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통
장승욱 지음 / 박영률출판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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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통이라는 괴물을 만났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장승욱이라는 무지막지한 괴물을 만났다. 술이라면 나 또한 누구보다도 즐기는 편이고, 곧잘 마신다고 자부했지만 장승욱이라는 괴물 앞에서는 명함조차 내밀수가 없었다. 장승욱이 술통이고 술통이 곧 장승욱이라는 말이 어울릴정도이다. 페이퍼라는 잡지에 취생록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글을 모아 발표한 책은 말 그대로 술에취해 살아가며 쓴 이야기들이다. '취생록(醉生錄)'얼마나 적절한 표현인가? 하지만 적절하면서도 정말 불가사의한 표현이 아닐수 없다. 술에 취해 살아간 이야기들을 기록으로 옮긴다는 것이 과연 범인으로서 가능한 일일까? 맨정신으로 일기를 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술에 취해 몽롱한  상황을 기록으로 남긴다는 것은 술에 취하지 않았거나, 아니면 전부 거짓말이거나 둘중의 하나가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하지만, 이 책을 조금만 읽다 보면 이 의문은 쉽게 풀리게 된다. 밥보다는 술을 더 즐겨먹는 저자에게 '술'은 '밥'혹은 '물'의 존재와 다르지 않다. 삶 그 자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기에 술통이라는 기록은 장승욱이라는 사람의 허구에 의한 말장난이 아닌, 자신의 평범한 일상을 기록한 일기가 될수있다. 하지만, 타인이 보기에는 결코 평범하지 않기에 일반인들의 일기와는 확연히 구분이 된다.

 

그의 음주 기벽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시작된다. 많은 사람들이 처음 술을 접한것도 대부분 사회에 진출하기 직전 학교라는 울타리 안이라 짐작된다.(나 또한 예외가 아니다) 대부분 호기심에 의한 우발적 행위가 그 시작이다. 그 후 음주의 연속성은 지극히 개인의 판단에 따른다. 자신의 기호가 음주와 맞으면 그 행위는 연속성을 유지하게 되고, 그렇지 못하면 중간에 흐지부지 끝나버리게 마련이다. 하지만, 저자는 술과의 첫 만남이 아마도 또 다른 자신과의 만남과 같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아무리 마셔도 변함없는 체력과 정신력은 그의 끝없는 술통속으로 이끌게 되었다. 그렇게 그의 음주기벽은 시작되었다.

 

이 책은 크게 시간적 흐름과 ,특별한 만남의 회고로 이루어져 있다. 당연히 술에대한 에피소드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고등학교, 대학교, 군대를 거쳐 복학생으로서의 생활과 취업전선에 뛰어들어 신문사와 방송국을 전전하던 시절의 음주기록들. 또한 수없이 많은 음주생활속에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사람들과의 만남과 그에 따른 잊지 못할 이야기들의 기록들. 지극히 평범해야만 할 기록들이 한 권의 책으로 읽혀질수 있는 건 앞에서도 밝혔듯이 남들과 다른 술이 있기 때문이었다.

 

말술을 먹어도 변함없는 체력과 , 술이라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불굴의 정신.오직 술을 위해 펼치는 그의 모험담은 거의 기벽에 가깝고 그를 주선(酒仙)이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게 한다. 술에 취한채 펼쳐진 그의 삶을 들여다 보면 소박하고 진솔하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그의 술잔 속에는 오만과 욕심 같은 찌꺼기 들이 보이지 않는다. 맑은 소주와 같이 투명할 뿐이다. 너무나 투명하기에 술잔속에는 세상에 대한 분노와 슬픔도 없는듯 하다. 어쩌면 그 슬픔과 분노를 잔이 차기도 전에 마셔 버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의 잔은 항상 무엇인가로 가득 차 있고, 또한 언제나 텅 비어 있기도 하다. 끊임없이 무엇인가로 채워지기를 갈망하고 있는것처럼.

 

 장승욱을 말하기에 타고난 술꾼이라는 것과 더불어 대단한 천재라고 말하는 것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아이큐 150의 명석한 두뇌에 불과 며칠만의 공부로 인해 명문대에 진학하게 되는 꿈만같은 이야기. 책을 읽는 것이 아닌 그대로 흡수해 버리는 스펀지와 같은 집중력. 이러한 뛰어난 재능은 그를 한낱 취생몽사하는 주정꾼으로의 전락을 막고 있다. 그저 부러울 뿐이다. 그에 대한 또 한가지 꼬리표는 우리말 지킴이라고 할수있다. 이미 발표한 저서를 살펴보니 대부분이 우리 말에 관한 책들이고, 국어사전 까지 편찬할 정도의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 이 책또한 우리말을 사용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많은 곳에서 보이기도 한다.

 

저자는 5.16 군사 구테타가 발생하는 해에 태어났다. 광주라는 현대사의 가장 큰 고통을 학창시절과 함께 보냈다. 그의 대학시절은 최류탄과 함께한 시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저자는 화염병대신 술잔을 들었다. 그는 철저히 냉소적이고 허무적인 시대정신을 노래한다.그의 술잔은 시대의 아픔을 이겨내는 자신만의 출구였을 수도 있다. 이 책에서 그에대한 역사관을 토로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저자 또한 철저히 시대적인 상황과 역사적 소양을 배제한채 이야기를 이끌어 가고 있다. 그렇다고 그가 철저한 극우주의자라는 말은 아니다. 단지 술을 있는 그대로의 술만으로 이야기하고 있고, 그렇게 봐 주기만을 바란다는 것이다. 그냥 여기까지가 술통에 대한 한계이고 술통에 대한 예의이다.

 

술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거리들을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취기가 오른다. 대부분이 엄청난 주량에 대한 이야기와  더불어 조금은 위험하고 황당하기까지한 돌출 행동들이 때로는 부럽기도 하고,황당하기도 하지만 술을 지나치게 좋아하는 한 주당의  취생록이라고만 치부하면 된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잔이 넘치지 않않는, 딱 마시기 적당한 양의 술은 각자가 다르다.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의 이야기 이기 때문에 이 책에는 술에 대한 폐단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이 없다.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고해서 술이 무조건적으로 좋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독자의 책임일 것이다. 저자는 의사가 아니다. 그냥 술이 무조건적으로 좋은 술꾼이다. 그에따른 수 많은 부작용은 그저 우리들의 상상에 맡길 뿐이다. 분명히 좋지 않은 부분들도 많이 있다. 이 책에 그런 부분이 언급되지 않은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술이 좋아  어쩔줄 모르는  사람의 신명난 술타령에서 점잖은 타이름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듯 싶다.    

 

 

 

 

[주당이 지켜야 할 일곱가지 계명]

 

1. 청탁불문(靑濁不問)

   맑은 술이든 흐린 술이든 소주든 막걸리든, 생맥이든 병맥이든 스트레이트드 물을 타서 마시든 일단

   마시고  본다.

 

2. 원근불문(遠近不問)

    광화문이든 영등포든 서울이 됐든 경기도가 됐든, 지하철이건 옥상이건 불러주는 곳이 있으면 어디든 달려

    간다.

 

3. 수하불문(誰何不問)

    술 마시는 상대가 누구든 절대 따지지 않는다.

 

4. 주효불문(酒肴不問)

    술과 안주를 가지고 까탈 부리지 않는다. 치즈 안주로 빼갈을 마시든,최고급 한우 등심에 막걸리를 마시든

    어쨌거나 마시고 본다.

 

5. 금전불문(金錢不問)

    무전취식죄로 재판에 회부될지도 모르는 위험성이 있지만,그런대로 매력있는 가르침이다.

 

6. 생사불문(生死不問)

    조지훈 시인이 일찍이 설파한 주당18단계의 최고 경지인 입신(入神)에 이르기 위해서 반드시 실천해야 할

    계율이다.  

 

7. 주야불문(晝夜不問)

   더 말해 무엇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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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거짓말 창비청소년문학 22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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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준비하던 천지가 , 오늘 죽었다.

천지는 개 이름도 고양이 이름도 아닌 중학교1학년 14살 소녀의 이름이다. 아직 어리기만 한 14살 소녀가 죽었다. 죽음은 모든 것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죽음이라는 말 앞에 전제가 있다. '내일을 준비하던'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그 말에서는 결코 죽음의 냄새를 맡을 수 없다. 그런 그녀가 죽었다. 그것도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었다. 그녀가 살아온 14해의 세월은 너무 짧기만 하다.

 

완득이서도 보여주었듯이 작가는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를 , 지나치게 무겁지 않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가벼움이 주제의 본래 의도를 퇴색해 버리는 오류를 범하고 있지는 않다. 10대 또래의 이야기를 지극히 10대의 눈높이와 그 들의 언어,생각에 충실히 맞추고자 노력한 모습이 역력하다.

 

생활고에 힘들어하는 엄마에게 아직도 기한이 많이 남은  생일 선물로 mp3를 사달라고 조르던 아이. 연합고사가 끝나면 언니의 책상을 리폼해 주겠다고 하던 아이. 어리지만  가장 어른스럽던 아이. 친구들 사이에서는 자신의 존재를 최대한 숨기고자 했던 아이. 그런 천지의 갑작스런 죽음에 언니 만지는 진실을 알고자 동생의 지난 생활을 더듬어 가기 시작한다. 동생이 자살에 이르기까지 혼자 걸어왔던 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역시 어린 나이인 언니 만지에게도 결코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그 길의 과정에는 엄마와 자신의 모습까지도 뚜렷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천지의 기억에 남은 자신의 모습은 커다란 화인이 되어 만지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기게 된다. 어쩌면 그 상처는 이미 자신의 가슴에 깊게 남아있던 지난 날의 아픈 기억일지도 모를 일이다.

 

이 책을 읽으며 분명히 나도 겪었을 학창 시절이었지만 무척이나 생소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그것이 세대차이 인지도 모를 일이다. 말로만 듣던 10대의 생활을 찬찬히 들여다 본 기분이다. 그 기분은 10대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발랄함이나 상쾌함과는 거리가 멀다. 물론 그들의 생활 전체가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모든것이 아름답게만 느껴지는 그 들의 삶 속에도 분명히 그 들만의 고민이 있고 고통이 있다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성세대라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들이 있다. 학생이라는 신분이 가장 편하고 즐거운 시간이다. 공부만 하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되는 , 그것보다 더 좋은 직업이 어디 있겠냐? 나도 학창시절 나의 부모로 부터 숱하게 들었던 말들이고, 지금 내가 부모의 입장에 되어보니 나도 모르게 그런 말들이 나올 것 만 같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분명히 그들에게도 공부 이외의 많은 삶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인간관계가 아닐까? 또래의 친구들 사이에서 이탈한다는 것.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같이 하지 못한다는 것은 크나큰 상처임에 틀림없다.   친구들에 의해 따돌림을 당했던 천지도 ,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천지를 따돌려야 만 했던 화연이도. 그러한 과정에서 방관자의 입장을 처함으로써 나름대로의 정당성을 지키고자 했던 미라까지. 그들 모두는 어느 조직에도 끼지 못한 피해자 임에 틀림없다.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타인에게 칼날을 겨누어야 하는 삶. 자신의 상처를 감추기 위해 천지를 향해 칼날을 겨누었던 화연은 사실 그 칼날이 양날의 검이 었음을. 그로 인해 상처를 받는 것은 천지 만이 아닌 자신에게 더 큰 상처를 남길수 있다는 것을 ,

천지가 떠난 후에야 비로서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의 동생을 죽음으로까지 몰고가고 , 그 상처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화연을.

더욱 큰 상처로 부터 구원하고자 따뜻한 손길을 뻗을 수 밖에 없는 천지의 언니 만지 또한, 같은 상처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또래라는 것을 우리는 인식해야 한다.  그들은 자신이 상처받고 있는 지도 모른 채, 자신이 살기 위해 타인에게 많은 상처를 남기고 있다. 그들은 그것이 상처이고 아픔인지 모를 뿐이다. 작가는 그런 아픔을 같이 공유하기 위해 오늘도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그들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 보고, 같이 고민하는 것은 바로 우리들의 몫이다. 

 

"사과하실 거면 하지 마세요. 말로 하는 사과는요, 용서가 가능할 때 하는 겁니다. 받을 수 없는 사과를 받으면 억장에 꽂힙니다. 더군다나 상대가 사과받을 생각이 전혀 없는데 일방적으로 하는 사과, 그거 저 숨을 구멍 슬쩍 파놓고 장난치는 거에요. 나는 사과했어, 그 여자가 안 받았지. 너무 비열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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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마단 사람들
오진령 지음 / 호미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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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커스를 알게 된 것은 아마도 텔레비젼을 통해서 였을 것이다. 조금은 어색한 옷차림에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한 채 외줄을 타고, 공중그네를 타는 사람들. 입구에는 삐에로 복장을 한 난쟁이와 그를 따르는 사람보다 더 사람스러운 원숭이. 이런 단편적인 기억들이 나의 서커스에 대한 모든 생각이다. 실제로 어린 시절 서울 하고도 변두리에 살았던 우리 동네에 몇 년에 한 번 꼴로 서커스가 열리기도 했었다. 거대한 천막과 함께 요란스러운 복장을 한 사람들의 알수없는 노래 들. 천막의 거대한 크기는 나로하여금 그 안의 세계는 나와는 별도의 공간으로 분리시켜 놓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 안에는 아마도 주위 어른들로 부터 들은 서커스를 하는 사람들은 모두 다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무서운 선입관이 자리잡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런 서커스에 대해 다시한번 알게 해준 것이 바로 한수산의 소설 '부초'였다. 학창시절 어쩌면 처음으로 읽게 된 장편의 한국소설일지도 모르는 작품. 그 작품을 통해 나는 '난장'이라는 것과 곡예사들의 생활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얼마나 그 작품을 읽으며 아픈 가슴을 쓰러내렸는지. 왜 그당시에는 그 작품이 그리도 슬프게 느껴졌던지. 하지만 거기 까지였다. 곡예사,서커스와 같은 이름들은 동춘서커스라는 시대를 대표하는 곡마단의 쇠퇴와 함께 나의 기억속에서도 서서히 잊혀져 갔다.

 

서커스에 대한 어린시절 향수가 유난할 정도의 나이는 아니다. 하지만 헌책방에서 오진령의 '곡마단 사람들'이라는 책을 처음 본순간 아무 이유없이 그 책에 손이 가기 시작했다. 또한 그 책이 화보집이라는 이유는 나와 그 책의 새로운 인연을 예감할수 있게 해주었다. 몇 번의 망설임 끝에 내 품에 안긴 책. '곡마단 사람들'.  책의 내용만큼이나 작가의 이력또한 평범하지 않다. 고등학교 시절 무조건 서커스가 좋아 그들과 함께 시작한 동거 생활은 무려 6년간이나 지속되었다. 그냥 좋은 것이 좋을 여고생의 나이에 서서히 사회에서 잊혀져 가는 그들에게 카메라 렌즈는 소통의 수단이었다. 피사체가 카레라 렌즈에 투영되는 순간 그 들 사이에 존재했던 시간과 사고의 머나먼 거리는 어느덧 줌인 되어 바로 내 안에 자리잡아 가고 있었다. 그렇게 그들의 관계는 시작되었다.

 

서커스는 사회의 발전이라는 논리앞에 무참히 잊혀져가는 많은 것들중의 하나였다. 자연히 우리가 곡예사라 일컫는 사람들의 운명또한 다르지 않다. 흔히 광대라고 말할 때 그 안에는 사람을 평가하는 수평적 시선 보다는 조금 아래에 있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된다.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외줄을 타는 그들의 모습이 위태롭게 느껴지고, 조금은 안전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자신의 모습들에 위안을 삼고자 하는 잘못된 생각에서 그릇된 선입견 일 것이다. 또한 광대라는 말은 타인에게 웃음을 선사하기 위해 자신은 그보다 몇배나 많은 울음을 삼켜야 하는 아픈 존재라는 생각또한 가지게 한다. 그것을 가리기 위해 그들은 촌스러운 빤짝이 복장과 두터운 화장으로 자신들의 속내를 감추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무대위에서의 긴박하지만 결코 화려하지 않은, 무대뒤에서의 편안하지만 어쩐지 쓸쓸한 모습들의 흑백 사진들이 한장 한장 펼쳐져 간다. 

 

나는 사진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 그저 흔들리지 않고 잘 나오면 그것이 잘 된 사진이구나 라고 생각할 정도의 수준이다. 그런 소양을 가진 내가 이 책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말 한다는 것은 꽤나 우스운 일이다. 하지만 화려하고 보편적인 것들이 아닌, 소수의 잊혀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애정어린 눈길만큼은 느끼기에 충분 했었다. 단순한 피사체가 아닌 이 시대를 열심히 살아가는 떴떳한 장인으로서의 엄숙한 예우를 느낄수 있었다. 작가의 따뜻한 눈길과 글들이 그동안 우리의 잘못된 생각으로 서서히 잊혀져 가는 그들을 다시한번 바라볼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것은 비단 곡마단 사람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나는 곡마단 사람들을 별종이나 이방인이 아닌 , 그저 좀 남다른 전문직을 가진 이들로 보려고 했다.그리고, 그들을 온 마음과 온 몸으로 느끼려 했다. 대상으로서의 그들에게서 몸서리쳐질 만큼 절실한 느낌을 얻은 것을 사진으로 담아 보려했다. 그러나 어쩌면 나는 지금까지도 그들을 온전히 만나지 못한 채로 훔쳐보기만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본문 1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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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이가 읽은 연애소설 - 쉽게 풀어쓴 우리 고전 열한 편
조성진 지음, 이호 그림 / 앨피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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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큰 관심거리중의 하나는 사랑이다. 사랑에도 종류가 많겠지만 그 중의 으뜸은 남녀간의 사랑이 아닐까?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아름다운 사랑이 있고, 때론 눈물없이는 볼수 없는 가슴 아픈 사랑의 이야기들도 있다. 그 모든 것들을 어울러 우리들은 열광해 왔고, 지금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자칫 진부하고 통속적이게 느낄수 있는것은 그만큼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어 왔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랑의 이야기 만큼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도 없으니, 흥행의 보증수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무리 철학적이고 무거운 주제를 담은 책이나 영화속에서도 남녀간의 애틋한 사랑이야기 한,두편 실리지 않으면 어쩐지 허전하게 느껴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춘향이가 읽은 연애소설]은  제목에서 보여주듯  우리 고전중 춘향이가 딱 읽기 좋은 사랑타령만을 엄선하여 실어놓은 책이다.  그렇다고, 춘향이를 비하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그만큼, 많은 이들이 편하게 읽은 이야기들이라는 의미이다. 우리에게 비교적 잘 알려진 내용들이지만, 고전이라는 이유로 혹은 구전되어 왔다는 이유로 인해 관심에서 빗겨갔던 이야기들을 읽기 쉽게 구성해 놓은 책이다.  

 

백제의 왕에게 자기 아내의 정절을 자랑하다, 왕의 미움을 얻어 극형을 당하게 된다는  '도미' 와  모든 남성들의 이상형이기도 한 '우렁각시'는 , 권력이라는 거대한 벽앞에 자신의 사랑을 무참히 짓밟히는 슬픈 이야기 들이다.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해진 이야기들은 권력의 횡포에 맞서기위한 가장 최소한의 저항이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고, 개인적으로도 이 책에 실린 11편중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변강쇠가''춘향전'은 판소리 답게 걸죽한 입담이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옹녀와 변강쇠가 주고받는 외설적인 대사들은 당시 사회의  성풍속도를 실랄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더불어 모든 면에서 무능하기만한 변강쇠에 비해 옹녀라는 억척스러운 여성상을 앞세워, 당시 조선시대의 남,녀 관계가 지극히 수평적이었다는 것을 은연중에 암시하고 있다. 한 맺힌 영혼과의 현실을 넘나드는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그린 김시습의 명작 '만복사저포기'   양다리의 전형성을 보여준 바람둥이 이야기'주생전'   첫눈에 반한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아녀자의 담장을 과감히 뛰어넘었지만, 신분이라는 벽 앞에서는 한없이 우유부단해 지는 무력한 남자의 모습을 이야기한 이옥의 '심생전'  조선,중국,일본,베트남등 동아시아 전반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광대한 스케일의  러브스토리 '최척전'

 

시대와 풍습의 차이는  현재의 우리에게  어색함과 유치함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그 당시의 사랑은 분명 그러했을 것이며, 현재에도 변하지 않은 것은 사랑의 본질이라 할수 있는 진실성 이었을것이다. 서로간의 믿음과 진실은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에도 변하지 않는 숭고한 가르침으로 울리기에 충분하다. 다듬어지지 않은 투박한 문장들은 오히려 그 들의 순수성을 더욱 돋보이게 할 뿐이다. 지극히 난해하고 함축적인 문장들은 오히려 춘향이를 비롯한 우리네 민초들의 사랑타령을 진실되게 표현하기에 어려웠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고전문학사에서 약간은 옆자리에 내 앉아 있는 글들을 읽는 재미또한 꽤나 유쾌한 시간이었다.

   

 

1. 몸을 낮춰 사랑을 구하다 - '눈을 쓸다(掃雪)'
2. 담은 뛰어넘었으나 신분에 발이 걸려 - '심생전(沈生傳)'
3. 어쩌랴, 사랑이 마음대로 날아드는 것을 - '주생전(周生傳)'
4. 하룻밤만 자고 오너라 - '김영감(金令監)'
5. 사랑, 그 쓸쓸한 꿈 - '조신몽(調信夢)'
6. 그대는 가도 나는 보내지 않았으니 -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浦記)'
7. 사랑을 시험에 들게 하지 말라 - '도미(都彌)'
8. 죽어서야 이룬 사랑 - '우렁각시'
9. 산산이 나뉜 거울을 다시 맞추다 - '최척전(崔陟傳)'
10. 이년을 가만두었다가는... - '변강쇠가(歌)'
11. 너 같은 절개 어찌 아름답지 않으리오 - '춘향전(春香傳)'

 

 

당신과 나, 지나치게 정이 많았지,

정이 넘쳐, 불처럼 뜨거웠지.

한 덩어리 진흙으로,

너 하나 빚고, 나 하나를 빚었기 때문이지.

우리 둘을 함께 부수고 물에 잘 이겨서,

다시 너 하나를 빚고, 다시 나 하나를 빚으면,

내 흙덩이 안에 네가 있고, 네 흙덩이 안에 내가 있겠지.

당신과 나, 살아서는 한 이불, 죽어서는 한 무덤에 누웠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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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숨결 - 개정판
로맹 가리 지음, 윤미연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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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아자르, 로맹가리, 가리.......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도 로맹가리라는 이름도 접해보기는 처음 이었다. 집 책꽂이에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의 책 한권과 로맹가리라는 이름의 책 한권이 꽂혀 있은지 오래 되었지만, 아쉽게도 한 번도 책을 읽어보지는 못했다. 정말 우연찮게 지나기는 길에 내 눈에 확 들어온것은 마지막 숨결이라는 제목도 로맹가리라는 이름도 아닌 기괴한 얼굴을 한 책 표지 때문이었다. 작고 화려하면서도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에 나는 어쩔수 없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이유는 그것 뿐이었고, 책을 산 후에야 로맹가리의 미발표 유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와 만난 것은 지극히 우연이었다.

 

당신은 그가 죽은지 25년이 지난 오늘날, 서점에서 그를 우연히 다시 발견 하고는 뛸 듯이 놀라게 될 것이다. 그건 마치 서점 창밖으로 예전에 사랑했던 사람의 얼굴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본 것과 똑같은 놀라움이다. 하지만 그 사람이 금방 지나가버린 자리를 덧없이 배회하는 것보다야 훨씬 낫다. 이 책을 사서 집에 돌아가기만 하면 되니까. 하지만 더 나쁘기도 하다. 집에 도착한 후 당신은 이 책을 펼쳐 보기가 두려울것이다. 이 책에 대해 아직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전에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을 , 지금에 와서 혹시라도 실망할까, 그 사람이 너무 변해서 못 알아볼까 두려워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책장을 펼쳐야 한다 !  [ 렉스프레스 ]

 

위와 같이 책표지는 강하게 협박을 하고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해당사항이 별로 없다. 그가 죽은지 30년이 지났고 서점에서 우연히 다시 발견한 것은 맞지만 뛸 듯이 놀라지는 않았다. 사실 그를 많이 좋아했던 것도 아니고 그의 작품을 읽어 봤던 것도 아니고 그의 새로운 책을 찾아 헤맸던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을 샀고,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부터 읽기 시작했다. 그 사람의 예전 모습을 미처 알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 그가 어떻게 변해서 돌아왔는지에 대해 불안감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망설임은 필요치 않았던 것이다. 처음 접한 작가의 모습은 '낯설음' 과 '산만함'이라는 말로 정리가 될 수 있었다. 낯설음이야 처음 만난 사람이기에  당연한 감정이라 하더라도 '산만함'은 도저히 견뎌내기 힘든 감정이었다. 결코 길지 않은 책의 분량. 더군다나 7편의 짧은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기에 중간 중간의 호흡을 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었다. 하지만 그 짧은 글들과의 만남에서도 나는 밀려오는 산만함에 시선을 고정하기가 매우 힘들었다. 정말 힘든시간이었다.  다행히도, 책의 해설 부분을 보면서 산만함의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수 있었던 것은 표제작인 '마지막 숨결'과 이 책에서 가장 긴 분량의 단편인 '그리스 사람'은 미완성된 초고들이었다는 것이다. 내가 책을 전혀 잘못 읽은 것은 아니었구나 하는 안도감이 드는 말이었다. 재미있어 질만하다 갑자기 삼천포로 빠져버리는 '그리스 사람'에서 느낀 황당함은 '미완성'이라는 말 한마디로 해소되었다.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폭풍우],[ 마지막 숨결],[ 인문지리], [십년 후, 혹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 냐마 중사], [사랑스러운 여인], [그리스 사람] 은 1935년 부터 1967년 사이에 쓰여진 7편의 단편들로 구성되어 있다. 1935년 즉 이십대 초반에 쓰여진 [폭풍우]같은 작품은 유일하게 완성도가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하고 싶다. 알수없는 이야기의 구성으로 당황스럽게 하지만 마지막 장에 펼쳐진 단 한마디의 말로 모든 상황을 일시에 해소해 버리는 결말은 작가의 뛰어난 해학성을 엿볼수 있었다. 남자들만 있는 전쟁터라는 공간에서 여성의 몸으로 등장. 결코 사랑스럽지 않지만 어쩔수 없이 사랑할수 밖에 없는 여인의 이야기를 그린 [사랑스러운 여인]. 미완성 작품으로 작가 자신이라 짐작하기에 충분한 중년의 남성을 등장시킨 [마지막 숨결]은 중간의 단절된 부분의 완성도가 무척이나  아쉽게 생각되는 작품이었고, 가장 긴 분량의 [그리스 사람]은 충분히 흥미있는 소재와 이야기 전개에도 불구하고 , 갑작스러운 이야기의 전환으로 인해 한 참동안이나 정신차리지 못하게 만든 작품이었다. 미완성 원고라는 것을 미리 알았다면 처음과 중간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는 수고는 하지 않았을지도 모를일이다.

 

로맹가리 혹은 에밀아쟈르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그 이전 혹은 그 이후의 완성되지 못한 모습과 보여주지 않은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신선한 계기가 될수있겠지만, 아직 로맹가리의 대표작을 읽어보지 못한 나에게는 조금은 힘들고 지루한 시간을 보냈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완성된 작품으로 향해가는 작가의 중간 과정을 엿 볼수 있었기에 그 후 세련되게 변해있을 작가의 새로운 모습을 떠올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으로도 만족할수 있었다. 다시한번 로맹가리 혹은 에밀아쟈르의 본 모습을 진지하게 만나보리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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