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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370
김민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9년 12월
평점 :
나는, 우리는 순간을 살고 순간을 죽는다.
여성부"가 이성부"로 읽히던 어느 추운 겨울날 밤의 순간들과
그래서 다시는 이 땅에 봄이 올것만 같지 않던 어느 시린 하늘의 순간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날 문득 시가 내게로 오'듯이
그렇게 봄날은 문득 다시 찾아오고,
무언가 뭉클한 것이 - 한편으로 그만큼 살갑게 또 따뜻한 것은
그모든 순간들이 추억할만큼 눈부시게, 아름다움이다.
주머니 속에 잡힌 육백원짜리 네스카페의 온기만큼이나
그 해 겨울도 그렇게 따뜻하게 데워져갔을 것이다.
시를 노래할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그 미세하지만 분명한 '온기'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그녀는
처음 - 느끼기 시작했다.
우리들의 매 순간 스러져가는, 또 작열하는 순간들을 추억하며.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
김민정
천안역이었다
연착된 막차를 홀로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어디선가 톡톡 이 죽이는 소리가 들렸다
플랫폼 위에서 한 노숙자가 발톱을 깎고 있었다
해진 군용 점퍼 그 아래로는 팬티 바람이었다
가랑이 새로 굽슬 삐져나온 털이 더럽게도 까맸다
아가씨, 나 삼백 원만 너무 추워서 그래
육백 원짜리 네스카페를 뽑아 그 앞에 놓았다
이거 말고 자판기 커피 말이야 거 달달한 거
삼백 원짜리 밀크 커피를 뽑아 그 앞에 놓았다
서울행 열차가 10분 더 연착될 예정이라는 문구가
전광판 속에서 빠르게 흘러갔다 천안두리인력파출소
안내시스템 여성부 대표전화 041-566-1989
순간 다급하게 펜을 찾는 손이 있어
코트 주머니를 뒤적거리는데
게서 따뜻한 커피 캔이 만져졌다
기다리지 않아도 봄이 온다던 그 시였던가
여성부를 이성부를 읽던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