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나 - 동화 작가 박기범이 쓴 어머니들 이야기
박기범 지음 / 보리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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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동화작가 박기범의 생활 글 모음집이다. 1999년 11월 17일 부터 12월 20일까지 약 한달간의 일기와 중간중간에 삽입된 엄마의 짧은 글들이 실려 있다. 작가는 이 글로 2000년 전태일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오덕 선생은 이 책의 추천사를 통해 훌륭한 일기글의 본보기이며,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우리 글을 사용한 모범적인 글이라고 칭찬하고 있다. 전혀 어렵지 않고 잘난척하지 않는 편안한 글만으로도 훌륭한 한 권의 책이 만들어 질수 있다는 좋은 본보기를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야학의 선생님이다. 엄마는 야학을 다니는 학생이다. 엄마와 아들의 관계는 야학이라는 공간을 통해 선생님과 학생이라는 사이로 다시 태어난다. 이 과정에서 아들은 엄마에게 끊임없는 용기와 격려를 하고 있다. 평생 글을 쓰고 읽지 못한 채 살아온 엄마에게 아들은 읽기와 쓰기를 가르쳐 준다. 그 시간들을 통해 아들은 엄마의 살아온 역사를 듣게 된다. 엄마가 살아온 시간들은 우리 현대사의 사실적인 기록이다. 전쟁을 거치며 굶주림의 시간들을 지나 여인으로서, 어머니로서 받아야 할 온갖 고통의 시간들을 견뎌낸 자랑스럽고 감동적인 훈장과 같은 이야기이다. 비록 맞춤법은 많이 틀리고, 문맥은 어색하지만 그 내용만은 어떤 직업 작가의 글보다 진솔하고 훌륭하다. 우리는 그런 글에서 감동을 받는다.
 
작가가 다니는 야학의 학생들은 모두 어머니들이다. 다시 말해서 여성들이다. 그 중에는 대부분이 60을 넘긴 할머니들이 많이 계시다. 예외로 30대 중반의 젊은 어머니도 있지만 환갑을 넘긴 할머니들이 대부분이다.  삶이 어렵다는 이유로, 여자라는 이유로 일찍이 생활전선에 내몰렸던 그들에게 읽고 쓰는 최소한의 교육권리조차  사치였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또한 그 들이 견뎌야 할 삶의 무게는 만만치 않지만, 알고싶은 욕망은 그 무게를 이겨내게 만들었다. 늦은 시간 저마다 삶의 고단을  미처 떨어내기도 힘든 시간에 그들은 학생이 되어 교실을 찾아든다. 요즘은 초등학교에서 조차 가르치지 않는 한글을 배우기 위해서, 그들은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견디며 배움의 열정을 불태운다. 그들을 따뜻하게 맞이하는 작가. 30대의 젊은 작가에게 그들은 모두 자신의 어머니와 같다. 어미니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면서 작가는 많은 것을 깨달는다. 오로지 읽고 쓰고 싶은 그들에게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 그들에게 과연 문법과 같은 어려운 과제들이 필요한 것인지. 그것은 그대로 지금 우리의 교육현실을 반영한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값비싼 교재도, 훌륭한 선생님도 아닌 배우고자 하는 열정을 사그러들지 않게 하는 아주 미미한 부채질일 것이다. 사라져 가는 불꽃을 지피는 대에는 끊임없이 지속되는 바람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들에게는 오랜 시간 타고남기에 충분할 열정을 이미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교육의 현장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공통되는 부분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어머니에게 배움에 대한 자심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작가가 선택한 방법이 일기쓰기다. 비단 그 날 하룻동안 벌어진 일들에 대한 기록뿐만이 아닌, 그동안 살아온 어머니의 삶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두서없이 써내려가기를 권고한다. 평상시 들려주던 시어머니와 남편, 시누이 시동생들에 대한 넋두리를 작가는 있는 그대로 공책에 써내려가기를 부추긴다. 그 공책에는 어떠한 형식도 필요없다. 연필을 깍으며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시간과, 쓰고 싶은 것에 대한 욕망만 있으면 충분하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이 아닌, 자신의 삶에 대한 넋두리를 말이 아닌 글로써 표현하는 것이다. 물론 어머니에게는 무척이나 힘들고 괴로운 시간임에 틀림없다. 맞춤법에 대한 불안감과 고통스러웠던 지난 시간들의 회고로 인해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충동을 무척이나 많이 느낄수 밖에 없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 힘든 시간들을 묵묵히 견뎌냈다. 아들또한 그런 어머니 옆에서 자신의 일기를 써가며 어머니를 끊임없이 응원했다. 물론 어머니와 아들이 똑같이 전태일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성과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들이 서로를 의지하고 이해해가는 과정이 감동스러운 것이다.
 
이 책을 읽고나서 문득 이런 생각을 해봤다. 이 책의 작가와 어머니는 나와 우리 어머니의 연배와 거의 비슷하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 어머니는 글을 쓰실수 있을까? 지금까지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문제가 갑자기 내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지난 번 우리 딸 나라의 돌잔치 때 , 어머니에게 짧은 글 한 줄을 부탁한적이 있었다. 한 참을 머뭇거리시던 어머니에게 그냥 편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라고 하셨더니 그제서야 맞춤법이 맞는지 모르겠다며 짧은 글 한 줄을 쓰셨다. 우리 어머니 또한 다른 어머니 처럼, 혹시나 틀릴까 하는 불안감에 자신의 생각을 마음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계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어머니가 살아온 길이 우리 어머니의 삶과 그리 다르지 않기에 가슴이 더욱 먹먹하다. 나는 과연 이 책의 저자처럼 어머니와 같이 일기를 쓸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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