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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거짓말 ㅣ 창비청소년문학 22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9년 11월
평점 :
내일을 준비하던 천지가 , 오늘 죽었다.
천지는 개 이름도 고양이 이름도 아닌 중학교1학년 14살 소녀의 이름이다. 아직 어리기만 한 14살 소녀가 죽었다. 죽음은 모든 것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죽음이라는 말 앞에 전제가 있다. '내일을 준비하던'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그 말에서는 결코 죽음의 냄새를 맡을 수 없다. 그런 그녀가 죽었다. 그것도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었다. 그녀가 살아온 14해의 세월은 너무 짧기만 하다.
완득이서도 보여주었듯이 작가는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를 , 지나치게 무겁지 않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가벼움이 주제의 본래 의도를 퇴색해 버리는 오류를 범하고 있지는 않다. 10대 또래의 이야기를 지극히 10대의 눈높이와 그 들의 언어,생각에 충실히 맞추고자 노력한 모습이 역력하다.
생활고에 힘들어하는 엄마에게 아직도 기한이 많이 남은 생일 선물로 mp3를 사달라고 조르던 아이. 연합고사가 끝나면 언니의 책상을 리폼해 주겠다고 하던 아이. 어리지만 가장 어른스럽던 아이. 친구들 사이에서는 자신의 존재를 최대한 숨기고자 했던 아이. 그런 천지의 갑작스런 죽음에 언니 만지는 진실을 알고자 동생의 지난 생활을 더듬어 가기 시작한다. 동생이 자살에 이르기까지 혼자 걸어왔던 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역시 어린 나이인 언니 만지에게도 결코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그 길의 과정에는 엄마와 자신의 모습까지도 뚜렷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천지의 기억에 남은 자신의 모습은 커다란 화인이 되어 만지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기게 된다. 어쩌면 그 상처는 이미 자신의 가슴에 깊게 남아있던 지난 날의 아픈 기억일지도 모를 일이다.
이 책을 읽으며 분명히 나도 겪었을 학창 시절이었지만 무척이나 생소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그것이 세대차이 인지도 모를 일이다. 말로만 듣던 10대의 생활을 찬찬히 들여다 본 기분이다. 그 기분은 10대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발랄함이나 상쾌함과는 거리가 멀다. 물론 그들의 생활 전체가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모든것이 아름답게만 느껴지는 그 들의 삶 속에도 분명히 그 들만의 고민이 있고 고통이 있다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성세대라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들이 있다. 학생이라는 신분이 가장 편하고 즐거운 시간이다. 공부만 하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되는 , 그것보다 더 좋은 직업이 어디 있겠냐? 나도 학창시절 나의 부모로 부터 숱하게 들었던 말들이고, 지금 내가 부모의 입장에 되어보니 나도 모르게 그런 말들이 나올 것 만 같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분명히 그들에게도 공부 이외의 많은 삶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인간관계가 아닐까? 또래의 친구들 사이에서 이탈한다는 것.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같이 하지 못한다는 것은 크나큰 상처임에 틀림없다. 친구들에 의해 따돌림을 당했던 천지도 ,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천지를 따돌려야 만 했던 화연이도. 그러한 과정에서 방관자의 입장을 처함으로써 나름대로의 정당성을 지키고자 했던 미라까지. 그들 모두는 어느 조직에도 끼지 못한 피해자 임에 틀림없다.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타인에게 칼날을 겨누어야 하는 삶. 자신의 상처를 감추기 위해 천지를 향해 칼날을 겨누었던 화연은 사실 그 칼날이 양날의 검이 었음을. 그로 인해 상처를 받는 것은 천지 만이 아닌 자신에게 더 큰 상처를 남길수 있다는 것을 ,
천지가 떠난 후에야 비로서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의 동생을 죽음으로까지 몰고가고 , 그 상처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화연을.
더욱 큰 상처로 부터 구원하고자 따뜻한 손길을 뻗을 수 밖에 없는 천지의 언니 만지 또한, 같은 상처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또래라는 것을 우리는 인식해야 한다. 그들은 자신이 상처받고 있는 지도 모른 채, 자신이 살기 위해 타인에게 많은 상처를 남기고 있다. 그들은 그것이 상처이고 아픔인지 모를 뿐이다. 작가는 그런 아픔을 같이 공유하기 위해 오늘도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그들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 보고, 같이 고민하는 것은 바로 우리들의 몫이다.
"사과하실 거면 하지 마세요. 말로 하는 사과는요, 용서가 가능할 때 하는 겁니다. 받을 수 없는 사과를 받으면 억장에 꽂힙니다. 더군다나 상대가 사과받을 생각이 전혀 없는데 일방적으로 하는 사과, 그거 저 숨을 구멍 슬쩍 파놓고 장난치는 거에요. 나는 사과했어, 그 여자가 안 받았지. 너무 비열하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