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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잔상들
장혜령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2월
평점 :
처음부터 지금까지 나의 영어이름은 June이었다. 그냥 Jun이 아닌 e가 붙은. 빨강머리 앤이 고집스럽게 자신은 –e가 붙은 anne이라고 말하는 것이 부러웠던지 ‘베니와 준’의 준이 되고 싶었던 건지 아니면 그 당시 만나던 남자가 준이 좋겠어라고 말해서였는지 모르겠다. 사실 나의 이십대는 이리저리 휩쓸릴 줄만 알던 때였기에 뭐든 상관이 없었다.
‘사랑의 잔상들’을 읽고 나는 작가가 궁금해졌고 내친김에 도둑처럼 찾아낸 그녀의 블로그 이름이 ‘June’이란 사실을 알아냈다. 어쩐지 그녀가 적어내려간 10년이 낯설지 않더라며 공교로움에 대한 애정에 혼자 키득댄다. 아무것도 아니면서 무엇이 되고 싶었던 시절의 혼란이 담겨진 듯한 네이밍에서 불러일으키는 향수가 내멋대로 그녀를 해석해버리게 한다. 그녀가 응시하고 있는 것은 사랑의 기억이나 마음이라기보다 거기에 서있던 끝내 혼자인 자신이고, 배경에는 뜨거워 제대로 다룰 줄 모르던 시절이 흐르고 있다. 죽어버린 사랑은 떠나보내고 그저 사랑을 하던 순간의 자유로운 영혼과 열정을 그리워하며 부쳐지지 않는 편지를 쓰고 또 쓰는 그녀의 마음은 사랑을 하고 있던 자신을 향하는 거다. 운명처럼 ‘값싼 구두’를 정성스레 닦는 집시처럼 그녀는 여전히 움직이고, 떠나고 있다. 그래도 십년동안 한줄 한줄 보태는 동안 ‘자신으로 살아가는 게 싫어서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기대는 것’이 아니라 이젠 제법 고독 안에서 ‘머무르기’를 선택하는 법도 알게 되었겠지.
사랑의 열정이란 공유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타자에게 열정을 전달하려는 시도는 언제나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낯선 이들 앞에 자신을 내던질 수 있는 자유가 그녀에게는 중요하다.
글쓰기가 ‘경계를 확장하기 위한 자유를 향한 시도’이기에 이렇게 써버렸다는 것으로 그녀는 ‘사랑’에게서 자유로와지고 싶은 것은 아닐까 짐작한다. 학창시절 스승에게 들은 “다 보여주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화두로 삼던 그녀는 무수한 일들을 이미지로 전달하여 해석할 수 있는 공간을 상대방에게 주어야 한다는 답을 얻은 듯하다. 그렇게 그녀의 독백은 겪은 사건에 집중되어 있지 않고 그 언저리의 영화, 책, 그림 등을 경유하며 빈 공간을 넉넉히 만들어준다. 비장하지 않게, 자유를 향해.