을 가슴에 품고 만 살아도 행복한 사랑이 있다는 것. 오랜 시간을 떠나 우리에게 감동을 안겨주는 이유일 것이다. 그리워 하다 죽었으니 다른 세상에서는 그리움이 행복으로 바뀌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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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의 아이들 - 부모를 한국으로 떠나보낸 조선족 아이들 이야기 문학동네 청소년 8
박영희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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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조선동포는 나에게 참 익숙한 사람들이다. 직업의 특성상 그 들과 함께 일할 수 밖에 없고, 개인적으로 꽤 오랜 유대관계를 형성해 온 사람들도 있다. 그들을 바라보는 시각또한 많이 변했다. 처음에는 아주 좋지 않은 인상을 많이 받았었고, 실무에서 부딪히며 좋지 않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알게 되었다. 같은 사람들이라는 것. 조선족이기 때문에 색안경을 끼고 볼 것이 아니라, 그 들중에도 여러 분류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만연되어 있는 인종차별. 특히 우리보다 조금 뒤쳐진다고 생각하는 소수민족에게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차별을 하는 우리들의 태도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 조선동포의 위상은 많이 높아졌다. 그들은 엄연한 우리 사회의 한 구성원이다. 그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많은 혼란을 맞게 될 것이다. 이젠 좀더 넓은 시선을 가질 필요가 있다.

 

조선동포가 우리 나라를 찾는 이유는 단 한가지이다. 바로 경제적 이익. 쉽게 이야기 해서 돈을 벌기 위함이다. 상대적으로 비싼 인건비로 인해 중국에서 일하는 것 보다는 우리 나라에서 막일을 하는 것이 훨씬 더 많은 경제적 이익을 추구할 수 있다. 중국에서 전문직에 종사 하는 것 보다 우리나라에서 힘든 노동일을 하는 것이 돈을 더 많이 번다고 할 정도이다.물론 지금은 많이 변한것도 사실이다. 불과 삼십년 전만 해도 우리의 형님.아버지들이 소위 오일달러의 붐을 일으켰던 중동에 앞다투어 진출을 한 걸 생각해 보면 그다지 생소한 일도 아니다. 내가 어렸을 때 주위에서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소리들 중의 하나가 중동에 일하러 간 가족의 불화에 관한 이야기였다. 아마 드라마에서도 그런 소재가 자주 등장한 걸 보면 사회문제중의 하나로 심각해게 대두 되었던 듯 하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돈 보다 중요한 것이 많다. 눈에서 보이지 않으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이 절대적 진실은 아니지만, 그 경우에 돈이라는 것이 보태지면 좀더 심각한 문제로 변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한 때 중국에서 조선족은 근면,성실의 상징이었다고 한다. 척박한 땅에서 자신만의 보금자리를 개척해낸 민족. 말이 통하지 않는 이국 땅에서 우리의 말과 문화를 소중히 간직해 온 살아있는 민족. 중국의 한족들조차 조선족을 본받아야 한다는 말이 나올만큼 우리 민족의 위상은 대단했다고 한다. 하지만, 한중수교가 이루어진 직후 급격하게 늘어난 조선족의 한국행으로 인해 중국의 조선족은 뿌리마저 흔들릴 위험에 처하게 된다. 인구의 급격한 감소와 더불어 한국에서의 반짝 성공으로 인해 일하지 않는 민족, 한탕을 바라는 게으른 민족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것은 버려진 아이들의 증가다. 대부분의 부모중 한 명이상이 한국으로 들어간 상황. 아이들은 이산의 슬픔을 견뎌야 했다. 하지만, 그것이 정해진 슬픔이라면 어느정도 인내할수 있겠지만, 오랜 타지 생활은 가정의 불화를 초래하고만다. 떨어져 있는 부모로 인해 대다수의 가족은 이혼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말 그대로 한국으로 돈 벌러가서 바람이 난 것이다. 편모,편부의 아이들은 물론 아예 부모 모두에게 버림받은 아이들까지 이제 중국에서의 조선족은 버림받은 민족이 되어가고 있었다. 어차피 아이들은 중국에서 태어났다. 그들의 국적은 한국이 아니다. 말도 언어도 한국말 보다는 중국말이 더 편한 사람들이다. 그들의 시선에 아버지,어머니의 고향인 한국이 곱게 보일리 없다. 그들에게 한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없어져야 할 나라로 각인되어 가고 있었다. 과연 그 책임은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

 

값싼 노동력을 위해 무분별하게 중국교포를 채용하는 우리의 풍토.그 과정에서 불합리한 노동력 착취와 인종 차별은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다. 대림동,안산과 같은 곳은 중국 교표들의 도시로 변해가고 있다. 어느덧 그들의 집성촌이 되어버린 도시의 풍경은 이국적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듯 하다. 하지만, 그들의 생활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가족을 떠나 타지에서 생활하는 그들에게 안락한 생활은 사치일수도 있다. 타지에서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가족을 등지는 사람들. 그 과정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잊혀져 가는 아이들. 그들은 자신이 왜 태어났는지도 모른채. 자신들의 부모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채 버림받아 가고 있었다. 이것또한 물질만능주의가 부른 폐단이다. 경제적 삶이 윤택해 질수록, 가족의 따뜻한 인간애는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돈보다는 부모의 따뜻한 정이 그리운 아이들. 만원짜리 점심을 사먹기 보다는, 엄마의 도시락이 그리운 아이들. 그들의 눈에서 눈물을 멈추게 할 방법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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