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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들이 자라서 엄마가 된다
수지 모건스턴.알리야 모건스턴 지음, 최윤정 옮김 / 웅진주니어 / 199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딸들이 자라서 엄마가 된다. 당연한 이야기 이다. 물론 모든 딸들이 엄마가 되는 것은 아니다. 결혼을 하지 않을수도 있고, 결혼을 했지만 아이를 가지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딸들은 자라서 엄마가 된다. 반대로 이야기 하자면 '엄마들은 모두 딸이었다'라는 말이 좀더 정확한 표현일수도 있다. 이 말에는 예외가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엄마 알리야 모건스턴 과 딸 수지 모건스턴의 공동 작품이다. 평범한 엄마와 사춘기 고등학생 딸 아이의 교환일기 이다. 같은 상황에 대한 엄마와 딸의 다른 시각을 일기의 형식으로 재미있게 보여주고 있다. 엄마는 프랑스의 유명한 동화작가이고, 아빠는 프랑스의 수학자 이다. 딸은 이 책을 썼을 당시에는 평범한 프랑스의 고등학생 소녀이지만 지금은 파리에서 언어학 교수를 하고 있으며, 자신 또한 딸을 둔 엄마가 되어 있다. 수지의 딸 또한 이 책을 읽으며 자라고 있다고 한다. 정말 행복하고 부러운 가족이다.
얼마전 구입한 CD중에 엄마와 딸 아이의 일상을 이야기한 노래가 있다. 초등학생 정도 되는 딸아이가 학교를 가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을 그린 노랫말이 무척 재미있다. 날씨가 추우니 바지를 입고 가라는 엄마의 잔소리에 딸아이는 치마를 입겠다고 댓거리를 해댄다. 엄마는 추운 날씨에 무슨 치마를 입냐고 얼어죽을 일 있냐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런 엄마의 잔소리에도 딸 아이는 계속해서 치마를 입겠다고 우겨댄다. 끝내 엄마는 치마를 입던지 벗고 나가던지 추운 날씨에 얼어 죽던지 니 맘대로 하라며 폭발하고 만다. 엄마의 분노에 딸 아이는 ' 안 얼어 죽을거라고'아주 얄밉게 댓구한다. 지금도 이 노래를 들으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하지만, 결코 노랫말로만 들리지 않고 남의 이야기 같지가 않다. 딸 둘을 키우고 있는 아빠로써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집에서도 들려올 이야기 일것 같기 때문이다. 실제로 요즘에도 우리 큰 딸은 엄동설한인 요즘 날씨에 여름용 샌들을 신고 나가겠다고 우길때가 있다. 잘 모르고 순간의 기분에 따라서 한 이야기 겠지만 그 주장을 좀처럼 꺽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울컥 하곤 한다. 그리고, 정말 샌들을 신고 밖에 나간적도 있다. 추워봐야 배고파봐야 정신을 차린다는 게 내 육아법 이기 때문이다. (사실 좀 심하다는 생각을 하기는 한다.)
사사건건 대립하는 엄마와 딸. 엄마와 딸이라는 관계를 떠나 같은 여성이라는 동질 의식이 있지만 둘의 관계는 전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곤한다. '난 엄마 딸인게 싫어' , '엄마는 왜 나를 낳았어 ! ' , '나는 엄마처럼 살지는 않을거야' 딸들은 이와 같은 말들을 서슴치 않고 해댄다. 엄마에게 이보다 더한 독설이 있을까? 하지만, 그들이 딸 이었을 때에는 이런 말들을 할 수 밖에 없다. 엄마또한 마찬가지다.'도대체 내가 너를 왜 낳았는지 모르겠다' , '넌 누굴 닮아서 그러니?' 등등 엄마들의 댓거리도 만만치 않다. 엄마와 딸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만, 사실은 그 상처가 자신에게 더 한 고통이라는 것을 그들은 알고있다. 저자는 사춘기에 접어든 딸아이와의 원활하지 못한 관계를 해소하기 위해 교환일기를 쓰기로 한다. 매일 아침 학교를 가기 전 집에서 벌어지는 전쟁같은 일과를 놓고 엄마와 딸은 자신의 입장에서 일기를 쓴다. 그 날 입고 나갈 옷이 없다며 집안의 모든 옷을 다 뒤집어 놓는 딸. 얼굴에 난 여드름을 감추기 위해 한 시간 동안 공들여 화장을 하는 딸. 화장실을 차지 하기 위해 펼치는 전쟁들. 엄마는 이 모든 상황들이 불만이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별것도 아닌 일상에 고민하고 시간을 허비하는 딸 아이가 만족스럽지 못하다. 엄마는 그런 딸 아이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한 편 같은 아침의 일상에 대해 딸아이는 똑같이 엄마에 대해서 불만이 많다. 옷은 많지만 어느 옷 하나 유행에 뒤쳐지지 않은 것은 없다. 물려 받은 옷이 대부분이다. 엄마는 도대체가 유행이라는 것에 대해 관심이 없다. 내 얼굴에 난 여드름에 대해서 한 번도 심각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는 엄마가 못마땅하다. 옷에 대해 불만을 하면 엄마는 얼마 전 사준 옷을 입으라고 할 것이 뻔하다. 하지만 그 옷은 이미 유행이 지났고, 훌쩍 커버린 나에게 벌써 작아지기 시작했다. 엄마는 그것을 알지 못한다. 딸은 같은 일상을 가지고도 엄마와는 전혀 다른 불만을 토로한다. 물론 두 사람 전부 자신의 입장만을 말 할 뿐이다. 평상시에 엄마와 딸의 취향은 전혀 다르다. 하지만, 어쩌다 둘 만의 공통 관심사를 발견하게 된다. 기뻐해야 할 상황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패션에 민감하지 않은 엄마지만 딸 에게도 엄마의 패션중에 마음에 드는 것이 있다. 양말과 스웨터 그리고, 브레지어다. 엄마가 어쩌다 자신이 아끼는 스웨터와 양말 브래지어를 찾으면 꼭 딸아이가 선수를 치고 없다. 엄마는 '왜 이 아이는 내가 좋아하는 물건만 좋아할까?'라며 울분을 토한다. 하지만 딸은 또 이렇게 얘기한다. '몇 달 동안 젖을 먹이며 키운 딸에게 그깟 브래지어 하나 양보하지 못하는 엄마가 어딨냐고!!!' 그 외에도 식탁에서 벌어지는 일, 산책나가는 일, 친구를 사귀는 일, 공부와 앞으로의 진로에 대한 일, 그리고 사랑에 관하여 엄마와 딸은 서로 상반된 자신의 신세한탄을 늘어 놓는다. 그 이야기들이 정말 재미있고 유쾌하다. 아둥바둥 싸우고 서로 못 잡아 먹어서 안달 날것처럼 행동하지만, 두 사람의 그런 모습들이 결코 밉게 보이지 않는다.
열 여섯 생일파티때 친구들을 초대해 밤새 디스코 파티를 연 딸. 원만한 교유관계를 위해 큰 맘먹고 하룻동안의 일탈을 허락한 엄마. 하지만 엄마는 어느덧 딸아이가 여자가 되어간다는 생각에 불안해 한다. 아직 나는 딸 아이가 여자가 되는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며 불안해하는 엄마. 하지만, 딸아이는 천연덕스럽게 대답한다.'걱정 마 엄마, 난 아직 처녀야!' 웃지 않을 수 없다. 똑똑한 학생에 예술적 재능까지 겸비한 학생이 되는 것은 기적이라고 말하는 딸과 소위 말하는 엄친 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는 엄마. 어떻게 두 사람의 관계가 원만할 수 가 있을까?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한 가지 일도 건너뛰지 않고 사사건건 대립하는 엄마와 딸이지만 두 사람은 똑같은 인간이고 똑같은 여성이고 똑같은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두 사람은 분명히 알고 있다. 서로가 바라보는 방향은 같지 않지만, 서로가 바라보는 곳의 먼 곳에는 똑같은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 그리고, 엄마와 딸은 떨어질수 없는 운명적인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다. 하나의 탯줄로 연결되어 있던 열 달이라는 시간의 운명이 아닌, 언젠가는 나도 엄마가 될 수 밖에 없다는 본능적인 교감이 있는 사람들이다. 아들이 아빠가 된다는 것과 , 딸이 엄마가 된다는 것이 운명적으로도 생물학적으로도 결코 같지 않다고 생각한다. 딸이 엄마가 되는 것은 이 세상 그 어떤 일보다 엄숙하고 위대한 일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해 불만을 터뜨리지만 , 서로를 원망하고 미워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학 입학 시험을 마친 딸. 사춘기 시절을 보내고 서서히 성인이 되어 가는 딸. 일기가 끝나가면서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조금씩 이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화해를 한 것은 아니다. 자신과는 너무도 다르고, 자신이 원하는 것과는 다르게 행동하는 딸이지만 이 세상 모든 딸들을 다 준다고 해도 바꿀수 없는 내 딸이라고 말하는 엄마. 다른 엄마라면 내가 원하는 옷을 사주고, 내가 좋아하는 음식만 해주고, 내가 듣기 싫어하는 잔소리는 하지 않을수도 있지만, 어떤 엄마도 나 처럼 많은 결점을 가진 아이를 사랑해 주고 너무나 이기적이고 강렬한 사랑을 원하는 나 같은 아이를 받아들여줄 수는 없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딸. 두 모녀의 싸움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아니 어쩌면 이런 식으로 휴전을 선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딸아이가 자라서 엄마가 된다고 하더라도 엄마를 모두 이해 할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엄마 또한 딸과 같은 시기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벌어지는 딸의 행동을 모두 이해할수는 없다. 고로 두 사람의 , 두 여인의 싸움은 평생또한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이 보다 더 아름다운 사랑싸움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