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과 선 분도그림우화 16
노턴 저스터 지음 / 분도출판사 / 198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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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턴 저스터

여러 권의 어린이 책을 쓴 작가이자 건축가이다. 그가 쓴 《수학로맨스, 점과 선 The dot and the line》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져 1965년에 아카데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특히《팬텀 톨부스》는 연극, 오페라, 아동극 등으로 각색되어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요리는 아마추어지만 먹는 것만큼은 프로라고 자부하는 그는 아내와 함께 미국 매사추세츠 암허스트에 살고 있다.  [ 반디앤 루니스 제공 ]

 

'누가 뭐라든 이 책을 유클리드에게 바칩니다' 책의 첫 머리에 나타난 이 글귀는 저자의 강한 의지 표명이다. 누가 뭐래도 이 책은 수학책이라는 말이다. 점과 선. 수학을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중의 하나 인 두가지의 존재를 이용해 저자는 로맨스를 이야기 하고 있다. 하지만, 어쨋든 이 책은 수학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 과연 그럴까? 이 책이 정말 수학에 관한 이야기 일까? 정답은 그렇다 이다. 학창시절 지독히도 수학을 싫어하고 못했던 나에게 이처럼 어려운 수학책은 정말 처음이었다. 어렵다 못해 철학적이고 낭만적인 수학책은 처음 접해 보는 것 같다. 정말 어려운 책이었다.

 

옛날에 직선이 존재했다. 말그대로 직선이다. 어느 곳 하나 모난 곳 없고 구부러진 곳 없는 완벽한 직선이다. 그 가 사랑한 존재가 있었다. 바로 점이다. 직선이 점에게 바치는 헌사는 기가막히다. '너는 시작이고 끝이요. 모든 것의 중추이며 골자로구나' 하지만, 점은 직선이 자신에게 펼치는 끝없는 구애를 항상 매몰차게 거절한다. 그의 관심은 오로지 항상 뒤엉켜 있는 점도,선도 아닌 헝클이 였다. 아마도 점은 헝클이에게 직선에게서는 찾을 수 없는 자유로움을 느꼈던 모양이다. 이렇게 직선,점,헝클이의 삼각관계는 시작되었다. 점의 무관심에 실의에 빠진 직선은 하루하루 사는것이 고통이었다. 점점 수척해 가는 직선. 그런 직선을 본 친구들은 그에게 온갖 위로의 말을 전한다. 점은 너에게 어울리지 않는 존재야. 넌, 얼마나 멋진 존재니. 점은 깊이가 없어.. 하지만 직선에게 있어 점은 정말 완벽한 존재였다. 36-36-36 이라는 황금의 몸매를 자랑하는 점은 직선에게 있어 이 세상 최고의 존재일수 밖에 없었다.

 

직선은 이제 인고의 시간을 갖게 된다. 자신을 끝없이 담금질 하여 점이 반드시 다시 돌아올 것을 기약하면 무수한 노력을 하게 된다. 대담무쌍하기로 소문난 자로서의 선을, 세계 문제들의 지도자로서의 선을, 두려움을 모르는 법 집행자로서의 선을, 예술세계에서 유능한 실력자로서의 선을,국제적 운동자로서의 선을 생각하며 자기 최면을 걸지만 끝내 선은 자신을 속이는 일에 싫증을 내고 포기하게 된다. 자발성과 열정이 부족하고 , 자신을 맘껏 드러내고 표현할 줄 모른다는 자책에 빠진다.하지만, 직선은 포기하지 않았다.끈임없이 자신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어느 날 직선은 위대한 발견을 하게 된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방향을 바꾸고 구불릴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직선은 이제 더이상 곧기만 한 막대기가 아니었다. 자신의 내부에는 수 많은 각이 생겼고, 원이 생겼으며 복잡한 면과 도형을 만들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깨닫게 된다. '자유란 무질서의 허용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직선은  특별한 재능을 오로지 자신을  뽐내는데 사용하지 않기로 결심한다. 그냥 꾸준히 노력을 할 뿐이었다. 그 결과, 어느덧 직선은 눈부시고, 재치있고,심오하고,신비롭고,다양하고,복합적인 것들을 만들수 있게 되었다. 이젠 그가 그토록 공을 들였던 점을 만나는 시간만이 남았다. 점과 헝클이 직선의 만남. 이 기묘한 삼각관계는 해탈의 경지에 이른 직선에게 있어 더 이상 성립될 수 없는 관계에 불과했다. 직선의 놀라운 변화에 점은 이 내 마음을 빼앗겨 버린다. 그토록 기고만장 했던 헝클이도 직선의 아름다운 모습에 꼬리를 내리게 된다. 아무렇게나 헝클어져있던 자신의 모습이, 자신이 자유와 기쁨이라고 생각했던 모습들이 사실은 무질서와 게으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는 오랫동안 끌어왔던 사랑싸움에서 스스로 백기를 들고 만다. 그리고, 그 후 점 과 선은 오랫동안은 아니더라도 제법 행복하게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이 책의 교훈

백터, 즉 일정한 방향이 있는 히이라야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 정말 어려운 말이다- 이게 무슨 동화책이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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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서여, 안녕
김종광 지음 / 문학동네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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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재미있는 책을 읽었다. 김종광이라는 작가는 하나의 단편만을 읽어봤을 뿐인데 그 기억이 꽤나 좋았던 모양이다. 오래전 부터 눈여겨 봤던 이 책을 이제야 읽게 된 이유는 아끼고 아꼈다는 표현이 적합할 것 같다. 지극히 개인 적인 취향은 단편집을 선호하지 않는 경향이 심하다. 하지만, 이 책은 무려 11편의 단편이 실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는 꽤 우수한 단편집이라고 말하고 싶다. 가장 큰 이유는 일단 재미있다는 점이다. 모든 작품에 있어 재미가 있다는 것은 가장 큰 장점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특히 단편은 한 번에 독자의 시선을 확 잡아끄는 무엇인가에 있어야 하는데, 이 책에는 그야말로 그 무엇인가가 존재한다.

 

표제작 '경찰서여 안녕'을 비롯한 11편의 단편을 읽어보면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점이 있다. 바로 작가의 출신성분이다. 작품 전반에 걸쳐 나오는 충청도 사투리는 작가의 고향을 알게 되고, 전투경찰에 관한 이야기 (경찰서여 안녕, 검문, 전설,기우)는 그의 병과를 짐작하게 한다. 또한 농촌을 배경으로 나온 작품들을 봐서 충청도 하고도 꽤나 외진 곳 출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구수하면서도 해학적인 충청도 사투리 덕인지 그 의 작품을 읽으면서 이문구를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평론가의 말대로 김유정의 반어, 채만식의 풍자, 이문구의 능청스런 입담이 함께 심어져 있다는 말이 틀리게 들리지 않는 이유다. 나와 비슷한 연배의 작품을 읽다 보면 가장 좋은 것은 공감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다는 것이다. 시대적 배경 뿐만 아니라 사소한 소품 하나까지도 내가 자라온 것들과 유사하기 때문에 좀더 많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는 나의 어린시절 뿐만 아니라, 대학,군대의 모습까지도 꽤나 유사한 부분을 많이 찾아 볼 수 있었다. 이 작품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중의 하나이다. 

 

이 책의 특징중에 하나는 등장인물이 꽤 많다는 점이다. 특별히 중요하지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이름과 나이를 길게 나열하고 있다. 영화로 따지면 한 장면 나오고 그만일 엑스트라에 가까운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친절하게 이름과 나이를 언급해 주고 있다. 어떤 작품에서는 이름의 나열들로 인해 정작 중요한 인물을 놓치게 되는 복잡한 경우를 만나기도 한다. 작품속의 화자들은 결코 비범한 인물들이 아니다.  그저 우리의 주변에서 흔히 만날수 있는 인물들이다. 나 혹은 가까운 친구,가족과 같은 아주 평범한 인물들을 등장시키다. 하지만,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주고 받는 아주 평범한 이야기들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공공연한 비밀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들은 그 들은 아주 비밀스럽게 혹은 너무도 아무렇지 않게 우리에게 들려준다.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있지만, 사회적으로는 금기시 되어 왔던 이야기들을 작가는 평범한 인물들의 입을 통해 아주 능청스럽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 모습에서 나는 통쾌함과 허탈함 그리고, 씁쓸한 웃음을 느낄수 있었다.책장을 덮는 순간 작가의 작품들을 꽤나 자주 만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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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낭콩 분도그림우화 22
에드몽드 세샹 지음, 이미림 옮김 / 분도출판사 / 198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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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프랑스 남부 랑그도크루시용에서 태어난 에드몽드 세샹은 1950년 영화촬영 기사를 하며 영화 일을 시작했다. 1957년부터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시작했으며 1960년대 후반부터는 다수의 텔레비전 영화를 연출했다. 1960년에 [빨간 풍선]으로 아카데미영화제에서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1963년에는 [강낭콩](1962)이 칸 영화제 단편영화부문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1975년에 [Les …borgnes sont rois](1974)로 오스카 최우수 단편영화상, 1981년에 [Toine](1980)로 세자르영화제 최우수 단편영화상 수상하는 등 그의 수많은 영화가 주목을 받았다.

 

 

 

에드몽드 세샹이라는 이름이 무척 낯설다. 이력을 살펴보니  이 작품으로 칸 영화제에서 수상한 기록을 가진 영화제작자이자 감독이었다. 세샹은 강낭콩을 영화로 만든 후 후일에 책으로 펴내기 위해 사진을 별도로 보관해 두었다고 한다. 그 때의 사진과 함께 책으로 다시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 작품은 어린이를 위한 책이라기 보다 성인을 위한 책에 가깝다. 그리고, 그림이 실린게 아니라 사진이 실려있다. 영화의 스틸컷 이라고 하던가. 영화의 한 장면들이 고스란히 책에 실려있는 것이 특징이다. 흑백과 컬러 사진의 조화가 상당히 독특하다. 물론 주인공인 할머니의 모습또한 꽤나 인상적이다.

 

오랜 시간동안 낡은 건물에서 화려한 핸드백을 만드는 일을 해온 할머니. 그에게 남은 건 낡은 재봉틀과 낡은 집 뿐이었다. 그녀가 평생 만들어온 화려한 핸드백과는 전혀 거리가 먼 그녀의 삶에 새로운 희망이 찾아온다. 유일한 소일거리중의 하나인 산책 도중에 , 말라 비틀어진 진달래가 심겨져 있는 낡은 화분 하나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낡은 화분을 가져와 진달래를 캐서 버린 작은 흙속에 식사 후 남은 강낭콩 한 알을 심는 할머니. 그 후 그녀의 삶에 가장 큰 일과는 강낭콩을 돌보는 일이 되었다. 재봉일을 하는 틈틈히 창가에 놓여진 화분에 물을 주고 해바라기를 시켜주는 할머니. 어느 덧 화분에서는 기적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 죽어있던 화분에서 파란 새싹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여린 잎은 어느덧 콩의 모습을 찾기 시작했고 홀로서기가 힘든 콩을 위해 할머니는 튼튼한 지주대를 세워주기 까지 한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 콩을 보면서 할머니는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게 되고 일상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된다. 마치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처럼 강낭콩의 파란 잎은 할머니의 남은 생과도 같은 역활을 하게 된다. 하지만, 낡은 건물에서 강낭콩이 살아가기에 충분한 햇살을 확보하는 일은 불가능 했다. 무시로 달려드는 비둘기 들의 공격과 윗 층에서 털어대는 낡은 이불에서 쏟아져 내리는 먼지들. 그리고, 작은 창으로 조금 밖에 들어오지 않은 햇살들. 어느덧 강낭콩은 자신의 푸른 모습을 잃기 시작한다. 할머니는 자신의 삶과도 같은 강낭콩을 위해 위대한 결단을 내려야 했다.  자신의 곁에 두고 보살피기 보다는 강낭콩의 싱그러운 삶을 위해 좀더 넓고 좀더 안락한 곳으로 보내기를 결심한 것이다. 자신이 즐겨 찾는 공원의 한 화단에 아무도 모르게 강낭콩을 심는 할머니. 그 곳에서는 자신의 낡은 집보다 훨씬 더 많은 햇살과 훨씬 더 싱그러운 흙과 공기가 있었다. 이내 자신의 싱그러움을 찿아가는 강낭콩을 보며 할머니는 자신의 선택에 만족하게 된다.  자신의 옆에 두며 소유하지는 못하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위해 좀더 많은 자유를 선택한 할머니의 삶은 그 자체만으로 행복하다.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모두가 같지 않다. 사람들은 질서을 존중한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세운 기준에 부합하는 아름다움만을 선호한다. 많은 이들에 의해 규정되어진 질서와 규칙에 부합되지 않는 것들은 모두 틈입자가 된다. 공원을 관리하는 사람들에게 어느덧 키가 훌쩍 커버린 강낭콩은 자신들의 세계를 불시에 침범한 틈입자에 불과했다. 그들은 이방인을 결코 가만히 두지 않았다. 할머니는 자신의 소중한 강낭콩이 처절하게 뽑혀져 가는 과정을 숨막히게 쳐다볼 뿐이었다. 그들의 무심한 손 짓 한번에 할머니의 희망과 사랑은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또다시 혼자가 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실망하지 않는다. 그녀가 선택한 것은 좌절이 아니었다. 그녀는 땅에 아무렇게나 내 팽개쳐진 강낭콩을 소중히 갈무리해서 집으로 돌아온다. 그녀는 다시 자신의 낡은 집에 강낭콩을 심을 것이다. 그리고 ,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강낭콩을 위해 정성을 다할 것이다. 그것이 그녀가 선택한 삶이다. 그것이 그녀가 바라는 행복이다. 우리들의 행복한 삶은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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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가져온 아이 문지아이들 85
김려령 지음, 정문주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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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아한 거짓말 ] , [ 완득이 ] 의 작가 김려령의 작품이다. 동화작가로 더욱 유명하지만 개인적으로 그의 동화는 처음 읽게 되었다. 물론 완득이,우아한 거짓말 등도 청소년 문학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기는 하지만, 온전한 창작동화라고 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다. 기억을 가져온 아이는 제3회 '마해송 문학상'수장작품이다. 마해송은 마종기 시인의 아버지로써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 동요를 쓰신 분이라고 한다. 나는 전혀 몰랐다.

 

문지아이들 시리즈중의 하나인 이 작품은 초등학교 5-6학년 이상 권장도서라고 한다. 그런데, 읽어 보니 과연 초등학생들이 이런 책을 읽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책 내용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책 내용이 결코 성인들의 책에 견주어 봤을 때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다는 말이다. 과연 내가 초등학교 시절에 이런 책들을 읽었을까? 라는 의문이 든다. 과연 읽었다면 이해를 제대로 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어린 시절 읽은 책들은 세계명작 동화 혹은 위인전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그 당시에는 창작동화라는 것이 존재하는 지도 몰랐다. 읽을거리가 풍부해진 요즘 아이들이 부럽기도 하지만, 그만큼 책에서 다루어야 할 문제들이 많아진 사회가 씁쓸하기도 하다.

 

이 작품은 환타지 형식을 빌러 아이들의 호기심을 유발한다. 시간여행 혹은 공간이동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 매개체로서는 꼬마무당이 등장하는데, 소위 영매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무당이라고 해서 샤머니즘적인 색채가 강한 것이 아니라 할머니에게 들을 수 있는 옛 이야기의 한 토막 같다는 느낌이 든다.  도시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시골로 떠나버닌 할아버지. 그 후 부모님의 이혼으로 인해 엄마와 살게 된 주인공은 1년에 단 한번 방학을 맞아 아버지에게로 간다. 시골로 떠난 할아버지를 찾아 나선 아버지였지만 할아버지의 행방은 끝내 묘연하다. 말 그대로 행방불명이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죽었다는 것도 아니다. 단지 사라졌을 뿐이다.  방학을 맞아 아빠에게 간 주인공은 꼬마무당 을 통해 '기억의 호수'라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기억의 호수는 우리에게서 잊혀져 간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잊혀진다는 것은 단순히 죽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모든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 버린 사람들.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들. 심지어는 건망증이나 구구단을 중간에 잊어 버리곤 하는 장난스러운 기억들까지 모두 모이는 곳이다. 그 호수들에는 치매 혹은 기억상실증과 같이 주인을 잃어 버린채 하루빨리 자신이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기만을 기다리는 기억들도 있지만, 죽음으로 인해 영영 돌아갈 곳을 잃어 버린 슬픈 영혼들도 존재한다. 그 기억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서히 굳어버리고 끝내는 사라져 버리게 된다. 

 

기억의 호수에서 만난 사람들의 모습또한 천차만별이다. 윗 마을 사람들은 오로지 자신만을 알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거부한다. 이 곳에 오기 전부터 타인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했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아랫마을 사람들은 정반대 이다. 서로가 도우며 남일,내일 가리지 않고 오순도순 생활한다. 이 곳에 오기전부터 타인과의 관계가 원만했던 사람들이다. 두 마을 사람들이 만날 수 있는 시간은 1년에 단 하루뿐이다. 1년에 하루밖에 밤이 없는 이 마을에서는 봉화가 오르는 저녁 만이 두 마을 사람들이 서로 만날 수 있는 시간이다. 그 날을 통해 두 마을 사람들은 물물교환을 하며 살아간다. 할아버지를 찾아  '기억의 호수'에 나타난 주인공과 꼬마 무당은 1년에 단 하루뿐인 만남의 장소에서 할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할아버지 또한 잊혀진 존재가 되었던 것이다.  할아버지를 단 하루도 잊었던 적이 없었다고 말하는 주인공은 할아버지를 만나며 끝내 눈물을 터뜨린다.  시간을 초월해 할아버지와의 만남을 이룬 주인공과 꼬마무당. 그들이 다시 돌아간 현실에서는 꽤 많은 일들이 벌어져 있었다. 짧은 시간이라고 생각했던 기억의 호수에서의 생활이 실재로는 한 달 정도가 훌쩍 흘러버린 것이었다.

 

시간을 초월한 만남이라는 것이 현실성이 떨어진 설정이기는 하지만 잊혀진다는 것 '에 대한 이야기를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풀어가기에는 아주 적절한 형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칫 무겁고 철학적으로 풀이될 수 있는 이야기를 할아버지와 손자 그리고 꼬마 무당이 펼치는 재밌는 시간여행을 통해 아이들이 조금 더 효과적으로 다가갈수있는 계기가 된 듯 하다. 동화책은 결코 유치하지 않다는 것을 다시한번 깨닫게 해 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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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들이 자라서 엄마가 된다
수지 모건스턴.알리야 모건스턴 지음, 최윤정 옮김 / 웅진주니어 / 199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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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들이 자라서 엄마가 된다. 당연한 이야기 이다. 물론 모든 딸들이 엄마가 되는 것은 아니다. 결혼을 하지 않을수도 있고, 결혼을 했지만 아이를 가지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딸들은 자라서 엄마가 된다. 반대로 이야기 하자면 '엄마들은 모두 딸이었다'라는 말이 좀더 정확한 표현일수도 있다. 이 말에는 예외가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엄마 알리야 모건스턴 과 딸 수지 모건스턴의 공동 작품이다. 평범한 엄마와 사춘기 고등학생 딸 아이의 교환일기 이다. 같은 상황에 대한 엄마와 딸의 다른 시각을 일기의 형식으로 재미있게 보여주고 있다. 엄마는 프랑스의 유명한 동화작가이고, 아빠는 프랑스의 수학자 이다. 딸은 이 책을 썼을 당시에는 평범한 프랑스의 고등학생 소녀이지만 지금은 파리에서 언어학 교수를 하고 있으며, 자신 또한 딸을 둔 엄마가 되어 있다. 수지의 딸 또한 이 책을 읽으며 자라고 있다고 한다. 정말 행복하고 부러운 가족이다.

 

얼마전 구입한 CD중에 엄마와 딸 아이의 일상을 이야기한 노래가 있다. 초등학생 정도 되는 딸아이가 학교를 가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을 그린 노랫말이 무척 재미있다. 날씨가 추우니 바지를 입고 가라는 엄마의 잔소리에 딸아이는 치마를 입겠다고 댓거리를 해댄다. 엄마는 추운 날씨에 무슨 치마를 입냐고 얼어죽을 일 있냐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런 엄마의 잔소리에도 딸 아이는 계속해서 치마를 입겠다고 우겨댄다. 끝내 엄마는 치마를 입던지 벗고 나가던지 추운 날씨에 얼어 죽던지 니 맘대로 하라며 폭발하고 만다. 엄마의 분노에 딸 아이는 ' 안 얼어 죽을거라고'아주 얄밉게 댓구한다. 지금도 이 노래를 들으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하지만, 결코 노랫말로만 들리지 않고 남의 이야기 같지가 않다. 딸 둘을 키우고 있는 아빠로써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집에서도 들려올 이야기 일것 같기 때문이다. 실제로 요즘에도 우리 큰 딸은 엄동설한인 요즘 날씨에 여름용 샌들을 신고 나가겠다고 우길때가 있다. 잘 모르고 순간의 기분에 따라서 한 이야기 겠지만 그 주장을 좀처럼 꺽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울컥 하곤 한다. 그리고, 정말 샌들을 신고 밖에 나간적도 있다. 추워봐야 배고파봐야 정신을 차린다는 게 내 육아법 이기 때문이다. (사실 좀 심하다는 생각을 하기는 한다.)

 

사사건건 대립하는 엄마와 딸. 엄마와 딸이라는 관계를 떠나 같은 여성이라는 동질 의식이 있지만 둘의 관계는 전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곤한다. '난 엄마 딸인게 싫어' , '엄마는 왜 나를 낳았어 ! ' , '나는 엄마처럼 살지는 않을거야' 딸들은 이와 같은 말들을 서슴치 않고 해댄다. 엄마에게 이보다 더한 독설이 있을까? 하지만, 그들이 딸 이었을 때에는 이런 말들을 할 수 밖에 없다. 엄마또한 마찬가지다.'도대체 내가 너를 왜 낳았는지 모르겠다' , '넌 누굴 닮아서 그러니?' 등등 엄마들의 댓거리도 만만치 않다.  엄마와 딸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만, 사실은 그 상처가 자신에게 더 한 고통이라는 것을 그들은 알고있다.  저자는 사춘기에 접어든 딸아이와의 원활하지 못한 관계를 해소하기 위해 교환일기를 쓰기로 한다. 매일 아침 학교를 가기 전 집에서 벌어지는 전쟁같은 일과를 놓고 엄마와 딸은 자신의 입장에서 일기를 쓴다. 그 날 입고 나갈 옷이 없다며 집안의 모든 옷을 다 뒤집어 놓는 딸. 얼굴에 난 여드름을 감추기 위해 한 시간 동안 공들여 화장을 하는 딸. 화장실을 차지 하기 위해 펼치는 전쟁들. 엄마는 이 모든 상황들이 불만이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별것도 아닌 일상에 고민하고 시간을 허비하는 딸 아이가 만족스럽지 못하다. 엄마는 그런 딸 아이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한 편 같은 아침의 일상에 대해 딸아이는 똑같이 엄마에 대해서 불만이 많다. 옷은 많지만 어느 옷 하나 유행에 뒤쳐지지 않은 것은 없다.  물려 받은 옷이 대부분이다. 엄마는 도대체가 유행이라는 것에 대해 관심이 없다. 내 얼굴에 난 여드름에 대해서 한 번도 심각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는 엄마가 못마땅하다. 옷에 대해 불만을 하면 엄마는 얼마 전 사준 옷을 입으라고 할 것이 뻔하다. 하지만 그 옷은 이미 유행이 지났고, 훌쩍 커버린 나에게 벌써 작아지기 시작했다. 엄마는 그것을 알지 못한다. 딸은 같은 일상을 가지고도 엄마와는 전혀 다른 불만을 토로한다. 물론 두 사람 전부 자신의 입장만을 말 할 뿐이다.  평상시에 엄마와 딸의 취향은 전혀 다르다. 하지만, 어쩌다 둘 만의 공통 관심사를 발견하게 된다. 기뻐해야 할 상황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패션에 민감하지 않은 엄마지만 딸 에게도 엄마의 패션중에 마음에 드는 것이 있다. 양말과 스웨터 그리고, 브레지어다. 엄마가 어쩌다 자신이 아끼는 스웨터와 양말 브래지어를 찾으면 꼭 딸아이가 선수를 치고 없다. 엄마는 '왜 이 아이는 내가 좋아하는 물건만 좋아할까?'라며 울분을 토한다. 하지만 딸은 또 이렇게 얘기한다. '몇 달 동안 젖을 먹이며 키운 딸에게 그깟 브래지어 하나 양보하지 못하는 엄마가 어딨냐고!!!'  그 외에도 식탁에서 벌어지는 일, 산책나가는 일, 친구를 사귀는 일, 공부와 앞으로의 진로에 대한 일, 그리고 사랑에 관하여 엄마와 딸은 서로 상반된 자신의 신세한탄을 늘어 놓는다. 그 이야기들이 정말 재미있고 유쾌하다. 아둥바둥 싸우고 서로 못 잡아 먹어서 안달 날것처럼 행동하지만, 두 사람의 그런 모습들이 결코 밉게 보이지 않는다.

 

열 여섯 생일파티때 친구들을 초대해 밤새 디스코 파티를 연 딸. 원만한 교유관계를 위해 큰 맘먹고 하룻동안의 일탈을 허락한 엄마. 하지만 엄마는 어느덧 딸아이가 여자가 되어간다는 생각에 불안해 한다. 아직 나는 딸 아이가 여자가 되는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며 불안해하는 엄마. 하지만, 딸아이는 천연덕스럽게 대답한다.'걱정 마 엄마, 난 아직 처녀야!' 웃지 않을 수 없다. 똑똑한 학생에 예술적 재능까지 겸비한 학생이 되는 것은 기적이라고 말하는 딸과 소위 말하는 엄친 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는 엄마. 어떻게 두 사람의 관계가 원만할 수 가 있을까?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한 가지 일도 건너뛰지 않고 사사건건 대립하는 엄마와 딸이지만 두 사람은 똑같은 인간이고 똑같은 여성이고 똑같은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두 사람은 분명히 알고 있다. 서로가 바라보는 방향은 같지 않지만, 서로가 바라보는 곳의 먼 곳에는 똑같은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 그리고, 엄마와 딸은 떨어질수 없는 운명적인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다. 하나의 탯줄로 연결되어 있던 열 달이라는 시간의 운명이 아닌, 언젠가는 나도 엄마가 될 수 밖에 없다는 본능적인 교감이 있는 사람들이다. 아들이 아빠가 된다는 것과 , 딸이 엄마가 된다는 것이 운명적으로도 생물학적으로도 결코 같지 않다고 생각한다. 딸이 엄마가 되는 것은 이 세상 그 어떤 일보다 엄숙하고 위대한 일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해 불만을 터뜨리지만 , 서로를 원망하고 미워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학 입학 시험을 마친 딸. 사춘기 시절을 보내고 서서히 성인이 되어 가는 딸. 일기가 끝나가면서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조금씩 이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화해를 한 것은 아니다. 자신과는 너무도 다르고, 자신이 원하는 것과는 다르게 행동하는 딸이지만 이 세상 모든 딸들을 다 준다고 해도 바꿀수 없는 내 딸이라고 말하는 엄마. 다른 엄마라면 내가 원하는 옷을 사주고, 내가 좋아하는 음식만 해주고, 내가 듣기 싫어하는 잔소리는 하지 않을수도 있지만, 어떤 엄마도 나 처럼 많은 결점을 가진 아이를 사랑해 주고 너무나 이기적이고 강렬한 사랑을 원하는 나 같은 아이를 받아들여줄 수는 없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딸.  두 모녀의 싸움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아니 어쩌면 이런 식으로 휴전을 선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딸아이가 자라서 엄마가 된다고 하더라도 엄마를 모두 이해 할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엄마 또한 딸과 같은 시기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벌어지는 딸의 행동을 모두 이해할수는 없다. 고로 두 사람의 , 두 여인의 싸움은 평생또한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이 보다 더 아름다운 사랑싸움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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