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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변경선 ㅣ 문학동네 청소년 9
전삼혜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4월
평점 :
쏟아져 나오고 있다. 동화로 대변되는 유아,아동 분야와 성인들을 주 대상으로 하는 일만 문학 서적사이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청소년 문학이라는 것은 '낀세대'라는 표현답게 작품의 위치도 참 모호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면에서 청소년 소설의 다양화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청소년 문학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오다 보니 점점 다양성이라는 것이 희미해져가는 것 또한 사실이다. 청소년들의 주된 관심사와 그들의 일상을 그리다 보니 주제가 커다란 틀에서 벗어 날 수는 없겠지만 교실에서 벌어지는 왕따문제와 부모와의 갈등 사춘기 시절에 닥치게 되는 그들만의 사랑이라는 한정된 주제에서 그려지다 보니 점점 식상해져 가고 있다. 또한 청소년 문학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평범하면서도 아주 극한 상황에 처하게 되는 인물들이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왕따로 인한 사회부적응 과 그로 인한 일탈. 혹은 지극히 평범해 보이고 모범적으로 보이는 학생들의 감추어진 흐트러진 모습들... 마치 모든 청소년들이 정상이 아닌 경우처럼 표현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었다. 문제의식을 제기하고자 하자면, 어쩔수 없는 상황설정일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다 보면 좀더 자극적이고 독특한 주제를 찾게 되고, 그러다 보면 현실과는 동떨어진 말도 안되는 상황이 설정 될수도 있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우려를 갖고 있었다. 그런 면에서 전삼혜의 소설 '날짜 변경선'은 지극히 평범한 학생들의 너무도 평범한 이야기를 정말 밋밋하게 그려나간 작품이라고 이야기 하고 싶다. 자칫 내가 하고 있는 말이 작품이 너무 평이해서 재미가 없다라는 말로 들릴수도 있지만 오히려 저마다 튀고자 하는 상황에서 감추고자 하는 사람이 오히려 도드라지게 보일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이 작품이 결코 평범하고 재미없는 작품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실 재미라는 면에서도 날짜변경선은 꽤나 흥미로운 요소를 많이 포함하고 있다.
청소년기를 지난지 얼마 안된(?) 이십대의 작가답게 그들의 이야기를 아주 그들 답게 풀어가고 있다. 문창과 출신인 작가의 이력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이 작품의 주인공들. 그들의 모습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고등학생이지만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수 없는 조금은 독특한 학생들이기도 하다. 일명 백일장 키드라 불리우는 아이들. 예고를 다니며 문창과 지망생인 '우진', 전국의 모든 백일장을 휩쓸다 시피하는 '윤희' , 전국의 모든 백일장에 꼬박꼬박 참가하지만 말 그대로 참가에만 의미를 두고 있는 나 '현수' 문학이라는 공통적인 주제로 만난 세 사람은 문학이라는 주제로 자칫 다른 학생들과는 다르게 보일지 모르지만 그들또한 똑같이 공부하고 똑같이 공부하는 평범한 고등학생일 뿐이었다.어쩌면 그들에게 최고의 화두인 문학은 대학 입시라는 것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윤희는 전국의 모든 백일장을 휩쓰는 말 그대로 최고의 고등학생 문학도이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아픈 과거가 있었다. 왕따라는 교실의 고질적인 병마에 사로잡힌 그녀는, 고통스러운 학창 시절을 보내게 되고, 그 시절의 아픔은 고스란히 그녀의 글을 통해 다시 태어난다. 남다른 아픔으로인해 더욱 성숙해 진것인지, 아니면 타고난 문학적 재질이 뛰어난건지 그녀는 최고의 엘리트 문청이라는 칭호를 얻게 된다. 물론 그로인해 백일장에 참가하는 다른 학생들로 부터 온갖 오해와 질투를 한 몸에 받기도 하고 심지어는 자신의 아픈 과거를 팔아먹는다는 우진의 악의성 인터넷 게시물로 인해 자칫 마녀사냥의 희생자가 될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녀는 그 모든 오해와 소문들에 대해 단 한마디의 변명과 해명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궁금증만이 증폭될 뿐이다.
아주 어린시절 부터 글을 읽고 쓰는 것을 좋아했던 우진. 그는 윤희와는 반대로 처음부터 문학도가 되기 위해 문창과에 진학을 꿈꾼다. 꾸준히 백일장에 참석한 가운데 가끔 상을 받기도 하지만, 그에게는 남에게 말 못할 치명적 결함이 있었다. 바로 처음으로 입상한 작품이 그의 영원한 친구이자 라이벌인 윤희의 작품을 표절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오직 윤희와 자신뿐이었다. 그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진. 하지만, 우진에게는 글을 쓰는것만이 유일한 삶이다. 쓰는 것이 좋고 읽는 것이 즐거운 사람. 그런 사람만이 오직 작가가 될 수 있다는 것. 비록 재질은 윤희가 더 뛰어날지 모르지만 윤희와 우진의 차이는 글을 읽고 쓰는 것을 즐기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의 차이였다. 윤희는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생존하기 위해 글을 읽고 썼지만, 우진은 오로지 즐기기 위해 글을 읽고 쓰는 것 자체가 즐겁기 때문이었다. 윤희가 우수한 입상 경력과 뛰어난 자질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길을 포기한 채 사범대에 진학하고자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역시 백일자 키드인 나 '현수' 윤희와 우진처럼 전국의 백일장에 빠지지 않고 참석을 하지만 현수에게는 윤희처럼 뛰어난 자질도 없고 우진과 같은 열정도 없다. 평범한 인문계 고등학교에 재학중인 현수는 그저 습관처럼 글을 읽고 습작을 한다. 때가 되면 백일장에 참석하지만 그 결과는 참담할 정도로 신통치 않다. 선생님과 부모님을 비롯한 주위의 사람들은 그런 현수의 모습을 보면서 더 이상 작가의 길을 포기할 것을 종용한다. 급기야 정말 내가 좋아서 글을 쓰는 것일까? 어린시절 우연히 접한 책으로 인해, 어쩌다 한번 운좋게 쓰여진 글로 인해 주위로 부터 호평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어쩌면 나에게 숨겨져 있을지도 모를 뛰어난 문학적 끼와 열정을 찾아낼지도 모른다는 요행을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현수는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그 과정에서 윤희와 우진을 알게 되고,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모종의 관계를 통해 문학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한 번 진지하게 고민할수 있게 된다. 유명한 수학 강사인 아버지와 한 때 수학선생님을 지망했던 어머니 사이에서 앞으로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지 못하는 현수. 하지만, 네가 원한는 것을 선택하라는 부모님의 말에 현수는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어렴픗이 깨닫게 된다. 윤희처럼 뛰어난 재능도 없고, 우진 처럼 뜨거운 열망도 없다. 또한 그들처럼 많은 책을 읽지도 않았고, 글 다운 글을 쓰지도 못했다. 다시말해서 문학은 현수에게 남들보다 더 잘할 수 있는 분야는 아니었다. 하지만, 현수는 남들보다 더 잘할 수는 없지만, 남들보다 더 좋아할수는 있었다. 그것이 문학이었고, 그것이 현수가 선택 한 길이었다. 또한, 앞으로 걸어가야할 길이기도 했다.
백일장이라는 주제를 통해 만난 세 명의 학생. 그들 사이에는 특별한 갈등도 존재하지 않고 숨가뿐 사건 전개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저, 책을 통해 이루어진 만남과 관계가 전부이다. 그것인해 발생한 갈등이 고조로 치닫지도 않기에 자연스럽게 극적인 화해로 인해 감동적인 결말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아무리 자신이 잘 한다고 해서, 치열하게 원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자신의 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은 입시라는 지상최대의 과제하에 놓여진 우리 학생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주제였다고 생각한다. 젊은 작가답게 책에 등장하는 세명의 학생들 모습이 정말 고등학생 답게 그려져 있었다. 마치 고등학생이 쓴 글을 읽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도 작가가 그들에게 많이 동화되어 있었다는 방증일것이다. 자신의 경험담이 얼마간은 녹아져 있었기에 이런 글이 탄생할 수 있었을 것이다. 새로운 작가의 만남. 새로운 주제로 만난 청소년들의 모습이 꽤나 반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